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3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33화 –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나는 실베스타인에게 보내는 답신을 정성 들여서 쓰고, 잘 접어 봉투에 넣었다. 루벤에 대해 궁금한 점과 내 몸에 대해 혹시 얼마나 알아냈는지, 그리고 하일이 부탁했던 책들의 행방도 물었다.
“이 서신을 울프의 구두 가게로 보내면 되는 건가요? 실리아 님.”
칼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물어왔다.
내가 시아스터가에 도착했을 때는 꽤 시간이 늦은 시점이었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칼은 이미 악시온을 재운 참이었다.
‘예? 실베스타인 님이 어디 계신지 알아냈다고요?’
‘아니. 정확히는 서신을 보낼 곳을 알아냈어.’
갑자기 에반로아르 자작가에 다녀온다고 하더니, 가주와 연락이 닿을 통로를 알아 왔다고 하니 칼은 그 과정이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딱히 털어놓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칼은 실리아의 몸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루벤이 뭔지도 모르는걸.’
그냥 남매로서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 왔다고 둘러댔지만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그렇다는데, 믿어야지.
“응. 제국 동부 해안가에 있는 구두 가게라고 하던데.”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아아암. 칼이 하품을 하며 서신을 받아 들었다.
“내일 일어나자마자 가장 빠른 편으로 보내겠습니다.”
그가 터덜터덜 졸린 걸음으로 방을 떠난 뒤, 혼자 남은 나는 내 방과 연결된 악시온의 방으로 향했다.
악시온은 새근새근 천사처럼 잠들어 있었다.
“잘 자고 있네.”
아이가 깰까 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닥대며, 요람에 살짝 팔을 기댔다.
“악시온, 너나 나나 뭔가 비밀이 많다. 그치? 우리가 가족이 된 건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어.”
아이가 깨지 않게 토실한 볼을 손등으로 조심스레 쓰다듬다가, 내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꺄아!”
악시온은 오늘따라 기운이 넘쳐흘렀다. 칼이 이른 아침부터 서신을 보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악시온을 돌보게 된 나는 땀을 삐질 흘려야 했다.
“아이쿠. 우리 악시온이 오늘 힘이 넘치네? 폴짝폴짝 뛰고 싶어요?”
“우아!”
악시온은 신이 난 기색으로 내 손을 잡고 연신 발을 굴렀다. 폴짝폴짝 뛰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아직 그만큼의 근육은 없어서 엉덩이만 아래위로 씰룩이는 모양새였다.
으으. 너무 귀엽잖아.
깨물어 주고 싶은 악시온의 귀여움에 잠시 현기증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아 내며 아이의 두 손을 잡고 붕붕 위로 올려 주었다.
“꺄!”
“읏차아.”
“꺄아!”
“읏차아아아.”
“꺄아아!”
……분명 최선을 다해 놀아 주고 있는데.
왜 악시온의 에너지는 줄어들지를 않는 걸까.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에너지가 샘솟는 듯 연신 발을 구르는 속도만 더 빨라졌다.
“안 되겠다. 악시온. 우리 밖으로 나갈까?”
밖이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악시온의 에너지를 집 안에서만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자고로 넘치는 에너지는 밖에서 발산해야지!
나는 한 손에는 악시온을 안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악시온 전용 장난감이 가득 든 통을 든 채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바닐라를 마주한 것은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어라? 바닐라 양?”
“……!”
이른 아침부터 혼자 놀고 있던 모양인지, 내가 예전부터 종종 악시온을 데리고 놀던 작은 모래밭에 바닐라가 모래 놀이를 하며 앉아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여태 이곳을 찾으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는데.
‘우리는 주로 낮에 여기서 노니까.’
이른 아침인 지금이 바닐라의 주 놀이 시간이라면, 마주치지 못했던 게 이해가 갔다.
바닐라와 같이 놀면 되겠는걸?
바닐라와 악시온을 붙여 두고 싶은데, 엘스턴과의 교육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서 그 틈을 노리기가 쉽지 않았다.
“바닐라 양. 혹시 괜찮으면 같이 놀까요? 놀이 선생님은 어디 있어요?”
“……노, 노리 선새니믄 업더.”
쭈뼛쭈뼛.
모래가 잔뜩 묻은 손을 뒤로 감추며 일어선 바닐라가 내 눈치를 보았다. 바닐라가 왜 저러지? 아니, 그전에. 왜 혼자 여기에 있는 거지?
‘원래라면 놀이 선생님이 같이 놀아 주지 않나?’
다자르가 따로 유모를 두진 않은 모양이지만, 바닐라에게는 꽤 많은 선생님이 있었다.
“자리를 잠깐 비운 걸까요?”
어허. 쿨쿨 자고 있을 어린아이를 이 이른 시간에 데리고 나온 것도 좀 그런데. 아이를 밖에 두고 홀로 사라져?
이건 좀 다자르에게 전해야 할 문제인 듯했다.
내가 두리번거리며 놀이 선생을 찾자, 바닐라가 다급한 얼굴로 휙휙 고개를 저었다.
“안냐! 나눈 가께!”
“바닐라? 그러지 말고 같이 놀아요.”
바닐라가 멈칫하더니, 나와 악시온,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장난감 통을 번갈아 보았다.
