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Leveling: Murim RAW novel - Chapter 47
47화 – 18. 철인삼종(鐵人三種) in 무림 (4)
● ● ●
“너무 심했나?”
나는 뻐근한 어깨를 두어 번 돌리며 무림맹 해남지부의 대문을 나섰다.
“쯧, 그러게 10초식 양보는 하지 말지 그러셨소? 내가 그리 누누이 얘기했건만.”
탁탁, 나는 손바닥을 털었다.
그걸로 이제 인성면접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털어버렸다.
쿠르르르르르.
저 멀리 문제의 그 봉우리가 재차 요동치고 있었다.
곧 반대쪽 일각도 무너지겠군.
“서둘러야겠어.”
저 봉우리가 송두리째 사라지면 그 단면에 숨어있던 옥광산이 드러나리라. 그리고 그 속에 이 옥산의 정기를 온전히 품고 있는 바윗덩이가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창광비취다.
병신오적 중에서는 제일 약했지만, 역시나 초절정고수 중 하나였던, 해남궁귀(海南弓鬼) 대평위.
‘대평위는 그 창광비취 덩어리를 가지고 일체가변궁검(一體可變弓劍)을 만들었지. 그리고 그것에 창광검궁(蒼狂劍弓)이라는 이명(異名)을 붙였었어.’
그 창광검궁 덕분에 해남검파라는 검문 출신임에도 천하제일의 궁수가 됐을 뿐만 아니라, 해남검파를 구파일방의 말석에 끼우는 데에 성공하기까지 했다.
거기까지 ‘병신오군’의 대평위 편에 기록되어 있었다.
내 눈이 그 봉우리의 남은 부분을 훑었다.
“근데, 창광비취를 얻으면 뭘 만들지?”
기실 여기까지 오면서, 만약 내가 그걸 얻는다면 뭘 만들지?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은 결정할 수가 없었다.
내 무공이라는 게 아직 일천하기 그지없었고, 그 특징이나 방향성 자체가 전혀 결정된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어떤 걸 만들지는 아직 몰라도 일단은 내가 가진다.
왜냐고?
‘이제부터 내 건 당연히 다 내 거고, 병신오적 너희들 것도 다 내거니까.’
이번 생에서는 병신오적이란 쓰레기들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게 만들 테니까.
쿠르르르르르르.
옥산이 다시 한 번 무섭게 포효했다.
그 무시무시한 떨림에 해남도 전체가 공포에 잠겼으리라.
아마 지금 이 시각만큼은 그 누구도 옥산으로 다가가는 이는 없을 테지.
서벅서벅.
쌓이는 눈 위에, 쌓이는 내 발자국.
나를 제외하면 말이다.
내 발자국들이 곧장 옥산 방면으로 길게 이어졌다.
● ● ●
나는 옥산 아랫마을에서 식수와 건량, 식재료, 술 등을 [창고]에 충분히 보충했다. 그런 연후에 본격적으로 옥산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병신오군의 기록이 별 무소용.
대평위가 이 산과 저 봉우리에서 창광비취를 얻었다는 것만 나오지, 정확한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 믿을 건 [중원전도]뿐.
나는 목적지를 그 봉우리 중턱이 잘 보이는 인근 동굴 하나로 찍었다. 그리곤 그곳에서 기다렸다.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그렇게 그날은 그대로 지나가는 듯했다.
‘뭐, 첫날부터 찾으리라 기대하진……!?’
쿠르르르르르, 콰과과광.
지축이 또 한 번 흔들리며 발생하는 굉음이 내 생각을 끊었다.
나는 급히 동굴을 빠져나와 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정말 뼈대만 남은 상태.
“다 됐군.”
솔직히 저게 아예 다 무너지고 나서 출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는 길에 산하(山下)에서 어슬렁거리는 해남검파의 무인들을 본 까닭이었다. 포구 어부들의 말마따나, 그들은 외부인의 입산을 엄금하고 있었다.
괜히 그들과 마주쳤다간, 말짱 도루묵이 될 것 같아 잘 피해서 다른 길로 들어섰다.
추측이지만,
‘해남검파에서는 저 봉우리 중턱에 막대한 양의 옥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몰라.’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철저하게 입산을 통제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물론, 저곳에 창광비취 같은 기물이 있다는 건 모르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이 산 자체가 옥산이었기에 옥이 드러나면 그걸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움직이리라는 건 명약관화했다.
머뭇거릴 틈 따윈 없……다!?하며 움직이려는데!
‘썩을! 벌써 쫙 깔렸네.’
