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x-Level Newbie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고인물이 펫을 조련하는 방법 (2)
궁전에 아누비스가 있을 거라는 건, 게이트가 열린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미운털이 막혀 있는 이상 억지를 부리려하겠지.
어려운 과제를 내걸 게 틀림없었다.
물론.
‘탑의 법칙 존재하는 한. 아직까지 녀석이 나에게 직접 손을 댈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아누비스에게 남은 선택지는 대전자를 내세우는 것뿐이다.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아누비스가 대전자로 쓸 수 있는 카드는 [깨어난 미라] 밖에 없어.’
10층도 오르지 못한 플레이어를 상대로 규격 외 대전자를 꺼낼 순 없을 테니까.
시스템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맞추는 선에서 고를 수 있는 최선은 오직 그 녀석 하나일 수밖에.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그 다음은 너무나 쉬웠다.
상대의 패를 간파했는데, 대비책을 세우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진혁은 신성계열 ‘별의 가호’와 ‘검의 무덤’을 동시에 발현한 뒤. 코인 거래소에서 구입한 ‘왕가의 피’를 떨어뜨렸다.
왕가의 피는 파라오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미라를 상대하는데 있어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아이템.
다시 말해. 카운터다.
진혁은 확신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고 하더라도 상극의 효과를 갖은 힘을 사용한다면.
그 틈을 찌를 수 있을 거라는 걸.
그리고 그 결과가.
쿠웅!
바로 이것이다.
완전히 토막이 난 미라가 바닥을 뒹굴었다.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해보지 못 한 채 너무나 허무하게 쓰러져버렸다.
궁전 내부를 장악한 무거운 정막.
잠시 뒤, 그 침묵을 깨뜨린 건 놀라움에 가득 찬 탄성이었다.
“이, 이럴 수가….”
“고작 6층에 있는 플레이어가 아누비스의 대전자를 쓰러뜨렸다고?”
호루스와 오시리스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결과다.
심지어 당사자인 아누비스는 아직까지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아누비스가 말을 더듬었다.
시련의 탑 지하1층에서 받았던 수모.
펜다리엘을 상대할 당시에 상대의 술수에 놀아났던 상처.
마지막으로 릭을 상대로 자신들의 비호를 팔아먹었던 분노까지.
모든 빚을 이번 한 번에 갚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준비한 대전자는 지금 바닥을 뒹굴고 있다.
서 있는 건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환수의 알은 잘 받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중요한 물건인 만큼 제가 직접 골라도 되겠죠?”
진혁이 생긋 웃었다.
“웃기는 소리 집어치…!”
“아누비스! 네 입으로 직접 한 약속이다. 그걸 잊은 건 아니겠지?”
아누비스가 고함을 치려하는 걸. 옆에 있던 호루스가 막아섰다.
이집트 신화의 이름을 걸고 한 거래다.
헌데, 탑의 중간 관리자인 릭 헤니시마저 참관한 결투에서 신격 스스로가 결과를 승복하지 못 한다?
그거야 말로 다른 모든 신화들 앞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는 꼴이리라.
“빌어먹을….”
아누비스가 마지못해 뒤로 물러섰다.
어금니를 갈며, 으르렁거렸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상황이 진정되자 호루스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약속은 지키마. 환수의 알은 안쪽에 보관되어 있으니 바로 안내해주지. 단, 부화에 실패하거나 길들이기에 실패했다고 해서 다른 알을 줄 수는 없으니 그 점은 명심해라.”
“물론입니다. 신들의 세계에 반품이나 환불정책까지 기대했던 건 아니니까요.”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도 태연한 얼굴이다.
실패할 거라는 선택지는 아예 테이블 위에 올려두지도 않겠다는 듯이.
‘이래서 릭이 이곳까지 데려온 거였나.’
호루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중간관리자 중에서도 깐깐하기로 이름 높은 릭이 그토록 저 인간을 편애하는 건지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그 의중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해는 머지않아 확신으로 이어졌다.
호루스의 노란 눈이 진혁을 향했다.
“……너라면, 언젠가 이곳까지 올 테지.”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시선이다.
마치, 미래의 어느 시점을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떠한가? 그 때가 온다면. 우리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이 층을 지배하는 거주자가 되지 않겠나?”
가볍게 던진 제안.
허나 그 제안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호루스!”
“진심이냐…!”
두 신격이 동시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호루스가 한 말은.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선택’을 진혁에게 사용하겠단 뜻이었으니까.
분명, 떡잎이 다르다는 건 인정하는 바다. 그건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허나, 아직까지 세력을 선택하기에 너무 약한. 이제 막 시작하는 루키를 상대로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뇨.”
진혁이 천천히 입을 뗐다.
거절이라니!
이번엔 세 신격을 포함해 지켜보던 릭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운 중의 천운을 스스로 걷어차는 경우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진혁이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아닌.
태양이 떠 있는 하늘보다 더 위를.
[시련의 탑 50층.]탑의 가장 높은 곳.
바로, 신격들조차 감히 다가서지 못 했던 마지막 성역이 있는 장소다.
“안타깝지만 제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닙니다.”
머뭇거릴 생각 따윈 없다.
다시 한 번 그 끝을 보기 위해서.
다시 한 번 탑의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저는 이곳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하니까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수많은 플레이어들 중.
이 탑을 마지막까지 오를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이었으니까.
***
궁전 내부에 위치한 보물 창고.
이곳엔 이집트 신격들이 모아놓은 보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황금으로 만든 석상과 형형색색의 보석들로 인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러나. 진혁은 그것들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건 일반적인 황금이나 보석 따위가 아닌, 훨씬 더 값지고 중요한 거였으니까.
바로 그때. 진혁의 옆에서 걷던 릭이 말문을 열었다.
