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11
원대한 계획 (2)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클레이오는 [방어]를 펼쳐 가까스로 아슬란의 마법을 막아냈다. 완전하지 않은 방어막 위로 시간 차 없는 연속 공격이 들어왔다.
쒜에에에에엑!
쿠우우우웅!
은색 에테르로 빚어진 거창과 백금빛 방어막의 부닥침으로 인해, 세상에는 천재지변이 떨어진 것 같았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온 사방을 울렸다.
보다 신에 가까워진 자들의 힘은 지형을 움직이고, 강물의 흐름을 바꿨다.
아슬란은 이 좋은 공격의 기회를 아서가 아니라 클레이오를 치는 데 썼다.
마검사는 히드라의 독이 도는 심장을 증기기관처럼 이용하여 에테르를 증폭하고 퍼트렸다.
아슬란이 생성시킨 서른두 개의 창대를 막아내는 데에 수도를 세 번 뒤덮고도 남을 양의 에테르가 소모되었다.
메이지 마스터가 된 뒤로는 에테르의 부족을 몰랐던 클레이오였으나, 끝내, 이제 다시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검은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고야 만다.
에테르 부족으로 인한 각혈이었다.
콰악!
결국 마지막 한 대의 창이 클레이오의 옆구리를 얕게 꿰었다. [방어]를 여러 겹 겹쳐 시동했음에도, 내장까지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고 땅이 하늘로 솟구치는 혼돈 가운데, 아서는 몸부림을 쳤다.
그 무작스런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아슬란은 아서의 목줄기를 놓쳤다.
아서를 내리누르던 아슬란이 이제는 다시 아서에게 짓눌리는 형국이 된다.
[종언]의 식은 이제 아서와 아슬란 주변만 감싼 크기로 축소되었다.아슬란의 갈비뼈 사이에선 폭포수처럼 선혈이 흘러내려, 보통 사람이라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건재했다.
소드마스터의 에테르를 한껏 응축한 사자의 검을 내리꽂아도, 아슬란은 마법으로 엮은 무형의 갑주를 휘감은 팔로 아서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의 왼 팔뚝을 반쯤 파고든 검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얽혔다.
전신이 피와 흙먼지로 더럽혀졌음에도 아슬란은 못마땅한 기색도 없이 몹시 초연한 표정을 짓는다.
아서의 손위 형제는, 한때는 저 자신이 지독히도 증오했던 맏이처럼 군다.
“신에게 물어라. 사도는 진실로 두 번 있지 않을 존재일까? 어리석은 신은 빗나간 계시만을 되돌려줄 것이다. 하나, 이 모든 반복과 반복이 남긴 고통을 아는 이들은, 이다음에는 그 무엇도 다시 있지 않기를 바라게 되지. 친애가 깊을수록 바람도 간절해진다. 너는 이미 예언을 들었다. 네 유정함은 널 미치게 할 터이니.”
아슬란의 마지막 말 위로, 신을 모방하는 맏이의 목소리가 덧씌워진다.
열에 들떠 발작하던 멜키오르의 방언이, 아서의 무의식의 깊은 바닥에서 단숨에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한다.
그 목소리.
신을 흉내 낸 예지의 말.
월계수 가지의 신성이 보증하는 확언.
아서는 희미하게 동요했다.
아슬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서의 검을 거세게 밀어냈다.
퍼어억.
마법 방어막을 뚫고 들어간 사자의 검은 아슬란의 두 팔에서 근육과 힘줄을 갉아내고 뼈를 절반쯤 부숴놓았으나, 그의 숨을 끊어놓지는 못했다.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벨 수 있다는 신물조차도 저 마법의 주인을 단번에 제압하긴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슬란은 고개를 멀리로 든다.
그의 시선은, 마법을 막아내느라 발목까지 땅속으로 푹 처박혔다 간신히 일어서는 클레이오에게로 가 맺힌다.
클레이오는 필사적으로 에테르를 순환시키며 서클을 널리 펼치려 했다.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마법식 위로 [치유] 마법이 이중발진 되나, [종언] 마법식의 경계를 뚫는 건 역부족이었다.
서클은 흐지부지 꺼져버리고 아서는 여전히 중상을 입은 채이다.
자신보다 기량이 뛰어난 마법사의 서클 안에서 새로운 마법을 발동시키지 못하는 금제는, 이제껏 클레이오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와 마법으로 대결해 이겨낼 수 있는 상대가 없었으니까.
지금까지는.
자신의 마법이 아서에게 닿지 못하는 걸 알자 클레이오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아슬란의 마법이 8레벨 이상이라는 건가?’
