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52
내밀한 기적 (6)
그때였다.
촤아아아앗! 첨벙!
방패와 갑주를 벗을 생각도 못 한 아서는 곧장 물에 뛰어들었다. 그는 힘겹게 클레이오에게 도달했다. 이미 바다 아래 깊이 가라앉은 그에게.
튼튼한 팔이 클레이오의 어깨를 잡아채고, 두 다리가 물을 박차고 수면을 향했다.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머잖아 두 사람 모두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서는 몇 번이고 클레이오의 이름을 불렀다.
“레이, 레이!”
“컥, 쿨럭—.”
“레이, 정신 차려 봐!”
마법사의 힘없는 팔다리는 물풀처럼 흐늘거리기만 했다. 간신히 눈을 반쯤 뜨긴 했지만 동공이 풀려있었다.
본디 물에 빠진 자는 허우적거리며 무엇이든 붙들려 들게 마련인데, 클레이오는 도무지 절박하게 굴지를 않았다.
클레이오를 끌고 간신히 항구로 기어 올라온 아서는 결국 에테르 고갈로 인한 각혈을 했다.
바닷물에 젖어 무거워진 옷과 무구의 무게가 버겁게 여겨질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바닥에 둥그런 웅덩이가 생길 만치 시커먼 피를 토해내면서도 아서는 클레이오를 붙든 손을 놓지 않았다.
아서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에테르를 한계까지 긁어 쓴 몸의 기맥이 뒤집힐 듯 날뛰었다. 아서는 자신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졌다.
전투의 흥분이 남아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기사의 감각으로, 주변의 민간인들, 심지어 아군 병사들이 보이는 본능적인 거부감과 두려움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
이 사람들은 클레이오를 우리 편인 재앙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 애는 그저 도시를 멸망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인데.
그 고결함은 오로지 아서만이 아는 것이고, 증명할 증거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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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미온 한은 — 정보상이자, 해안방어진지를 지켰던 민간 지휘관이자, 상선의 선주이자 마법사로서 — 한순간도 눈을 돌리지 않고, 일어난 일을 똑똑히 지켜봤다.
사명감과 오기의 혼합물을 마음에 잔뜩 충전하지 않고는 감히 직시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마침내 그 모든 마법이 끝나고나자 앤디미온은 다리가 풀려 갑판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고 말았다. 밤을 지샌 피로가 뒤늦게 몰려왔다.
‘정신이 완전 혼미해지네. 하, 시발.’
도대체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마법 같았는데, 또한 결코 마법일 수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것만은 여타한 정치적 계산을 뛰어넘는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결론이었다.
그런 앤디미온의 곁에 역시나 망연한 표정을 한 르네 퀴벨리에가 서서 앤디미온에게는 손도 내밀지 못한 채, 이제는 상선이 다시 자리 잡은 항구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긴 밤이었을 것이다.
르네는 테르게스티 시의회의 부의장이고, 시장이 사망한 지금은 시의회의 대표였다.
그의 도시에서 일어난 일은 침략자가 벌인 것이든 원군이 한 일이든, 보통 사람의 그릇으로 수용하기가 어려운 사건이었다.
모두다 넋이 빠져 있어 마법사 클레이오 경이 물에 들어가는 걸 보고도 그게 사고라고 생각을 못 했다.
아직 다 끝이 안 났던 건가? 뭘 더 하려는 거지? 싶었는데 이내 아서 왕자가 물에 뛰어들어 마법사를 건져냈다. 곧 니네베 연대의 병사들이 달려와 그들을 부축하는 모습이 보였다.
앤디미온은 그제야 아뿔싸,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가, 너무나 엄청난 무위를 보여주어 저들도 지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젠장, 가서 [경감]이라도 몇 방 걸어주면 안면을 익혔을 텐데! 젠장!’
역시나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르네가 말했다. 아연하게 들리는 어조였다.
“【저 연약한 육신으로 신과 같은 권능을 쓰는 존재가, 우리와 같은 사람은 아닐 것이야.】”
“【한계를 넘은 마법은 기적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렇다고 마법사를 사람 취급 안 할 것까지야. 듣는 마법사 기분 나쁘게.】”
“【앤디, 자네가 우리 도시를 위해 해준 일은 감사하게 여기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네와 저자를 같은 마법사라 여길 수는 없어. 세상의 그 어느 마법사도 저자와는 같지 않겠지. 안 그런가?】”
바닥에 퍼져 앉은 채로 눈썹만 까딱 올렸던 앤디미온은 굳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뭔 뜻인진 알겠는데요, 르네. 그런 소리, 저기 오는 니네베 연대의 빨간 머리 장교에겐 안 하는 게 좋을 거요.】”
불과 대적의 기사 이시엘 키시온이 테르게스티 시의회 서기와 함께 전투가 종식된 해안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횃불 같은 붉은 머리는 멀리서도 쉽게 식별이 됐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다급한 태도의 병사 몇 명이 얼른 달려가 무언가를 소리치고 손짓하는 게 보였다. 병사들의 손끝이 가리키는 건 아서와 클레이오가 옮겨져 있는 해안 창고 앞이었다.