저 아래 계곡 초입부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해남검파의 무인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천천히 계곡 이곳저곳을 수색하며 이동중이었다.
비록 아직은 콩알만하게 보였지만, 이대로 여영부영거리다간, 그들에게 걸리는 건 시간문제일 터. 물론, 저들에게 붙들린다고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무림대학관은 엄연히 무림맹 산하 기관.
해남검파도 무림맹 가맹문파.
같은 무림맹 소속이었기에, 와룡패만 제시해도 단순히 경고조치만 하고 옥산에서 쫓아내는 선에서 끝나리라.
진짜 문제는…….
‘걸릴 때 걸리더라도 창광비취는 입수하고 걸려야 한다!’
어차피 숨기는 거야 [창고]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고.
나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하지만 훨씬 집요하게 봉우리 주변을 탐색하며 자리를 옮겼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쿠르르르르르르르, 콰과과과과광! 쾅!
갑작스레 봉우리의 뼈대, 그 허리가 완전히 부러지며 산사태가 일었다.
황급히 다시 동굴 쪽에 몸을 숨긴 나.
숨은 채 계곡 아랫자락을 흘기니, 저 아래 보이던 해남검파의 콩알들도 일제히 사라졌다.
‘그래, 여긴 위험하다고. 다들 나중에 올라와, 이것들아.’
그렇게 진동이 잦아질 때까지 반 시진.
그즈음 주변 계곡의 떨림이 완전히 멎었다.
‘이제 더는 추가 붕괴가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신속하게 봉우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저자는!?’
저 앞쪽에 나 말고도 봉우리를 오르는 자가 있었다.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등에 궁을 멘 젊은, 아니 아직은 앳된 사내.
파바바바밧!
나는 신법을 최대한 전개하며 그자를 피해 반대쪽 길로 봉우리를 타올랐다.
이제 막 산사태가 일어났기에, 지금 이곳에 있다는 건 사실 미친 짓이었다. 이곳에 옥 말고도 뭔가 있다는 걸 모른다면 말이다.
추가붕괴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도 이곳에 있다면, 그는!
‘분명 창광비취에 대해 아는 자다. 그렇다면 저자, 아니 저놈은…….’
대평위다!
해남검파에서 배출한 백발백중, 궁의 귀신.
분명 병신오군의 기록에 따르면 ‘우연히’ 창광비취를 얻었다고 적혀 있었는데, 이제 봤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설마설마했는데 자신들의 일대기에 대해서도 포장질을 쳐놓은 게 확실했다. 이렇게 되면 병신오군에 거짓을 기록한 놈이 저놈 혼자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이 생긴다.
어쩌면 앞으로의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중대한 거짓이 있을 수도…….
‘젠장! 이 썩을 새끼들! 배신도 모자라, 자신들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에다가 구라를 쳐놔?’
마음 같아서는 즉각 저놈을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여기서 드잡이질을 벌이다가 잘못하여 해남검파에 꼬리라도 잡힌다면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었다.
그저 내 눈에 창광비취가 먼저 뜨이길 바라는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건, 녀석이 아직 날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
타탓.
마침내 봉우리의 단면 끝에 도달했다. 반대쪽을 바라보니 대평위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후-. 오리걸음 수련의 성과가 이렇게 도움이 되는 건가?
체력, 민첩, 근육 등이 전반적으로 강화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신법까지 상당히 빨라진 모양.
이 와중에도 웃음이 난다.
말석이지만, 병신오적 중 한 명보다 빠르다는 소리가 아닌가. 특히, 대평위는 궁술이 특기인 자였던지라, 상대적으로 경공이 뛰어난 편이었는 데도 말이다.
‘뭐, 그건 그거고…….’
나는 드러난 봉우리의 단면을 살폈다.
재미있게도, 마치 화산이 터진 양 움푹 꺼진 봉우리 단면.
아래쪽에 직경 백 장(약 300m)은 넘어 보이는 대규모 구덩이가 형성되어 있었고, 막대한 균열이 발생해 있었다. 또한,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진 그 구덩이 여기저기에 또 다른 작은 구멍이나 계곡이 만들어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끝내주네. 이러니 해남검파가 단숨에 구파일방의 말석에 낄 수 있었던 거였어.”
무너진 바위와 나무들이 이리저리 가리고는 있었지만, 안쪽에 드러난 바위들의 색이 온통 반질거리는 유백색.
너무 어마어마해서 무서울 정도의 옥광산이 한순간에 생겨 있었다.
