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82)
머뭇거리던 최요한이 다가왔다가 박마노에게 붙잡혔다. 박마노는 최요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나직이 말했다.
“잘하자, 요한아.”
“하하하.”
“난 널 계속 믿고 싶다. 실망시키지 마라.”
믿는다는 말에 최요한의 얼굴에서 여우 같은 미소가 사라졌다.
최요한은 잠시 뜸 들이다 말했다.
“겸사겸사라고 대답하면 실망하실까요?”
“일단 좀 맞자.”
박마노는 즉시 헤드록을 걸었다.
최요한은 괴로워하면서 입을 나불거렸다.
“과장님은요!”
“나?”
“이해기 씨 어떻게 켁, 할 건데요?”
간신히 풀려난 최요한이 박마노의 심중을 떠봤다.
박마노도 이해기 일로 심경이 복잡했기 때문에 솔직히 말했다.
“겁나 수상하고 겁나 만만해.”
“전 이해기 씨처럼 수상한 사람 처음 봤어요.”
전직 암살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해기는 그만큼 수상했다.
최요한이 살면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수상했다.
“나도 보면 볼수록 수상해서 단물만 빨아먹고 선 그을 생각이었는데.”
박마노가 심기 복잡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무한 단물이야. 단물이 계속 나와.”
심지어 단물 자체도 꿀처럼 달고 영양가가 높았다.
최요한은 이해기를 쉽게 떨치지 못하는 박마노에게 공감했다. 남 주느니 갖고 있는 게 나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강해진 각성자라. 꼭 회귀물 주인공 같네요.”
“그치, 근데 세상에 회귀가 어디 있…….”
박마노는 주위에 흐르는 마력과 본인 손에서 나가는 번개를 보고 말을 바꿨다.
“세상에 동생 가장 시키고 자기는 집에서 노는 회귀자가 어딨어.”
“그건 그래요.”
자고로 회귀자라면 열심히 일한 동생에게 돈 목욕을 시켜줘야 하는 법이다. 돈에 알레르기 생길 만큼 퍼부어줘야 한다.
박마노와 최요한은 말도 안 된다며 동시에 웃었다.
세상엔 회귀자도 있고 대마왕도 있고 환생자(혹은 빙의자)도 있었지만 천벌 콤비는 그 사실을 몰랐다.
“오래간만에 빵 터졌네. 어쨌든 계속 단물 빨아먹기 미안해서 밥 먹자고 했으니까 너도 낄 거면 와.”
“과장님 너무하세요.”
“또 왜?”
“어떻게 처음부터 저를 안 부를 수가 있어요?”
“아놔.”
부르면 휴일에 상사가 불렀다고 투덜거리고 안 부르면 안 불렀다고 투덜거리는 부하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박마노는 코브라 트위스트를 날리려다 참았다.
‘난 참 관대한 상사야.’
이런 생각이야말로 꼰대라는 증거다.
박지랄, 박번개에 이어 급부상하는 박꼰대를 아는지 모르는지 박마노는 식후 산책보다 간편하게 균열 공략을 마쳤다.
“수고하셨습니다.”
“가긴 어딜 가! 2차 공략 간다!”
박마노는 도망가는 최요한을 붙잡았다.
최요한은 앓는 소리 내며 휴일을 반납하고 상사의 취미에 동참했다.
* * *
균열의 날 이후 수도권과 대도시 인구 집중이 심화되었다지만 그래도 경기도는 넓고 어딘가엔 인적 드문 시골이 남아 있다.
이씨 남매와 천벌 콤비가 도착한 곳도 그런 곳이었다.
허허벌판에 단층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고 주위엔 철조망이 겹겹이 쳐졌다.
문마다 마크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었다.
이보배를 태운 차는 철조망을 지나고 지나 건물 앞에 멈췄다.
이보배는 차에서 내려 바닥에 깔린 자갈을 디뎠다.
주위는 황량했다. 풍광이 좋은 것도 아니요,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바람은 휭휭 잘 불어서 박마노 말마따나 바람은 실컷 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셨습니까.”
홀로 쓸쓸히 세워져 있는 건물에서 사람이 나왔다.
키는 평범했지만 다부진 체격, 볕이나 불에 그슬린 듯한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두박근이 멋졌다.
이보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는 내내 웃고 있던 이해기의 볼이 파들파들 떨렸다.
“정철수 씨 오랜만!”
박마노가 건물에서 나온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그렇다, 정철수였다.
눈앞의 이 사람이 회귀자가 가장 먼저 투자한 안전 자산이자, 박마노에게 허무하게 뺏겨 버린 대박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철수 씨.”
이해기가 웃는 낯으로 정철수에게 인사했다. 이해기를 발견한 정철수가 머쓱해했다.
