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요한이 마닐라를 점령한 이후로 요한을 찾는 유럽 상인이 많이 늘었다.
마닐라의 입항권을 얻기 위함이었는데, 이런 요한의 인기는 그가 중국의 도시들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 더욱 커졌다.
안평에 입항한 상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요한에게 접견을 요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대두국의 왕이자, 유구 왕이며 남명의 친왕까지 될 그가 아무 상인이나 만날 수는 없었다.
아무 상인이 아니라, 그는 아예 왕실 상단의 일원을 제외하면 상인 자체를 만나지 않았다.
‘나를 만나려면 적어도 정부의 고위 인사가 와야지.’
어느 정도는 급이 맞아야 상대를 할 것이 아닌가.
요한이 상인들을 만나주지 않은 것도 그들이 나라를 대표하여 협상을 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요한이 어떤 상인들도 상대하지 않아 줄 때,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이 있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영국이었다.
정확히는 동인도 회사에서 전권 대사를 보낸 것인데, 이는 파격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본국의 허락을 받으려면 최소 2년의 세월이 필요하였다.
즉,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본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전권 대사를 파견한 것.
“어서 오시게. 잉글랜드에서 왔다고?”
“잉글랜드 왕국의 준남작, 헨리 엘리엇이라 합니다.”
영국의 사절로 온 헨리 엘리엇은 목을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하였다.
“여기 앉지.”
그가 의자에 앉자 요한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내 왕궁은 어떻던가?”
“…뒤로는 바다가 보이고 정면으로는 항구가 보이니, 그 풍경이 실로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절묘한 위치에 왕궁을 세우신 거 같습니다.”
요한은 픽 웃었다.
말이 궁전이지, 요새로 사용했을 때와 크게 다른 것이 없었으니, 저 정도 칭찬이 아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내가 세운 건 아니야. 네덜란드 놈들이 세운 거지. 그래서 북쪽에 새로운 왕궁을 짓고 있는데, 그때 한 번 다시 보러 오게.”
“저에게 그런 영광의 기회를 주시다니. 초대만 해주신다면 언제든지 부름에 응하겠습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예상했던 대로,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요한에게 극도로 저자세를 보였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는데, 요한은 사실상 남중국해의 지배자였다.
샤먼과 마카오, 천주까지 얻으면서 대중 무역도 그의 손에 달려있었다.
여기에 영국 같은 경우는, 도자기를 비롯하여 왕실 상단에서 생산하는 온갖 물품을 사들이거나 또는 파는 중이었다.
즉, 주요 고객이자 주요 공급처라는 뜻.
대두국이야 영국을 대체할 나라가 있었으나, 영국은 대두국을 대체할 나라가 없었으니, 그들이 저자세로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뭐, 영국이 군사력이 강한 나라라면 그딴 건 신경 쓰지 않고 무력으로 상대를 굴복시켰을 테지만 말이야.’
지금이 17세기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영국의 혐성은 지금도 존재했으나, 그들은 힘이 없었다.
힘이 없는 자의 혐성은 두렵지 않았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동인도 회사와 이야기할 것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혹시 말씀하시려는 것이, 마닐라나 다른 도시의 입항에 대한 것입니까?”
“입항? 아니, 관세를 논하기 위함이다.”
헨리 엘리엇은 한눈에 봐도 실망한 표정이었다.
자신이 요구하지 않아도 입항을 허락해 줄 것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내가 왜 너희들이 좋아할 일을 공짜로 해줘? 뭐 예쁘다고?’
네덜란드나 스페인에 비교하면 그나마 사이가 좋은 영국이지만 그렇다고 요한이 영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 때마다 초석의 가격을 과도하게 높여서 팔았기 때문이다.
상인이 시세에 맞춰 파는 거야 나무랄 이유가 없었으나,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평시보다 수배는 더 비싸게 파는 통에 손해가 엄청났었다.
요한이 범선을 제조하려는 이유 중에는 바로 이런 영국 상인들의 장난질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년부터는 사치세라는 것을 신설할 예정이야.”
