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59
059 혹시 혼인했습니까?
한 시진 후 진무앙은 섭가장을 나섰다.
다가닥. 다가닥.
진무앙은 윤기가 좔좔 흐르는 흑마를 타고 있었다.
구 부인이 조사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내준 말이었다.
그녀는 진무앙의 조사 합류를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두연충보다도 더 환영했다.
진무앙은 두 사람에게서 섭광운과 관련된 지금까지의 조사 내용을 모두 들은 후 그들과 헤어졌다.
여유롭게 말의 진동에 몸을 맡긴 진무앙의 표정은 묘했다.
‘오늘까지도 섭광운과 관련해서 대가를 요구해 온 자는 아무도 없다. 섭가장…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군. 분위기가 난향이 말한 것과는 많이 달라.’
그가 가고 있는 곳은 낙양의 남쪽, 이수 나루터였다.
섭광운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가 이수 건너편에 있는 향산 아랫자락의 나루터였기 때문이다.
‘두연충 총관… 섭가장의 지저분한 일까지 처리해 왔을 테니 그가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도, 그리고 암혈이 보이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야.’
그의 눈에 흥미진진해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암혈의 색이 너무 짙어. 최소 일백 이상을 죽여야 그 정도 진홍빛 암혈이 보이는데…….’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 너머로 용문산의 동굴과 도도히 흐르는 이수의 강물이 보였다.
‘그의 과거부터 알아봐야겠다. 그 정도 살행은 정파는 물론이고, 사마외도에서도 흔한 게 아니니까…….’
진무앙의 눈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구자경도 특이하긴 두연충에 못지않아. 난향도 그녀의 감춰진 신분을 몰랐던 모양인데, 들으면 놀라 자빠지겠네. 흐흐흐.’
다가닥. 다가닥.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이수의 강물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마침 나루터에는 나룻배가 정박해 있었고, 사람들이 우르르 타는 중이었다.
진무앙은 그곳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말을 세웠다.
그가 이곳에 온 건 조사를 하기 위함이었지만, 사람을 만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수향루를 나올 때부터 얼쩡거렸으니 이제 인내심도 한계일 텐데, 잘 참네.’
그는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했던가.
그의 앞 허공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시 현상이 생기는가 싶더니 환상처럼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무앙이 흰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훌륭한 비천표령신법이군.”
“기루의 호위무사치고는 안목이 상당하군요.”
맑고 낭랑한 음성.
나타난 사람은 눈 아래를 자색 면사로 가리고, 자색의 겉옷에 같은 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었다.
면사 위로 드러난 희고 반듯한 이마와 그린 듯한 눈썹, 쌍꺼풀이 없는 흑백이 뚜렷한 눈동자.
면사로 얼굴의 반을 가렸음에도 그녀가 대단한 미녀라는 걸 아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진무앙이 물었다.
“소저는 나를 아는데, 나는 소저를 모르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비천표령신법을 알아본 사람이 내 신분을 묻는다는 건가요?”
“나는 소저가 하오밀문의 무인이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비천표령신법은 하오밀문의 간부급들이 익히는 비전의 경공술이다.
면사 여인이 소맷자락에서 손을 꺼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럼 정식으로 인사하죠. 하오밀문 낙양목을 맡고 있는 석채은이라고 해요. 강호 동도들은 저를 은섬비연(隱閃飛燕)이라고 부르죠.”
진무앙의 눈이 커졌다.
그는 진심으로 놀랐다.
은섬비연 석채은이라는 이름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그런 별호나 이름은 알지도 못했다.
그가 놀란 건 그녀의 신분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주변을 얼쩡거리는 자가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가 사용하는 은신술로 미루어 하오밀문 사람이라는 것도 짐작했다.
하지만 설마 그자가 하오밀문의 낙양 총책임자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진무앙이 불쑥 물었다.
“혹시 혼인했습니까?”
움찔.
지금 상황에서 나올 법하지 않은, 그래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석채은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니 대답도 얼떨결에 나왔다.
“아… 안 했어요.”
