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96
실현된 예언과 관철된 복권(復權) (1)
리피는 어떻게든 눈을 부릅뜨고 새 인물에 대한 경계 태세를 갖추려 노력했지만, 레티샤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널브러졌다.
안젤리움 자작의 이론에 따르자면 지휘관은 진짜로 뒤질 때까진 뒤지면 안 된다던데, 정신론으로 이겨내기엔 실혈량이 너무 컸다.
결국에 떨리는 손으로 포옹의 반구를 켜 사령부에 통신을 넣은 쪽은 리피였다.
〔룬데인 동역, 아슬란의 이형 처치 완료.
신원 불명의 조력자 확인 요망.
백발. 신장 195cm 이상, 7레벨 기사, 오른팔 외팔, 장창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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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방위대 학교, 므네모시네의 문.
클레이오는 스텔라 방벽의 내부 결계 핵 앞에서 서리서리 에테르를 뽑아내고 있었다.
스텔라 방벽은 시동된 방어 기능을 제천의 거울로 증폭시킨다. 에테르 투입량을 증가시키면 방벽의 구조를 따라 몇 배 이상의 힘으로 펼쳐졌다.
그러니 방벽의 출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최초에 밀어 넣는 에테르양이 클수록 좋았다.
방벽을 움직이는 세부적인 조정은 마도구의 대가인 제베디가 맡고, 아무튼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면 되는 파트는 클레이오가 맡았다.
현재까지 그 협업은 성공적이었다.
공작의 완드를 짚고 선 클레이오는 주머니에 넣어 둔 포옹의 반구가 연신 깜빡이며 내는 신호를 곁눈질했다.
이시엘이 사령부에서 보내오는 전신으로, 수도 곳곳의 소식을 실시간 업데이트 중이었다.
현재는 스텔라 방벽 가동에 집중하느라 신호를 자세히 볼 방도가 없었는데, 그렇게 대충 본 것도 ‘약속’은 일단 ‘읽은’ 것으로 취급했는지 전신 부호로 전달된 내용을 글줄로 재구성해 눈앞에 띄워주었다.
몇 분 전, 클레이오의 서사 개입도가 90%에 이르렀기에 가능해진 기적이었다.
서사 개입도가 더 오르자 ‘약속’의 「기억」은 읽었던 텍스트를 본래의 매체에 실어 실체화하는 단계를 넘어서, 실체가 없는 정보에마저도 물질적인 그릇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억의 종합적인 정보 체계는 클레이오의 사고 능력을 한계 이상으로 가속시켰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클레이오는 그저, 내부 결계에 빛을 부여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므네모시네의 문 앞에 선 채 도시 전체의 전황을 파악 중이었다.
폭격이 일으킨 혼돈의 한복판에서 아슬란은 갈라져 나온 재앙이 되어 도시의 모든 방향을 습격했다.
출현한 이형이 아주 정직한 싸움만을 한 덕에 그나마 상대를 할 수 있었다.
리피와 레티샤도, 스웨인과 그의 중대원들도, 첼과 공중타격대도, 다리아와 아레미스도 어떻게든 아슬란의 이형을 이겨냈다.
여럿이 힘을 합쳐도 승리가 어려울 경우엔 대피소와 먼 장소로 유도하라는 지시가 이시엘에게서 나왔다.
클레이오는 이시엘의 통신과 스스로의 지각 능력을 이용해 전투의 양상을 복기할 수 있었다.
치열하게 싸웠으나 완전하지 못한 승리였다.
아홉 이형과의 전투는, 상대를 방벽 밖으로 끌어낸 첼의 경우를 제외하고선 전부 시가전이었다.
아서 역시 강을 이용하여 의회의 피해를 줄이려 노력했지만, 그 앤 또 너무 강했다.
고작 이형 하나를 흐트러트리는 동안에도 도시가 무참하게 파괴됐다.
‘가만히 놔둬도 이형이 도시를 부수고, 맞서 싸우면 싸우다 부서지고, 이기면 소멸하면서 대폭발과 오염을 일으키고… 완전 자폭 공격이로군. 놈이 스텔라 방벽 내부에서 가한 타격도 무시할 수가 없고.’
물론 이형의 활용을 자폭 공격이라 칭하기엔, 본체는 다치지 않는 멀쩡한 습격 방식이긴 했다.
현재까지 밝혀진바, 홀연히 나타난 아홉 이형 중 어떤 것도 본체가 아니었다.
허나 이형은 본체와 감각을 공유한다.
한 사람에게서 분열된 존재가 휘두르는 무력이 기사단 하나를 움직인 수준이기는 했으나, 단순한 파괴를 목적으로 아홉 번 죽는 게 제정신으로 할 짓일까?
클레이오는 완드를 고쳐 잡으며 생각했다.
‘아니, 이쯤 오면 아슬란도 제정신은 아니겠지. 이쯤 오면도 아닌가. 적어도 쥴레이카가 쓰러질 무렵부터는 내내 그랬을 테니.’
하지만 그건 너무나 편의적인 설명이다.
