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84
384 이제 그만하지?
낙양성 북문 앞에 거대한 군영이 서고 수천 개의 군막이 쳐졌다.
아직 봄이 끝나지 않은 날씨라 밤바람은 차가웠다.
그래서 군사들은 군영 곳곳에 커다란 화톳불을 피웠다.
불가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마시는 군사들은 대장군 남곤이 이끄는 이십만 황군의 주력이었다.
그들에게서는 긴장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보급은 충분했고, 군사의 수는 이십만이나 되었다.
반면 낙양성 내에는 군이라고 할 만한 병력이 머물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을 지휘하는 남곤은 제국 최고의 명장으로 칭송받는 장군이었다.
그러니 군사들이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군영의 중앙, 수십 개의 대황초가 환하게 불을 밝힌 지휘부 군막 안.
십여 명의 장수 사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 대장군 남곤과 관복을 입고 황제가 내린 칙서를 든 무장이 있었다.
무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군막을 울렸다.
“…대장군 남곤은 즉시 짐의 명을 이행하라.”
“황상 폐하 만만세! 신 남곤, 폐하의 지엄하신 명을 따르겠습니다.”
복명하는 남곤의 중후한 얼굴은 어두웠다.
신무제가 내린 명령은 실로 참혹하기 그지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옆에서 황제의 명령을 함께 들은 부하 장수들의 표정도 어둡긴 매한가지였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꽉 잠긴 목소리로 남곤에게 말했다.
“대장군, 낙양을 초토화시키라니요. 저곳엔 제국의 백성 육십만이 살고 있습니다. 아직 낙양부의 반역이 사실인지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먼저 반역 여부부터 확인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난 남곤이 부하 장수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그만! 납득할 수 없다고 해도 나라의 녹을 먹는 자가 황상 폐하의 명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의 어조는 무겁지만 결연했다.
부하 장수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남곤이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제의 칙서를 전한 무장은 남곤과 부하 장수들의 대화를 듣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도 장수들과 같은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남곤이 장수들에게 말했다.
“모두 전투를 준비하도록.”
장수들은 굳은 표정으로 복명했다.
“예, 대장군.”
사실 황제의 칙서가 도착했을 때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사라졌다고 봐야 했다.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는 건 반역을 의미하고, 그 여파는 자신뿐만 아니라 구족에 미치기 때문이다.
장수들이 군막을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
대황초의 불빛을 받아 길게 늘어진 남곤의 그림자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기묘하게 꿈틀거렸다.
일체의 소리가 배제된 은밀한 움직임.
황군에 전승되는 무공을 익힌 남곤은 절정고수였다.
하지만 그는 그림자의 움직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몰려 나가는 부하 장수들의 등을 보며 남곤은 탁자 위에 놓아둔 투구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막 투구에 손이 닿은 그의 미간에 내천자가 깊게 팼다.
투구가 저 혼자 빙그르르 회전하는 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 된…….’
그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입술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머리는 목에서 분리되어 허공을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툭- 푸확!
데구루루-
남곤의 잘린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머리가 사라진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몸뚱이가 뒤로 넘어갔다.
털썩!
뒤에서 들려온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린 부하 무장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대장군!”
그들의 입에서 합창하듯 비명이 터져 나왔다.
쓰러진 남곤을 내려다보던 검은 그림자가 부하 무장들을 보며 생긋 웃었다.
동시에 마치 장막이 걷히듯 검은 그림자에 색채가 생겨났다.
풍성한 검은 머리, 이국적인 오후리소데를 입은 절세의 미녀.
미녀의 그림 같은 아미에 살짝 주름이 졌다.
“허수아비인 줄은 알았지만 이건 좀 심한데?”
중얼거리는 그림자의 정체는 유코였다.
그녀는 손에 한 자 길이의 쌍단검을 들고 있었다.
남곤을 죽인 암살자가 왜국의 여인이라는 것을 본 장수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네 이년!”
“감히 대장군을!”
“죽어라!”
무기를 뽑아 든 장수들이 일제히 유코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의 기세는 사나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중 두 발짝 이상 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흐느적거리며 일어난 그림자들이 인정사정없이 그들의 목을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장수들을 공격한 그림자는 유코가 만든 살수 집단 잔월류의 살수들이었다.
시퍼런 검광이 번뜩이며 소름 끼치는 파육음이 합창하듯 났다.
서걱- 서걱- 서걱-
“컥!”
“으악!”
군막 내부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지휘부 군막에서 흘러나온 처절한 비명 소리는 단숨에 황군의 군영을 뒤흔들었다.
주변에 있던 군사들이 군막에 들이닥쳤을 때 유코와 살수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후일 ‘황군의 악몽’이라 불린 이날 밤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잠시 후 군영 여기저기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루 동안 황군의 천인장 급 장수들의 정보를 수집한 유코가 부하들과 함께 본격적인 살행을 개시한 것이다.
* * *
황성, 지하 광장 만상보전으로 향하는 문 앞.
신무제는 문상과 함께 그곳에 서 있었다.
신무제가 말문을 열었다.
“진무앙이라는 자는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어렵구나. 황군 이십만이 낙양을 포위했는데도 돌아가지 않다니. 그곳에 애착이 있다고 보았는데, 그렇지 않았단 말인가?”
문상이 대답했다.
“폐하, 아직 결론을 내기엔 이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낙양이 초토화되는데도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신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앙의 옆에는 형산에서 그를 도와 염왕시들을 격살한 자들이 있다. 그들이 천하삼정과 합류하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전에 마병존마가 완벽하게 완성되어야 한다.”
문상이 문을 가리키며 말을 받았다.