독점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갑부가 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됐어. 계획대로 난 창광비취만 챙겨서 나간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것에 욕심을 부려봐야 남는 건 없다. 괜히, 무리하게 탐심을 부렸다간 탈이 나기 십상.
특히, 지금과 같이 엄청난 보물이 발견된 상황에서는 고작 와룡패따위에 의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젠 와룡패를 내밀건 말건, 발견되는 즉시 살인멸구(殺人滅口)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봐야 한다.
이 위치 자체가 어마어마한 비밀이 된 상황이었으므로.
파바바바밧.
나는 즉각 구덩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얼마나 그 안을 헤집고 다녔을까?
어스름이 짙게 깔린 붉은 저녁.
마침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창광비취.
우습게도 구덩이 안쪽이 아닌 봉우리 단면의 위쪽 끄트머리 절벽에서 발견되었다. 그래서 금방 찾지 못한 것이었다. 당연히 구덩이 중심부 쪽에 있으리라 여겼었으니까.
아무튼, 절벽 멀찍이 아주 미세하게 반짝이는 바위가 있었는데,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먼지와 흙에 덮여 있어 아주 작은 부분만 드러나 있었지만, 분명했다.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뿜어져 나오는, 옅은 하늘빛 광채.
지난 삶에서 대평위가 들고 있던 창광검궁을 수차례 목격했다. 그때 보았던 바로 그 빛깔.
나는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가 흙과 모래를 치우고 그것에 손을 대었다.
“창고를 개방합니다.”
우우우우웅-.
사위가 어두워지며 창고가 열렸다.
아까 준비해둔 식량 등을 제외하고, 단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일부러 창광비취 덩어리를 위해 비워둔 칸.
한데, 그 빈자리에 이제 삵만큼이나 큰 주주가 앉아 있다가 마구 울어댄다.
“니야옹!”
“왜? 배고프냐? 이것만 끝내고 술 실컷 먹여주마.”
[지금 손에 댄 물건을 창고(Inventory)에 넣겠습니까?]
눈앞에 나타난 글귀.
“니야아옹!”
[예/아니오]
“니야아아아아옹!”
“얌마, 잠만 참자. 응?”
나는 계속 울어대는 주주를 살짝 외면한 채 ‘예’단추를 눌렀다.
달칵.
내가 ‘예’를 누른 순간.
휘류류류류-.
내 키만 한 푸른빛 바윗덩이가 주주의 옆에 생겨났다.
‘됐어! 창광비취를 내가 손에 넣었다!’
기연사냥, 기어코 그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니야아아아아아아옹!”
갑자기 내게 달려들어 팔을 무는 주주.
“억! 왜 이러는 거야, 계속……!? 아!? 혹시?”
그제야 나는 녀석이 내게 경고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번 북리경혼이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랬고, 주주는 항상 내게 위험이 닥쳤을 때 저런 식으로 알려줬었으니까.
“창고를 닫습니다!”
우우우우우웅-!
순식간에 다시 돌아오는 주변 풍광. 그리고…….
휘이이이이익!
그 붉은 풍광 속에서 저 홀로 빠른 속도로 커지는 게 있었다.
‘화살!?’
위기일발(危機一髮)!
따로 재고 자시고 할 여가가 없었다.
나는 즉각 뒤쪽으로 [보법]을 펼쳤다.
휘이이익!
머리털을 아슬아슬 스쳐 지나가는 화살 한 발.
피했다!
하지만 피하긴 했는데…….
‘응!?’
발이 뭔가 좀 허전해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
[보법]으로 내가 이동한 곳은 바로…….
“으, 으아아아아아아!”
절벽 밖 허공이었다.
● ● ●
천기자와 제갈총.
한동안 멈추었던 둘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에잉, 못난 놈.”
“아직도 그 아이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까? 어지간히도 그 아이에게 반하셨나 봅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 나이 먹고 어린 녀석한테 기대를 건다는 게 우스꽝스럽기는 한데…….”
“…….”
“기대가 큰 게 아니라, 기대가 크고 싶은 녀석은 말이다. 진정 처음이거든. 꼭 저런 녀석은 반드시 성공해야 돼. 저놈이 성공 못 하면 무림이라는 세상 자체가 옳지 못한 건 아닐까하는……보고 있으면 절로 응원하게 된달까?”
팔랑, 가볍게 부채를 부치는 제갈총. 그의 눈에, 벌써부터 빨빨거리며 와룡곡과 상호곡 이곳저곳을 누비는 신입관생들이 개미만 하게 내려다보였다.