[치유]가 닿지 않는다는 건 여타의 공격 마법 역시 닿지 않는다는 뜻이다.방금 전 [제후천사의 불]을 쓸 적엔 아슬란이 아서를 상대하며 등 뒤의 방비를 소홀히 한 터라 타격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첫 번째 공격처럼 쉽게 클레이오의 마법에 당해 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클레이오가 생각한 바는, 아서 역시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서의 상처를 봤으니 당장이라도 마법을 연사할 듯하던 클레이오가 주춤댄다는 데서 사정이 짐작됐다.
거세게 이를 악문 아서는 자신의 입 안에서 이가 마모되는 파찰음을 듣는다.
오로지 제힘으로 사태를 끝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반복에서 기인한 침착함은 휘발되어 버리고 아서에게는 오로지 절박함만이 남는다.
“레이. 옛날의 그 축복을 써 줘. 트리스테인과, 저기 동남의 전장에서 내게 주었던 그 힘을.”
두 왕자와 멀지 않은 곳에 선 클레이오는 망설였다. 손쉽게 수락의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이 대결은 온전히 아서와 아슬란 두 사람의 것이어야 하는데, 자신이 개입하면 아서가 이긴다 해도 그 승리가 빛바래지 않을까?
이런 결정적 순간에 쓰인 ‘작내 서술’이 아서의 정신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될까?’
선택에 주어진 시간은 짧다.
클레이오는 결단을 내린다.
전투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멜키오르는 여전히 건재했다. 그가 축적한 마석과 그의 소드마스터는 아직 등장조차 않았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아서에게 치유 마법을 걸지 못하고, 아슬란에게 공격 마법을 쓸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이라도 써야 했다.
클레이오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두 번째 성흔을 소환했다.
오른 손등 위의 편집자 권한 안을 가로지르는 가로줄, ‘작내 서술’이었다.
클레이오의 「기억」이 금빛 문구를 소환해냈다.
『세계의 안위에 깊이 연루된 존재와 진심 어린 뜻을 같이할 때, 신의 영예로운 총애가 지상에 임한다.』
클레이오는 미묘한 고양감과 그만큼의 불안에 휩싸인다.
아서는 무엇을 바랄까?
세상이 지속되기를?
클레이오 역시 그러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서가 이겨서, 살아남아야 했다.
마법사는 제 두 번째 성흔에 에테르를 밀어 넣는다.
‘미래가 오기를 바란다면, 여신은 널 죽도록 할 수 없어.’
‘작내 서술’의 개입으로 인해 서사의 정합성이 흐트러질 때 받을 대가는, 차라리 자신이 대신해 치르고 싶다 여기며 클레이오는 간절하게 손을 내뻗었다.
어두운 대기 위에서 돋아난 금빛 글자들이 불꽃처럼 광휘를 흩뿌린다.
[고유 스킬: ‘작내 서술’―발현 형태: 축성(祝聖)의 공명(共鳴)
―시전자의 에테르 영역 안에서 영웅은 이능을 얻습니다.] [―‘작내 서술’의 요지는 원고에 기재됩니다. 해당 ‘작내 서술’의 활성화는 작품의 내적 일관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용자의 서사 개입도가 상승합니다.
누적 비율: 95%] [종언]의 마법식이 ‘작내 서술’을 덧입고 펼쳐진 서클에 의해 밀려난다.
아슬란의 마법진을 벗어나, 성흔의 권역에 든 아서는 본래라면 볼 수 없었을 것을 본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찰나 동안, 천 년 같은 시간이 스쳐 간다.
피. 눈물. 호소. 약속과 이별. 그믐의 밤. 인간의 배신.
여신의 신의.
불멸자의 필멸성.
필멸자의 영원성.
덧쓰였다 지워진 문자들. 세계를 쓴 문자. 먹색. 청금색. 흐름. 범람.
그 아래의 원점.
그의 핏줄 속에 가라앉아 있는 기억. 모두 펼쳐졌으나 해석이 불가능한 과거.
주인공에게 드리웠던 무지의 베일이 신이 부여한 아득한 무게를 잃고 이면을 드러낸다.
막의 틈새로 무대 위의 모닥불이 기다랗게 빛을 드리우듯, 추락하는 별의 파편이 튀어 오르듯 앎이 쏟아진다.
아직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진실의 편린.
신들은 세계를 쓴다.
세계를 쓴 낱장들은 닳아 해졌다. 수명을 다한 신들은 그다음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끝내 당도한 끝이. 끝을 저지하려는 시도가.
그것이 너의 사명이고 의무인데.
만화경 안에 갇힌 것처럼 아서의 눈앞이 산란한다.
혼란의 최후에, 아서는 오래된 원형 극장의 객석에 앉아 있다. 그는 무대 위를 응시한다.
부서진 무대 위에는 긴 두루마리를 든 이가 모닥불을 등지고 섰다. 키가 큰 남자의 인영, 슬픔으로 빚어진 것처럼 보이는 검은 머리의 사내는 아서가 처음 듣는 언어와 목소리로 독백한다.
