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106)
이해기는 애써 입을 열었다.
“형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참기 시렁.”
“잘 참았잖아. 앞으로도 참을 수 있잖아.”
이해기가 미간을 찌푸리고 이귀한을 직시했다.
“고작 이러려고 돌아온 거야?”
친애하는 맏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생들은 모른다.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호인이던 청년이 인간에서 한없이 멀어진 부정 덩어리가 되었는지 그들은 모른다.
맏이가 일부러 말하지 않으니 동생들은 그저 상상하고 안쓰러워할 뿐이다.
분명히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동생들이 그를 기다린 시간보다 더 오랜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귀한은 스스로와 동생들을 잊지 않았다.
차라리 모두 잊고 참지 않으면 편해질 텐데 동생들이 보고 싶어 더 괴로워했다.
이해기는 그걸 안다. 22년 늦게 돌아온 이귀한을 목격했기에 이귀한이 그렇게 되기 전에 돌아와 얼마나 기뻤던가.
“기껏 돌아와서 우릴 타락시키겠다고?”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살인과 출산 중에 어느 쪽이 더 쉬울까.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드는 것. 어느 쪽이 더 쉬울까.
삶은 늘 그렇다. 옳고 바른 길을 지키는 일은 어렵고 나쁘고 그릇된 길을 걷는 것은 수월하다.
영웅이 되는 길은 멀고 험난하나 타락은 한순간이다.
이해기가 그러했듯이.
이해기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치만 내가 이런 괴물이어도 괜찮다고 했잖아. 나도 너희가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
분명히 이보배와 이해기가 그런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이런 식으로 써먹으라고 한 말이 아니다.
“큰오빠,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이해기는 나서지 말라고 이보배를 압박했지만 이보배는 결국 그의 보호망을 뚫었다.
몸은 여전히 작은오빠의 뒤여도 목소리는 낼 수 있다.
“나는 정말 큰오빠가 큰오빠이기만 하면 괜찮지만, 큰오빠는 우리가 자아를 잃은 꼭두각시가 되어도 좋아?”
“그건 내가 잘 조절할게. 오빠 믿지?”
“정말 우리가 큰오빠처럼 되었으면 좋겠어? 아니잖아.”
이귀한이 입술을 내밀어 오리 부리처럼 만들었다.
“너희는 너무 약해. 걱정하는 것보단 조금 맛이 가더라도 강한 게 안심돼.”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만들던 이귀한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이보배가 심연을 보았기에 심연 또한 이보배를 응시했다.
“아니면 우리 막내가 한 말은 거짓말이었나?”
순간 이보배의 말문이 막히자 이해기가 나섰다.
“형, 그렇게 되면 보배가 때려도 더는 아프지 않을 거야. 그래도 좋아?”
“그건 쪼끔 슬프지만 대신에 같이 뿌셔뿌셔 하러 다니는 것도 즐거울 거야.”
이귀한은 파괴신과 졸개들이 얼마나 즐겁겠냐며 무표정한 얼굴로 흥얼거렸다.
이보배는 진지하게 그를 설득했다.
“큰오빠,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막내야. 세상일이 언제는 마음대로 되던? 억울하면 강해지렴. 여기서 깜짝 질문!”
이귀한은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너희가 기억하는 나랑 지금 나 중에 어느 쪽이 좋아?”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가. 당연히 과거의 이귀한이 좋다.
인간이고 착하고 유쾌하고 책임감 있던 이귀한을 사랑했기에 지금의 이귀한도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과거의 이귀한이 좋다고 해버리면 이귀한이 어떻든 괜찮다고 했던 말과 모순된다.
이보배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이귀한이 숫자를 셌다.
“십, 구, 팔, 칠.”
‘뭐라고 하지?’
이 소통 불가 대마왕을 달래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보배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데 이귀한이 순식간에 남은 숫자를 셌다.
