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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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조건.
진정은 대위 이상의 계급을 가진 모든 장교를 불렀다.
“부총독께서 주관하시는 회의는 오랜만인 거 같습니다. 하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부총독 각하?”
“여송 소식은 들으셨는지요. 우리 흑기군이 대승을 거두었다는데,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가장 먼저 회의장에 들어온 것은 한족 장교들이었다.
중대장의 직급을 가진 다섯 명의 장교는 반가운 얼굴로 진정에게 인사를 건넸다.
뒤이어 흑인 장교들이 들어왔다.
한족 장교들은 예의를 갖추며 흑인 장교들을 맞이하였다.
두 집단의 관계는 썩 나쁘지 않았다.
흑인 장교들은 오랜 군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요한의 총애까지 받고 있었다.
경쟁 관계보다는 가르침을 받는 선후배 관계에 가까웠기에 한족 장교들은 흑인 장교들을 깍듯하게 대하였다.
물론 한족 장교들이 예의를 갖추는 것은 어디까지나 흑인 장교들뿐이었다.
원주민 장교들이 들어오자 차가운 긴장감이 흘렀다.
한족 장교들과 원주민 장교들은 마치 불구대천의 적을 대하듯, 상대편을 강하게 노려봤다.
“다 온 거 같으니, 바로 본론을 꺼내겠습니다. 저는 어떤 경우에도 현령 이상의 직책을 가진 관리를 재판 없이 처벌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진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족 장교들이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였다.
“설마, 임괴초 소위를 처벌하란 말은 아니겠지요?”
“임괴초 소위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부총독 각하!”
그런 그들의 행태에도 진정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가 가진 권한으로 임괴초 소위의 계급을 이병으로 강등하고 옥에 가둘 것입니다.”
진즉부터 해야 했을 일이었다.
다만, 요한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머뭇거리다가 급작스럽게 사태가 커지고 말았다.
“너무 과한 처사입니다! 어찌 오랑캐들의 요구를 들어주려 하십니까!”
“맞습니다! 저자들은 반란군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반란군의 요구를 단 하나라도 들어줬다간 대만에 사는 모든 이가 우리 흑기군을 우습게 생각할 겁니다!”
처벌의 수위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족 장교들은 언성을 높이며 절대 반대를 외쳤다.
그들의 태도는 누가 봐도 진정을 상급자로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만약 진정이 임괴초의 징계를 강행한다면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불복하며 진정을 적대하는 행동을 취할 것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어째서 죄인을 이토록 옹호하시는 것이죠?”
“여, 영부인!”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사람이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그, 아니 그녀는 바로 요한의 아내, 정은지였다.
갑작스러운 정은지의 등장.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한마디에 한족 장교들은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진정이 임괴초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크게 놀라지 않았었다.
어차피 진정은 흑기군 내에서 별로 인정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요한이 부총독으로 임명하여 무시만 하지 않을 뿐이지, 진정의 권위를 인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정은 흑기군 출신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였다.
장강에서 소수의 흑기군과 몇 달 어울려 지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니 그가 어떤 발언을 하든 파급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은지의 발언은 그 무게감부터 전혀 달랐다.
무려 요한의 하나뿐인 아내가 바로 그녀였다.
심지어 그녀의 배에서 요한의 아이가 자라는 상황.
정은지의 말 한마디는 진정과 그 파급력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 하지만 영부인. 임괴초 소위를 처벌하면 흑기군의 권위가 낮아지게 될 겁니다.”
“처벌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거예요. 이른바 내전이 말이죠.”
그녀가 억지를 부리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흑기군은 이미 수십 명의 원주민을 학살한 상황.
원주민 부족들은 한자리에 모여 이런저런 계획을 꾸미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강경하게 나가면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내전이라는 결과 말이다.
사실 호전적인 성향이 있는 몇몇 한족 장교들은 바로 그 내전을 바라고 있었다.
내전이 벌어지면 중립을 지키는 흑인 장교들도 그들의 편에 서서 반란 세력을 진압할 터.
그렇게 되면 경쟁 세력인 원주민 장교들은 힘을 잃고, 반대로 한족 장교들은 힘을 얻을 것이다.
“왕석도 대위. 어떻게 하실 거죠?”
정은지는 2대대 7중대의 중대장, 왕석도를 지목하였다.
임괴초가 소속된 중대의 중대장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왕석도는 잠깐 주변 동료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진정이 그를 지목하였으면 강하게 항변하였을 것이다.
자신의 수하를 지켜야 했으니까.
하지만 감히 요한의 아내인 정은지를 상대로 항변할 수는 없었다.
“···임괴초 소위에게 적절한 처분을 내리겠습니다.”
“부총독.”
이번에는 진정을 지목하였다.
그러자 지목된 진정은 고개를 숙였다.
“예. 영부인.”
“안평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자들을 해산시키세요. 임괴초 소위를 처벌한다는 걸 말해주고 만약 해산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해산시키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장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강제로 해산하면 반발이 클 겁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요구를 들어주면 알아서 해산할 겁니다.”
그는 왕석도와 같은 2대대 소속의 바탈라 대위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원주민 출신의 장교였다.
“대위는 왜 소요를 일으키는 자들의 편을 드는 거죠?”
“···그들의 편을 든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반란을 걱정해서···.”
“안평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것부터 이미 반란을 일으킨 거나 마찬가지예요. 지금 상황에서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추후 또 같은 일이 반복될 거예요.”
원주민 부족들은 어떤 무장도 하지 않은 채 평화롭게 시위하고 있었지만, 17세기에 시위라는 행위는 어떤 국가에서도 용납받기 어려웠다.
