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27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27화 –
응? 고개를 갸웃하며 귀를 쓱쓱 후비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
“퀴젠 제국의 재상이라구. 하하. 이거 실리아에게 이렇게 내 얘기를 하니까 조금 부끄러운걸.”
제국의 재상이라고……?
황실 관료의 최고봉, 그 재상?
문득 스칼렛과 제도 카페에서 주스를 마시던 때가 떠올랐다.
‘아주 흥미진진한 협상 장면이었다. 2년 전 제국의 재상과 아드린 왕국의 대신이 티셴 강을 두고 벌였던 설전이 떠오르더군.’
어, 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아래위로 느리게 훑어보았다.
구름 같은 분홍 머리와 동그란 안경 덕에 유순해 보이는 인상의 세드릭.
지금 자세히 보니 조오금 키도 크고…… 동그란 안경 뒤로 보이는 눈은 꽤 날카로웠다.
“그럼 네가 2년 전에 아드린 왕국 대신이랑 설전을 벌였어?”
“아, 그거. 으응. 그랬지.”
어라. 뭔가 익숙한 내용인데. 나는 원작을 열심히 떠올렸다.
퀴젠 제국의 재상. 티셴 강. 분홍 머리. 동그란 안경.
그리고 마침내 떠올려 냈다.
“……불세출의 천재인가 뭐시기?”
“앗. 그러지 마, 실리아. 네가 나보다 항상 우수했으면서. 그런 별명은 너에게는 듣고 싶지 않다구.”
세드릭이 수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놀란 상태로 눈을 끔벅였다.
내 앞에 있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깨닫고야 만 것이다.
현재 황제파의 대표 격인 다자르가 그녀의 오른팔로서 무력을 담당하고 있다면,
왼팔을 담당하고 있는 정치계의 핵심.
악시온이 미치기 전에 그가 마음속 깊이 존경하던 학자이자, 세종대왕 스칼렛과 함께 퀴젠 제국을 밝은 미래로 이끌었던 인물.
‘세이드리그 에이하르츠 후작.’
세드릭이 애칭이었단 말이야?
아니, 그 전에. 내 소꿉친구가 그런 엄청난 놈이었다고라?
내가 얼이 빠져 있는 사이 그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어, 지금 좀 쉬는 기간이랄까. 안식년 같은 해라서. 보좌관들에게 대충 일거리 넘기고 여기 온 거야.”
그런데 여기 와서 실리아를 만날 줄은. 그가 덧붙였다.
‘여긴 뭐야. 황제의 왼팔, 오른팔이 다 모여 있잖아?’
어쩐지 엄청난 곳에 기어들어 온 것 같은 불안감이 목덜미를 강타했다.
그리고 약간의 현타도 이어 찾아왔다.
실리아, 이 녀석. 친구가 저 높이 출세하는 동안 농사나 짓고 있었던 게냐!
“큼큼, 어쨌든 균열의 날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실리아.”
한참 현타에 빠져 있는데, 세드릭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날 잠깐 이곳을 떠나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 * *
‘균열의 날’은 이 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가 옅어지는 날이었다.
그 탓에 그날이 되면 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 사이로 마기가 비집고 나오곤 했고, 그 틈을 타 ‘균열’에서 마물들이 빠져나왔다.
그렇기에 초월자들은 ‘균열의 날’이 되면 각자 자기가 맡은 ‘균열’에서 새어 나온 마물들을 제거하고 ‘균열’이 더 벌어지지 않도록 지켰다.
일반인들이 이날을 알지 못하는 것은 초월자들이 미리 ‘균열’ 주변으로 강대한 결계를 치기 때문이었다.
매년 마물들이 마계에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일반인들이 알면, 분명 불안과 공포가 그들을 잠식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아아, 그랬지요. 곧 ‘균열의 날’이지요?”
금색 딸랑이를 연신 흔들며 엘스턴이 말했다. 그는 바닐라를 가르치러 올 때마다 악시온을 보기 위해 이곳에 들르곤 했다.
어이, 어이.