“육오사삼이일, 땡! 막내야, 늦었구나! 이런 쉬운 질문엔 망설이면 안 되지!”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이미 끝났습니다. 이런 걸로 망설이면 안 되지.”
제시간에 답을 내지 못한 이보배는 어깨를 움츠렸다.
이해기도 언제든 동생들을 데리고 도망갈 수 있도록 경계했다.
이씨 집안 장남은 목을 베고 심장을 뽑아도 죽어주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죽어줄 의사가 없어 보이니 동생들을 피신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이한생은 급변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형과 동생을 붙잡은 손에 힘만 주었다.
동생들이 긴장하든 말든, 무서워하든 말든 파괴신은 천하태평이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감정이 돌아왔다. 이귀한은 배시시 웃었다.
“정답은 당연히 과거의 나야. 지금 나는 당연히 싫어해야지. 나도 내가 싫은데.”
이귀한은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막내 착해 빠져선. 이런 괴물도 오빠라고 좋아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나도 막내가 어떤 모습이든 좋지만, 그래도 파괴신의 졸개 막내보단 포션 만들어주는 막내가 좋아!”
이귀한이 활짝 웃었다. 이 당연한 걸 왜 모르냐는 듯 동생들에게 훈계했다.
“그러니까 셋째야. 화르세인지도 좋지만 우린 네가 더 좋다.”
설산 정상의 차가운 칼바람 대신 묵직한 침묵이 휘몰아쳤다.
이해기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연기였어?”
전환 버튼 누르겠다고 난리 친 이한생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이귀한의 계략이었다.
이귀한은 진지하게 V 자를 그렸다.
“멍청해서 귀여운 셋째를 위한 특별 서비스.”
바짝 긴장했던 이해기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이해기는 이마를 짚고 이보배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안도했다. 이한생은 다리가 풀려 털썩 엉덩방아 찧었다.
망연자실한 이한생에게 이귀한이 다가와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우리 셋째는 멍청하고 무능해서 귀여워.”
저런 괴물이라도 큰형이다.
이한생은 이귀한을 가족이라 말한 이보배를 이제야 이해했다.
이귀한은 무섭고 징그러운 괴물이지만 그의 큰형이었다.
술 마시고 놀러 다니기 좋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의 형이었다.
“난 너희가 인간이든 아니든 좋아할 거지만 그래도 인간인 너희가 더 좋아. 화르세인지든 한생이든 다 셋째지만 한생 셋째가 더 좋아.”
이귀한은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화르세인지 셋째에겐 비밀이다. 걔 삐치면 오래가.”
이한생의 목이 메었다. 이한생은 억지로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그래도 작은형보단 뒤끝 짧잖아.”
“그건 그래. 뒤끝은 우리 둘째가 제일 길지.”
“그러면서 끊기도 잘 끊잖아. 완전 뱀이라니까.”
이한생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보배는 길었던 공방이 끝났음을 알았다. 이해기도 그리 생각했는지 실없는 농담을 이었다.
“야, 꼬리 끊는 건 도마뱀이지.”
“도마뱀이든 뱀이든 뱀이지.”
이한생은 전환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것이다.
‘이걸로 다 끝나서 집에 가서 씻고 잤음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노블레스 길드원은 아직까지도 살아 질긴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귀한이 놀라서 감탄했다.
“와, 저게 사네.”
이귀한이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일부러 시간 끌었는데.”
남매끼리 말다툼하다가 노블레스 길드원의 숨이 끊어지면 이해기는 피를 묻히지 않아서 좋고 나머지는 이해기가 피 묻히는 꼴 보지 않아서 좋다.
악마 나름의 잔꾀였는데 승리한 건 악마의 마기였다.
이귀한의 타락한 마기가 노블레스 길드원의 숨통을 잡고 어떻게든 붙여두었다.
갈등이 하나 풀렸지만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해기가 묵묵히 제단으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누군가 그를 붙잡았다.
