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One With Genius DNA RAW novel - Chapter 118
117화.
“반갑습니다.”
류영준이 제이미 앤더슨과 악수를 나누었다.
세미나홀에 약간의 긴장감이 흘렀다.
올리버가 보기에는 마치 세대교체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생물학계의 왕관을 쓰고 있었던 과학자 제이미 앤더슨.
그리고 과학의 새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는, 젊고 야망적인 천재 류영준의 만남.
찰칵!
누군가가 옆에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MIT의 젊은 연구교수로, 제이미앤더슨의 제자 중 하나였다.
“좋은 샷이군요.”
그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류 박사님하고 앤더슨 박사님이 하나의 사진에 들어오다니. 이거 언젠가 생물학 교과서에 실릴 것 같습니다.”
제이미 앤더슨이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 사진 잘 보관해놔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류영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류 박사님이 요즘 여기저기서 활약이 많더군요. 췌장암 치료제도 만들고, 당뇨 치료제도 만들고 말입니다. 솔직히 류 박사님의 업적은 이미 여기 홀에 모여 있는 다른 과학자들을 다 넘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이에요.”
“과찬이십니다.”
류영준이 겸손하게 답했다.
띠링.
알림과 함께 제이미앤더슨의 머리맡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상당히 흥미로운 감정이네요.
로잘린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는 허공을 동동 떠다니면서 제이미앤더슨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제이미의 머릿속을 관찰했다.
‘뭐가 흥미로워?’
-감정이 매우 복잡합니다. 저는 이런 건 처음 봤어요.
‘어떤데?’
-알려드리려면 피트니스를 써야 해요.
‘써줘.’
제이미앤더슨이 류영준을 보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라는 게 어떤 건지 너무 궁금했다.
동기화 모드에 접어들면서 눈앞에 거대한 뇌의 지도가 떠올랐다.
찌익. 찌익.
혈류의 흐름이 표시되었다.
활성화되는 지점들이 나타났다.
CTA (Conditioned taste aversion)을 비롯한 몇몇 위치들에서 강한 신경 반응이 나타났다.
류영준에겐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전해졌다.
비록 그들의 발생 배경을 알 수 없어서 논리적이진 않았지만 제이미 앤더슨이 느끼는 기분을 비슷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감탄. 부러움. 분노. 기특함.
역겨움. 질투. 감동. 고마움. …….
이게 한 번에 같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인가? 대체 어떻게?
약간의 황당함이 떠오르려던 찰나.
“류 대표님.”
제이미 앤더슨이 류영준을 불렀다.
“아, 네?”
류영준은 동기화모드에서 빠져나왔다. 방금 전까지 떠오르던 감정들이 싹 가라앉았다.
제이미 앤더슨이 말했다.
“여기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지금 이 홀에는 40명의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모두 노벨상 수상자거나, 후보거나, 후보였거나, 또는 머지않아 후보가 될 사람들이죠.”
“…….”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유러피안 백인입니다. 아닌 분은 류 박사님하고 카게쿠니 교수님, 그리고 여기 있는 리에핑 첸 교수님뿐이군요.”
리에핑 첸은 예일대학교에서 교수직을 하고 있는 중국계 영국인이었다.
류영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이미앤더슨의 말대로 정말 비서양인은 류영준과 카게쿠니, 리에핑 첸 세 사람 뿐이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제이미 앤더슨이 물었다.
“글쎄요.”
“과학적인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문화적인 배경이 영향력을 미치는 게 어느 정도 있다는 겁니다. 비교적 빨리 근대화에 성공하고 과학을 시작한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도 꽤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
“일본인에 비해 한국인이 과학을 하기 어려운 것처럼, 조금만 시야각을 넓혀보면,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이 과학을 하기가 어렵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 자리까지 오셨으니 세 분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이미 앤더슨이 말했다.
“특히 류 박사님 같은 경우에는 불과 1년 사이에, 여기 있는 어떤 과학자를 상대로도 압승을 거둘 만한 퍼포먼스를 보이셨죠. 비교적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해내셨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분명 칭찬인데 어쩐지 기분이 찝찝하다.
‘동양을 묶어서 과학 후진국 취급해서 그런가.’