아무리 악시온이 귀여워도 그렇지.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 상대의 얼굴도 안 쳐다보는 건 좀 예의가 아니지 않아?
나는 악시온의 얼굴이 내게 향하도록 반대로 안아 들었다.
“앗!”
엘스턴이 당황하건 말건, 악시온의 귀여운 뺨에 얼굴을 비볐다. 엘스턴의 얼굴에 부러움이 깃들었다.
나는 모른 척하고 입을 열었다.
“역시 엘스턴도 알고 있네요. 균열의 날.”
“크흠. 그렇지요. 아무래도 마탑의 마법사니까요.”
그렇다기보다는 마탑주이기 때문이겠지만. 거짓말을 해서 찔리는 건지 어색하게 웃는 얼굴이 된 그를 말끔히 무시하고 악시온의 콧방울에 코 뽀뽀를 했다.
“꺄아.”
악시온이 까르르 웃으며 예쁘게 눈을 접었다. 아이고, 내 새끼. 예쁘다, 예뻐.
엘스턴의 눈에 깃든 부러움이 더욱 진해지는 걸 모른 척하며 물었다.
“균열의 날이라는 거, 위험하겠죠?”
“으음.”
엘스턴이 도르륵 눈동자를 굴렸다.
뭐야. 이게 고민할 만한 일이야?
마물이 나타나는 건데 당연히 위험하지!
그런 생각으로 그를 슬쩍 노려봤는데.
엘스턴은 여전히 고민하는 낯이었다.
“왜요? 당연히 위험한 거 아니었어요?”
“그야 그렇지만 말입니다.”
엘스턴이 검지로 머리카락을 빙빙 꼬다가, 두 손을 마주 잡고 소파에 기댔다.
머리를 빙빙 꼴 땐 조금 모자라 보였는데, 저렇게 두 손을 깍지 끼고 있으니 제법 마탑주같이 보인다.
“원래 시아스터가에는 이제껏 손님이 없었다는 것, 알고 계셨습니까?”
“음…….”
말하는 모양새가 그냥 잠깐 들렀다 가는 손님은 아닌 것 같지?
“아니요. 몰랐는데요.”
엘스턴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시아스터가뿐만 아니라, 다른 초월자 가문들도 저택에 사람을 들이지 않지요. 그래서 귀족들은 그들이 오만해 자신들과 거리를 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이 저택의 특수성 때문이 큽니다.”
저택의 특수성.
바로 이 저택이 곧 ‘균열’이라는 것.
‘엘스턴도 알고 있구나.’
저번에 날 찾아온 세드릭은 뒤이어 이렇게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곳은 ‘그’ 시아스터 공저잖아. 그러니까…… 이 저택, 아니, 성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이 성 자체가 ‘균열’이니까.’
‘응?’
‘이곳 자체가 ‘균열’이라고. 그러니까 균열의 날이 되면 이 성 곳곳에서 마물이 나타나.’
‘……!’
뭐라! 그런 위험한 곳이었단 말이야?
원작에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난 좀 떨어진 근처에 ‘균열’이 있나 보다 했지.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저는 지금 여기에 있잖아요?”
“네. 제가 하려고 하는 말이 바로 그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못 잡겠어서 뚱하니 그를 보았다.
악시온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아니면 나를 따라 하는 건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다.
귀여운 녀석.
그걸 용케 본 엘스턴이 눈에 하트를 가득 담고 이마를 붙잡았다.
“후우. 그러니까, 시아스터 공작님께서 굳이 영애를 균열에 들인 덴 다 생각이 있으실 거라는 겁니다.”
“으으으음.”
“우선은 공작님과 이야기를 나눠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긴. 이곳을 지키는 당사자와 이야기를 하는 게 빠르겠지.
엘스턴의 말에 동의하며, 나는 슬쩍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엘스턴. 혹시 루벤이라고 알아요?”
“네?”
푸웃. 악시온을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이제 막 홍차를 한 모금 마시던 엘스턴이 찻물을 한 움큼 뱉었다.