돌아보니 이한생이었다. 이해기가 이번엔 정말 물러서지 않으려는데 이한생이 놀라운 말을 했다.
“내가 전환할게.”
“막내 오빠!”
이보배가 비명 지르듯 이한생을 부르고 이귀한은 대놓고 기분 나빠 했다.
“형님의 특별 서비스를 개무시?”
“한생아, 우리 이 얘기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니?”
“끝난 게 맞아. 아까까진 그냥 재수 없고 열 받아서 지른 거면 이번엔 내가 생각해서 결정한 거니까.”
“막내 오빠 미쳤어? 그걸 왜 결정해. 힘없어도 괜찮아. 애초에 화르세인지에게도 신성력 없어도 괜찮다고 했는데.”
“알아. 화르세인지 그 새끼가 너한테 그 말 듣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를 거다.”
이한생도 알 턱 없건만 그는 아는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저 사람들이 걱정되어서 그래?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서 죽으려는 거야? 오빠가 언제부터 그렇게 착한 사람이었다고.”
말은 그렇게 해도 이보배는 안다.
이한생은 착한 사람이다.
겁 많고 관심종자에 애정 결핍이지만 무서운 괴물로부터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동생을 감싸는 사람.
정이 많고 눈물도 많고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게 싫어서 때리지도 못하고 허세만 부리는 그런 사람.
다친 사람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선인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이보배는 더욱 힘주어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디 지하실 만들어서 저 사람들 가둬두면 되잖아. 큰오빠랑 작은오빠가 경비 서면 되지. 저 사람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몇 년만 기다리면 내가 정화수 만들게. 작은오빠가 도와줄 테니까 더 빨리 만들 수 있어. 그러니까 막내 오빠가 나설 필요 없어.”
이보배는 이한생을 붙잡고 매달렸다.
이한생은 그런 이보배를 쳐냈다.
“족발 치워라. 재수 없다.”
이한생은 건들거리면서 바닥을 걷어차려다 얼어붙은 피를 보고 곱게 발을 내려놓았다.
“솔직히 우리가 친하면 얼마나 친했냐. 소 개 보듯이 하다가.”
“닭.”
“그래, 소 닭 보듯이 하는 우스운 견원지간이었지. 내가 잠시 회까닥해서 구해줬다고 몇 년씩 병원비 대고 생활비 대주고 그럴 사이는 아니잖아, 솔직히. 형들도 그래. 돼지 새끼 예뻐하면 예뻐했지 날 예뻐한 적은 없어. 인정? 응, 인정. 반박 거절.”
이한생은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보배가 본 주마등, 그도 보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한생의 주마등이 아니라 좀 더 과거의 기억을 본 것이다.
오늘 하루 벌어진 많은 사건과 주마등. 거기에 이귀한의 연기까지 보고 나니 대충 이한생의 안에서 결론이 났다.
이한생은 화르세인지와 전환할 것이다.
“난 말이야. 우리 집구석이 지긋지긋했어. 엄마랑 아빠는 형들이랑 돼지만 좋아하고 나는 찬밥이지, 저 돼지는 볼 때마다 시비 걸지, 형이라고 있는 새끼들은 지들끼리 죽 맞아서 나만 놀리고 장난치고. 진짜 지긋지긋하고 싫었다고, 시발.”
이씨 사남매는 모두 자기가 제일 불쌍하단 피해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한생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넷 중에 제일 심했다.
“근데 시발. 존나 웃긴 게 뭔지 알아? 적당히 부유한 집안, 무관심한 부모님, 나와 다르게 애정과 관심을 퍼 받는 형과 여동생, 이런 상황에서 쥐뿔 도움도 안 되는 무능력. 이게 모두 그 새끼가 바란 소원이라는 거야.”
성자 화르세인지 드 체키빙의 인생은 전형적인 영웅의 일대기였다.
시작은 망나니였으나 영웅이 되었고 결국 제 한 몸 희생해 성신의 세계를 지켰다.
