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5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05화 –
“꺄아?”
실베스타인이 너무 큰 소리로 놀라서 혹시 악시온이 울까 봐 걱정했는데, 악시온은 오히려 신난 기색이었다. 내 품에 안긴 채로 작은 손을 짝짝 부딪치며 박수를 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악시온보다 실베스타인의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였다.
“어버버…….”
그는 아까부터 계속 입만 벙긋대고 있었다.
여기서 그를 더 자극했다간 곧 졸도할 것 같았기에, 나는 악시온과 손장난을 치며 얌전히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여태껏 쩍 벌려져 있던 실베스타인의 입에 점점 침이 고이는 게 보일 정도가 되었을 쯤, 마침내 실베스타인이 더듬더듬 말했다.
“정말로 그 아이가 루벤…… 아니, 네 아들…… 아니, 내 조카…….”
퍽 혼란스러운지 실베스타인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직 씻지 못해 먼지투성이인 백금발이 부스스 흘러내렸다.
“우선 이것부터 정리하자. 이 아이가 어떻게 내 조카지? 게다가 내가 자리를 비운 지 얼마나 됐다고 아이가…… 아니, 1년이 넘긴 했지만……!”
나는 슬슬 상황을 정리해 줄 필요성을 느꼈다.
더 이상 그를 지켜보았다간 내 정신이 덩달아 혼미해질 것 같다.
나는 칼에게 다시 악시온을 맡겼다.
“칼. 잠시 악시온과 놀아 주고 있을래?”
“네. 알겠습니다.”
저렇게 어버버 거리는 사람이 제 삼촌이라는 걸 악시온이 알고 실망할지도 몰라서…… 는 아니고, 악시온이 나와 실베스타인의 대화를 혹시 기억할지도 몰랐기에.
칼이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재빨리 악시온과 방에서 사라졌다.
내가 아이를 내보내자, 실베스타인이 꼴깍 침을 삼켰다. 또 폭탄 같은 말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계속해서 그에게 충격적인 발언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난 아까부터 계속 놀라고 있을 그의 심장에 애도를 표하며 그 기대에 부응해 주었다.
“악시온은 내가 입양한 아이야. 하지만 에반로아르의 핏줄이지. 머리 색과 눈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입양인데, 어떻게 에반로아르의 핏줄이라는…… 어, 설마……?”
“응. 맞아. 내 이복언니이자, 실베스타인의 이복동생. 그녀의 아들이야.”
콰광!
순간이지만, 실베스타인의 머리 뒤로 번개가 내려치는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인가.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나는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실베스타인에게 이제까지의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악시온을 입양하고 난 뒤 우연히 만난 다자르, 제국의 새로운 식량, 그리고 우연히 악시온이 루벤인 걸 알게 되었다는 것까지.
물론 다자르에 대한 비밀은 쏙 빼놓고 이야기했다.
한참 동안 내 설명을 듣던 실베스타인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껏 맹해 보이기만 했던 푸른 눈이 갑자기 깊어졌다고 느낀 순간, 툭 내 머리 위에 따스하고 포근한 무언가가 놓였다.
“내가 없는 동안 홀로 많은 일을 겪었구나. 실리아.”
“어…….”
내가 설명을 마쳤을 때 볼 모습으로 상상한 건, 여전히 어버버 거리거나 또는 꼴까닥 기절하는 실베스타인이었는데.
머리 위에 올라온 건 그의 커다란 손이었다. 그와 동시에 문득 실리아의 머릿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기억이 스쳤다.
‘실비, 실비……. 나 무서워. 내 몸에 이상한 게 있대.’
‘이런, 우리 공주님이 왜 울고 있을까. 우리 실리아 몸속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마안…… 아버님이 그랬는걸. 신전에 가서 내 몸에 있는 마물을 쫓아내야 한다고…….’
‘……아니야, 실리아. 네 몸에 마물 같은 건 없어. 실리아는 그저 특별한 아이일 뿐이야.’
예전에 다자르가 신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이 몸의 반응을 보고 느낀 것이지만. 실리아는 분명 어렸을 때 제 아빠에게 미움을 받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일반적인 영애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던 까닭이겠지. 그럴 때마다 실베스타인이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실베스타인의 어릴 때 애칭이 실비였구나.’
실리아가 어렸을 때 부르던 애칭을 필명으로 한 건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은 조금 뒤에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실리아의 어린 날 기억 때문일까.
나는 괜스레 머쓱해져 조금 전 그가 쓰다듬던 머리를 헤집었다.
“내 나이가 몇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 정도는 혼자도 충분해.”
“그래? 우리 실리아가 이제껏 씩씩하게 대처하고 있었구나.”
실베스타인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견하다는 듯 날 보았다.
저 대견하다는 눈빛을 마주하니 마음이 너무 몽실몽실해지는걸.
“그래서 내게 루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물어봤던 거로구나. 사실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어.”
아까부터 계속 놀랄 일만 겪어서 그런지, 실베스타인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악시온이 이복언니의 아들이라는 것도, 내가 악시온을 입양했다는 것도 예상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아이에게는 참 마음 아픈 일이지만, 차라리 어미의 품을 벗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여자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그릇이 못 돼.”
