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76
076 낙양, 정말 지랄맞게 파란만장하구나.
휠릴리- 휠릴리-
난향의 거처를 나온 진무앙은 가벼운 휘파람을 불며 후원 별채로 걸어갔다.
‘내가 앞에 있어서 내색은 안 하는 것 같았지만 분명 옥비녀를 받고 속으로는 엄청 좋았을 거야, 흐흐흐.’
난향이 들었으면 머리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을 법한 착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걷던 그가 눈을 껌벅였다.
별채의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소소를 보았기 때문이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아이가 진무앙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머리를 들었다.
그를 본 아이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벌떡 일어섰다.
“숙부님!”
“꼬맹아, 너, 여기서 뭐하냐?”
“숙부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며칠 일이 있어서 못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 잊었냐?”
“기억해요. 그래도 혹시 돌아오실까 싶어서…….”
“건강도 시원찮은 녀석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다시는 밖에서 기다리지 마라.”
“헤헤헤.”
진무앙이 타박을 해도 뭐가 좋은지 소소는 웃기만 했다.
아이가 물었다.
“저녁 진지는 드셨어요?”
진무앙은 혀를 찼다.
‘이 꼬맹이 말투는 너무 예의가 발라서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돼.’
“아직이다. 본루에 일하러 가서 먹을 생각이다.”
소소가 머뭇거리며 진무앙에게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나뭇잎에 싸여 있는 그것을 본 진무앙의 눈에 묘한 빛이 떠올랐다.
코로 스며드는 건 고소한 밥 냄새였다.
“뭐냐?”
“진지 안 드셨을지도 몰라서 주먹밥을 챙겨놨어요.”
“뭐? 허어얼…… 꼬맹아, 네 눈에는 내가 굶고 다닐 사람으로 보이냐? 네가 안 챙겨도 알아서 잘 먹고 다녀, 임마.”
“……네.”
소소가 시무룩한 기색으로 맥없이 손을 내렸다.
고개를 숙인 소소의 작고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던 진무앙이 쑥 손을 뻗어 아이의 손에서 주먹밥을 낚아챘다.
“챙긴 거라니까 먹어는 주마.”
소소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진무앙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은 언제 시무룩했었냐는 듯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헤헤.”
“그렇게 자꾸 웃지 마. 멍청해 보인다.”
“네, 헤헤헤.”
타박해도 웃는 아이.
진무앙은 나뭇잎을 벗기고 주먹밥을 입에 물었다.
“우물우물, 이제 됐냐? 들어가. 밤바람 맞아봐야 네 몸에 좋을 거 하나도 없다.”
“네, 숙부님. 아침에 뵐게요.”
소소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예의 바르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후 팔랑거리며 별채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우물우물…….”
진무앙은 주먹밥을 씹으며 돌아섰다.
“……이 꼬맹이 자식이……. 쩝, 되도록 밥때는 시간 맞춰서 돌아와야겠네…….”
수많은 횃불과 등불로 인해 대낮처럼 밝고 소란스러운 본루가 점점 가까워졌다.
다음 날 오전.
진무앙은 북부 대로의 끝에 있는 객잔의 독립된 별채에 들어서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백색의 그림자가 번개같이 진무앙을 덮쳤다.
하지만 그는 표정 변화 하나도 없이 백색 인영을 품에 덥석 안았다.
“어이, 설란, 아직 정오도 되지 않……. 읍읍읍…….”
주설란의 격렬한 입맞춤에 입이 막힌 진무앙의 말이 끊어졌다.
길고 깊은 입맞춤을 하며 주설란이 진무앙의 요대(허리띠)를 허겁지겁 풀어냈다.
“설란, 좀 진정을…….”
눈 주변이 붉게 달아오른 주설란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하아… 하아… 저녁이면 맹으로 출발해야 해……. 하아… 시간이 없단 말이야!”
한 손으로는 진무앙의 요대를 풀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옷을 찢듯이 벗는 그녀.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진무앙도 자신의 손으로 옷을 벗었다.
훌훌-
“왜 그렇게 급하게… 읍읍읍……. 출발을……. 읍읍읍…….”
“그 물건에 대해서… 하아… 보고를 했더니… 하아… 하아… 당장 들어오라고… 하아… 그만 말하면 안 돼?”
“그래… 읍읍읍… 그만하자……. 읍읍읍…….”
번개 같은 속도로 알몸이 된 두 사람이 침상으로 날아올랐다.
휘리리릭-
우당탕- 쿠당탕-
침상이 부서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삐꺽! 삐꺽! 삐꺼거거거걱!
해가 서편으로 지려고 하는 시각의 수향루 후원.
소소와 흙장난을 하고 있던 강석초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환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서던 소소도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의 눈길이 향한 곳에는 진무앙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몰골이 평소와 많이 달랐다.
눈 아래엔 거무죽죽한 기운이 세 치는 되게 내려왔고, 다리에도 힘이 없는 듯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소소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숙부님… 오셨어요.”
진무앙의 모습이 걱정스러운 듯 아이의 목소리에는 긴장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오… 냐…….”
대꾸하는 진무앙의 목소리는 매가리가 하나도 없었다.
석초가 물었다.
“몰골이 왜 그래? 어디 아퍼? 중병이라도 걸린 사람 꼴인데?”
“아픈 데… 없다…….”
“진짜? 암만 봐도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의원이라도 불러줘?”
“냅둬. 아파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그럼?”
진무앙이 버럭 짜증을 냈다.
“자꾸 질문받으니까 대답하는 입이 아파지려고 한다, 됐냐, 이 자식아!”
그가 소소를 보며 누그러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꼬맹아, 나 귀가한 거 봤지? 주먹밥 만들지 마라.”