성신은 총애하는 성자의 위를 올려 신격을 주려 했으나 화르세인지는 성자의 삶에 염증을 느꼈다.
그는 죽기 직전 성신에게 빌었다.
“다음 생엔 적당히 자식 많은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아, 남자만 있으면 삭막하니까 여동생은 하나쯤 있어도 괜찮겠네요. 얼굴은 지금도 만족하지만 다른 유형의 미남이면 좋겠고 체격도 좀 더 키워주세요. 한평생 큰 사건 사고 없는 지루한 인생이면 좋겠습니다. 능력도 필요 없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과 신성력이 없는 세계에서 태어나게 해주세요.”
스스로를 희생한 성자를 안타까이 여긴 성신은 화르세인지의 조건을 모조리 들어주었다.
환생한 화르세인지는 원하는 것이 모두 충족된 세계에서 심심하고 무난하게 무병장수할 예정이었으나…….
“균열의 날이 터졌지. 성신의 예측이 백지장이 되면서 화르세인지가 받은 환생 특전도 엉망이 되었어. 본래라면 괴물에게 당해 그 자리에서 죽어야 했는데 쓸데없이 무병장수 특전을 받은 바람에 죽지 않고 버티게 된 거지.”
“그럼 네가 신성력을 쓸 수 없는 것도.”
“죽기 전에 빈 소원 때문이야. 망할 새끼가 신성력 지긋지긋하다고 징징거렸거든.”
회귀자가 과거로 돌아와 미래를 위해 준비했듯, 시스템도 미래에 닥쳐올 위험에 대비해 준비했다.
화르세인지 드 체키빙이 그 준비의 일환이었다.
성신은 아끼던 성자의 환생 계획이 엎어진 걸 보고 안타까워 신성력 판매에 동의했고, 시스템은 환생 특전과 어긋나지 않도록 이한생이 아닌 화르세인지 드 체키빙을 깨웠다.
“공자님 기억이 열여덟 살까지밖에 없는 건 왜 그러는데?”
“딱 열여덟 살까지의 화르세인지는 머리가 텅텅 비었거든. 이후론 머리에 너무 든 게 많아서 막은 거겠지.”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이해기가 입을 열었다.
“혹시 시스템이 형의 대항마로 너를 선택한 건, 네가 형의 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응, 그냥 신성력 쓸 수 있는 사람 찾다 보니 내가 걸린 걸걸.”
이귀한이 동생은 건드리지 않으니 일부러 이한생을 대항마로 몰았다고 오지게 욕했던 이보배와 이해기가 침묵했다.
시스템을 욕한 게 아주 조금 미안했다.
“근데 막내 오빠. 그거랑 전환이랑 무슨 상관이야?”
“돼지 새끼가 성질머리는 멧돼지 같아 가지고. 계속 들어봐. 지금 난 굉장히 쓸모없는 인간이야. 그리고 전환 버튼을 누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살아서 밥이랑 산소 축내고 똥만 싸도 좋아!”
“그래, 한생아. 하루하루 똥 싸는 기계여도 형은 환영이다.”
“아이 시발, 끊지 말고 들으라고! 내가 이래서 너희 싫다고! 맨날 지들끼리 편 먹고 나만 따돌리고!”
주마등이지만 성자의 숭고한 희생을 목격해 약간 자비로운 상태였던 이한생이 흥분했다.
그는 바들바들 떨다가 심호흡해 흥분을 가라앉혔다.
“나는 너희가 싫은데, 진짜 싫은데! 화르세인지 그 새끼는 원했잖아. 그리고 그 새끼가 어릴 때부터 싹수가 노래서 그런가 나보다 담력이 있어.”
‘아니던데. 겁 비슷하게 많던데.’
이보배는 근질거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새끼가 대, 대, 대, 존버하면 크는 타입이라 세계도 구했거든. 그러니까 큰형도 정화할 수 있을 거야.”