“그…… 일전엔 정말 죄송했습니다. 이 사장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데 은혜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래서 살림 많이 좋아졌습니까? 나라를 위해 일하니 기분 좋으십니까? 화재는 초반 진압이 중요한데 급한 불 끄고 보니 물 제공한 사람은 생각 안 나셨죠?”
이해기는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이귀한과 이한생이 초콜릿을 까서 입에 털어 넣고 웅얼거렸다.
“둘째가 뒤끝이 길어.”
“사기꾼 새끼가 작정했구나.”
이씨 사남매 중에서 제일 가방끈이 긴 이해기는 뒤끝도 제일 길었다.
“더러운 표현이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게 그런 경우가 아닐지. 물론 계약을 위반하고 계약서에 적힌 대로 위약금을 주셨지만 그래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해기가 입을 열 때마다 정철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철수는 지은 죄가 있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이보배는 작은오빠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진짜 추하다. 마노 선배도 있는데 무슨 짓이람.’
박마노로 말하자면 정철수와 마찬가지로 머쓱해했다.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수그러지지 않고 하늘을 향했다는 게 차이점이었다.
“내가 그래서 10억 개평도 주고 추가 개평 또 해주려고 데려왔잖아! 그만합시다.”
박마노가 이해기와 정철수 두 남자의 어깨를 토닥이고 강제로 어깨동무시켰다.
최요한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우리 과장님이지만 정말 억지네요.”
사실 정철수가 스킬을 습득했을 당시 박마노는 그 스킬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박마노가 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 건 최근의 일이다.
이해기는 박마노에게 다른 속성이 부여된 무기나 아티팩트를 구비해 두라고 조언했다.
박마노는 이해기의 조언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고 정철수에게 속성이 부여된 무기를 의뢰하기로 했다.
최요한과 함께 어떤 속성이 좋을지 의논하던 도중 박마노는 깨달았다. 깨닫고 말았다.
‘이 스킬 10억으로 꿀꺽하기엔 너무 좋은 스킬 아니야?’
박마노의 좌우명은 ‘기본은 하자’다. 물론 박마노도 사람인지라 본인에겐 관대했다.
박마노의 양심은 관대하고 유리하게 생각해 보아도 도가 지나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박마노는 이해기에게 추가 배당을 주기로 결심했다.
박마노가 정철수와 이해기의 등을 퍽퍽 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억지를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강했다.
“철수 씨가 멋들어진 무기 뽑아준다니까? 재료랑 대금은 내가 책임진다! 하하하, 이걸로 화해합시다.”
“은혜 갚는 건데 대금을 받을 수야 없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철수가 진지한 얼굴로 의지를 다졌다.
이해기는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어리고 순박한 정철수의 얼굴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집요하고 치졸한 회귀자의 뒤끝이 누그러졌다.
‘돈벌레 정철수가 돈을 거절하다니.’
오지 않을 미래에서 정철수는 사채업자에게 끌려간다.
빚을 갚으라는 명목으로 착취당하다가 스킬을 얻으면서 후원자가 생겨 사채의 빚에서 벗어나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사채업자에게 시달린 몇 년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돈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돈보다 소중한 게 있었는데 그게 뭐였는지 모르겠어’가 돈벌레 정철수의 유언이었다.
지금의 정철수는 돈보다 소중한 걸 알고 있다. 좋은 장비를 만들고 싶다는 장인 정신과 박마노가 주입해 준 가오다.
“제 주문은 많이 까다롭습니다.”
“실력은 자신 있습니다. 이 사장님도 제 실력을 보고 투자하셨잖습니까.”
낯선 사람에게 대뜸 1억을 투자받고, 이후 박 과장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정철수는 자신만만했다.
“우리 애들한테도 못 맞춰주는 거 해기 씨한테 해주는 거야. 내 마음 알지?”
“박 과장님이 스카우트 전에 언질이라도 주었더라면 이렇게 화나지 않았을 겁니다.”
박마노 앞에선 늘 허물어지는 이해기의 얼굴 근육이 웬일로 각이 잡혔다.
‘헉, 저건 간헐적 진국 상태.’
이보배가 놀라든 말든 진국 이해기가 용건을 밝혔다.
“마노 누나 무기도 여기서 맞췄죠?”
“응. 내 건 완성되었고 요한이 건 아직.”
이보배는 묻지 않았는데 최요한이 슬쩍 첨언했다.
“제 건 개수가 많아서요.”
이보배는 개미굴에서 보았던 쇠침 다발을 떠올렸다. 확실히 개수가 많았다.
‘어떤 속성을 부여했을까? 아, 이런 거 물어보면 실례지.’