곧 정신을 차린 그녀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리 무림인이라도 초면의 여자에게 그런 질문은 큰 실례 아닌가요?”
진무앙은 석채은의 반응에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실례라는 건 알지만-알 리가 있나-나는 유부녀와는 말을 섞지 않기로 한 사람이라서 먼저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해를 해주면 좋겠지만, 못하겠다면 안 하셔도 됩니다.”
석채은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진무앙의 말을 받았다.
“시커먼 속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말이로군요.”
진무앙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못 보는 내 속을 다 볼 수 있다니, 소저의 허실 생동한 안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음하하하하하.”
그는 진심으로 유쾌하게 웃었다.
일 때문에 만난 것이 아니었다면 인피면구를 벗고 들이대도 벌써 들이댔을 그였다.
대체 얼마 만에 낯선 미혼의 미인과 대화하는 건지 기억조차 가물가물거릴 지경이 아닌가.
청해를 떠나 중원으로 오는 동안 만났던 이국의 낭자와 마지막으로 밤을 보냈던 게 벌써 석 달 전인가 그랬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엄청나게 오래전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유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참고로, 진무앙에게 주설란이나 사마휘는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여인들이니 ‘낯선’이란 범주에 절대로 포함될 수 없었다.
진무앙이 석채은에게 말했다.
“인사는 나눴으니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하오밀문 낙양목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기루의 일개 호위무사에 불과한 나를 왜 찾아온 겁니까?”
“진 호위, 지금 섭가장주의 실종을 조사하러 이곳에 온 거죠?”
섭가장에서 보안 유지에 애를 쓰고 있다고 하지만 하오밀문처럼 거대한 규모를 가진 정보 취급 전문 문파의 눈을 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왜 묻습니까? 도와줄 생각이라도 있는 겁니까?”
“못 도와드릴 것도 없죠.”
진무앙은 속으로 싱긋 웃었다.
석채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향루에 들여보낸 부하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소소의 정체가 뭔지 알고 싶겠지. 하지만 원하는 걸 얻기는 쉽지 않을 거야, 흐흐흐.’
그가 말했다.
“강호에서 조건 없는 호의가 사라진 지는 너무 오래되었죠. 무얼 바라는 겁니까?”
“나는 섭 장주의 무사귀환을 바라요.”
“그건 내가 그를 찾으면 당연히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뿐이라면 그건 나를 돕는 대가라고 할 수 없잖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섭 장주는 수십 년 동안 하오밀문 낙양목의 가장 큰 고객 중 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이대로 사라진다면 낙양목의 재정에 커다란 구멍이 난다, 이겁니까?”
“맞아요. 그러니 그를 찾아 무사히 섭가장으로 돌아가게 하는 건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그럼 당신들의 정보력으로 찾으면 될 일 아닙니까? 그게 더 빠를 것 같은데.”
석채은은 고개를 저었다.
“진 호위의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는 당신처럼 자연스럽게 섭가장 내부 요인들을 만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밀한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우리가 손을 잡으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래요.”
진무앙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엇을 제안하든 어차피 거절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어떻게든 석채은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겠다는 굳은 마음뿐이었으니까.
“좋습니다. 내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석채은은 진무앙과 대화를 나누며 그가 이상할 정도로 대하기 편한 남자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체면치레하고는 거리가 멀었고, 천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솔직했다.
하지만 그렇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뭐라 설명하기 쉽지 않은 묘한 분위기도 함께 갖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흥미를 동하게 했다.
진무앙이 석채은에게 말했다.
“두연충 총관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있습니까?”
“현재 나이 일흔하나. 스물두 살 때 전대 섭가장주가 거둔 사람이에요. 형산파에서 흘러나온 무공을 익혔다는 소문이 있고, 수준은 일류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로 알고 있어요.”
“두 총관이 섭가장에 들어오기 전의 과거를 조사해 줄 수 있습니까?”
“할 수는 있는데, 왜죠? 가장 의심스러운 용의자는 구 부인이 아니던가요?”
