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58
58화 방주 (2)
저벅- 저벅- 저벅- 똑- 똑- 똑-
“누구세요?”
“저 태경이에요. 들어가도 될까요?”
“그래, 들어와.”
점장 아들의 물건을 보관해 둔 방 안에서는 일권 아저씨가 수련을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그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얘기해.”
“저에게 아저씨가 익히신 무술과 칼 쓰는 법을 알려 주세요.”
“흐음…… 무술과 칼 쓰는 법이라…….”
일권 아저씨는 잠시 고민하는 듯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을 이어 갔다.
“태경이 너도 지난번 내 과거 얘기를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태권도와 주짓수라는 무술을 익혔고 주먹 생활을 좀 하다가 인생의 반은 고기를 썰었다.”
“네, 지난번에 얘기해 주셔서 잘 알고 있죠.”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주먹과 칼을 쓰는 법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이 아니었지만,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에는 유용한 기술이지. 너는 나와 내 가족의 은인이기도 하니, 내가 있는 힘껏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열심히 배워 보겠습니다.”
“쉽지 않을 거다.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어.”
나와 눈이 마주친 일권 아저씨의 눈빛에서는 결연한 의지 뿜어져 나오는 한편,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회의적인 감정이 묻어나오는 듯했다.
아마 일권 아저씨의 과거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주먹과 칼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회의적인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주하는 감염자를 상처 입지 않고 빠르게 해치워야 생존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과거의 죄책감에 묶여 있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태경아, 나도 부탁이 하나 있다.”
“부탁이요? 말씀해 보세요. 저도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나랑 준우에게 석궁을 쏘는 방법과 함정을 설치하는 방법같이 생존에 필요한 기술들을 알려다오.”
“좋습니다. 저도 제가 아는 것들은 다 알려드리죠.”
나와 일권 아저씨의 거래는 별다른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성사되었다.
일권 아저씨는 무술을 알려주기에 앞서 내 몸의 전체적인 상태와 수준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장 한 시간에 걸쳐 팔 굽혀 펴기, 철봉 매달리기, 균형 감각 테스트, 버피 테스트 등 여러 가지 동작을 통해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후욱- 후욱- 하악- 하아- 이제 끝난 건가요?”
테스트를 진행해 본 소감은 얼떨떨함과 폐가 터질 듯한 괴로움 그리고 온몸의 근육이란 근육의 힘은 죄다 쥐어 짜낸 것 같은 탈진감 정도였다.
살면서 이렇게 움직여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아마 이렇게 움직인 것이 난생처음일지도?
게다가 일권 아저씨가 요구한 동작들을 정확한 자세로 했는지도 자신이 없었으며,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 일권 아저씨의 표정을 볼 틈 따위는 없었다.
“그래,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알겠다. 마지막으로 나와 대련을 하는 걸 끝으로 테스트는 마치도록 하지. 옥상으로 올라가자.”
“대련이요? 알겠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일권 아저씨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철민 아저씨는 교대시간 전에 옥상으로 들이닥친 나와 일권 아저씨를 행동을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저, 일권 아저씨한테 무술을 배우기로 했어요.”
“오~ 그래? 일권 아우의 몸놀림이 보통이 아니긴 하지. 잘 배워 두면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거다. 나도 한 10년만 젊었으면 같이 배워 보겠는데…….”
일권 아저씨는 나에게 마우스피스를 건네며, 대련 방식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마우스피스를 물고, 나를 공격해. 감염자들의 이목을 끌면 안 되니까 소리는 내지 말고 공격해야 해. 어떤 공격이든 상관없으니까 있는 힘껏 덤벼 봐.”
건네받은 마우스피스를 입에 문 후, 일권 아저씨와 마주 섰다.
잔뜩 긴장한 채 싸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일권 아저씨는 심드렁한 표정에 무방비한 자세로 서 있었다.
‘어떻게 하지? 괜히 때렸다가 다치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까딱- 까딱-
싸울 자세는 취한 채 안절부절 서 있는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일권 아저씨는 깔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덤비라는 손짓을 했다.
내심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쉽게 공격할 수가 없었다.