이한생은 대기만성을 떠올리지 못해 존버로 대체했다. 가오가 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뜻은 통했기에 상관없었다.
“나한테 이런 X 같은 현실을 준 게 그 새끼니까, 이 X 같은 현실 누리면서 큰형 정화하라고 해. 재주는 개가 부리고 돈은 내가 버는 거지.”
“한생아, 곰이다.”
“곰은 존나 무섭잖아. 곰이 어떻게 재주를 부려.”
우기는 이한생이 미련 곰탱이 같았지만 이보배와 이해기는 뒷말을 기다렸다.
“시스템이 전환 퀘스트를 준 걸 보면 화르세인지에게도 똑같은 퀘스트를 줄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시스템이 그 새끼한테도 전환 퀘스트를 준다고 약속하면 나도 전환하겠어. 그럼 되잖아.”
자살이 아니다.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다만 이한생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직접 할 수 없으니 화르세인지에게 맡길 뿐이다.
“막내 오빠…….”
“그딴 눈으로 야리지 마라. 재수 없으니까.”
“셋째야, 나는 정화 안 해도 괜찮은데.”
“솔직하게 말하라며. 나도 큰형이 계속 그렇게 있는 거 싫어. 큰형은 우리보다 더 오래 살 거니까 가능하면 오염도를 낮추고 싶어.”
이씨 사남매는 분명 우애 깊은 남매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가 뒤집어진 사고와 여러 불행, 비극이 겹쳐 지금에 이르렀다.
“고맙다, 한생아. 형이 부족해서 네가 고생하는구나. 형이 더 잘하고 싶었는데, 너무 부족해서 미안하다.”
이해기가 눈가를 붉히고 이한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귀한은 보다 직접적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고맙다, 셋째야!”
이귀한이 이한생을 덥석 끌어안았다.
“뭐야, 징그러!”
이한생이 기겁했지만 이귀한은 놓지 않았다.
이보배는 영화 엔딩 장면이 나올 때인가 싶어 두 오빠에게 달라붙었다. 이해기도 쓴웃음을 지으면서 셋을 잠깐 안았다가 떨어졌다. 그는 엔딩 크레디트 대신 사건이 끝나지 않았음을 경고했다.
“시스템이 응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거 알지?”
“작은오빤 꼭 중요할 때 초 치더라.”
이보배가 핀잔 주어도 이해기는 세상 진지했다.
천만다행으로 이해기가 나서기 전에 시스템이 응답했다.
[딱 한 번 가능.]‘더럽고 치사하게 딱 한 번이야?’
이보배는 오만상을 찡그리고 시스템 알림창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곧 체념했다.
‘하긴 이것도 공짜는 아니겠지.’
퀘스트 보상이든 뭐든 시스템도 공짜로 해내는 게 아니다. 전생이라지만 이미 죽은 이의 인격과 전환하는 것이니 시스템도 무언가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스템이 이한생의 제안에 응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럼 막내 오빠. 하고 싶은 말은?”
“뭐 그딴 걸 하고 그래, 오글거리게. 그냥 전환 버튼 누른다.”
이한생은 마지막까지 우애 깊어진 남매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막상 전환 버튼을 누르기가 쉽지 않은지 잠시 머뭇거렸다.
“야, 돼지.”
“뀌이익.”
“혹시 모르니까 그거 한번 해봐라.”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그게 뭔데?”
“아이 씨.”
이한생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동생을 한심한 듯 쳐다봤다.
“인지 인지 그거 함 써봐! 얼마나 아픈지 보게!”
뜻밖의 말에 이보배는 눈을 깜빡였다. 영혼이 같고 몸도 같아서 그런지 달밤에 골목길을 걷던 날 를 요청했던 화르세인지가 겹쳐 보였다.
이보배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아마 이한생이 를 요청하는 이유도 그때의 화르세인지와 같을 것이다.