덕분에 그의 바지는 흥건하게 젖었다.
딱 봐도 아는 눈치였다.
역시. 마탑주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았지.
나는 그에게 대충 티슈를 건네주며 다시 물었다.
“루벤이 뭔지 알고 있죠? 그게 뭐예요?”
“그, 그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그냥, 여기 저택 서재에서 우연히 어떤 책을 봐서요.”
“……으음.”
엘스턴이 땀을 삐질 흘렸다.
“에에, 그건……. 균열의 날보다도 더욱 특급인 분야라서…….”
특급인 분야라면, 일반인들에게는 더욱 알리지 않는 정보라는 건가.
몇 번 더 그를 찔러 보았지만, 홍차만 주룩주룩 흘릴 뿐 쓸모 있는 정보는 뱉지 않는 엘스턴이었다.
나는 바닥이 점차 흥건해지는 걸 보면서, 그에게 더 정보를 캐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으음. 다자르도 말을 안 해 주고, 엘스턴도 마찬가지네.’
일단 균열의 날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에, 악시온을 칼에게 맡기고 다자르에게로 향했다.
* * *
“방금, 뭐라고?”
지난날 내게 간장계란밥이라는 어퍼컷 한 방을 맞은 다자르는 날 보는 표정이 매우 썩어 있었다.
눈으로 사람을 쏴 죽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살벌한 눈초리였다.
그런데도 얼굴이 잘나서 못나 보이진 않아 다행이었다.
창문에 앉아 있는 걸 즐기는 건지, 내가 찾아갔을 때 그는 이번에도 창문에 걸터앉아 기다란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
여전히 시종은 보이지 않는 집무실에서, 그는 담뱃대의 불을 끄고 날 소파로 안내했다.
“그러니까, 일주일 정도 떠나 있겠다고요.”
그가 우아하게 자리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왜? 굳이.”
“굳이라뇨? 당연히 곧 위험한 날이 다가오니까 그렇죠.”
“흐음. 내가 말해 주려 했는데, 그 전에 세이드리그 후작에게 들었나 보군?”
‘균열의 날’에 대해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니, 세드릭에게 전해 들었나 싶었나 보다.
처음 이곳에 와서 동대륙을 언급했을 때 날 사기꾼처럼 취급했던 녀석이니, 내가 ‘균열의 날’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하면 또 이상한 소리를 하겠지.
게다가 세드릭이 내게 ‘균열의 날’ 이야기를 꺼낸 것은 맞았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위험하니까 저택을 떠나 있어야 할 것 같아, 실리아.’
내 마음속에서 ‘이 몸에게 불쌍하게 빵셔틀이나 당하던 소꿉친구’에서 ‘한 나라의 재상’으로 급격히 신분 상승을 한 세드릭이었다.
덕분에 없던 신뢰가 조금 생겼다고 할까.
내가 고개만 끄덕이고 별다른 말이 없으려니, 다자르가 먼저 입술을 뗐다.
“걱정하지 마. 네가 있는 별관 쪽은 결계를 따로 쳐 둘 거니까.”
“……?”
“절대로, 아무런 해도 없어.”
“…….”
“못 믿어?”
“네.”
내 즉답에 다자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못 믿지?”
“그야, 악시온에게는 드래곤 하트가 있잖아요. 마룡의 드래곤 하트는 마물들에게 엄청 매혹적인 거 아니에요? 혹시 마물들이 거기에 끌리면 어떻게 해요? 다자르의 결계도 소용이 없으면요?”
분명 원작에서도 마룡의 드래곤 하트 때문에 마물에게 타겟이 되곤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자 다자르가 오만하게 코를 치켜들며 팔짱을 꼈다.
“날 뭐로 보는 거야?”
“…….”
순간 바닐라가 속닥대던 말이 떠올랐다.
‘개새기에요.’
내가 말이 없자 날 게슴츠레한 눈으로 살피던 다자르가 입술을 비틀었다.
“너.”
“네?”
“방금 내 욕했지.”
“아니요?”
내 당당한 대답에 그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