리오그난 왕가의 광증이라는 건 신이 기입하는 역사 속에서, 저자의 의도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인물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이므로.
진실은.
아니다, 진실이라는 단어는 적확하지 않다.
객관의 기준을 신이 정하는 세계에서 진실의 의미는, 8세계의 것과는 다를 터이다.
결계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선 마법사가 관망하는 풍경이, 다른 이들의 시야와 판이한 것처럼.
클레이오는 그가 읽고 보고 들었던 모든 정보의 총화로서, 결론을 내린다.
‘아슬란에겐 단순한 파괴를 넘어선 다른 목적이 있는 거지.’
9교의 아슬란은 불완전한 기억을 가지고서도 집념 어리게 고문서를 수집해왔다.
한때는 그의 기행으로 취급되었으나, 첸트룸의 수중도서관이 실존하는 이상 아슬란이 추구한 길은 진실에 다가서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를 기록한 낱장, 세상이 재생성 될 때에도 미처 소거되지 못한 이전 세계의 단면들, 지금 확정된 역사와는 어긋나는 사실 관계를 지닌 글줄의 모음.
아슬란은 종내, 불타버린 팔림프세스트의 조각을 이 세상의 어딘가에서 찾아냈다.
8교의 세계, 정전으로 확정되지 않은 2부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그는 알았으므로 과거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전개를 창출해낸 것이다.
아슬란이 거대한 변수가 된 지금, 클레이오는 아서와 힘을 합쳐 그를 상대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여기 계속 붙어있어야 한다는 점이지.’
저 머리 위의 적들이 도시를 향해 포탄을 퍼붓다가 추락하여 방벽을 휘황하게 달궜다.
물론, 클레이오가 있는 한 스텔라 방벽은 무적이었다.
잠시 흐려졌다가도 곧장 기세를 회복하는 방벽은 적어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는 완벽하게 수도를 지켜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손을 떼면 수 분 안에 공백이 생겨나게 된다.
‘그래도 공중타격대가 적기를 걷어내 주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곧 움직일 수 있겠어.’
첼은 부상당한 채로도 성흔을 거듭 쓰고, 그녀의 수족들도 날래게 움직여 꾸준히 적의 전투기를 무력화시켰다.
완전한 소탕은 무리라 여전히 산발적인 포격은 계속되는 중이었다.
그러나 포격 간의 간격이 점점 멀어졌고, 오래지 않아 스텔라 방벽에 가해지던 외부 공격이 거의 사그라들었다.
클레이오는 방벽을 조정하느라 이마와 관자놀이가 땀에 흠뻑 젖은 제베디와 눈을 마주쳤다.
손발이 잘 맞는 사제 사이에선 말도 필요 없었다.
로사 교수가 단단히 지켜주는 안전한 환경에서, 클레이오는 찬찬히 저의 에테르를 물리기 시작했다.
제베디의 에테르가 빠르게 공백을 채웠다.
그렇게, 클레이오가 사령부에 합류할 타이밍을 재던 도중이었다.
갑작스런 충격이 그를 내리쳤다.
구우우우우우우웅―
에테르의 파동이었다.
엄청난 힘의 움직임이 안 그래도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던 룬데인 일대의 에테르 장을 엉망으로 뒤집어엎었다.
“컥―.”
서클을 열고 있던 클레이오와 제베디는 뜻하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막대한 힘의 뒤엉킴에 의해, 몸 안의 에테르 흐름이 얼크러져 클레이오는 피까지 한 움큼 토해냈다.
구우우우우웅― 구우우우우―
소버닐 지구의 상공으로 거대한 에테르의 기둥이 치솟았다.
회갈색과 검붉은 색이 얽섞인 그 에테르는 가공할 만한 힘으로 스텔라 방벽을 안쪽에서 두드려댔다.
일순 방벽의 금빛이 깜빡, 꺼졌다가 돌아올 만큼 광폭한 에너지였다.
클레이오는 그 에테르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았다.
그건 잘못 볼 수가 없었다.
피어스 클라겐의 에테르였다.
집중하느라 말이 없던 제베디가 결국 힘들게 입을 열었다.
“커헙, 큽. 이게 무슨 변고인가. 히드라의 독을 마신 소드마스터이다. 2왕자가 오는 것인지. 허어. 허어어어.”
힘의 소용돌이는 가까워 오는데, 당장 방벽을 안정시키느라 제자를 치유해줄 수조차 없는 스승의 안색이 시뻘게졌다.
피를 더 뱉어냈다간 스승이 먼저 쓰러질 것 같아, 소매로 입가를 쓱 닦아낸 클레이오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 일어났다.
“스승님, 저 에테르의 주인은 아슬란 그자가 아닙니다. 폭주한 피어스 클라겐입니다. 그는 히드라의 독을 복용한 상태입니다.”
“뭣이?!”
경거망동하는 일이 드문 로사 페히테 교수마저도 검끝을 바르르 떨 만큼 놀라 반문했다.
“그게 정말인가? 그는 이미 소드마스터인데 왜 독을 마셨단 말이냐.”