“처음엔 진혁님에게 진귀한 구경을 시켜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탑의 상층에 올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까요.”
릭의 표정에선 묘한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이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겠지.
“하지만, 오히려 제가 진혁님 덕분에 진귀한 구경을 하게 됐군요. 이래서 세상일이라는 게 모르는 일인가 봅니다.”
환수의 알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플레이어는 물론, 심지어 중간관리자라 하더라도 쉽게 잡을 수 없는 종류였다.
최상급 ‘환수’나 ‘영물’은 신격들도 다루기 힘든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실제로 보게 되다니.
릭은 복잡한 심정을 담긴 눈을 진혁을 바라봤다.
‘이것 참….’
벌써부터 이런 반응을 보이면 곤란한데.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려고 겨우 이 정도에 이럴까?
‘그러고 보니 과거에는 이 영감님한테 엄청나게 끌려 다니긴 했지.’
세상일이라는 게 모른다는 말이 맞긴 한 것 같다.
릭이 이처럼 저자세로 나오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완전히 역전된 갑과 을의 관계를 실감하자, 진혁은 괜히 기분이 묘해지는 걸 느꼈다.
그때였다.
“여기다.”
앞장서던 호루스가 걸음을 멈췄다.
창고의 가장 안쪽.
룬어와 고대 언어가 겹겹이 펼쳐져 있는 장소가 보였다.
황금으로 만든 단상 위엔 3개의 알이 놓여 있었다.
초록색. 붉은색. 검은색.
색과 외형이 모두 다른 알들이.
“어느 것을 고를 테냐? 아! 이 알들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니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긴 하겠다만.”
“만약에 정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소용없어. 뭘 고르든 부화시키는 방법을 모르는 이상 길 가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만도 못 할 테니까.”
아누비스와 오시리스가 한 마디씩 내뱉었다.
하여간 오지랖들 하고는.
두 녀석은 당장이라도 좌절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게 재밌긴 하겠지.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실패하는 걸 구경하는 것만큼 재밌는 게 어디 있을까?
‘백날 망하길 기도나 해라. 차라리 사막이 바다로 변하는 게 더 빠르겠지만.’
진혁은 값싼 도발을 한 귀로 흘러 넘겼다.
개소리도 자장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단 알 속에 어떤 게 들어있는지부터 정확히 파악해 봐야겠어.’
가장 먼저. 초록색 알.
[Lv5 ‘탐식의 눈’이 발동됩니다!] [레벨 차이로 인해 대상의 일부 정보만 열람이 가능합니다.] [초록색 알]이름: 풀의 정령 헤시미우스
입수 난이도: SS+
내용: ……치유능력을 갖고 있으며, 주인으로부터 받는 마력의 공급이 끊기더라도 약100일간 생존할 수 있습니다.
헤시미우스는 회복능력에 특화된 풀의 정령으로… 뭐, 나쁘지 않은 펫이다.
전용 힐팩으로 쓸 수 있으니 힐러를 따로 두지 않아도 될 테고. 당연히 본인의 실력보다 더 윗급의 던전들도 도전해볼 수 있게 되겠지.
단지, 이 녀석은 키우는 맛이 없다.
기본적으로 말도 할 줄 모르는데다, 뭘 해도 반응이 없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도 이 녀석을 한 번 키워보긴 했는데.
차라리 뒷산에 있는 잡초를 키우는 게 더 흥미로울 정도였다.
‘이건 패스.’
효율성도 효율성이지만, 적어도 애정을 갖고 키울 순 있어야지.
너무 딱딱하기만 해도 재미가 없다.
진혁이 다음 알을 향해 또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Lv5 ‘탐식의 눈’이 발동됩니다!] [레벨 차이로 인해 대상의 일부 정보만 열람이 가능합니다.] [붉은색 알]이름: 불을 토하는 고양이 ‘???’
입수 난이도: SSS
내용: ……화염계열의 능력을 사용하며…….
‘점점 더 볼 수 있는 정보가 줄어드는군.’
입수 난이도가 높아졌기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아무리 행운 스탯과 적응형 스탯으로 보조를 받는다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진혁은 단편적인 이명만으로도 대상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불을 토하는 고양이라면. 환수 키리야네.’
이것 역시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키리야는 보조형 딜러로 밥값 하나는 톡톡히 했기에, 탑의 후반에도 사랑받는 펫 중 하나였다.
다만, 이 녀석은 너무 까칠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고양이과 환수들이 주인도 몰라본다는 이야기는 신격들 사이에도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기도 했고.
‘이번에도 보내줄 수밖에.’
틱틱 대는 건 엘리스 하나만으로도 족하다. 그나마 그 녀석은 초반에 버릇을 길드여 놔서 많이 얌전해지기라도 했지.
까칠한 고양이와 온갖 비위를 다 맞춰줘야 하는 집사의 관계는 사양이다.
‘마지막은 단점이 감당할 수 있는 종류면 좋겠는데…….’
진혁의 시선이 검은색 알로 향했다.
제발. 신이시여.
‘내일부터 착실하게 기부도 하고 뉴비들이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진혁이 대충 탑 위에 있는 그럴듯한 신격 한 명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은 채 마지막으로 능력을 사용했다.
[Lv5 ‘탐식의 눈’이 발동됩니다!] [극심한 레벨 차이로 인해 대상의 일부 정보만 열람이 가능합니다.] [검은색 알]이름: ???
입수 난이도: ???
내용: ……단, 한 가지 방법으로만 부화시킬 수 있습니다.
됐다!
상태창을 살펴보던 진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전부터 가장 갖고 싶었던.
동시에 한 번도 손에 넣지 못 했던 펫이 바로 저 검은색 알 속에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