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흑기군이라 했지? 네놈들이 자랑하는 흑색 깃발을 피로 물들여주마!”
선봉에 선 양황기의 병사는 그와 같이 외쳤다.
괜히 만주 팔기라 부르는 것이 아닌지, 그의 기백은 마치 포효하는 호랑이 같았다.
훈련받지 않은 군대가 그의 돌격을 마주하는 상황이라면 절대 자리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산전수전을 겪은 병사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뭐, 뭐야?”
히이이잉!
하지만 정작 맹렬하게 달려들던 그는 적진 바로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허무하게 낙마할 뻔하였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수백 개의 총검을 보고 그의 말이 두려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낙마의 위기를 경험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양황기 병사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뭣들 하는 것이냐! 바로 돌격해라!”
“하지만 말들이….”
“돌격, 돌격!”
사각 방진은 상상을 초월하는 견고함을 가지고 있었다.
한 지휘관이 돌파 명령을 내렸으나, 말들은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였다.
뾰족한 총검으로 세워진 벽이 무서웠던 것이다.
심지어 그 총검에서는 화약이 터지며 엄청난 소음을 방출하기도 했다.
겁이 많은 말들은 당연히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선두의 말들이 두려움에 빠진 채 제자리에서 방황할 때, 흑기군 병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선 소총으로 양황기 병사들을 겨누었다.
“발포하라!”
타타타타탕!
돌격을 멈춘 기병은 커다란 표적일 뿐이었다.
사각 방진을 이룬 흑기군 병사들은 정면의 팔기 병사들을 향해 마구 총을 쏘아댔다.
“이, 이런!”
“응사해라!”
양황기의 병사들은 한 명, 한 명이 훌륭한 궁사이기도 했다.
그들 역시 활을 쏘며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한 곳에 밀집해서 일제사격 하는 흑기군의 화력과 말에 탄 채 개별 사격하는 양황기의 화력은 큰 차이가 있었다.
제자리에서 활을 쏘던 양황기 병사들은 일제사격에 당할 때마다 수백 명의 피해가 발생하고는 하였다.
언덕에서 쏘아지는 화포로 인한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퇴각하라!”
상황을 지켜보던 오보이는 이를 악물며 그와 같은 지시를 내렸다.
한 곳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사각 방진을 상대하는 양황기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었다.
이는 전술의 패배를 의미하였다.
오보이로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퇴각을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
“만주 팔기가 퇴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참모부 대위 권혁이 흥분한 목소리로 그와 같이 외쳤다.
조선인인 그는 더욱더 감격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일 것이다.
청을 상대로 조선은 매번 패배했었으니까.
“이럴 수가.”
반면, 일종의 관전 무관으로 흑기군의 전투를 관전하던 감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휘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요한을 강하게 만류하였다.
평지에서 만주 팔기와 싸우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만주 팔기는 흑기군이 지금껏 상대했던 적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가진 적이라고 말이다.
흑기군을 무시해서 이와 같은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흑기군을 걱정하여 그리 말한 것이었다.
‘양황기의 돌격을 막아내다니. 흑기군은 얼마나 강한 군대인 거야?’
남명에선 그 어떤 부대도 만주 팔기의 돌격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정성공처럼 예비대를 활용하여 연쇄 붕괴를 막아내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었다.
그런데 흑기군은 단 하나의 방진도 뚫리지 않았다.
심지어 양황기의 수가 더 많았는데도 그러했다.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니 방심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침착하기 그지없는 요한의 모습을 보고 감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상대는 무려 만주 팔기였다.
만주 팔기에게 수천의 피해를 준 엄청난 승리를 거뒀는데도 요한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떨어지자 다시 차분한 분위기를 띄는 지휘부의 모습도 놀랍게만 느껴졌다.
관전하는 입장인 감휘도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는 상황인데 말이다.
“적이 다시 접근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예상대로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만약 요한이 주의를 주지 않았다면 꽤 당황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이미 요한의 주의를 받은 상황이었기에 참모들은 침착하게 행동하였다.
물론 요한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각 방진의 위치를 세밀하게 조율하였다.
피해가 큰 선두 방진을 후방의 방진과 교체하는 작업도 신속하게 진행하였다.
모든 지시가 그의 우렁찬 목소리를 통해 떨어졌기에 흑기군은 마치 하나의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양황기가 다시 접근헀을 때쯤엔 흑기군은 이미 모든 대비가 끝이 난 상황이었다.
***
“멍청한 것들 같으니!”
오보이는 분기를 참지 못하였다.
쉽게만 생각했던 전투였다.
적의 화력이 예상보다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발악이 성가실 거 같다고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자랑스러운 양황기의 병사들이 2만 밖에 안 되는 적 대열을 뚫어내지 못한 것이다.
“저들의 대열이 생각했던 것보다 견고했습니다.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창도 아니고 단창 정도 되는 크기다. 그런데 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화약 때문에 말들이 겁을 먹어서 발을 멈추는 바람에….”
변명하는 장수들의 모습에 오보이는 더욱 분노하였다.
무려 홍타이지로부터 만주족 최고의 전사라 불렸던 오보이다.
오보이가 그런 평가를 받은 것엔 다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용맹함이었다.
언제나 선봉에 서서 용맹하게 돌격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홍타이지가 최고의 전사라 평가하였던 것.
그리고 늘 선봉으로 싸웠던 오보이가 생각하기에 장수들의 말은 변명에 불과하였다.
“정면으로 뚫지 못하면 측면이나 후면을 노리면 되잖아!”
“하지만 적군이 구성한 진은 측면이 존재하지 않는 사각진입니다.”
