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9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9화 –
루벤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조금 흘렀다. 이제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지을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흑매들을 데리고 시아스터 공작저에서 조금 내려오면 있는 산으로 왔다.
산 중턱이라 평지처럼 공터가 크진 않았지만, 벼농사를 실험하기에는 적합한 크기였다.
원래는 선대 공작 시절, 이곳에 별장 같은 걸 만들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름 땅의 기반이 다져져 있었다.
무엇보다 근처 산봉우리에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거기서부터 계곡이 형성되어 아래로 물이 흘렀다.
그 계곡이 바로 옆이다.
그야말로 논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땅이었다.
나는 그 입구를 내다보고 서서 일꾼들에게 명했다.
“자, 우선 두렁을 만듭시다!”
“옛!”
가래떡에 홀린 일꾼들은 삽을 전투적으로 쥔 채 목청껏 외쳤다.
그리고 두다다 달려 나가다가 끼익, 멈췄다.
그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누님, 그런데 두렁이 뭡니까……?”
“앗.”
난 그들에게 논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 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들을 불러 모아 동그랗게 쪼그려 앉았다.
거대한 장정들이 저마다 삽을 든 채 날 둘러싸고 앉아 있는 모습이 퍽 부담스러웠지만.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쌀을 만들기 위해서는 벼농사를 지어야 해요. 그리고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논이 필요하죠!”
“오오.”
“논은 수전이라고도 불리는데, 물을 채워 두고 그곳에서 벼를 길러요. 근처에 계곡이 있죠?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물을 흐르게 해서, 한쪽에 고이게 할 거예요. 그 후 논으로 흘러 들어가게 할 거랍니다.”
“오오오.”
“그 전에 우선 고일 만한 장소를 물색해야겠죠. 그리고 논이 될 땅 주변을 흙으로 잘 쌓아서 두렁이란 걸 만들 거예요. 그래야 흘러 들어간 물이 빠져나가지 않겠죠.”
“그 쌓인 흙이 두렁이군요!”
불쑥 손을 들고 외친 대머리를 검지로 가리키며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대머리의 볼에 홍조가 생겼다. 칭찬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썩 보기 좋지 않은 몰골이었던 터라, 휙 고개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삽을 여러분께 쥐여 준 거예요. 반절은 계곡에서부터 땅을 파고, 반은 이곳에서 논을 만들도록 하죠.”
“옙!”
그들은 확실히 기사긴 기사였다.
가끔 숙취로 비틀대는 자들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무난하게 땅을 팠다.
붕어즙을 열 개 먹은 칼보다 훨씬 나았다!
그 사실은 그들에 대한 기대감이 바닥을 치던 날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오, 생각보다 많이 쓸 만한데?’
흑매는 대충 스물 정도 되는 듯했다.
내 앞에서 두렁을 만드는 사람들이 열 명인 걸 보면 말이다.
‘종자는 따로 없는 건가?’
보통 기사들은 종자를 두는 거로 알고 있는데.
하긴, 생각해 보니 시아스터 공작가는 산 깊숙한 곳에 있는 것만 봐도 퍽 폐쇄적인 곳이었다.
외부 인력도 거의 들이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원작에서도 흑매는 조금 특수한 집단으로 취급되었으니, 종자가 없는 것도 조금 이해가 갔다.
한참 그들이 일하는 걸 감독하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뒷모습이 너무 비슷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실리아잖아?”
“!”
“시아스터 공저에서 식량을 개발하는 사람이 실리아였구나! 와아, 이런 우연이 있다니!”
빳빳하게 굳은 목을 삐걱삐걱 돌렸다.
그곳에는 저번에 방앗간에서 마주쳤던 그 남자가 있었다.
보송보송한 핑크빛 머리카락에 선해 보이는 얼굴, 동그란 안경까지.
‘전 아무리 괴롭힘당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라는 글귀가 얼굴에 쓰인 것 같은 남자가 날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황실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보낸 담당자가 바로 나야. 세드릭 에이하르츠. 오랜만이야, 실리아.”
그래. 이름이 세드릭이었지.
나는 어설프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오랜만.”
어린 날 안경을 깨부순 날 보면서 우에엥 울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 *
“이야, 저번에 스이에 있는 방앗간에서 마주했을 땐 정말 실리아인가 했다니까. 너 집 밖으로는 거의 안 나오잖아.”
스이가 저번에 갔던 그 도시 이름인가.
나는 답 대신 그저 웃었다.
“하하.”
“아카데미 졸업 후 처음 만나는 거지? 정말 오랜만이네. 거의 7년 만인가. 그동안 너도 변했나 보다.”
기억 속의 분홍 머리 소년이 이젠 완연히 성인이 되어 있다.