“사치세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 사치품에 해당하는 물품에 관세를 더 받을 거라는 뜻일세.”
“……!”
대두국의 세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내년이 되어 필리핀에서 본격적으로 세금을 걷는다면, 그때는 250만 냥 정도가 아니라, 500만 냥 이상도 가능하였다.
마닐라에서 벌어들이는 관세만 해도 그 돈이 작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요한은 500만 냥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워낙 그가 벌인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수를 늘릴 방법을 찾다가 하나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사치세였다.
‘외국의 사치품을 사들일 정도로 백성들이 여유가 생긴 건 좋은데, 그게 과도해지면 안 되지. 사치품을 살 거면 국내에서 생산한 걸 사라고.’
사치세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았다.
가장 큰 장점은 백성들이 불만을 갖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사치품이 괜히 사치품이겠는가.
가격이 비싸진다고 불만을 품기는커녕 오히려 더 좋아할지도 몰랐다.
“얼마나 관세를 올릴 계획이신지?”
“30%.”
“세, 세 배나 올린다는 말씀입니까? 너무 과도한 인상입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전하.”
“나는 이에 관해 협상을 할 생각이 없어. 미리 알려준 것도 고맙게 여기도록.”
***
사실 사치세를 통보한 것은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었다.
앞으로의 협상에서 누가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 사치세를 언급했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헨리 엘리엇은 더욱 공손한 태도를 취하였다.
양손은 다리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고 거북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개를 낮추었다.
이 정도면 협상의 우위는 확실하게 가져간 거 같았다.
“그런데 경의 용건은 뭐지?”
헨리 엘리엇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타타르와의 전쟁에서 엄청난 승리를 이루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군사를 지휘하셨다고 들었는데, 늦었지만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나는 용건을 물었는데 말이야.”
“아, 그 명나라로부터 남단의 도시를 얻지 않았습니까? 샤먼과 마카오를 말입니다.”
“천주라는 도시까지 얻었지. 덤으로 왕위 하나도 더 생길 예정이야. 황제 폐하가 어지간히 나를 좋게 보고 있거든.”
요한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와 같이 말하였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으나, 이 모든 게 계산적인 행동이었다.
융무제와의 친분을 강조하며 남명에서 왕위를 얻었다는 사실까지 은근하게 밝혔다.
자신은 단순히 대두국의 왕이 아니라, 남명의 권력자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요한의 발언에 헨리 엘리엇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요한의 영향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대단하십니다. 이미 거대한 왕국의 주인이면서 추가로 왕위를 얻으시다니.”
“그런데 샤먼과 마카오는 왜 언급한 거지? 입항권을 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다짜고짜 핵심을 찌르자, 헨리 엘리엇은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헨리 엘리엇에게 요한은 더 밀당하지 않고 흔쾌히 말하였다.
“영국 상인들이라면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이니 입항을 허락하는 건 문제가 없지. 뭐, 관세는 안평과 비교하면 상당히 비싸기는 할 테지만 말이야.”
관세가 비쌀 거라는 말을 듣고 헨리 엘리엇은 입을 뻥긋거렸다.
아마 궁금할 것이다.
입항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관세였으니까.
하지만 요한은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않은 채, 바로 이어서 말하였다.
“다만 나는 동등한 권리를 원한다.”
“동등한 권리라고 하시면?”
“우리가 입항권을 내준다면 너희도 입항권을 내줘야 하지 않겠어?”
유럽 상인들만 아시아로 오라는 법은 없었다.
아시아 상인들이 유럽으로 가는 날도 언젠가 생길 터.
물론 그 아시아 상인은 대두국의 상인이 될 것이다.
하여 요한은 영국 도시의 입항권을 미리 얻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요구는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인도 도시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영국의 도버항과 사우샘프턴항에 입항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다.
‘우리가 설마 영국까지 올 수 있겠냐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겠지.’
요한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간신히 참는 헨리 엘리엇을 바라보며 조소를 지었다.
아마 그는 속으로 협상에 성공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지 않을까?