이보배야 나쁜 마음을 먹지 않더라도 정보가 새면 좋지 않다.
이보배는 입을 꾹 다물었는데 이해기는 대놓고 질문했다.
“속성은 뭐로 정했습니까?”
“그거 정하느라 진짜 힘들었다. 직접 볼래? 안에 무기 시연실 있어.”
박마노는 선뜻 이해기에게 새 무기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해기와 박마노, 정철수가 공방으로 들어갔다.
이귀한은 게임 삼매경에 빠졌고 화르세인지는 멍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다 말했다.
“나는 왜 여길 온 것이냐? 이게 무슨 소풍이야.”
“하하,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이해기 씨 주문만 완료하면 옆 산으로 옮길 거예요. 거긴 계곡도 있고 놀기 좋아요.”
산과 계곡이란 말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망나니가 하늘을 응시했다. 다행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가는 도중에 오리탕 맛집이 있으니까 거기에서 포장해 갈 거예요.”
“마노 선배는 보양식 좋아하시나 봐요.”
“그게 아니라, 과장님 부모님이 프로그램 애청자십니다. 은퇴하면 물 좋은 곳에 토종닭이랑 오리를 키워 음식점을 하겠다고 주말마다 그런 집들을 찾아가셨대요.”
“아하, 그래서 맛집을 많이 아시는구나.”
“네, 심심할 땐 직접 해 드시기도 합니다.”
“마노 선배가요? 요리도 잘하시나 봐요.”
“보양탕 종류만요. 그런데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시간을 끓였는데 부모님 해주시는 맛과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손맛 차이일까요?”
똑같은 재료, 똑같은 방식, 똑같은 환경에서 요리했는데 맛이 다른 건 이보배와 이해기도 마찬가지다.
이보배가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김치찌개를 생각하고 물었더니 최요한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가 목소리를 낮추고 입가를 가렸다.
“보양탕의 핵심은 정성과 인내심인데 과장님은 둘 다 대충 때우려는 경향이 강해서 그래요.”
은근슬쩍 상사 욕을 한 최요한이 빙그레 웃었다.
“저도 탕류엔 자신 있습니다. 비둘기탕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비둘기탕이요?”
“사람이 먹고살려면 뭔들 못 먹나요, 하하. 자연 건강식, 보양탕 쪽은 자신 있으니까 몸 허하다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내가 염치가 있지, 어떻게 부탁하겠어.’
이 역시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가려는 최요한의 빈말임을 안다. 빈말인 걸 알지만 최요한의 웃는 낯이 선량하고 눈빛이 다정해서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묵묵히 게임에 집중하던 이귀한이 불쑥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죽도 끓일 줄 알아?”
“당연하죠. 잔가지 하나하나 전부 발라 부드럽게 끓이는 게 특기예요.”
“다른 건? 보양식 말고 다른 것도 잘해?”
“잘하진 못하지만 레시피 보고 곧잘 따라 합니다. 제 자랑 같지만 제가.”
최요한이 양손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귀여운 척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실제로 귀여웠다.
“인내심이 좋거든요. 손재주도 있는 편이고 손끝이 야무지단 말도 많이 들었어요. 집안일은 다 잘해요.”
“막내야, 들었지?”
“듣긴 뭘 들어. 저리 좀 가.”
이보배는 이귀한의 얼굴을 손으로 밀쳤다. 혹시라도 최요한 앞에서 매제 후보 운운할까 두려웠다.
“이귀한 씨 몸이 허하세요? 제가 어죽 끓여 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빠는 아주 건강해요. 헛소리하는 거예요.”
이귀한이 허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최근 프! 프! 프! 뽑기 운이 좋지 않다고 안달 내지만 운은 항상 안 좋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인내심이 좋으시구나. 그러고 보면 사냥꾼은 인내심이 중요한 직업이라니까 딱 맞는 각성 직업이네요. 그 왜, 인류 최초의 사냥법이 사냥감 지칠 때까지 쫓아가는 거였다잖아요. 지구력과 인내심 모두 필요하다는 거죠.”
“제가 직업을 말씀드렸던가요?”
“아니요!”
‘아씨, 말실수.’
말을 돌리려다 더 큰 지뢰를 밟은 이보배는 크게 당황했다.
이보배의 머리가 맹렬한 속도로 돌아갔다. 이 위기를 모면하지 못하면 최요한과의 인연이 끊어질지도 몰랐다.
“추적하는 스킬도 갖고 계시고 명중률 관련 스킬도 있으시고! 오빠가 그런 스킬은 사냥꾼이 갖고 있다고 해서 사냥꾼이신가 보다! 그렇게 제멋대로 추측했어요.”
