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차라리 정지룡이 역모를 선택한다면, 그나마 최악은 피하는 것일 텐데 말이야.’
물론 역모라고 해서 정지룡 본인이 황제가 되는 건 불가능하였다.
남명의 누구도 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다른 황족을 내세워 옹립하는 거라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애초에 융무제를 황제로 옹립한 것도 정지룡이었으니 말이다.
요한이 걱정하는 것은 정지룡이 역모가 아닌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혹시 그런 소문은 없었나? 남안후가 청나라로부터 모종의 제안을 받았다는 소문.”
그의 물음에 1대대의 대대장, 고염무가 답하였다.
“비슷한 소문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청의 섭정왕이 보낸 칙사가 남안후의 저택을 찾았다는 그런 소문을 말입니다.”
“융무제 쪽에서 퍼뜨린 소문일 가능성은?”
“소장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나, 소문 자체는 사실인 거 같습니다.”
하기야, 아무리 한족 출신이라 하나 고염무는 엄연히 타국 사람이었다.
남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도르곤이 이 상황을 이용하기 시작했다면, 정지룡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겠어.’
황제와 같은 권력을 누렸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다소 불안한 위치가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정성공이 융무제와 놀아나는 것도 정지룡에게는 불안 요소일 터.
상황이 상황이니 정지룡으로선 나라를 팔아버리는 판단을 내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명나라 시절, 조정으로부터 온갖 멸시를 받고 심지어 배신(명나라는 정지룡을 죽이려는 음모를 꾀하였었다)까지 경험한 정지룡에게 애국심 따위, 있을 리 없기도 했고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정지룡이 남명을 팔아 남명이 청나라에 흡수되는 것은 요한에게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청나라가 남명을 흡수하면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바로 대두국을 공격하려 들 것이 분명하였다.
요한은 청나라의 원수였으니까.
“쯧.”
요한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순식간에 급변한 중국의 정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여겼었다.
오히려 미래만 봤을 때, 청나라보다 남명을 위협적으로 여기기도 했었다.
그런데 청나라가 천계령이라는 과감한 수를 던지자, 정세가 확 달라지고 말았다.
‘뭐가 됐든, 중국이 하나로 통일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대두국이 아무리 성장했어도 통일된 중국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였다.
설령 필리핀을 점령한다 해도 그 사실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다라는 천혜의 장벽이 있어서 침공 자체는 어찌 막을 수 있어도 교역이 막히는 것만으로도 대두국의 경제는 최악으로 치달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청나라의 중국 통일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뭐, 남명이 중국을 통일하는 것도 막아야 할 테지만.
***
“청군을 상대해보니, 어떻더냐? 강군이더냐?”
요한은 다른 것도 물어보았다.
청나라와의 전면전을 치를 것을 가정하여 미리 그들의 전투력을 파악해 두려는 것이었다.
“역시 청의 팔기군은 정예 중의 정예였습니다. 남명의 군대는 도저히 상대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훈련한 군대도?”
“예, 그렇습니다.”
남명 조정은 흑기군을 알차게 써먹었다.
흑기군의 전투력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알게 되자, 흑기군에게 자국 병사들의 훈련을 위탁하였던 것.
요한도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조선 소총을 비롯한 여러 군수 물자를 수출하기 위함이었다.
아직은 남명의 군대가 청나라에 밀리는 것은 사실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흑기군이 직접 훈련한 남명 군은 여러 전장에서 활약하였다.
화력으로 보나 사기로 보나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성장했으니 강군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던 것.
다만 흑기군이 직접 훈련한 남명 군도 팔기군을 상대하는 것은 벅찼던 모양이다.
‘하긴, 그 팔기군인데 겨우 몇 개월 훈련한 부대로 상대될 리가 없지.’
청나라가 망국이 되었을 때야 오합지졸로 전락한다지만, 지금의 팔기군은 한창 현역이었다.