사각 방진의 최대 장점.
그것은 바로 측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즉, 측면을 노리라는 오보이의 말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오보이는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약점이 존재하지 않는 진은 없다. 분명 저들은 정면만 강할 뿐, 측면이나 후면은 화력 면에서든 병사 개개인의 훈련도 면에서든 뒤떨어질 것이 분명해.”
오보이의 경험에 따르면 사각 방진을 이룬 병사 전체가 정예일 가능성은 없었다.
만주 팔기의 돌격을 막을 정도로 훈련이 잘 된 병사가 그렇게 많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정면에만 고참병을 배치하고 나머지에는 비교적 훈련이 덜 된 병사를 배치했을 것이 분명하였다.
병사의 숫자 자체도 정면에 집중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고 말이다.
“수많은 사각진을 동시에 노리려 하지 마라. 하나의 사각진을 에워싸서 각개격파를 시도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팔기의 장수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였다.
전령 한 명이 다급히 달려와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녹영군 2만의 병력이 곧 전장에 도착할 거라는 소식이었다.
“한인들이 도착하면, 저 재수 없는 언덕을 정리하라고 해.”
안 그래도 적 포병이 거슬리게 느껴졌던 오보이였다.
기병으로는 진입하기 까다로운 지형이었는데, 마침 녹영군이 와줬으니 적 포병은 그들에게 맡기면 될 거 같았다.
***
다그닥다그닥!
오보이의 지시에 따라 다시금 전투가 재개되었다.
만주 팔기는 다시금 용맹한 기세를 내뿜으며 흑기군을 향해 돌격하였다.
콰콰쾅!
언덕에서 포탄이 쏟아졌다.
다만 아까보다는 화력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팔기가 아닌 다른 상대가 새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상대는 2만에 달하는 녹영군이었다.
“화포는 무시해라. 우리의 상대는 적 보병이다.”
녹영군 덕에 팔기는 큰 피해를 보지 않고 흑기군의 바로 근처로 도달할 수 있었다.
“에워싸라! 각개격파로 하나씩 무너뜨리란 말이다!”
양황기는 전술을 바꾸었다.
기존에 사용했던 일점 돌파가 흑기군을 상대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바꾼 전술은 각개격파였다.
방진 하나를 집요하게 노려 각개격파하겠다는 것이다.
“저, 저들에게 약점이라고는 없는 건가?”
“후면의 수비도 대단히 견고합니다.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봉을 맡은 양황기는 곧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디로 가도 총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면은 물론이고 양측 측면, 그리고 후면까지 모든 곳에서 총검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몇 번이고 돌파를 시도하였으나 통하지 않았다.
사면에서 동시에 돌격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활로 적의 수를 줄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거 같습니다!”
양황기 병사들은 다시금 활을 들었다.
이번에는 사방에서 포위한 채로 활을 쏘는 것이기에 화력 면에서는 더 유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진을 상대할 때의 이야기였다.
방진 하나를 포위하였으나 전장을 더 크게 보면 팔기는 모든 사각 방진에 포위된 형국이었다.
그리고 흑기군에게 포위당하였다는 말은, 어디서든 총알이 날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타아아앙!
“컥!”
사격에 자신 있는 흑기군 병사들은 적 지휘관을 주로 노렸다.
사방으로 노출된 위치에 있는 팔기 장수들은 하나 둘 목숨을 잃었다.
팔기도 활로 대응하려 하였으나, 화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
요한 바우먼.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현재 본부 여단 소속으로 포병을 총괄하고 있었다.
“개떼처럼 몰려오는군.”
저도 모르게 긴장하였는지,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바우먼의 계급은 무려 중령.
여단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계급이었다.
그리고 흑기군에서 중령이라는 계급을 달았다는 건, 그만큼 많은 전투를 경험했다는 걸 의미하였다.
실제로 바우먼은 엄청나게 많은 전투를 경험한 인물이었다.
거의 초창기에 합류하였고, 워낙 능력이 좋았기에 거의 모든 전투에 불려나갔던 것이다.
워낙에 전투 경험이 많았기에, 그는 전장이 익숙하였다.
어떤 상황을 겪어도 당황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 놓인 적은 한 번도 없었지.’
요한은 포병을 소중하게 다루었다.
조금이라도 위험에 노출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 덕에 바우먼은 의외로 죽을 뻔한 위기 같은 것은 겪은 적이 별로 없었다.
“우리를 지켜줄 보병은 없다. 겨우 1개 대대 정도의 병력밖에 없지.”
“지금이라도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바우먼의 군 생활 중에 가장 위험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2만에 달하는 적군.
지형은 유리하였으나, 병력이 너무 적었다.
포병 외에 보병 전력은 겨우 천 명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대로 싸우면 극도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흑기군이 아무리 강해도 20배가 넘는 적군을 상대로 그들을 지켜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으니까.
“원래라면 후퇴하는 게 맞는 상황이겠지.”
문제는 전황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언덕에서 보면 흑기군이 극도로 불리하게 보였다.
전장 전체에 적 기병으로 가득하였고, 흑기군은 마치 수많은 기병에 포위된 형국 같았다.
물론 뚜렷하게 들리는 요한의 목소리로 전황을 파악해보면 의외로 흑기군이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물러나면 전하가 위험하실 수 있다. 전하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언덕을 사수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부관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인인 바우먼의 입에서 충신이 할 법한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혀 놀랄 것이 없었다.
인종이 무엇이든, 또 종교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요한의 밑에서 오래 활동했으면 요한을 존경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즉, 바우먼은 이미 훌륭한 흑기군의 장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