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191
190화 환승역 사당 (3)
우리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제공해준 공간에서 잠시 쉰 후에 사당역을 빠져나가려 했던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도착한 시점에 바깥은 이미 해가 저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마귀 변종에게 쫓기는 과정에서 허비된 시간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의미였다.
결국, 사당역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해야만 했다.
강원도 고성까지 이동할 새로운 경로를 찾아봐야 했고, 그에 따라 우리의 계획을 전면 수정할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
‘사마귀 녀석에게 쫓기다 보니, 계획과는 다르게 서울 안쪽으로 들어와 버렸어…….’
몇 개의 산을 넘는 동안, 우리가 넘어온 생사의 고비는 넘어온 산의 숫자만큼이나 많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안전할 거라 예상했던 산길이 되려 더 위험한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도 위험하지 않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었다.
사당역의 위치가 우면산 북서쪽 산자락에 붙어있는 만큼, 우면산을 넘어가는 것은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우면산에 들어섰을 때, 사마귀 변종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사당 연합’의 생존자들이 얘기하는 ‘두더지’ 변종이 엄청나게 강한 개체인 데다, 감염자와 변종까지 잡아먹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사마귀’ 변종 또한 쉽사리 해치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만약 사마귀 변종과 마주치게 된다면……, 녀석은 이미 우리와의 싸움이 몇 차례 학습된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더 어려워졌을 것이 분명했다.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는 예상 가능한 위험들은 무조건 피해 가야만 했다.
우리는 바닥에 깔린 지도를 보며, 각자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멍하니 지도를 바라보던 민아가 입을 열었다.
“오빠! 한강으로 가는 건 어때요?”
“한강……?”
“네, 한강이요. ‘사당 연합’ 사람들 말로는 이수역까지는 감염자가 없다고 했잖아요? 거기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동작역인데, 동작역 바로 앞이 한강이거든요.”
“그래? 그럼 동작역에 도착한 다음에는?”
“그 근처에서 배를 구해서 한강으로 이동하는 거죠.”
“배를 구한다고?”
“그……. 있잖아요. 한강 수상 택시! 제가 학교 다니면서 한강에 자주 갔었는데, 한강 주변에 작은 모터보트들이 엄청 많았던 거로 기억해요.”
“흠, 나쁘지 않은 의견이야.”
“그렇죠? 괜찮은 의견이죠?”
“근데, 난 보트 운전할 줄 모르는데……? 민아, 너는 운전 할 줄 알아? 그리고, 만약 보트가 없으면 어떡해?”
“저도 운전할 줄은 모르죠. 보트는……. 아마 있지 않을까요?”
“…….”
“…….”
“…….”
민아의 막연한 대답에 우리 셋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먼저 입을 뗀 건 나였다.
“일단 나는 민아의 의견이 좋다고 생각해. 어차피 서울까지 들어온 이상, 이대로 산을 넘고 주거 지역을 가로지르는 것보다는 한강을 이용해 보는 방법도 괜찮을 거 같아. 모터보트 운전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막상 해 보면 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너희 둘 `의견은 어때?”
“일단 저는 찬성이요. 애초에 제가 낸 의견이니까……. 반대할 이유가 없죠.”
“흠……. 저는 반대예요. 예전에 제가 서울을 빠져나올 때, 치명적인 기습을 당한 곳이 동작대교 남단이거든요. 그때 저흴 기습했던 생존자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을지도 몰라요.”
민수의 말대로라면, 민아가 낸 계획을 실행하는 데 다소 문제가 있었다.
그 순간, 옆에서 우리가 나누는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노인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동작대교 녀석들은 진작에 딴 곳으로 갔으니까 걱정하지 말게. 여의도 정부 대피소로 들어가는 물자 차량을 털다가 거의 전멸되다시피 했으니까…….”
“……할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아세요?”
“당연히 알지. 내가 그 무리의 생존자 중 하나니까…….”
“…….”
“…….”
“…….”
“내가 딱 동작역 4호선 철로를 따라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거든.”
갑작스레 대화에 참여한 노인의 정체는 과거 민수가 속해 있던 무리와 원한 관계에 있던 생존자였다.
일순간 민수의 눈에 살기를 어렸으나, 민수는 순식간에 분노를 지워 버렸다.
이미 지나간 일이었으며, ‘사당 연합’의 규칙이 있었기 때문.
“그럼 저도 찬성입니다. 동작대교 부근에 약탈자들이 없는 상황이라면, 배를 타고 한강으로 이동하는 게 낫죠.”
결국, 우리 셋은 한강을 통해 서울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계획만 가지고는 일을 진행할 수는 없는 법.
나는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해 준 ‘정찰 반장’을 불러, 우리의 계획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흠……. 일단 계획은 좋은 거 같습니다. 저희가 이수역과 동작역 중간까지는 안내해드리는 것까지는 할 수 있겠군요.”
“감사합니다. 저희가 계속 신세만 지는군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분께서 이곳에 남아서 ‘사당 연합’에 힘을 보태 주셨으면 했지만, 먼 길을 가시는 분들을 잡을 수는 없죠.”
