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85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85화 –
“누니이임…….”
레온이 나를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얀 머리카락이 웬일로 잘 정돈되어 있어 낯설었다.
거기다 특유의 멍한 목소리가 아닌, 어딘가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
레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왜 그래요? 갑자기 죽을병이라도 걸렸어요?”
나는 모를 심기 위해 굽혔던 허리를 쫙 펴며 물었다. 오랫동안 허리를 굽히고 있었던 탓에 우드득 소리가 났다. 아이고 허리야.
바닐라의 찬스로 시아스터가가 관리한다는 비밀의 섬에 가기로 했으니 그 전에 모를 모두 심어 두고 떠날 생각이었다. 시간은 없고, 모는 어서 심어야 하고. 마음이 급했다.
마법진 바깥은 차디찬 겨울이건만, 그 안은 따스한 봄이었다. 레온이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르겠는 밀짚모자를 두 손으로 꼭 쥔 채 우물쭈물했다.
“제가 이번에…… 아주…… 무서운 소식을 들었지 말입니다.”
“……무서운 소식이요? 그게 뭔데요?”
“그, 그게…….”
어쩐지 오늘 일을 시작할 때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하긴 했다. 계속 내 주위만 빙빙 돌면서 모를 심고, 내 눈치를 살폈으니까.
그가 우물대는 모습이 퍽 답답했지만, 나는 상냥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주인…… 아니, 자작 영애였으므로 따스하게 말했다.
“셋 세기 전까지 말 안 하면 앞으로 가래떡 없음. 셋…… 두울…….”
“히익!”
레온이 아기 새처럼 파드득 몸을 떨며 속사포처럼 단어들을 뱉었다.
“누님이 곧 사망하신다면서요!”
“……네?”
뭐? 누가 사망해?
귀를 후빈 지 너무 오래됐나. 헛소리가 들리네.
예의 차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빌 뻔하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제가 사망한다고요?”
“네!”
레온이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는 유치원생처럼 순진무구하게 외쳤다.
나는 그 순진무구한 허연 얼굴을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어졌다.
“지금 저 죽으라고 저주하는 거예요?”
생뚱맞게 내가 사망한다니.
이건 저주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이 무쇠 팔이 흑매에게도 통할까?
나는 막 심으려던 모를 쥐고 있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겉보기에는 가냘파 보이지만 단단한 근육이 조밀하게 들어찬 이 무쇠 팔.
마물을 휙휙 썰어 버리는 흑매였지만, 이 무쇠 팔이 그들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흑매의 주인인 다자르에게도 통했잖아?
“예? 저주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저…… 누님께서 무시무시한 곳에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레온이 수줍은 얼굴로 눈을 끔벅였다.
무시무시한 곳?
아. 혹시 그 섬을 말하는 건가?
“그 섬 말하는 거예요? 별장이 있다는.”
“네. 바로 그곳 말입니다. 그곳은 저희도 따라가지 못하는 곳이거든요.”
그리 말하는 레온의 얼굴은 걱정에 물들어 있었다. 나를 이렇게나 걱정하고 있었다니. 하마터면 그를 오해해 무쇠 팔을 휘두를 뻔하지 않았는가.
나는 살짝 힘을 주고 있던 팔을 느슨히 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 섬이 흑매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곳으로 알려져 있나 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뭐예요, 레온. 지금 저 걱정한 거예요?”
짜식. 그동안 정이 좀 들었나.
이거 좀 감동인데.
살짝 심장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괜스레 코를 훌쩍이는데. 레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제가 왜 누님을 걱정합니까?”
“……?”
“누님은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걱정하는 건 가래떡을 더 이상 먹지 못할……. 꾸엑!”
반사적으로 날아간 주먹에 레온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논밭으로 쓰러졌다. 처량한 모습으로 쓰러진 그를 본 흑매들이 눈을 빛내며 달려왔다.
우루루 몰려드는 그들의 눈빛은 매서웠다. 득달같이 달려온 그들은…….
“야, 이 자식아! 네가 감히 곧 가래떡이 되실 귀한 모님의 위로 쓰러져?”
“죽어라! 이 천하의 몹쓸 놈!”
“이왕 죽을 거, 모님의 비료가 되어라!”
감히 모의 위로 쓰러져 버린 레온을 짓밟기 시작했다. 퍽퍽. 퍽퍽퍽.
나는 검은 발자국이 하나씩 새겨져 가는 레온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다가 다시 허리를 굽혀 모를 심기 시작했다.
‘흐음. 흑매들도 그 섬에 가 보지 못한 거구나.’
그럼 그만큼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 맞나 보네.
그런데 거기에 이제 안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내가 따라간단 말이지?
“으윽…… 그곳에 출입한 이들은 모두 주군의 손에 쓱싹 된단 말입니다아……. 부디 가래떡을 위해…… 다시 생각을…….”