그리고 ‘루벤의 탑’에서 언뜻 본 악시온의 과거를 통해 유추하긴 했지만, 실리아의 이복언니가 예전부터 꽤나 문제 있는 사람이었던 듯싶다.
하긴 악시온을 죽이려 했고 결국 그를 흑화하게 만든 사람이니 당연하겠지만.
그때 거울 속에서 들린 이복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나 결계가 통하지 않는 네 몸의 특별함도 놀라운데. 내 조카가 된 녀석이 루벤이라니.”
한참을 홀로 중얼대며 생각을 정리하던 실베스타인이 마침내 악시온이 루벤이라는 주제를 꺼냈다.
“시아스터 공작은 악시온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지 않은 모양이지? 이렇게 제집에 들인 걸 보면.”
“으음. 뭐, 시아스터 공작은 악시온을 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서. 그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른 초월자들은 조심해야 하지만.”
“……음.”
실베스타인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야. 사실 난 그보다는, 네 주변에 세드릭이 다시 나타났다는 게 좀 걱정이야.”
“……세드릭?”
혹시라도 실베스타인이 아무리 제 조카라도 루벤은 처단해야 한다며 으쌰으쌰 할 것을 제압하기 위해 힘을 주고 있던 손이 스르륵 풀렸다.
갑자기 웬 세드릭?
내가 눈을 끔벅이는 사이, 실베스타인이 턱을 살짝 굳히며 말했다.
“그 녀석, 예전에 너와 안 좋은 일이 있었잖아? 그 이후에 완전히 관계가 끊긴 줄 알았는데.”
“어…….”
내가 세드릭과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안 좋은 일이라.
있긴 했다. 물론, 세드릭 입장에서.
‘실리아가 세드릭을 엄청 괴롭히긴 했는데. 설마 그걸 말하는 건가?’
내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실베스타인이 이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기억 안 나?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어쨌든 그 사건으로 너, 아카데미도 간신히 졸업했잖아. 그 이후 사교계와도 완전히 담쌓았고.”“…….”
이상했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보통 이 정도로 노력하면 기억이 떠오르곤 했는데.
마치 열리지 않는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 것처럼, 뭔가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왜 그렇게 봐, 실리아?”
오랜만에 마주한 세드릭이 들고 있던 찻잔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상냥하게 웃었다.
나는 찻잔에 손을 가져가려고 하는 악시온을 고쳐 안으며 뚱하니 답했다.
“있잖아, 세드릭.”
“응.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어. 너 이빨에 뭐 꼈어.”
“…….”
세드릭이 순간 몸을 움찔했다. 그러고는 하하 웃으며 다시 싱긋 웃었다.
“에이, 실리아는 농담도. 나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는걸.”
쳇. 안 걸려들었군.
알고 보니 흑막이면서 과거에 나와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그래서 보는 것만으로도 찝찝해지는 친우를 눈앞에 두고 있자니, 속이 썩 좋지 않다.
실베스타인에게 슬쩍 물어봤는데, 실베스타인도 사건에 대해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고 했다. 내가 이야기하길 꺼려했다고. 단지 사건이 있었다 정도만 알고 있는 듯했다.
더 물었다가는 이상하게 여길 것 같아 우선 그를 손님방에서 재우기로 한 게 바로 어제다.
세드릭과 나는 식량 일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김에 일부러 악시온을 데리고 왔다. 그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세드릭의 정체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함이랄까. 엘스턴이나 세드릭이나, 흑막이라는 건 알지만 정확한 정체는 알지 못했으니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역시 루벤의 추종자였다. 그리고 그가 루벤의 추종자라면, 악시온을 보고 뭔가 반응이 올 수도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툭 물었다.
“그래서 황궁에서 인력은 대체 언제 오는 건데?”
“아아. 그거라면 걱정 마. 조만간 올 거니까. 아무래도 요새 폐하께서 자주 자리를 비우시는 일이 생겨서, 서류 결재 맡는 게 힘들어.”
세드릭이 살짝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며 찻잔을 빙글 돌리는 모양새가 여유롭기 짝이 없다.
나는 품에 안은 악시온을 살짝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손장난을 하고 있다.
‘세드릭, 이제까지는 평소와 같네. 악시온에게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래도 친우의 숨겨진 아들인데, 너무 관심이 없는 것도 이상하긴 한데.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내 시선을 살핀 세드릭이 힐끗 악시온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악시온과 오래도록 마주하는 건 처음이네.”
“으음, 그렇네.”
뭔가 반응이 오는 건가?
세드릭이 묘한 눈으로 빤히 악시온을 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아이라는 건 참 귀엽고 예뻐. 그래서 가끔은 부럽더라. 평생 사랑받잖아.”
“그런 너도 한때는 아이였잖아.”
“후후. 그것보다는 실리아의 아이라는 게 부러운 거긴 해. 실리아는 정말 멋진 여자니까.”
얘 갑자기 왜 이래? 소름 돋게.
갑작스러운 칭찬에 내가 애써 심드렁한 얼굴을 하는데, 세드릭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자주 돌아다니는 것 같더라. 저번에는 다른 영애의 초대도 받은 것 같던데.”
어라, 이건 또 어떻게 알았지?
“실리아가 친구가 많아지는 것 같아서 조금 질투가 나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리아에게 친구는 나뿐이었는데.”
세드릭이 싱긋 웃었다. 그 웃음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