더없이 소중한 것을 포기하면서 얻은 사랑을 확인받으려는 것이다.
화르세인지는 그가 살아온 세계를 포기했고 이한생은 인생 자체를 포기하려 한다.
포기의 대가는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사랑뿐이다.
수치화할 수 없는 무형의 감정은 신이라 할지라도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없다.
그러한 감정을 통증일지라도 소중한 이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목이 꽉 멨는데 억지로 말하려니 목구멍이 아팠다.
이보배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 눈물을 머금고 경고했다.
“많이 아플 거야.”
“아파봐야 족발이지.”
몇 초 뒤, 이한생은 설산의 정상에서 동생의 사랑을 외쳤다.
* * *
굳게 감긴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초조하게 침대 곁을 지키고 있던 이보배가 상체를 기울였다.
착각이 아니었다. 눈꺼풀이 거칠게 떨리더니 침대에 누운 이가 눈을 떴다.
막 눈뜬 이는 초점을 잡지 못하고 불안하게 흔들렸다.
여기 봤다, 저기 봤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이해기를 발견하더니 더욱 격렬하게 떨렸다.
이귀한은 아예 무시한 눈동자는 이보배를 발견하고 간신히 안착했다.
이보배가 살짝 웃었다.
“깼어?”
“시발.”
양아치든 망나니든 일어나자마자 시발을 찾는 건 여전했다.
화르세인지는 깨어난 장소가 본인 방 침대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흑마술사의 제단을 정화하는 실로 끔찍하고 현실감 넘치는 꿈을 꾸었느니라. 꿈이라 다행이로다.”
이한생에서 전환되자마자 정화하고 쓰러져서 그런지 화르세인지는 균열에서 벌어진 일을 꿈으로 치부한 듯했다.
화르세인지는 이해기를 흘겨보았다.
“기절할 정도로 나를 폭행하다니. 멍청한 돼지여, 혼쭐을 내줬느냐?”
“안 그래도 엄청 혼쭐났다. 형이 다시는 그렇게 안 때릴게. 미안하다.”
이해기가 머쓱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망나니는 이해기가 뻔뻔하게 굴지 않고 솔직하게 사과하자 계속 이해기를 비난했다. 그러다가 겁먹었다.
“무, 무어냐. 내가 이렇게까지 비난하는데 손을 올리지 않다니. 진심으로 반성한 것이냐?”
“머리는 함부로 때려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둘째가 큰 깨달음을 얻었어.”
이귀한은 본인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거들먹거렸다.
화르세인지는 더 묻지 않았다. 어딘지 분위기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겁 많은 최약자답게 본인과 관련된 일엔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데 너희 눈빛이 꽤 불손하구나. 이전보다 더 경외감이 줄었어. 누차 말하지만 나는.”
“네네, 성신의 사랑을 받는 체키빙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화르세인지 드 체키빙 공자님이시죠. 알아요, 공자님이 숭고한 성자님이신 거.”
이 망나니가 철들어 스스로를 희생하고 세계를 구한다니. 말도 안 된다 싶은데 또 어찌 생각하면 클리셰 그 자체다.
‘죽기 전에 빈 소원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철이 안 든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보배는 공자님이 원하는 대로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세계를 구한 영웅에 대한 경의와 존경심을 담고 봐주자 성자께서 만족하시더라.
“크흠, 알면 되었느니.”
“어디 아프고 그러진 않지?”
“불편한 덴 없느니라. 흠?”
아픈 데가 없냐는 질문에 머리부터 매만지던 화르세인지의 시선이 허공에 멈췄다.
그는 이보배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더니 천천히 손가락을 올렸다.
“전환 버튼? 이건 무어냐?”
화르세인지 눈에만 보이는 전환 버튼이 무엇인지 그만 모른다.
“안 돼! 누르지 마!”
이보배와 이귀한, 이해기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외치며 망나니를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