바닐라의 눈빛이 흔들리고 작은 뺨이 붉게 변한다 싶더니,
“우……. 바, 바닐라눈 대써요.”
엇, 하는 사이에 후다닥 달려가 버렸다. 작은 몸집으로 어쩜 저렇게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지.
역시 아이여도 초월자는 초월자란 말인가.
금방 점이 되어 사라져 버린 바닐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뒷머리를 긁적이고 악시온을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어쩔 수 없지. 바닐라는 바쁜 일이 있나 보네. 우리 둘이 놀자, 악시온.”
악시온을 위해 만든 작은 삽을 아이에게 건네고 조금 전 마주한 바닐라를 떠올렸다.
이전에 다자르 앞에서 보였던 당돌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던, 조금 전의 바닐라.
오히려 쑥스럽고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뭐지. 괜히 좀 신경 쓰이네.’
악시온이 삽으로 쉽게 팔 수 있도록 모래를 모아 주면서 코를 훌쩍였다.
* * *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눈 부셨다.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빛 아래, 그 따사로움을 모두 누리겠다는 듯 방만한 자세로 창턱에 기대앉아 있는 이가 있었다.
하얀 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남자.
다자르였다.
“……슬슬 겨울이 오나.”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아래를 향했다.
“뭐야. 아침부터 어딜 가는 거지?”
그의 눈동자에 작은 아기를 안고 있는 한 여자가 맺혔다.
멀리 떨어져 있어 아주 작게 보였지만, 초월자인 그에게는 이 정도 거리야 별거 아니었다.
“그러게. 어딜 가는 걸까?”
그때 방 안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자르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없는 것을 보니,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는 듯했다.
다자르가 무심한 얼굴로 턱을 괴었다.
그의 눈은 아직 한 여자를 향해 있었다.
그가 중얼댔다.
“아침부터 놀 작정인가 보군. 피곤하지도 않나.”
“맞아. 어제 급히 자작저에 다녀온 모양이던데. 당연히 너도 알고 있었겠지만.”
실리아가 에반로아르저에 다녀온 것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는 투였다. 방 안의 목소리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를 냈다.
“저번에 루벤이 무언지 물었다지?”
“…….”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웃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을 힐긋 본 다자르가 창턱에서 내려왔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주전자에서 물을 따른 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웬일로 입을 열었지? ‘그녀’에 대해 말할 거리라도 있나?”
“아아. 아니, 그냥. ‘균열의 날’에 네가 열심히 생명을 거둬들여 준 덕분에, 힘이 넘쳐나지 뭐야.”
“그것참 퍽 기분 나쁜 소식이군.”
다자르의 싸늘한 말에 목소리의 주인은 그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킥킥대기만 했다.
“‘균열의 날’이 끝났으니 이제 슬슬 그 거지 같은 곳에 다녀오려나?”
“그래야겠지.”
“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성녀의 성스러운 축복이라니.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아.”
목소리의 주인이 끔찍하다는 듯 그리 말하고는 툭 물었다.
“아직도 성녀는 널 의심하고 있나?”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물어온 말에, 다자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여전하다는 제스처였다.
그 성의 없는 몸짓에 목소리의 주인은 익숙한 듯 말을 이었다.
“그냥 없애 버리는 게 어때? 왠지 귀찮아질 것 같은데.”
음산하게 뱉어진 목소리에 다자르가 눈썹을 까딱였다. 귀찮은 듯 내리깔려 있던 황금빛 눈동자가 살짝 노기를 담고 맞은편을 향했다.
“이 세계에서는 오점을 만들면 안 돼. 너도 알잖아?”
“장난이야, 장난. 당연히 알지. 우리가 어떻게 맺은 계약인데.”
큭큭 웃으며 받아친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 이번에 그 여자를 못 찾으면 또 루벤을 이용할 생각이잖아? 그런 생각으로 루벤을 네 곁에 둔 거 아니야?”
목소리에게서 그 여자라는 단어가 나오자 다자르의 눈썹이 치솟았다. 그가 화가 났다는 걸 알면서도, 목소리는 흥에 겨워 있었다.
“그때 널 선택하길 잘했어. 초월자의 변절이라니. 너무 재미있잖아.”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싶었는데, ‘그녀’와 관련 없는 말밖에 없군. 어서 꺼지지 그래. 내가 말했지 않나? ‘그녀’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내게 말도 걸지 말라고.”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는 다자르를 보며 목소리의 주인이 씩 웃었다.
“나는 나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꺼낸 건데.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꺼져.”
“알았다고, 알았어. 그래도 잊지 마, 더러운 초월자야. 나와 계약한 탓에 네게 저주가 걸려 있다는 걸 말이야.”
목소리의 주인이 키득대며 말을 이었다.
“네가 그녀를 찾을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군.”
퍼드득!
이죽대던 목소리가 날갯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홀로 남은 다자르는 끄떡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무료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그가 앉아 있던 창문을 향해서였다.
저놈이 입을 연 게 얼마 만이지? 바닐라를 저택으로 들일 때 빼고 이제껏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꽤 오랜만에 입을 연 것이었다.
저놈의 관심을 사 입을 열게 할 정도라니. 그 정도로 퍽 독특한 여자라는 것이겠지.
다자르는 문득 픽 웃음을 뱉으며 중얼댔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을 벌이고 다니려나. 이상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