낯선데도 낯이 익고, 알 수 없는데도 알게 되는 말.
‘신의 사랑을 받는 이에겐 너무나도 긴 찬양의 문장들이 할애되어 있었다. 신들의 행사란 그러하다. 인간의 운명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그들의 축복과 저주는 같은 것이다.’
아서는 이해한다.
어머니의 예언이 여기에서 완전히 해석된다. 자신은 신의 사랑과, 사랑에 동반된 사명을 받았다.
나는 축복받았나?
저주받았나?
그 둘을 구분할 수 없다면, 지상에서 신의 사랑은 어떻게 현전하는가?
쿠구궁. 구구궁.
버저적.
혼란에 빠진 아서의 뒤로 인과를 끊어놓을 듯 단호한 벼락이 내리쳤다.
바짝 정신이 들고, 절로 검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비명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아서는 세계의 비틀림에 진노한 자연의 힘이 클레이오를 직격했음을 알았다.
그건 ‘작내 서술’의 대가였다.
그와 동시에 아서의 검 위로 일찍이 접한 적 없는 강력한 불길이 옮겨붙었다.
값을 치른 힘은 마침내 아서에게 초월적 힘을 부여했다.
그런데도 왜 그는 당장 형제를 베고, 또 맏이를 찾으러 달리지 못하는가?
아슬란이 남은 은빛 에테르를 다시 그러모으는 앞에서, 아서가 망연히 선 것을 본 클레이오는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아서, 나는 괜찮으니까.”
아서는 찌그러진 갑주 안의 어깨를 떨었다.
네 할 일을 하라는 다정한 독려가 어쩌면 이토록 무참하게 여겨질까.
자신의 친구는 친구이기 이전에 신의 대리인이며, 이것은 신이 그에게 부여한 사명이다.
정렬되지 않은 깨달음, 회의와 의심과 질문, 멜키오르와 아슬란이 집요하게 일깨우고 파고들려 하는 죄책감과 부채감이 아서의 내면에서 요동친다.
그러나 종내, 그는 그 전부를 의무의 뒤편으로 밀어 둔다.
지금 아서는 신의 계산이 부당하다고 항명할 방도가 없기에, 그저 대결에 임할 수밖에 없다.
희생을 통해 얻어낸 이 힘을 헛되이 낭비해선 안 됐다.
클레이오가 안심하도록 살짝 고개를 끄덕여 준 아서는,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다음이 있다면, 그 다음에는 자신이 클레이오의 몫을 대신 받으리라.
고오오오오오―
아슬란은 또다시 에테르를 응축시키고 있었다. 한 점으로 축소된 [종언]의 식은 인력이라도 가진 양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들였다.
아서는 그에 대항하여 정연하게 타오르는 검을 들어 올린다.
벼락을 흘려내다 입은 어깨와 등의 화상을 마석 사파이어로 식히며, 클레이오는 아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빛을 쥔 자의 실루엣은 어둡게만 보이지만, 시각의 봉사 없이도 클레이오는 아서가 하는 일을 알 수 있다.
신과, 신의 대리인과,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의 뜻이 하나로 합치될 때 기적이 일어난다.
본디 삼위일체란 진노하고 벌하는 창조의 신과 사랑으로 구원하는 신을 일관되게 설명하기 위하여 발명된 개념이 아닌가?
이 세계에는 아버지이신 신 따윈 없고, 지금 너는 분명히 그 성스러운 세 위격의 한 축이다.
클레이오는 제멋대로 달려 나가는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다. 펼쳐진 성흔은 그의 이성이 구심점을 잃도록 했다.
화상과 창상을 입고 혼몽해진 채로, 그는 계시를 듣는다.
너무나 선명하기에 오로지 마음으로만 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서술의 음성.
『여신이여 노래하소서, 내 유일한 왕의 분노를.』
이것은 한 세계를 넘어온 서사시의 구절인 동시에, 클레이오 자신의 의지를 음성화한 서술이기도 했다.
파아아아앗!
아서가 검을 내지르자 아슬란의 남은 마법식이 깨끗하게 소멸했다.
두 번째로 검을 그어내자 대기를 채우던 은빛 에테르가 증발했다.
세 번째로 사자의 검이 포효하자 바닥을 물들였던 붉은 피가 기화하여 정화된 대지를 드러냈다.
클레이오의 서클 안에서 아서의 검은 적을 벨 뿐 아니라 세상을 복원하고 있었다.
클레이오의 예리한 지각은 정화의 뒤에 남는 청연한 기색을 감지한다.
정원의 흙은 더 이상 붉지 않았다. 다시 씨앗이 싹틔울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클레이오는 입가를 더럽힌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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