그리고 현역 때의 팔기군은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아마 흑기군도 팔기군을 상대로는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지형에 따라서는 오히려 패배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다만 팔기군을 이끄는 장수들은 그리 능력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같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였었습니다. 오히려 한족 팔기가 상당히 공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아마 그건 능력이 부족하다기보다, 다른 이유 때문일 거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청나라는 중국 전체를 점령하려는 야망을 품은 나라였고, 중국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인구가 필요하였다.
팔기군 장수들이 팔기군을 적극 동원하지 않은 것도 팔기군의 병사 한 명 한 명이 잃어서는 안 될 청나라의 주요 자원이기 때문이었다.
한족 팔기야 뭐 몇 명이 죽든 상관없으니 적극 동원하는 것일 테고.
“녹영군은 어떤가?”
“오합지졸입니다.”
“그래?”
“흑기군이 나서면 10배 많은 수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30번 넘는 전투에서 손실비가 1대 10 이하인 적이 없었습니다.”
고염무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와 같이 말하였다.
확실한 전공을 세운 그였으니 근거 없는 자신감도 아니었다.
그가 지휘한 1대대뿐만이 아니라 2대대 역시도 녹영군을 상대로는 압도적인 전과를 세우고는 했다.
지금의 녹영군은 그만큼 흑기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아마 요한이 직접 지휘한다는 전제가 깔린다면 1대 10이 아니라, 1대 20도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20배 많은 수를 이길 수 있다 해도 전쟁 자체로 보면 승산이 없다는 점이지.’
흑기군 한 명이 20배 많은 청군을 무찔러 봐야 청나라는 여전히 병사가 넘쳐났다.
숫자가 적다고 말한 팔기군조차 한족 팔기와 몽골 팔기까지 모두 합치면 40만 명이 넘었다.
여기에 녹영군까지 포함하면 100만 대군도 우스웠다.
청나라에서 작정하고 군대를 동원하면 50만 이상의 대군을 대만으로 원정 보낼 수 있으리라.
상대가 상대다 보니 흑기군 한 명이 20명의 청군을 무찌른다 해도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역시 청나라가 남명을 흡수하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거 같군.’
물론 그렇다고 요한이 지금 당장 남명이나 청나라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정지룡에게 암살자를 보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천계령 때문에 함대를 보내 청나라를 약탈하는 것도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고 말이다.
다만 조급함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 요한은 계획했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계획이란 물론 필리핀 정복이었다.
***
필리핀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대대와 2대대는 이미 안평으로 복귀하였고 본부 여단도 속속 복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하. 스페인과는 현재 평화 협정을 맺은 상태인데, 그들을 칠 명분이 없다는 점이 소신으로선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부에서는 누구도 지적하지 않은 문제였다.
워낙 호전성이 강하기에 싸울 수만 있으면 명분 같은 것을 크게 따지지 않았다.
스페인을 우습게 보는 이들이 많기도 해서 그깟 약소국(?)과의 협정이 대수냐는 반응도 많았다.
스페인의 실체를 잘 모르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런 군부 인사들과 달리, 외교부 관리들부터 총리인 진정까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단순히 그들이 유학자라, 명분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시하기에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대두국은 신생 국가였고, 무역에 의존하는 국가였다.
화교 상인들이야 스페인과 명분 없이 싸워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겠지만, 유럽의 상인들은 달랐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등.
스페인 외에도 여러 국적의 상인들이 대만을 찾고 있었다.
만약 명분 없이 스페인과 싸운다면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명분이야 만들면 되는 일 아닌가.”
요한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였다.
당연히 그도 빤히 예상되는 문제를 대비도 하지 않고 전쟁을 벌일 생각 따위는 없었다.
현재 요한은 필리핀 남부의 마긴다나오 술탄국과 교섭을 벌이는 중이었다.
몇 명의 군사를 동원할지, 서로의 영역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두고 치열한 교섭을 벌이고 있었던 것.