뭐, 빙의한 몸의 기억이니. 내 기억은 아니다.
세드릭은 내가 논을 만드는 걸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 후 나와 함께 별관으로 와서 티타임을 갖는 중이다.
세드릭이 홍차를 조르륵, 찻잔에 따르는 칼을 보며 싱긋 웃었다.
“칼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네.”
“세드릭 님, 이렇게 마주한 게 얼마 만인지.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라 그런지 두 사람도 서로 잘 아는 듯했다.
그들은 두런두런 나를 빼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세드릭이 문득 날 보며 말했다.
“아무리 너라도 시아스터 공작가라니, 무섭지 않아?”
“응?”
세드릭의 얼굴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역시. 너에겐 별것도 아닌 거구나.”
“아니, 그게 무슨 소…….”
“어릴 때부터 씩씩하고 강했지. 실리아는.”
“…….”
의문을 제기하는 나를 두고 세드릭이 분홍빛 눈을 불투명하게 흐렸다.
먼 옛날을 더듬는 아련한 눈이었다.
내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아주 단단한 철벽이 느껴졌다.
“난 울보에 겁이 많아서 항상 네게 도움을 받았는데. 휴.”
“그러니까,”
“너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무리 시아스터 공작이 제 아버지와 형을 무참히 살해한 살인자라 해도.”
“……?”
“그래서 그의 기품 어린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항간에선 괴물 공작이라 부른다고 해도.”
히익?
저기요. 그건 아무리 저라도 걱정하셔야 하는 것 같은데요?
며칠 전 엘스턴이 한 말을 세드릭이 또 하려나 싶었는데!
‘이건 아는 사람은 아는 소문입니다만. 초월자들 중에는 간혹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더군요.’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여전히 아련한 눈빛을 한 세드릭과, 그의 옆에서 함께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칼을 번갈아 보았다.
내 눈동자 굴러가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데도, 그들은 내 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다자르가 전대 공작과 형을 죽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 혹시 그때 엘스턴이 말했던 피바람이 이건가?
‘과거에 시아스터 공작가에 불었던 피바람 때문이죠.’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 봐도 기억나는 게 없는 걸 보니, 내가 농사에 홀딱 빠져 있을 때 일어난 일이거나 어렸을 때의 일인가 보다.
“뭐, 공작 각하를 제외하더라도 여긴 ‘그’ 시아스터잖아.”
“‘그’ 시아스터가 뭐,”
“으으, 무서워. 그래서 여기서 일을 배우라길래 기겁을 했는걸.”
“아니,”
“난 가끔 온다고 해도, 실리아는…… 역시 대단해. 휴.”
“…….”
난 이 벽창호를 바라보면서……. 그를 잔혹하게 괴롭혔던 실리아가 조오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파면 팔수록 이상한 게 나오는 사람이네.’
다자르 시아스터.
전생을 기억한다는 점에 조금 동질감을 느끼려 했는데. 순식간에 다시 거리감이 생겨 버렸다.
* * *
티끌 한 점 없는 온통 하얀 공간.
책상부터 의자, 바닥, 천장까지 모조리 하얀색 일색인 방의 주인은 하얀 소파 위에서 서신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진행이 된 건가.”
지난날 보낸 서신에 돌아온 답신이었다.
답신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온점까지 다시 쭉 읽어 낸 엘스턴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신을 작성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엘스턴이 중얼댔다.
“다자르는 역시 신을 배반한 게 틀림없군.”
차가운 얼굴이 된 엘스턴이 답신을 툭 테이블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소파에 편히 등을 기댔다.
“루벤을 알아봤을 텐데도 살려 두는 걸 보면.”
루벤.
지난날 실리아가 서재에서 찾았던 존재의 이름이었다.
엘스턴이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지.”
초월자 중에서도 시아스터가의 고유 능력은 특별했으니까. 그들은 태생부터 루벤과 떼 놓을 수 없는 자들이었다.
엘스턴은 제 앞에 놓인 서신을 마법으로 불태워 흔적을 없애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말씀하신 대로, 다자르에게 마족을 보내 보기를 잘했어. 덕분에 그가 신을 배반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마족이라.
소심한 마탑주인 엘스턴과는 퍽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럼 이제 실리아가 말한 것처럼, ‘흑막’으로서의 일을 해 볼까.”
엘스턴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또 다른 서신을 꺼내 들었다.
지난번의 평범한 서신과는 달리, 어딘가 신성함이 느껴지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서신의 주인과 직통으로 주고받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서신이었다.
“이 이상한 여자에게 별로 연락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이게 내 역할이니까.”
문득 생각해 보니 제 주변에 정상인은 오직 저뿐인 것 같다고, 엘스턴은 생각했다.
제 품에 들어 있는 금색 딸랑이는 생각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