“그것의 완성에 필요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폐하. 안에 들어가시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운무곡의 싸움이 걱정스럽긴 하지만, 승부의 추가 삼정에게 기울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완성된 마병존마라면 진무앙이 그곳에 있다 해도 천하삼정을 궤멸시킬 것입니다.”
문상이 긴장된 얼굴로 문의 기관장치를 조작했다.
쿠쿠쿠쿠쿠-
높이 일 장, 폭 이 장에 달하는 거대한 문이 활짝 열렸다.
지하 광장을 본 신무제의 눈에 떨림과 놀람의 기색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건 문상도 마찬가지였다.
광장의 한가운데엔 푸른 불꽃에 휩싸인 우문백령이 우뚝 서 있었다.
그런데,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문백령의 옆에는 화려한 궁장을 입은 절세의 미인이 서 있었다.
그녀를 본 신무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태귀비 마마가 어떻게 이곳에?”
우문백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절세미인은 유가흔이었다.
미소를 지은 그녀가 신무제에게 말했다.
“황상께서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신무제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저를 기다리셨다고요? 마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의 평생 꿈이 시작되려 하는데 제가 어찌 지켜보지 않을 수 있겠나요.”
신무제의 안색이 굳어졌다.
“마마,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이지요. 선황 폐하와 함께 이곳을 만든 사람이 저인걸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신무제의 걸음이 멈칫했다.
그는 불신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마마가 이곳을 만드셨다고요?”
“그래요. 그리고 어디 그뿐이겠어요. 폐하가 이곳에서 혼을 유지한 상태로 지옥천멸검을 얻을 수 있게 하고, 환요와 존마의 제작법까지 손에 넣게 한 것도 저인걸요.”
신무제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신광이 흘러나왔다.
“마마, 없는 말을 지어내지 마십시오. 그것은 선황께서 저를 위해 베풀어놓은 안배였습니다.”
유가흔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을 받았다.
“말년엔 아주 짧은 상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선황께서 이 모든 것을 안배하셨다고요? 정말 그렇게 믿으시는 건가요, 황상 폐하?”
신무제는 이를 악물었다.
유가흔은 그가 드러낸 적이 없을 뿐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의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그때, 묵묵히 듣고만 있던 문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마마, 말씀하시는 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이곳에 계시면 아니 되십니다. 이곳은 폐하가 중히 여기는 장소입니다. 나가주시지요.”
유가흔의 눈길이 문상을 향했다.
그녀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림에 몸을 담고 있는 천한 놈이 감히 황족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것이냐!”
그 음성에 담긴 서릿발처럼 차갑고 강렬한 기세에 문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신무제가 노한 눈으로 유가흔을 보며 소리쳤다.
“어마마마, 그만하시죠. 그는 짐의 사람, 그를 능멸함은 저를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유가흔의 눈이 커졌다.
“아! 그렇군요. 제가 폐하께 사과를 해야 하는 건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소맷자락 안에서 한 가닥 섬전과도 같은 무형무음의 지력이 문상을 향해 날아갔다.
지력의 속도는 가공할 정도로 빨라서 문상은 그것이 발출되었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이마에 구멍이 났다.
그는 병법과 조직 운영에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효웅이었지만 무공은 일류고수 정도에 불과했다.
퍼석!
“크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문상이 수장이나 뒤로 날아가 나뒹굴었다.
우당탕쿠당탕-
일세의 효웅치고는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대로한 신무제의 입에서 엄청난 폭갈이 터져 나왔다.
“어마마마! 감히 짐의 면전에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신임하는 문상을 어이없게 잃은 그의 분노는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컸다.
그러면서도 그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칠마병의 수좌인 지옥천멸검의 주인인 그가 유가흔의 지력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가흔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것은 평소처럼 온화하고 다정하지 않았다.
대신 경멸과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신무제의 이름을 불렀다.
“석중천, 나를 존중하는 척하는 위선도 이제 그만하지?”
신무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가흔이 말을 이었다.
“너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네가 내게 품고 있는 감정이 계모를 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여자인 내게 욕정을 품고, 끊임없이 나를 안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내게 황제 대접을 받고 싶다는 것이더냐!”
신무제의 얼굴이 음침해졌다.
“이미 알고 있었다니 잘됐군. 무림의 씨를 말리는 대업을 시작하는 날, 너를 안는 것도 의미가 있겠군. 지금 이 자리에서 너를 향한 내 젊은 날의 욕망에 매듭을 짓겠다. 그리고 무림을 멸절시키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하겠다.”
“오호호호호호호!”
유가흔은 고개를 젖히고 날카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신무제를 보며 말했다.
“네 아비는 그나마 사람 냄새가 나서 안쓰럽기나 했지, 너는 천박한 욕망으로 가득찬 잡것에 불과해.”
신무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 품에 안기고도 계속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보고 싶군.”
“안타깝네. 그런 일은 영원히 벌어지지 않을 거거든.”
말과 함께 그녀의 열 손가락 끝에서 문상을 죽인 무형무음의 지력이 신무제를 향해 번개처럼 쏘아졌다.
슈슈슈슈슈-
신무제의 왼손이 가슴 앞에서 둥근 원을 그렸다.
원의 궤적을 따라 가공할 흡인력이 일어났다.
그 궤적에 걸린 열 개의 지력이 무기력하게 흡인력을 따라 회전하다가 소멸되었다.
유가흔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당의 태극면장? 별걸 다 익히고 있었군.”
신무제가 스산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황궁비고에 천무고 황제께서 대혼돈시대에 모은 무공비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걸 몰랐나?”
지하 광장이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소름 끼치는 살기로 진저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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