“폐인이 된 후론 아슬란 일파에서 밀려나 버려진 신세이지만, 과거 아슬란 측에 협력하던 당시, 궁성의 통제권을 두고 벌인 대결에서 아르모리크 공작에게 밀리자 기어코 독을 복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일이 어그러진 후엔 그토록 오래 깨어나지 못하고….”
클레이오는 피어스가 독을 마신 사실을 원고를 읽어 알았다.
그러나 피어스는 이미 병자가 되어 아슬란과 멀어졌고, 골골거려도 소드마스터는 소드마스터이니 전력이 될 경우를 감안해 그의 도핑 혐의를 함구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나 그가 날뛰기 시작했다면 더는 숨길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알아서 여기로 오고 있기까지 하네.’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의 8레벨 감응자는 거의 동시에 그 사실을 알아챘다.
클레이오는 완드를 떨쳐 들었다.
“그는 아무래도 아슬란의 이형과 방벽이 증폭하며 내뿜은 에테르에 자극을 받아 깨어난 것 같습니다. 히드라의 독 복용자들의 전례를 볼 때, 피어스가 이성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로사는 떨리던 검끝을 평소처럼 곧게 바로잡았다. 하나만 남은 형형한 눈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배어 나왔다.
“이곳으로 오는 건 이지를 잃은 소드마스터란 말이구나.”
“네. 피어스는 그냥 가장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쪽으로 끌려오는 것입니다. 여기엔 세 명의 마스터와 제천의 거울이 있으니 말입니다.”
“상황을 알겠다.”
제베디 역시 저의 지팡이를 쿵, 내리찍고는 다시금 방벽 조정에 매진했다.
“나는 방벽을 운용하겠으니 뒤를 페히테 경에게 맡기겠소.”
“이 몸을 믿어주어 기쁘기 그지없소. 반드시 마법감의 일을 완수하도록 만들어 주겠소.”
“나야말로 기쁘지. 우리 세대 최고의 기사인 경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를 믿는단 말이오.”
로사와 제베디는 둘이 합쳐 한 세기에 달하는 시간을 알비온을 위해 복무해온 이들이었다.
부침과 영욕의 세월을 보내며 무려 세 명의 왕을 모시고 네 번째 왕을 기다리는 이들에 비하자면, 클레이오의 각오는 그렇게 단단한 것도 못 될 듯싶었다.
클레이오 역시 로사 교수의 곁에 스르르 가서 섰다.
학교는 결전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장소였다.
상급생들은 니네베 연대와 함께 움직였고, 하급생들은 민간인 대피를 도운 후 함께 피신한 상태였다.
‘시가지에서 난리를 피우느니 소개된 수도방위대 학교가 싸우기에는 낫지.’
스르르―
클레이오의 투지에 조응하여 공작의 완드가 깃을 살랑였다.
편집자 권한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클레이오의 위명은 결코 성흔 위에서만 구축된 것이 아니었다.
“원거리 공격은 제가 맡겠습니다.”
“든든하구나, 클레이오.”
로사는 드물게도 씨익 웃었다. 묘하게 개구진 그 낯빛은 역시 아들인 미에츠와 꼭 닮았다.
에테르 흐름이 격해지면서 강풍이 부는데, 한 갈래로 묶인 채 마구 흩날리는 흰머리 사이로 보이는 뺨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 표정은 로사를 한참이나 젊어 보이게 만들었다.
목숨을 건 대결투를 앞에 두고서 그녀는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검사로서의 본성과 투지를 일깨웠다.
필리프 왕 치세 내내 학교에 매여 아이들에게 기초 검술을 가르치고 있었던 로사였다.
하지만 본래 그녀는 나라 제일의 기사, 기사들의 우두머리였지 않은가.
지금 로사 페히테는 오래전의 영광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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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방위대 학교에서 세 사람이 느끼던 것을, 강 건너편의 아서 역시 느끼고 있었다.
폭주한 피어스 클라겐은 수도방위대 학교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이형을 쓰지도 않았다.
침착하게 구는 아슬란과 다르게 생명의 심지까지 불태우는 힘으로, 피어스는 타오르고 있었다.
아서는 침공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조급함을 느꼈다.
지금 피어스 클라겐을 막아설 이 역시 자신뿐이었다.
피어스는 걷는다. 뛴다. 도약한다. 강을 뛰어넘는다. 안타리오 다리가 반파된다.
아서 역시 도약한다. 피어스가 강을 건너기 전에. 터져버리기 전에. 저 맹독이 온 도시에 흩뿌려지기 전에.
그때, 피어스를 따라 도강하려던 아서를 그림자가 붙든다. 그의 비행 같은 도약은 추락으로 결착 지어진다.
쿠우우웅―
아서는 감각을 최대한으로 돋운다. 그를 붙잡은 것은 아슬란도, 아슬란의 이형도, 마인라트의 병사도 아니다.
영원한 겨울의 도시의 바닥을 얼리고 삭히고 바쉈던 마수처럼, 검은 그림자들이 아서의 발꿈치를 깨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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