“예, 숙부님.”
“좀 이따 식당에서 보자……. 이 숙부는 피곤해서 좀 누워 있어야겠다.”
진무앙은 뼈가 없는 문어처럼 사지를 흐느적거리며 별채 안으로 사라졌다.
강석초와 소소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말했다.
“저 인간, 뭔 짓을 하고 다녔기에 저런다냐? 또 사고친 거 아냐? 소소야, 너 저 인간이 왜 저러는지 아는 거 있냐?”
소소는 도리질했다.
“모르겠어요. 아침에 권법 수련할 때만 해도 굉장히 기분이 좋으셨는데…….”
“그래? 그럼 이유가 뭐지?”
강석초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장면이 불현듯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혹시… 누나하고 밤새우고 난 뒤에 가끔 저랬었던 것 같은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소소가 맑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숙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강석초는 움찔하며 고개를 확확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애들은 몰라도 돼.”
“……예.”
“소소야, 이제 들어가서 씻어라. 좀 있으면 저녁 먹을 시간이잖냐.”
“예. 식당에서 뵈어요. 숙부님 모시고 갈게요.”
“그래라.”
소소도 별채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강석초는 손을 털며 일어났다.
그의 눈이 야생의 맹수처럼 강렬하게 빛났다.
“이거… 내 생각이 맞으면… 누나가 알게라도 되면 또 힘들어할지도 모르는데… 아오… 내가 진짜 능력만 있으면 저 인간 사지를 작살 내고 가운데 다리까지 부러뜨려 버릴 텐데…….”
그는 구시렁거리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오… 좀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내가 백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불가능할 일에 미련 가져봐야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
그는 결심한 듯 두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누나가 저 인간의 호색질 때문에 또 마음 다치는 건 절대 눈 뜨고 못 봐! 그렇다면 저 인간이 밖에서 다른 여자 꽁무니 쫓아다니는 걸 방해해야…….”
그는 손으로 이마를 딱하고 쳤다.
“정신 차려! 내가 무슨 수로 저 인간을 막느냐고.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니까! …그럼, 누나가 모르게 해야 한다는 건데……. 그러려면 아무래도 정보를 조작해야…….”
강석초도 구시렁거리며 별채로 들어갔다.
* * *
본루의 호위무사 대기실.
진무앙이 들어서자 간이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운기행공 중이던 목일석이 눈을 떴다.
그와 눈이 마주친 진무앙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하던 거 그냥 계속하십쇼. 방해 안 할 테니까.”
목일석은 바로 눈을 감았다.
진무앙은 간이 침상에 털썩 앉았다.
누워 뒹굴거리기 위한 자세를 취하던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귀엽게 생긴 동기가 들어와 그에게 손님이 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날 찾는 사람이 있다고?”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
하지만 동기의 다음 말에 그의 표정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섭가장에서 오신 분이라고 전하라 하셨어요.”
진무앙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튕기듯 일어났다.
“그 하인, 어디에 있냐?”
“일층, 일호 접객실에…….”
후다닥.
진무앙은 동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동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기품이 넘치는 분이 하인이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본루 일층에는 십여 개의 접객실이 있다.
접객실은 예약이 되어 있지 않은 손님들이 기다리는 곳이다.
본루를 찾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낙양의 상류층이라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도록 방을 나눈 것이다.
특히 1호부터 3호까지는 예고 없이 찾아온 귀빈을 맞을 수 있도록 최고급 가재도구와 비품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호 접객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던 진무앙이 물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천천히 일어서는 사람은 하인이 아니었다.
창궁일학 남궁경이 남의 심부름이나 할 사람은 아니지 않겠나.
진무앙을 본 그는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남궁경이 매형을 뵙습니다.”
진무앙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누가 네 매형이야! 누가 들을까 겁난다.”
“부인하셔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은 제게 영원히 매형이시니까요.”
남궁경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인피면구가 굉장히 정교합니다.”
“그러면 뭐하냐? 알아볼 인간들은 다 알아보는데.”
진무앙은 문을 닫고 남궁경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가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임마, 눈치 좀 없으면 어디 덧나냐? 네 녀석은 어떻게 어렸을 때하고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남궁경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홍안의 소년이 사십 줄의 중년이 되었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다니요.”
“재미없는 말투까지도 예전과 똑같구만 뭘. 겉껍데기에 세월의 흔적 좀 새겨졌다고 변했다 할 수 있겠냐?”
“하하하하. 매형의 말투는 여전하십니다. 앉으시지요.”
“너하고 길게 할 말 없다. 왜 날 찾은 건지나 말해.”
진무앙의 퉁명스러운 말에 남궁경의 눈가에 그늘이 졌다.
그가 소매 안에서 전낭을 꺼내 진무앙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룡아가 약속했던 대금의 나머지입니다.”
전낭을 받은 진무앙은 확인도 하지 않고 품에 넣으며 물었다.
“이건 운룡이가 주는 거고, 섭광운이 약속했던 ‘보답’은?”
“없습니다.”
“에효, 내 이럴 줄 알았지…….”
진무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남궁경이 심부름꾼으로 온 걸 봤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던 터라 실망은 크지 않았다.
남궁경은 어렸을 때도 틈만 나면 그의 헤픈 씀씀이를 구박했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사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옛말은 진리인 것이다.
“볼일 다 봤지? 나, 간다. 참, 나 봤다는 말, 가족 아무한테도 하지 마라.”
홱 등을 돌리는 진무앙에게 남궁경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매형, 누님이 많이… 아프십니다.”
“뭐?”
진무앙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각 후.
일호 접객실을 나서던 진무앙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낙양, 정말 지랄맞게 파란만장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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