사실 따지고 들자면 그것은 사실은 아니다. 영미권이 서양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동양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내는 연구소와 기관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좀 돌려서 완곡하게 받아들이면 그렇게까지 불편해할 말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인정할만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영준이 대답했다.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제이미 앤더슨이 갑자기 코트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류 박사님한테 이걸 드리죠.”
금색 배지였다.
그걸 발견한 주위의 과학자들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소장님!”
MIT 연구교수가 소리쳤다.
“괜찮습니다. 류 박사님은 이걸 받을 자격이 있어요.”
“죄송하지만 이게 뭐죠?”
류영준이 물었다.
“GSC (Great Scientists Club)의 멤버십입니다.”
“GSC?”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의 모임입니다. 생물학과의학은 물론이고, 물리학, 화학, 우주과학 등을 포함해서 전체 이과학 분야에서 총 100여 명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
“인류를 이끌어가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GSC는 미국에 본부가 있고, UN이나 각국 정부, 그리고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에게 여러 가지 자문과 조언을 해줍니다.”
제이미가 말했다.
“미리 일러두는데 류 대표님, 여긴 아무나 못 들어가는 자립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이 자리를 제안한 것 자체도 몇 번 안 되고요.”
제이미가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들도 함부로 못 들어갑니다. 100명 중에 누군가가 탈퇴하거나 죽어서 자리가 생겨야만 들어갈 수 있어요.”
“누가 탈퇴한 건가요?”
“얼마 전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돌아가셨죠.”
“아…….”
“이후 쭉 공석이었는데, 그 자리에 대한 추천권을 제가 갖게 되었습니다. 그걸 류 박사님에게 드리는 겁니다.”
류영준은 주위를 힐끔 둘러보았다.
모든 과학자들이 경악과 긴장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제가 이걸 받으면 어떤 의무가 생기나요?”
류영준이 물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권리와 명예만 있는 배지입니다. 의무가 있다면 그 명예를 망치지 않는 것 정도지요. 맘에 안 드시면 바로 반납하실 수도 있고요. 하하.”
“……. 그럼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류영준은 배지를 받아들었다.
***
카게쿠니 교수와 카펜티어는 세미나홀을 나오면서 류영준에게 비슷한 말들을 했다.
“GSC에 가입한 건 잘 하셨습니다. 거긴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아요. 하지만 제이미 앤더슨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마십시오.”
카펜티어는 ‘성격이 더러운 놈이다’ 같은 개인적인 이유를 댔지만, 카게쿠니 교수가 내놓는 이유는 좀 달랐다.
“그 사람,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성차별주의자이기도 하고요.”
“그래요?”
류영준이 깜짝 놀랐다.
“미국백인남성 우월주의 3관왕을 다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아까도 은근슬쩍 동양을 무시했었지요. 사실 그렇게 과학 후진국이라고 한 데 묶어서 후려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
“아직 류 박사가 과학계의 메인 스트림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고, 그동안 과학자들과의 사교는 전혀 하지 않고 연구만 줄창 팠기 때문에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스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은연중에 소문이 다 퍼져 있어요.”
“…….”
“류 박사님. 제이미 앤더슨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아십니까?”
“앤더슨 교수가 프랜시스크릭하고 마이클 교수랑 같이 DNA X선 회절 사진을 보고 분석해서 발견한 거잖아요?”
“맞습니다. 그럼 그 X선 회절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아세요?”
“X선 회절……. 앗!”
류영준의 눈이 커졌다.
아주 옛날 일반생물학 수업 때 들었던 이름이 떠올랐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최근 1년간 너무나 많이 불렀던 이름과 동명이다.
“로잘린…….”
화륵!
-전이 상태 : 심장 (9%), 간 (47%), 뇌 (9%), 신장 (15%), 척수 (8%)
-동기화 : 20%
-세포 피트니스 : 9.4
상태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류영준은 이 로잘린을 부른 게 아니었다.
“맞습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카게쿠니 교수가 말했다.
“DNA 결정을 X선으로 찍어서 빛이 분산된 회절 사진을 확보한 과학자였죠.”
“…….”