물론 이는 명분과 관련이 없는 전쟁 계획이었고, 명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우선 영토를 걸고 넘어가자고. 우리가 생각하는 영토와 저들이 생각하는 영토가 많이 다른 거 같으니, 이참에 확실하게 정해야 하지 않겠어?”
“처음 주장했던 안처럼, 마닐라로부터 북쪽으로 100리 떨어진 곳까지 우리의 영역으로 주장하실 생각입니까?”
스페인과 국경을 나눴을 때, 요한은 네덜란드군이 점령하였던 루손 섬 북부의 땅을 모두 대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였었다.
그리고 네덜란드군이 장악했던 지역 중에는 바탄 반도라는 지역이 있었다.
마닐라만의 서쪽에 있는 반도로 이곳을 장악하면 선박이 마닐라로 진입하는 걸 방해하기 수월해졌다.
당연히 스페인으로선 반드시 사수해야 할 땅이었다.
현재는 육지 쪽 일부는 흑기군이, 해안가는 스페인이 장악한 형태였다.
나머지는 중립을 표방하는 원주민 부족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말이다.
즉, 시비를 걸자면 얼마든지 시비를 걸 수 있다는 뜻.
“그리고 마침 스페인 총독이 바뀌었지. 굉장히 호전적인 인사로 말이야.”
마긴다나오 술탄국이 요한에게 접촉하기 시작하자 스페인령 필리핀 총독부는 마치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다급히 요한에게 사신을 보냈다.
그러고는 무엇이든 들어줄 것처럼 굴었는데, 사실 이런 기조가 계속 유지되었다면 요한도 필리핀 정복을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계령으로 중국의 정세가 바뀐 사이, 필리핀 역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기존 총독이 물러나고 새로운 총독이 부임한 것인데, 그자는 새로 부임하자마자 요한에게 사신을 보내 경고하였다.
바탄 반도는 스페인의 땅이고, 이곳에서 군을 물리지 않으면 우리가 군사를 동원할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요한은 바뀐 총독을 보고 확신하였다.
조금만 도발해도 명분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닐 거라고 말이다.
***
한편 스페인령 필리핀 총독부의 신임 총독 세바스찬 로페츠도 대두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대체 스페인 같은 열강이 왜 미다그(대두국) 같은 토인들의 눈치를 보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저들의 군사 수가 상당하고 우리의 상황이 좋지 않아,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사 수가 많다고 해도 삼천 명 정도에 불과한데, 그 정도야 우리 군이 전력을 다한다면 충분히 무찌를 수 있는 수준 아닙니까?”
흑기군 장교들이 10배가 넘는 녹영군을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처럼, 세바스찬 로페츠 역시도 열강의 군대인 스페인군이라면 미개한 토인들의 군대쯤 압도적인 전력비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
물론 흑기군 역시 그 미개한 토인들의 군대에 속하였다.
“그리고 제가 듣기로 역겨운 저지대(네덜란드) 놈들의 배가 미다그의 깃발을 달고 당당하게 필리핀 바다를 활보한다는데, 이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필리핀에서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전쟁은 멈추었으나, 정작 바다에서는 여전히 전쟁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아니, 두 나라의 전쟁은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네덜란드 함대가 필리핀 인근에서 출몰하고는 하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제독 출신의 세바스찬 로페츠는 네덜란드 배가 필리핀 바다를 지나는 걸 용납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상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네덜란드 소속이라면 그 어떤 배도 마닐라를 오가는 걸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는 그럼 중국 배도 엄격하게 문정하라 지시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미다그 같은 미개한 족속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고. 당연히 그들의 배 모두를 똑같이 엄격하게 살펴야지요.”
지금까지는 정(鄭)이라 쓰인 깃발을 단 선박들에 상당한 편의를 봐주었다.
전임 총독인 디에콘 차콘은 그만큼 대두국과 충돌할 수도 있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세바스찬 로페츠는 대두국과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디에콘 차콘과는 달리 그는 대두국의 힘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