이해기가 최요한의 개인 정보를 멋대로 풀어놓는 바람에 말실수를 해버렸다.
이보배는 필사적으로 웃으면서 최요한의 눈치를 살폈다.
최요한은 늘 상냥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오빠라면 이해기 씨?”
“네, 맞아요. 작은오빠. 하하하.”
“이해기 씨는 경력에 비해 알고 계시는 게 참 많은 편이죠.”
“저희 작은오빠가 머리가 좋거든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상상력도 좋아요. 판타지 소설 작가가 꿈이기도 했고, 읽는 것도 좋아해서 세상이 이렇게 된 후에 분석도 많이 했어요. 짐꾼으로 일하고 있을 때도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몰라요. 사람이 믿음직스럽고 착해서 평판도 좋았고요. 그래서 소문에도 밝고, 또.”
“네, 신라 길드 조사하는 중에 이해기 씨 평판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다들 훌륭하고 좋은 청년이라 했습니다.”
“바로 그거죠!”
이보배는 이거다 싶어서 최요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친한 친구에게 하듯 열심히 어깨를 두드리며 맞장구쳤다.
“사실 기록과 증언으로 접한 이해기 씨와 직접 만나 뵌 이해기 씨가 달라서 놀라긴 했습니다만…….”
“원래 사람은 그런 거잖아요! 직접 보고 만나봐야 아는 게 사람이죠! 그런 거죠!”
“네, 저도 보배 씨 말에 동의해요.”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는 이보배의 마음을 알았는지 최요한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요한이 어깨에 올려진 이보배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슬그머니 잡아끌었다.
“계속 밖에서 이러는 것도 이상하네요. 슬슬 들어가실까요.”
최요한이 공방을 가리켰다.
직접 안내하려는 것 같은데 잡힌 손을 빼는 것도 이상하다 싶어서 이보배는 손을 내버려 두었다.
“오빠들도 들어가자!”
“먼저 들어가라, 막내야! 셋째는 내가 붙잡고 있을게!”
“무슨 헛소리냐. 난 들어갈 거다.”
“싫엉싫엉. 나 뽑기 하는 거 옆에서 봐줘. 혼자 뽑았다가 망하면 화가 난다! 화가 난드아아아악!”
“젠장, 화내지 마라! 봐주면 될 것 아니냐!”
이귀한의 분노 경고에 공방으로 걸어가던 이보배의 발이 멈췄다.
이보배가 이귀한이 뽑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려는데 화르세인지가 거칠게 손을 휘저었다.
“돼지가 멀뚱히 서 있으면 더 멍청해 보인다. 눈꼴 시리게 있지 말고 꺼져라.”
“우리 셋째가 옆에 있어주니 화나지 않아요!”
“나 진짜 들어간다?”
큰오빠와 막내 오빠만 두자니 불안한 마음에 이보배가 목소리를 높였다.
두 오빠는 걱정하는 동생 마음은 모르고 어서 들어가라 손만 휘휘 저었다.
머뭇거리는 이보배를 움직인 건 살짝 당겨진 손이었다.
“들어가죠.”
최요한의 부드러운 재촉에 이보배는 제대로 한 걸음 걸었다.
“사실 오늘 요한 씨 온다는 얘기를 못 들어서 놀랐어요.”
“저랑 만날 땐 놀라지 않기로 하셨잖아요.”
“앞으론 진짜 안 놀랄 거예요.”
최요한의 농담에 이보배가 다짐하듯 주먹을 꽉 쥐었다.
“흐으으으으으음.”
이한생은 폐부 깊은 곳에서 우러난 소리를 내며 공방으로 사라진 남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져서 땅을 걷어찼다. 자갈 몇 개가 튀었다.
“사기꾼 새끼는 늙은이 주책이라 치고 악마는 무슨 헛소리를 하나 했더니. 정말 돼지에게 마음이 있는 거였나.”
떠먹여 줘도 못 먹기에 그냥 친절과 오지랖인 줄 알았는데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은 눈치였다. 돼지의 어디가 마음에 든 건지 미스터리나 그보다 궁금한 게 따로 있었다.
“악마 주제에 어떻게 알았느냐?”
이귀한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히죽 웃었다. 그는 신규 카드 열한 번 연속 뽑기창을 켜둔 상태였다.
“셋째야, 뭔가를 뿌수고 싶을 땐 구조를 알아야 해. 그래야 더 잘, 효과적으로, 더 아프게, 다시는 복구가 불가능할 만큼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거야. 사람의 마음도 비슷해.”
단순한 살해로는 영혼을 파괴할 수 없다. 영혼을 파괴하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고 이귀한은 파괴와 타락의 주인이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마음일수록 부술 때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