“하나 또 원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인도까지 가기 위해서는 너희의 도움이 꼭 필요하거든. 대두국에서도 범선을 제조하려 하는데, 조선 기술자를 보내줄 수 있겠나?”
하지만 요한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요한이 손해인데, 이대로 협상을 끝낼 수는 없었다.
요한은 조선 기술자를 요구하였고, 헨리 엘리엇은 그런 요한의 요구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대두국에서 범선을 자체 생산하는 건 그들 입장에서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경쟁자가 생겨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내 백성들이 너희의 도시에 가려면 배가 필요하지 않겠어? 그런데 이 정도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는 없던 이야기로 하자고.”
“아, 아닙니다. 그 정도는 제 권한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협상이 파투 나려 하자 헨리 엘리엇이 다급하게 말하였다.
어차피 영국이 아니더라도 대안이 많다는 사실을 그 역시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한은 이런 헨리 엘리엇의 심리를 이용하여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기술자를 보내라고 한 두 명만 보내지는 않겠지? 최소 서른 명은 필요해. 물론 항해를 가르쳐줄 항해사도 보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왕이면 의사나 학자도 보냈으면 좋겠는데….”
항해사를 비롯하여 의사에 학자까지.
요한은 주로 사람을 요구하였다.
지금 대두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급여는 내가 잘 챙겨줄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인원은 보내줘야 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인원이 도착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영국 상인들은 내가 소유한 도시에 입항할 수 없을 거다.”
요한이 단호하게 그리 말하자, 헨리 엘리엇은 입을 다문 채 상념에 잠겼다.
머릿속으로 요한의 제안을 거절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두 나라는 갑과 을이 너무도 명확하였다.
대두국을 대체할 나라는 없는데, 영국을 대체할 나라는 너무 많았으니까.
결국 그는 한숨을 내쉬며 요한의 요구에 따르기로 하였다.
대두국으로 보낼 인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자신은 본국에서의 영향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고 엄살을 부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최소 서른은 보내줘야지. 의사, 항해사, 학자 전부 말이지.”
“서른이라니….”
헨리 엘리엇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영국에서 머나먼 대두국까지 올 의사 및 학자를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입항권을 얻을 수 없다는데.
이번에도 그는 요한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요구가 아닌 부탁인데, 대두국으로 이민 올 이민자도 구해줬으면 좋겠어. 사람은 적은데 땅이 남아서 말이야.”
물론 요한의 부탁은 귀로 흘려들었다.
이미 많은 요구를 들어준 상황에서 이민자까지 구해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뭔가 아쉽단 말이지.”
요한은 혀를 찼다.
영국으로부터 얻을 것은 전부 얻어냈다.
조선 기술자에 여러 학자와 의사까지.
입항권 하나로 본전 이상을 뽑아낸 셈이었다.
‘학자의 수가 너무 적단 말이지. 심지어 과학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학교를 세우기 위해 유럽의 학자를 초빙한 것이지만, 요한은 그 이상을 원하였다.
중국의 그 막대한 인구에서 뿜어져 나올 생산력을 이기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기술로 압도하는 것.
그리고 요한의 머릿속엔 지금 시대에 발명되지 않은 혁신적인 기술 및 아이템이 존재하였다.
유럽에서 과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그를 돕는다면 이 기술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증기기관을 이용한 각종 기계를 말이다.
‘이민 사업에 흥미가 없다는 점도 아쉽기 그지없어. 영국은 한창 내전 중이라 이민자를 모으는 게 어렵지 않을 텐데 말이야.’
심지어 이민자 한 명을 보낼 때마다 일정한 돈을 준다고 했는데도 반응이 싱거웠다.
혐성 국가라 노예 사업을 하면 했지, 이민 사업은 흥미를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전하, 네덜란드 사람이 접견을 요청하였습니다. 본인을 동인도 회사의 전권대사라 밝혔습니다.”
“VOC의 전권 대사라고?”
요한이 상념에 잠겨있을 때, 그의 내관이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고 보고하였다.
놀랍게도 그를 찾은 새로운 손님은 네덜란드의 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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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대만의 왕이 되었다-17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