니네베 연대에 속한 기사들의 구심점은 수도방위대 학교 977기였다. 아서와 친구들이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건 그들과 관계가 없는 앤디미온조차 잘 알 만큼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 모습을 함께 보던 르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게도 양심과 감사의 마음이란 게 있다는 걸 잊지 말게나.】”
“【다 제 덕분에 좋게 끝난 거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라는 이웃의 원군은 안 오고 뜬금없이 니네베 연대가 와 주었긴 했지만, 어디서 자네가 보낸 전신을 방수하든지 한 거겠지. 내막이야 지금부터 알아보면 될 터이고. 그보다 중한 공인, 해안방어진지를 지킨 일 잊지 않을 터이니 걱정 마시게.】”
르네는 상대가 천사이든 악마이든 자신의 도시를 온전히 남도록 한 이들에겐 가능한 정도까지 협조할 생각이었다. 저들이 이 도시를 차지하려 들지 않는다면.
천 년의 테르게스티는 카롤링거의 망명자인 르네가 결코 잃을 수 없는 두 번째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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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에서 전투가 벌어질 동안 이시엘은 시의회를 감시하던 브룬넨 기사들을 제압한 뒤, 의원들의 정식 승인을 얻어 이들이 니네베 연대의 도움을 원했다는 연판장을 작성했다.
멜키오르를 통하여 문서가 본래의 뜻과 다르게 이용당할 것을 염려해 독소 조항이 될 만한 구절은 상세히 검토하여 뺐다.
이 상황에서도 노회한 시의원들은 이시엘의 의도를 검증하고 또 검증하며 도시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원군으로 왔다 해도 타국의 군대인 이상 전적인 환영만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성미가 급하고 생각이 짧은 이라면 자신들을 구원자로 받들지 않는 테르게스티의 의원들에게 무례하게 굴었을지 모르지만, 이시엘은 그런 종류의 멍청한 무뢰한이 아니었다. 그런 행동이야말로 승리를 더럽히는 짓이기에.
전쟁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동시에 지면 위에서도 벌어지는 것이다.
명분과 실리, 승리의 대가와 패배의 값을 따지는 대립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당장이라도 멜라미드의 검을 쥐고 전장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이성으로 눌러놓고서, 이시엘은 지루한 공방을 양자가 만족할 만한 형태로 마무리 지었다.
저기 친구들이, 또한 신의 있는 병사들이 대가도 없이 가담한 싸움으로 인해 스스로의 목을 죄지 않도록 하려면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최종 문서엔 알비온은 테르게스티의 자치권에 개입할 여지가 없음을 암시적으로 알 수 있는 긴 글줄이 자리 잡았다.
이시엘은 해방된 도시를 원래의 주인들에게 돌려주기로 약조하고 전투가 종결된 해안으로 왔다.
시장이 사망한 현재 자동으로 시장 대리가 된 부의장 르네 퀴벨리에가 해안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린 르네는 이시엘이 가져온 서류를 검토한 뒤 까다롭게 굴지 않고 곧장 사인을 해 주었다.
“【테르게스티를 위해 헌신해 주신 데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은 영원히 그대들을 환대하고, 최혜의 편의를 약속드립니다. 어디에서든 퀴벨리에의 이름을 대고 원하는 것을 요청하십시오.】”
르네의 제안에 이시엘의 낯이 조금 펴졌다.
오면서 병사들에게 듣기로 아서와 첼은 에테르 고갈로 실신한 상태였다. 클레이오는 다행히 상태가 나았지만, 낫다고 해 봐야 그저 의식이 있다 뿐이지 평소에도 오늘내일 하는 병자 같은 안색의 친구였다.
니네베 연대가 주둔하는 도리엔 시에서 후발대로 마법사를 불러온다 하더라도 당장 응급조치와 휴식이 필요했다.