레온이 유언을 남기듯 간절히 말을 전해왔다. 분명 흑매들에게 얻어맞고 있는 중인데도, 그의 얼굴에 고통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맷집이 정말 대단했다.
“거기 가면 모두 쓱삭 된다고요?”
“네에……. 그곳은 비밀 중의 비밀인 장소……. 가, 가래떡……! 가래떡이 보여요! 누님! 이것은 가래떡의 계시인 걸까요?”
정정한다.
표정은 고통 따위 보이지 않았지만, 정신은 이미 저 멀리로 간 듯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살짝 숙였던 고개를 바로 했다.
‘확실히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곳이긴 한가 보네.’
하긴 그러니까 그 일꾼을 제거할 뻔한 거겠지. 나는 열심히 모를 심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그 섬에서 가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할 수도 있겠는걸. 게다가, 악시온을 데리고 가는 걸 막을 수도 있겠어.
으음. 그건 좀 곤란한데.
* * *
“네? 그건 안 될 말이죠.”
“안 돼? 왜 안 돼?”
다리를 꼰 채로 다자르가 툭 뱉었다. 그의 얼굴은 잔뜩 뿔이 나 있었다. 내가 ‘안식의 기간’동안 그 비밀의 섬에 간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어떻게 저 혼자만 갈 수 있어요? 악시온은 어떻게 하고요?”
방금 다자르가 그 섬에 들어가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뱉었다. 저번에 모를 심으며 내가 걱정했던 대로였다.
다자르가 여전히 뚱한 얼굴로 툭 말했다.
“그 집사가 있잖아? 맨날 이상한 음료를 달고 사는 그 정정한 노집사 말이야.”
“어머. 저번에도 말했지만 다자르는 정말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하나도 없군요?”
“…….”
다자르의 얼굴이 썩어 들어 갔다.
사실 이 신분제 사회에서 장유유서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맞지만, 나는 일단 우기기로 했다.
“악시온이 참 착하고 순한 아기지만, 아기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아세요? 혼자서는 어렵다구요! 그런 험한 일을 어떻게 노인에게…….”
“네가 시키고 있잖아. 그 험한 일. 보면 맨날 그 노집사에게 맡기고 밖을 뽈뽈 돌아다니던데?”
앗.
알고 있었나. 이런 무서운 멍멍이 같으니. 안 그런 줄 알았는데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리가요. 다자르가 못 봐서 그런 거죠.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기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구요. 안식의 기간이 그렇게 짧지도 않은데, 어떻게 아기를 혼자 두고 가요?”
“재상 있잖아. 저번에 보니 꽤 친밀해 보이던데, 맡겨 두지 그래?”
갑자기 세드릭 얘기는 왜 나와?
나는 불퉁하게 볼을 부풀리고,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앞에 선 채였기에, 그의 정수리가 잘 보였다. 그곳을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불쑥 샘솟았다.
후우. 릴렉스.
이러다 어제 논밭을 구르던 레온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었다.
나, 비폭력주의자였는데.
실리아의 몸에 깃들어서인가, 왜 이렇게 주먹이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인 것만 같지?
“저 세드릭이랑 별로 안 친하거든요. 재상인 줄도 여기 와서 알았거든요.”
“……그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다자르의 입술 한쪽 끝이 슬쩍 올라간 것 같은데.
그가 급히 제 손으로 입가를 매만지는 바람에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흐으으음.
이 멍멍이 자식. 알고 보니…….
‘재상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나만 친한 것 같아서 질투하나?’
그리고 이제 친분이 없는 걸 보고 기뻐진 거야? 나도 렛시가 만약 나 말고 친한 여자 사람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오오오금 서운할 것 같긴 해.
조금 동정의 마음이 샘솟은 나는 그를 이해한다는 듯 바라봐 주었다.
다자르가 눈썹을 까딱였다.
“그 눈은 뭐야?”
“제 눈이 뭐요?”
“뭔가 썩었어. 음침해. 마음에 안 들어.”
“…….”
이 자식이 진짜.
“어쨌든, 안 된다면 안 돼. 너 하나 가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지만 우린 다 같이 가족인걸요?”
“……윽.”
다자르가 입술을 씰룩였다.
역시. 저번에도 느꼈지만 가족이라는 단어에 조금 취약한 것 같단 말이지.
“악시온이 가지 않으면 바닐라가 엄청 서운해할 거예요. 한.가.족이니까요.”
“……그 가족이라는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가족이니까, 제가 맛있는 밥도 가끔 해 주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다자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씩 웃으며 박수를 짝짝 쳤다.
그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칼이 악시온을 업은 채 트레이를 밀고 들어왔다.
“실리아 님께서 대기토록 하신 간장계란밥입니다.”
“아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간장계란밥을 본 다자르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흐흐.
그러고 보니 요새 간장계란밥을 못 먹었지?
우리 멍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