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4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24화 –
전생에서…… 어린 시절의 그는 어떠했던가.
다자르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과거를 떠올렸다. 전생에서의 일생은 그녀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구분되었다.
그녀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각을 다자르는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각인 같았지.’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폐쇄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오롯이 아버지의 잘못된 집착 속에서 억압당한 기억뿐이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제대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을 정도로, 그는 아버지의 숨 막히는 울타리 안에서 숨을 못 쉬어 죽어 가고 있었다.
결국 제 아버지가 루벤의 추종자가 되어 어린 그를 감옥에 가두는 극단적인 짓까지 저질렀을 때. 비록 그는 어렸지만, 제 끝을 직감했다.
이 세상이 오로지 절망으로만 가득 차 죽게 될 거라고, 그는 홀로 감옥에서 울며 생각했다. 그녀가 제 앞에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너도 잡혔어?’
‘다자르……?’
놀랍게도 그녀는 제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는 혹여 할아버지가 보낸 초월자인가 기대했었다.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고 말았지만, 그 이후 벌어진 일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 여린 팔로 뚝딱뚝딱 그를 구해 주었으니까.
그때 어린 제 눈에 비친 그녀는 영웅이자 구원자였다.
‘나갈 준비 됐어?’
그녀를 통해 다자르는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고, 제 삶을 찾을 용기를 얻었다. 아버지의 새장을 벗어나서 처음으로 홀로 날갯짓을 하기까지, 그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그녀는 특별한 존재였다.
제가 처음으로 알을 깨고 나와 마주한 존재. 스스로 날 수 있도록 새장을 열어 준 사람.
그렇기에 제 할아버지에게 그녀를 제 곁에 두고 싶다고 이야기한 건, 당위적인 결과였다.
‘뭐라고? 신분도 확실하지 않은 자를 말이냐?’
‘네. 희아의 신분이 무엇이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제가 있으니까요.’
이제껏 어떤 것에도 욕심을 부리거나 원한 적이 없던 그였기에, 그의 할아버지는 크게 놀란 듯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마주한 후 흔쾌히 허락했다.
아마도 제 손으로 아버지를 밀고한 어린 손주의 사정을 봐주었던 것이리라.
‘자네만 괜찮다면 시아스터가에 평생 머물러도 좋네.’
그렇기에 그는 할아버지가 희아에게 건넨 그 말을 듣고 날 듯이 기뻤다. 너무 기뻐 잠시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놓칠 정도였지만, 다행히 희아는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힐끔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그는, 순간이지만 그녀의 당황하는 표정을 읽고 말았다. 아버지의 새장 속에서 크게 숨 한 번 내쉬지 못하고 살아온 그는 부정적인 감정을 읽는 데에 탁월했다.
그는 알아차렸다. 그녀가 할아버지의 제안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
혹시 그녀가 이에 부담을 느끼고 떠나 버릴지도 몰라. 당시의 그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그녀에게 뱉었다.
‘할아버지 말씀은 신경 쓰지 마. 나는 희아의 의견을 존중하니까.’
거짓말을 뱉은 벌인 걸까.
그다음 그에게 닥친 현실은 갑작스러운 공간의 찢김과 함께 텅 비어 버린 방이었다. 조금 전까지 제 옆에 희아가 있었는데. 어디로 가 버린 거지?
‘희아……? 희아! 희아! 어디 있어!’
미친 듯이 그녀를 찾아 헤맸지만, 그녀는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제 곁을 떠나 버렸다. 어린 날의 그는 그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장소에 찾아가 보고, 저택의 이곳저곳을 뒤지고, 그녀를 닮은 이를 봤다는 소식을 듣고 가 보지 않은 지역이 없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 기간 동안 그는 점차 포기해 갔다. 그녀는 정말로 완전히 제 곁을 떠났다고.
이제 더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큰 상실감에 절망하고 있을 때. 기적같이 그녀가 제 눈앞에 나타났다.
‘……너. 이희아, 맞지? 내 눈이 잘못되지 않은 거지?’
‘다…… 다자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녀는 마치 10년 전, 헤어졌던 그날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그때와 똑같은 얼굴로, 그녀가 저를 불렀다.
그 순간, 멈췄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흑백으로 변했던 세상에 빛깔이 돌고 오직 그녀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시 만난 그녀는 너무나도 어여뻤다.