“【혹시 이곳에 치유 마법사가 있습니까?】”
“【테르게스티 시립 의료원에 마법사가 둘 있습니다. 당장 수배해 보겠습니다. 또 의료원의 병상 역시 충분하니 부상자를 이송할 수 있게 마차를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 역시 잠자리와 식사가 급해 보이는군요. 곧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상황이 이런 차라, 성대한 환영을 준비하지 못한 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또한, 항공기에 급유할 연료를 청하고 싶습니다.】”
“【연료는 무엇을 씁니까?】”
“【가솔린이면 됩니다.】”
“【다행이군요. 그거라면 역의 창고에 모두 저장돼 있습니다. 저희도 운하의 물류운반용 소형정부터 가솔린을 연료로 쓰는 엔진으로 교체중이라, 양이 꽤 넉넉할 겁니다.】”
이시엘과 실무적인 논의를 나눈 뒤 르네는 시의회 서기와 함께 시내로 돌아갔다. 걸음걸이가 다급했다. 그의 앞에 산적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드디어 한숨 돌린 이시엘이 항구 앞 경비대 건물에 임시로 뉘여 둔 친구들을 살펴보려고 할 때였다.
미미하게 표정이 밝아진 스웨인이 통신병에게 들어온 보고를 그녀에게 전했다.
“안젤리움 자작의 함선이 두 시간 안에 테르게스티 만으로 접어든다고 합니다.”
“룬데인의 인가를 받고 움직인 것으로 판단됩니까?”
스웨인은 고개를 저었다. 안젤리움 자작의 불같은 성미에, 테르게스티의 소식을 듣고서 자체적으로 움직인 거였다.
“안젤리움 영지에도 비행선이 출몰했다고 들었는데, 그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모두 처치했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마무리는 안젤리움 자작에게 맡겨두면 되겠습니다.”
테르게스티 탈환은 연루된 민간인이 만 명 단위인 사건이었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고, 곧 대륙 전체로 이야기가 퍼져나갈 것이다.
이토록 거대한 공은 단독으로 차지하기 보다는 적당히 기여를 나누는 편이 현명했다.
이시엘의 주군이 지휘한 니네베 연대가 중앙에서 어떤 식으로 취급받는지는 그녀 역시 잘 알았다.
작전을 실행한 세력이 오로지 니네베 연대뿐이라면 주둔지 무단이탈이니 항명이니 하는 구실을 들먹일 수도 있겠으나, 인망이 있는 데다 알비온 유일의 해군을 거느린 안젤리움 자작까지 합류한다면 이번 작전을 그런 식으로 폄하하긴 어려울 것이다.
어느덧 해는 완전히 떠올라 아침나절이 지나고 있었다.
항구의 선박들은 차례로 가교를 내려 피신했던 민간인들을 육지로 올려 보내기 시작했다. 기쁨과 안도가 온 도시를 들썩이게 했다.
투타타타타탓—
그런 이시엘의 감각에, 익숙한 항공기 프로펠러 소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저기 멀리 북쪽에서부터 남빛 기체에 깃 끝을 흰색으로 도색한 알비온의 항공기 한 대가 접근하고 있었다.
고도를 낮춘 기체가 만에 접어들자 에테르로 안력을 강화한 이시엘의 눈에, 동체의 한편에 그려진 음표 몇 개가 보였다.
아이샤 데왈리 상사의 기체였다.
아이샤는 거의 불시착하듯 과격하게 항공기를 몰아 쭉 뻗은 해안 도로를 활주로로 내려섰다. [강화]를 한 동체 하단과 지면이 마찰을 일으키며 황금빛 불꽃을 튀겼다.
아이샤를 향해 달려가던 이시엘의 마음 한 구석에 불안이 피어났다.
아이샤는 분명 클로토강 수원지를 살펴보러 갔었다. 테르게스티 작전 실행 중에도 주기적인 정찰 임무를 소홀하지 않으려는 첼의 안배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비행기에서 구르듯 뛰어내린 아이샤는 이시엘을 발견하자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발 빠른 아이샤는 금세 이시엘 앞에 섰다.
온난하다 해도 한겨울인 날씨건만, 갖춰 입은 제복의 셔츠 깃뿐만 아니라 고글 아래 초록색 머리카락마저 땀에 젖어 검은빛으로 보였다. 과도한 흥분으로 진초록색 눈의 동공도 확장되어 있었다.
제 상사를 닮아 담대하게 구는 아이샤로선 드문 모습이었다.
“키시온 중위님! 키시온 중위님!”
“무슨 일인가, 데왈리 상사.”
“큰일! 시발, 젠장, 존나 큰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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