한평생 누굴 때려 본 적이 없으니, 어디에 어떻게 주먹을 날려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줄곧 나를 도발하는 일권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떻게든 한 대라도 때리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메우기 시작했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단 한 가지 생각으로 꽉 차 버리고 나니 오히려 움직임을 막는 잡념이 사라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권 아저씨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겠다는 일념으로 무방비 상태의 일권 아저씨에게 달려들었다.
타다닥- 휘익- 휘익- 휘익- 턱-
우려와는 달리 심기일전하여 휘두른 주먹은 일권 아저씨에게 닿지 않았다.
턱을 향해 주먹을 날리면 고개를 살짝 비틀어 피했고, 복부를 향하려던 주먹은 미처 뻗지도 못한 채 일권 아저씨의 손에 막히기 일쑤였다.
주먹에 닿을 듯 말 듯 미묘하게 피해 가는 일권 아저씨의 몸놀림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너무 세게 때리면 문제가 될까 조심스레 내지르던 주먹이었지만, 지금은 한 대라도 맞추겠다는 진심을 담아 전력으로 내지르고 휘둘렀음에도 일권 아저씨를 맞출 수가 없었다.
“후웁- 푸우- 후읍- 푸우-”
고작 몇 번의 주먹질에 호흡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젊은 녀석이 왜 이리 굼떠?”
휘익- 휙- 부웅-
힘껏 휘두른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횟수가 증가하는 만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우스피스를 입에 문 상태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다 보니, 온몸의 근육과 폐가 코로 들어오는 산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괴로움을 호소했다.
털썩-
결국, 일권 아저씨의 몸에는 손도 대보지 못한 채 10분간의 대련은 막을 내렸다.
“허억…… 허억…… 어떻게 제 주먹을 미리 알고 피하실 수가 있는 거죠?”
“하하. 공격해 오는 사람의 자세나 동작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야. 충분한 훈련이 되면 태경이 너도 할 수 있다.”
일권 아저씨는 나와 같이 10분간 격렬하게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일권 아우, 대단한데? 학생 때 국가대표 준비하던 사람이라더니…….”
“아닙니다, 형님. 그다지 대단한 재주도 아닌걸요. 오히려 형님이 지니신 재주가 훨씬 대단하죠. 형님이랑 태경이 덕분에 이렇게 안전하게 지내는 거니까요.”
“아니야. 지금 같은 시기에는 일권 아우의 재주 최고의 재주 중 하나지. 너무 과거에 연연하지 말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태경이랑 내려가서 잠시 얘기 좀 하고, 교대하러 오겠습니다.”
“그래,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가서 숨도 좀 돌리고 쉬다 와.”
짧은 대련을 마친 후, 일권 아저씨와 함께 점장 아들의 방으로 돌아왔다.
가쁜 숨을 고른 후,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권 아저씨의 실력에 대한 존경, 무술을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한 대도 맞추지 못했다는 실망감, 내 몸을 관리하지 않았던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의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복잡한 감정들이 표정으로 드러났던 것인지, 나를 향한 일권 아저씨의 위로가 들려왔다.
“그렇게 풀 죽어 있을 필요는 없다, 태경아.”
“제가 배울 수 있을까요……?”
“내가 보기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으니 걱정하지 마라. 근력이나 유연성이 제법 좋은 데다 운동신경은 타고난 것 같다만, 주먹을 휘두르거나 동작을 하는데 살짝 어설프고 자신감이 없더구나.”
“…….”
“무술은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여러 가지 기술들을 몸에 체화시켜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해. 쉽지 않겠지만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체화시킬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태경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할 테니, 잘 부탁드려요.”
“그래, 최대한 열심히 도와주마. 그리고 나와 준우에게 생존 기술과 지식에 대해 알려 주기로 했으니까 나도 잘 부탁한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자조적이었던 내 심정은 일권 아저씨의 말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장점이 워낙 뚜렷한 탓에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
철민 아저씨는 철물점을 운영하면서도 여러 현장을 다니며 일을 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짓거나 보수하는데 특출났으며, 일권 아저씨는 위급한 상황에도 과감하게 감염자들에게 달려들어 해치울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가졌다.