진무앙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하오밀문 낙양목주니까 나보다 더 잘 알 텐데요. 세상사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석채은의 눈빛이 깊어졌다.
“알았어요. 조사해 볼게요.”
“하나 더 알아봐 줬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뭐죠?”
“섭광운이 안휘성에 출장을 갔던 거 알죠?”
“물론이에요.”
“그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도 압니까?”
“안휘성 합비엔 섭가장과 수십 년 동안 거래를 해온 안휘상단 소속의 유가장이 있어요. 섭 장주는 그곳과의 거래 관련한 일로 출장을 갔던 것으로 알아요.”
“하오밀문의 정보 전달 속도는 개방에 버금간다고 들었습니다. 안휘성 합비목에 섭 장주가 정말로 유가장에 다녀갔는지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석채은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떠올랐다.
낙양에서 합비까지의 거리는 천오백 리가 넘었다.
인편이든 전서구든 아무리 빨라도 오가는 데 닷새는 걸렸다.
반면 섭광운은 언제 죽을지, 아니,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의 눈빛이 환하게 밟아졌다.
“알았어요. 마침 합비목에서 일 때문에 낙양으로 오는 본문의 제자가 있어요. 내일쯤이면 당신이 요구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거예요. 더 있나요?”
“이건 부탁이 아니라 질문인데, 혹시 향산사의 주지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석채은의 반듯한 미간에 희미한 주름이 잡혔다.
난데없이 웬 향산사 주지? 이런 표정이었다.
“향산사 주지라면… 광덕 대사 말인가요?”
“예.”
“소림사의 방계 사찰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정확하게 알려진 게 없어요. 육 개월 전 향산사 주지로 부임했고, 그곳 불자들 사이에서는 불심과 학문이 깊은 선승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왜요? 광덕 대사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제가 불교 신자라 어디 다닐 만한 절이 있나 알아보는 중이었습니다.”
석채은은 믿기 어렵다는 눈으로 진무앙을 보았다.
떠돌이 낭인 출신의 기루 호위무사가 불교 신자라니.
누가 들어도 의심스러운 말이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은 향산을 바라보았다. 향산사가 있는 계곡 쪽이다.
‘하오밀문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면…… 그 땡중, 아주 제대로 숨어 지내고 있었군.’
석채은이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 그리고 정보가 손에 들어오는 대로 당신을 찾아갈게요.”
진무앙은 흠칫했다.
큰일 날 소리를!
난향은 자신의 영역에 허락 없이 들어온 자는 남녀 가리지 않고 목을 돌려 버린다.
수향루에 몰래 들어왔다가는 석채은도 그녀의 부하처럼 제 명대로 살지 못할 게 뻔했다.
이미 난향이 그에게 경고를 한 마당이 아닌가.
주설란이야 그녀의 경고 전에 담을 넘은 경우라 무사할 수 있었지만, 석채은은 문제가 다른 것이다.
그가 말했다.
“밖에서 만나기로 하죠. 수향루에 들어오지는 말아요. 여자 몸으로 기루에 들어오는 건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몰래 들어갈 건데 내가 여자든 남자든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밖보다 수향루 안이 보안을 유지하기에 더 좋지 않나요?”
진무앙은 속으로 혀를 찼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난감했다.
“그렇기는 한데, 아무튼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수향루 정문 맞은편의 일로객잔 이층 난간에 흰 손수건을 걸어놔요. 그럼 내가 나갈 테니까. 절대 루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진무앙은 석채은에게 아주 간곡하게(?) 신신당부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더 안에 들어가고 싶군요. 수향루에 특별한 뭔가가 있는지 보고 싶어졌어요.”
“기루에 기녀가 있지,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들어오지 말아요. 목주가 수향루에 잠입하는 순간 나하고의 협력은 끝나는 겁니다.”
대답은 없었다.
석채은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꺼지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설마,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들어오지는 않겠지. 석 목주, 난 분명히 경고했어. 객기 부리다 황천 하늘 아래서 목놓아 울고 싶지 않으면 절대 들어오지 말아. 난향이 화나면 정말 무섭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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