‘사당 연합’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이 생존자들끼리 힘을 합쳐 공존하고자 해서 만들어진 조직인 만큼, 생존자들 간에는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들의 호의를 받기만 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 * *
지이이잉- 지잉- 지이이이잉- 지잉-
야전상의 안쪽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의 알람 진동이 울렸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벽에 기대고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운 뒤에 민수와 민아를 깨우기 시작했다.
“민수야, 민아야 일어나.”
“넵! 일어났습니다!”
“흐아암-! 저도 일어났어요.”
민수는 과거에 최정순 씨를 따라 다닐 때부터 몸에 밴 습관 탓인지,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잠을 떨친 민아와 민수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스윽- 촤라락-!
둘이 짐을 챙기는 사이, 나는 지도를 펼쳐 어젯밤 세워 놓은 탈출 경로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수역을 지나서 동작역까지만 가면, 한강에 도달할 수 있다…….’
이동할 경로의 특징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무기와 배낭 점검을 끝마칠 즈음 ‘정찰 반장’이라 불리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우리를 찾아왔다.
“허허, 벌써 일어나셔서 출발 준비를 끝내셨군요. 어째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네, 잠잘 곳을 제공해 주신 덕에 잘 잤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조금 전에 받은 보고에 따르면, ‘두더지’ 녀석이 남태령역에서 사당역 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가까이 오기 전에 출발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시죠. 저희는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민수와 민아 또한 준비가 완료된 모양인지, 각자 배낭과 더플백을 짊어진 채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를 따라 B3 층 4호선 승강장으로 내려온 뒤, 이수역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
.
어둠으로 가득 찬 터널 안에는 네 명의 발걸음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한껏 긴장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는 데만 집중한 사이, 어느새 이수역을 지나쳐 동작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이만 작별 인사를 해야겠군요. 제가 안내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후……. 이제 헤어질 때가 됐군요.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다 함께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만큼,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죠. 세 분이 저희 ‘사당 연합’에 합류하셨으면 좋았겠지만, 어디 가서든 잘 살아남으시길 바랍니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와 가볍게 목례를 주고받은 후, 우리는 동작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안내해주던 사람이 없어지자, 터널 내부를 가득 메운 어둠은 더욱더 우리를 긴장하게 했다.
저벅- 저벅- 저벅-
“민수야, 전방에 감염자!”
“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스윽- 구구구구구국- 피잉-!
쐐애애애애애액- 콰직- 털썩-!
동작역으로 향하는 터널에서 간간이 마주치는 감염자들은 민수가 활을 쏴 처리했고, 우리의 이동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철로의 경사가 약간 오르막길이라는 느낌이 들 즈음, 어두운 터널 중앙에 하얀 점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어둡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타다다닥- 타다닥-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보에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그맣던 하얀 점은 시시각각 크기가 커졌다.
그렇게 하얀 점만 보고 달린 결과.
어느새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형, 누나! 드디어 탈출이에요!”
“휴……. 그래도 살아서 나와서 다행이야. 나는 안에서 뭔 일 생길까 봐 엄청 조마조마했어.”
민수와 민아는 엄청 갑갑했던 모양인지, 각자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가 더욱 조심해야 할 상황은 지금부터였다.
“얘들아, 쉿! 만약 우리가 타고 갈 모터보트 못 찾으면, 다시 터널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아니, 돌아갈 생각을 왜 해요? 무조건 찾아야지.”
“누나 말이 맞아요. 만약 배 못 찾으면, 헤엄쳐서라도 가요.”
아무래도 민수와 민아는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던 게 굉장히 갑갑했던 모양이었다.
민수와 민아는 어떻게든 한강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 배를 구하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민수야, 민아랑 여기 숨어서 엄호 좀 해 줘. 나는 ‘동작역’ 시설 안내도 좀 찾아볼게.”
“넵, 알겠습니다.”
민수와 민아를 승강장 구석에 숨겨둔 채, 동작역의 시설 안내도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윽- 타다닥- 타닥-
다행히 시설 안내도를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승강장 옆 안내판에 동작역에 관한 안내도가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3F 승강장 – 4호선 승강장, 3F↔1F 승강기, 3F↔2F 승강기, 에스컬레이터
2F 대합실 – 5, 6, 7, 8, 9번 출입구, 화장실, 9호선 환승 통로
1F 대합실 – 1, 2, 3, 4번 출입구, 고객안전실, 에스컬레이터
고객안전실 : 02-○○○○-●●●●
유실물센터(충무로역) : 02-◎◎◎◎-◎◎◎◎
서울교통공사(콜센터) : 1577-○○○○
※화재 및 비상시 역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동작역 역 이용 안내도와 함께 주변 지역 안내도를 살피며, 한강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았다.
‘어디 보자……. 1층에 2번 출입구로 나가는 게 한강 공원으로 진입하기 가장 좋은 코스군…….’
한강 변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후, 민수와 민아를 챙겨 동작역 2번 출구로 향했다.
키에에에엑- 크르르르르륵-
저벅- 저벅- 저벅-
.
.
우리의 인기척에 반응한 감염자들 역사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하지만, 서너 명의 감염자로는 모터보트를 구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 수가 없었다.
스르륵- 휘릭- 뻐억-!
스윽- 구구구구국- 피잉-
쉬이이이익- 콰직- 털썩-!
감염자들은 그저 마체테와 화살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