다행인 점은 나에게도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워낙 생존과 밀리터리에 대한 덕질을 좋아하는 데다 기계 공학을 전공한 덕에 구조나 원리에 대한 이해가 빨랐기 때문에 갖가지 생존 이론과 덫을 치는 방법 등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세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 않았던 탓에 혼자 이것저것 만들어 보는 것을 취미 삼은 결과, 알고 있는 이론들 대부분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더욱 추켜 세워 주는 또 다른 재능이 있다.
뭔가 다가올 불길함을 감지해 내는 내 촉이 유난히도 좋다는 것이 함께 지내는 어른 4명이 말하는 나의 재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살아남은 과정을 돌이켜 보자면 내 촉이 좋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가젤처럼 주변의 조그만 위협이나 불길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지레 겁을 먹고 경계하듯 준비한 것들이 운이 좋게 딱딱 들어맞아 온 상황이다.
“태경아, 쉬고 있어. 나는 철민 형님이랑 보초 교대를 하러 올라가 봐야겠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같이 올라가요. 이것저것 여쭤볼 것도 많고, 석궁 다루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드릴게요.”
철민 아저씨와 보초 교대를 한 후, 일권 아저씨가 보초를 서는 동안 그 옆에서 몸을 단련하는데 필요한 운동들에 관한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일권 아저씨는 보초를 서면서 몸을 단련하는 순서와 각 단계에 따른 운동 방법 등을 설명해 주었고, 빠르게 기술을 체화시킬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이윽고, 내가 보초를 서는 시간 동안은 일권 아저씨가 내 옆에 서서 원거리 무기인 활과 석궁의 차이점, 장단점, 사용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내 둘이 모여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5시간 정도는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남자라면 가슴 한쪽에 품고 있을 법한 무도에 대한 열망.
심지어 강함이 생존과 직결되는 시기이니만큼, 무도의 방향과 정도 따위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어떤 무기를 쓰고, 어느 부위를 공격하든 눈앞의 적을 빠르게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기에 두 사람의 지식이 어우러진다면 더욱 생존에 유리할 것이 분명했다.
철컥- 끼이이익-
“보초 교대해 드리러 왔습니다-! 뭐야? 두 분 다 여기 있었어요?”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담요로 온몸을 두른 희윤 누나가 서 있었다.
“아, 벌써 교대시간이구나. 왜 담요를 두르시고 오셨어요? 제가 패딩 빌려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담요가 더 따듯해서 둘렀어. 배고프겠다. 얼른 내려가서 저녁 먹어.”
“넵, 그럼 수고해 주세요. 누나.”
“수고해요, 희윤 씨.”
5층으로 내려가 보니 수연 아주머니가 이미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였던 탓인지 즉석 밥과 레토르트 반찬뿐인 저녁상이 진수성찬 같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극도의 피곤함이 몰려왔다.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던 위장은 밥을 넣어 주니 금방 차분해졌지만, 온몸의 근육들은 물에 빠진 솜처럼 축 늘어져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전 오늘 너무 피곤해서 먼저 잠자리에 좀 들겠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그래요, 잘 자요. 태경 씨.”
“태경아, 자기 전에 스트레칭은 반드시 해 주고 자야 한다. 안 그러면 내일 아침에 엄청 괴로울 거야. 피곤할 테니 잘 자고, 내일 보자.”
꾸욱- 꾹- 꾹-
툭- 툭- 툭-
옥탑방에 올라와 일권 아저씨의 말대로 몸 곳곳을 스트레칭한 후 자리에 누웠다.
“휴…… 힘들었다.”
과거에는 먹는 게 좋았고, 움직이는 것이 귀찮았다.
하지만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살이 찌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몸을 움직이기 귀찮은 것을 넘어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여러모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고향을 떠나 혼자 생활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은 먹는 것이었기에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고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살기 위해 움직여야 했고, 결과적으로 자연스레 살이 빠졌다.
그리고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무술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과거와는 달리 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는 것 같아, 스스로 갖고 있던 자책감을 조금은 지울 수 있는 하루였다.
“내일 하루도 열심…….”
드르렁- 푸후- 드르렁- 푸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