“류 박사님. 나 같은 늙은이가 이제 류 박사님한테 과학을 가르칠 순 없지만, 옛날이야기는 좀 해드릴 수 있겠군요. DNA의 구조가 밝혀지던 당시에 나는 열정 넘치는 학생이었어요. 그때 류 박사님은 태어나지도 않았겠죠. 하하.”
카게쿠니가 빙그레 웃었다.
“당시에도 꽤 이슈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로잘린은 사실상 DNA 구조를 밝히는 작업을 거의 혼자서 다 했어요. 지금 제이미 앤더슨이 받고 있는 모든 찬양을 받아 마땅한 여자였죠. 하지만 노벨상은 못 받았습니다. 수상할 때 이미 요절하고 없었거든요. 이유는 X선에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난소암으로 죽었습니다.”
“…….”
“그리고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제이미 앤더슨은 그 X선 회절 사진을 가져다가 논문을 썼습니다. 하지만 과연 로잘린의 허락을 받았을 까요?”
“안 받았나요……?”
“네. 무단으로 도용했습니다.”
“…….”
“류 박사님. 제이미 앤더슨이 DNA의 구조를 밝히던 20세기 중반에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스타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화학에서요. 누군지 아세요?”
“그 시대의 화학자들이면……. 라이너스 폴링?”
“맞습니다.”
카게쿠니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미 앤더슨의 등장 이전에 세계 정상에 있었던 과학자였죠. 그리고 그 사람도 DNA 구조 분석에 매진했습니다. 제이미 앤더슨보다 더 앞서 있었죠. 하지만 결국 제이미한테 성과를 빼앗겼어요. 왜 그랬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로잘린이 있었던 학회 컨퍼런스에 참여하지 못했거든요. 초청받았는데도 못 갔습니다. 로잘린을 만났었다면 X선 사진을 보고 DNA 구조를 먼저 풀었을지도 모르죠. 그럼 왜 못 갔느냐? 라이너스 폴링은 반핵 운동과 반전주의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출국이 막혀버린 겁니다.”
“…….”
“당대에 물리학을 아인슈타인이 지배했다면 화학을 지배했던 게 폴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지 않았죠. 핵실험을 하면 안 된다고, 그런 무기를 만들지 말자는 반대 서명 운동과 강연 활동을 앞장서서 했습니다.”
카게쿠니가 말했다.
“덕분에 폴링은 DNA의 X선 회절 사진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볼 기회를 놓쳤어요. 하지만.”
그가 빙그레 웃었다.
“그 반전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죠. 그리고 폴링 정도의 지식인이면 노벨 화학상 정도는 그냥 받습니다. 그래서 폴링은 노벨상 2관왕이에요. 화학상과 평화상.”
“…….”
“류 박사님. 과학자는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꼭대기에 있는 과학자들, 스타 과학자라고 불리는 인류의 스승들은 그 이상도 해야합니다. 류 박사님도 이미 그 반열에 있고요.”
“…….”
“오래 전에 류 박사님을 잠깐 지도했던 교수로서,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과학자로서,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냥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저는 류 박사님이 제이미 앤더슨이 되지 않고 라이너스 폴링이 되길 바랍니다.”
***
박동현과 정혜림은 교수들의 포스터 자료를 보고 있었다.
“혜림 씨, 우리 내기할까요.”
“뭘요?”
“카게쿠니랑 올리버 중에 누가 상 받는지.”
“하! 당연히 올리버죠. 면역관문 억제자 개발한 사람인 거 몰라요?”
정혜림이 뭐 그런 뻔한 걸 묻느냐는 듯 대꾸했다.
“하지만 카게쿠니 교수도 만만치 않아요. 그 사람은 면역 세포의 종양 유도 과정도 밝혀냈고, 항원제시세포의 트리트먼트 방법도…….”
“동현 씨!”
갑자기 누군가 박동현을 부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류영준이었다.
“앗, 대표님.”
“안녕하세요. 세미나는 잘 듣고 있나요?”
“네. 그럼요.”
“저기 그……. 갑자기 이런 질문해서 미안한데, 옛날에 생명창조 부서에서 개발하던 인공세포 이름이 로잘린으로 명명돼있었잖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네.”
“그거 로잘린드 프랭클린에서 따온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