그들의 시위를 막지 않는 것만으로도 흑기군이 상당한 인내심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원주민 출신 장교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주민이 조직한 시위대와 사실상 동맹이나 다를 게 없는 그들이었기에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려는 정은지의 조치에 불만을 품은 것이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저들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의 말에 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한족 장교였다.
시위대를 적대하는 그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흑인 장교들 역시 그녀의 의견에 지지하겠다고 앞다투어 말하였다.
정은지의 말은 곧 요한의 말이라 생각하는 그들이었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정은지의 시선이 향한 곳엔 대두국 출신 장교들이 있었다.
모두가 긴장한 기색으로 그들을 바라볼 때, 대두국 출신 장교들은 정은지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였다.
“저 역시 영부인과 생각이 같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힘을 써서라도 강제로 해산해야 합니다.”
“2대대 3중대 또한 영부인의 중재안을 지지하겠습니다.”
그런 그들의 발언에 바탈라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건 배신이야!”
하지만 그런 그의 외침에 대두국 출신 장교들은 고개를 돌려 외면할 뿐이었다.
***
“약속은 지켰어요.”
대두국의 공주, 타히라가 싱긋 웃으며 정은지에게 말하였다.
“고마워요. 이번 일, 잊지 않을게요.”
“뭘요. 거래인데.”
본래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하였다.
정은지는 요한의 부인이었고 타히라는 일종의 약혼녀 취급을 받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타히라가 먼저 정은지에게 접근하면서 둘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이미 요한의 아이를 밴 정은지로서는 여유가 있었기에 필요 이상 적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요한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확답을 받기도 했고.
그리고 그렇게 우호적인 관계가 된 덕에 아까 있었던 회의에서 대두국 출신 장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타히라는 대두국의 공주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그러세요.”
“언니, 하나 물어봐도 돼요?”
정은지가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대답하자, 타히라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번 일로 섭정(요한) 님이 화낼까 걱정되지는 않으세요? 원래 남자들은 그런 거 싫어하잖아요.”
그런 게 뭐냐고 굳이 되묻지 않았다.
문맥만 봐도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내기할래요?”
“어떤 내기요?”
“상공이 이번 일로 저를 탓할지, 아니면 잘했다고 칭찬할지를 두고 내기하는 거죠.”
아녀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정치에만 관여한 것이 아니었다.
대만에서 핵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흑기군에 영향력을 행사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다 해도 보통은 거부감을 드러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정은지는 요한을 굳게 신뢰하는 것인지, 엄청난 자신감을 보였다.
“언니는 섭정이 이번 일을 두고 오히려 칭찬할 거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물론이죠.”
“그럼 내기를 해선 안 되겠네요.”
“왜요? 상공이 저를 나무랄 수도 있잖아요.”
“그야, 언니가 섭정 님을 더 잘 알잖아요?”
당연히 타히라보다는 정은지가 요한을 더 잘 알았다.
뭐 그래 봤자 그녀 역시 요한을 만난 지 이제 겨우 1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말이다.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언니의 말을 들으니 더 보고 싶어지네요.”
타히라의 말에 정은지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저도요.”
***
새롭게 편성된 5대대 소속이 된 바누아는 각이 잡힌 자세를 하며 주변을 힐끔 둘러보았다.
“히익!”
우연히 그와 눈이 마주친 삼발 족 사내가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맹수라도 본 거 같은 얼굴이었다.
‘저런 겁쟁이 같은 놈이 그 삼발 족의 전사라니.’
그가 지금껏 봐왔던 삼발 족 전사들은 하나같이 사납기 그지없었다.
기세만 사나운 것이 아니었다.
삼발 족 전사들은 스페인이나 네덜란드도 꺼릴 정도로 전투력이 강하였다.
바누아가 요한 앞에서 두려움을 내비쳤던 것도 그만큼 삼발 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맹수 같은 놈들도 진짜 맹수 앞에선 하룻강아지와 다를 게 없다는 건가.’
사실 그는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처음 들었을 때,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다름 아닌, 같은 1중대 병력과 함께 삼발 족의 마을에 주둔하라는 명령이었다.
삼발 족을 공포의 존재로 여기던 그였기에 당연히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인구가 이천이 넘는 곳을 겨우 한 개의 중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 하는 곳이 그가 있는 흑기군이었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끌고 삼발 족의 영역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삼발 족의 영역에 들어선 그는 볼 수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삼발 족의 사람들을.
“자랑스럽다.”
바누아는 주먹을 불끈 쥐며 그리 중얼거렸다.
그러자 같은 부족 출신의 동기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뭐가 자랑스럽다는 거야?”
“흑기군의 병사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모두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삼발 족.
그런 삼발 족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이 흑기군이었다.
그래서일까?
흑기군 소속이란 사실이 오늘만큼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
***
본부 대대 일부와 새로 신설한 5대대를 삼발 족의 영역에 남긴 요한은 볼라니로 돌아갔다.
요한이 볼라니로 돌아오자 팡가시난 족의 족장들이 앞다투어 그를 찾아왔다.
“대승을 축하합니다! 그 삼발 족을 상대로 그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다니!”
“처음부터 흑기군의 승리를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통쾌할 줄은 몰랐습니다. 대추장의 통솔력에 정말 감탄하였습니다!”
이들이 아부하는 이유?
그야 뻔했다.
두려웠던 것이다.
요한의 보복이.
‘그러게, 처음부터 내 말을 들었으면 좋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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