* * *
“희아.”
“응.”
“희아…….”
“응. 나 여기 있다니까.”
아까부터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나고 나서부터 계속 내 이름만 부르고 있다. 내가 눈앞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지, 눈을 비볐다가 뚫어져라 보다가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처음에야 이전과 같은 모습이라 신기한가보다 하고 넘겼지만. 횟수가 점차 많아지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래. 내가 이희아라고. 나 맞다고! 버럭 외쳐 주고 싶은 마음을 곱게 접어 놓고 최대한 상냥하게 말했다.
“저기, 그때는 나도 예상치 못했어. 갑자기 이렇게 이동하게 될 거라고는……. 그동안 잘 지냈어?”
“…….”
다자르가 내 말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살짝 위로 향했다가, 아래로 향했다가 다시 위로 향했다. 전혀 진심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그가 나지막이 답했다.
“잘 지냈어.”
이제 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다자르는 성인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골격이 단단하고 키가 컸다. 그래서인지 이제 갓 변성기를 지난듯한 목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자꾸 그 사람이 겹쳐져서 어색해.’
원래 세계의 다자르가 자꾸 떠올랐던 탓이다. 여기서 좀만 더 크고 인상이 거칠어진다면 그와 구분이 어려울 것이다.
그런 다자르가 절절한 눈빛으로 날 보는 게 아까부터 느껴지고 있어, 퍽 난감한 참이었다. 뒷덜미에서 땀이 삐질 흘러내리는 게 느껴진다.
‘이 사람아. 지금 나한테 이러면 어떡해! 곧 약혼자가 될 연인이 나타날 텐데!’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 감정을 곧바로 눈치채고 만 나는 속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 설마 이러다가 다자르의 과거가 바뀌어 버리는 건 아니겠지? 에이, 그냥 어릴 때의 첫사랑 이런 거겠지. 나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다자르와 지내 보니,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으니까.’
아마도 그런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성인이 되어 정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바뀌겠지. 나는 이미 다자르의 결말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는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그녀’를 만나 절절히 사랑을 나눌 것이고, ‘그녀’를 잃고 이 세계를 루벤에게 바칠 것이다.
그 말은, 내가 어쩌다 보니 이 세계의 끝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 되었다는 소리였고.
그 사실이 날 더욱 조바심 나게 했다. 이 세계에 정을 붙이기 전에 어서 악시온에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던 것이다.
그때 빤히 날 바라보고 있던 다자르가 툭 말했다.
“시아스터저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자는 동안 해치우고 올 테니 쉬고 있을래?”
“어? 해결해야 할 일?”
“응. 루벤의 추종자들과 관련된 일이야.”
그 말에 슬쩍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긴. 다자르가 있는 곳은 시아스터 저택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숲 깊은 곳. 야영 중이었는지 모닥불도 켜져 있었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로 보아 홀로 나온 모양이었다.
“혼자서 괜찮겠어?”
“난 괜찮아. 초월자니까. 다만…… 내가 없는 사이 네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게 걱정이 될 뿐이야.”
“그, 그러진 않을 거야.”
나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마도 전처럼 또 갑자기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때도 다자르가 내게 결계를 걸던 순간 공간이 찢겼고…….
‘아. 그때 분명 이전 세계의 다자르가 보였지.’
그를 보고 깨달았다. 다자르가 그쪽 세계에서 나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걸 알고 나서인지,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다자르가 힘을 써 주고 있다면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곧 악시온과 바닐라, 다자르를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문득 떠올려 버린 다자르의 이름에 눈을 끔벅였다. 계속 이곳에서 어린 그를 만나고 있어서인지, 머릿속에서 다자르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휙휙 저어 그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다자르에게 물었다.
“불안하면, 같이 갈래? 그, 루벤의 추종자가 있다는 곳 말이야.”
“…….”
다자르는 크게 고심하는 듯했지만, 곧 결론을 내렸다.
“그래. 같이 가자.”
그리고 다자르를 따라 새벽에 몰래 숨어 들어간 시골 마을에서 나는 놀라운 인물을 마주하고 말았다. 우연히 마을 외곽에서 마주친 이가……
아무리 봐도 세드릭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 새벽에 여행자라니. 놀랍군요.”
분홍 머리에 상냥한 웃음. 분명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