“오리걸음으로 중원을 횡단하고, 헤엄으로 바다를 건너고, 입관도 전에 면접관을 때려눕힌 신입관생이라면 능히 그럴만하지요. 저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가 무림대학관 전체를 들었다 놓을 것만 같아 벌써부터 큰 기대가 됩니다. 혹여라도 입관 후 조용히 지낸다면 되려 실망할 것 같은, 그런 기대감까지 생겼네요.”
“네놈은 아직도 노부의 말을 믿지 않는 게냐?”
“제 말을 아직도 비꼬는 걸로 들으시는 겁니까?”
“그럼 아니냐?”
“솔직히 말씀드리면, 믿지 않습니다. 기실 오리걸음으로 중원을 횡단하거나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너는 건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의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하지 않을 뿐. 그런 걸 수련법으로 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요.”
“그럼 비꼬는 게 맞구먼.”
“아니요. 저는 관주님을 믿습니다. 관주님이 믿으시는데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클클. 내 말은 믿지 않으면서, 나를 믿는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그 말을 믿는다고? 여전히 비비 꼬아서 말하는 건 여전하구나, 네놈은.”
“어찌 되었건, 관주님께오서도 제 말 뜻을 다 알아차리시지 않으셨습니까? 하하.”
제갈총이 은은하게 웃었다.
“여하간, 이제 노력에 관한 사자성어로는 우공이산(愚公移山)과 마부작침(摩斧作針) 정도만이 남은 셈이로군요?”
우공이산과 마부작침.
어리석은 이가 산을 옮기고,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어낸다.
“그 아이에 대한 사자성어 말이냐?”
“네.”
제갈총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저 먼 산을 바라다보며 대답에 덧붙였다.
“그럼 지금쯤은 산을 깎아서 기진이보(奇珍異寶)라도 찾고 있을 듯하군요. 해서 아직 무림대학관에 오지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클클클. 그럴듯하구나.”
휘이이이잉-.
그들의 웃음이 다시금 남풍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 ● ●
후우우웅-.
지독한 한기가 콧잔등을 두드린다.
그럼에도 눈꺼풀이 한없이 무거워 눈을 뜨기 어려웠다.
‘그래, 힘든데 잠시만 이렇게 누워 있자.’
대평위의 불의의 기습 ‘덕분’에 절벽에서 떨어져 이 모양으로 처박혔다지만……뭐, 좋다.
여기까지 오면서 했던 ‘온갖 노역’들이 떠올랐다.
오리걸음으로 중원의 남방을 가로질렀고, 수영으로 해남만(海南灣)을 건넜다. 그러고도 쉬지 않고 인성면접에, 험준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가 설상가상인 상태의 옥산 등반까지.
그래, 누운 김에 좀 쉬지, 뭐. 그래도 된다. 이 정도의 사치는 부려도 될 만큼은 열심히 해오지 않았는가. 첫 번째 기연사냥에도 성공했고.
그래도 잊지는 않으마.
‘대평위, 너 이 개아들 놈의 새끼가 내 등에 화살을 쐈다는 거.’
역대급 배신에, 자기 일대기를 거짓으로 기록하고, 이제는 보물에 눈이 멀어 눈같이 결백한 날 죽이려 해?
“아 뭐, 눈 같이 결백한 건 아닌가?”
어쨌건 녀석의 기연을 빼앗았으니.
하지만 아직은 분명히 그 녀석의 것이 아니잖아?
허공에서 떨어지면서 절벽 쪽으로 다가와 날 내려다보던 녀석의 벌건 눈과 마주쳤다.
녀석의 눈에는 단 한 가지 감정밖에 없었다.
― 감히 내가, 내가 그리도 노리던 보물을 네놈이 가로채다니!
도둑질? 길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먼저 주웠는데, 그게 강탈인가?
이런 게 도둑질이면 낚시도 도둑질이지, 썅!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이 빚은 여기서 나간 다음, 반드시 백만 배로 되돌려주마.
그렇게 마음을 먹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음?”
처음에는 눈을 뜨지 않았나?하고 착각할 만큼 껌껌했다. 밤이라고 치부하기엔 과한 정도의 어둠.
나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저~ 멀리 위쪽에 엄지손톱만 한 빛줄기를 발견했다.
“……설마 저리로 굴러떨어진 건가?”
가만 보니, 엄지손톱은 지극히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달?”
그것도 보름달이었다.
그게 서서히 이동하면서 바위구멍이 오롯이 드러났다. 저 작은 구멍으로 내가 떨어졌다면…….
지금 내가 누워있는 이곳과 저곳의 거리는 엄청날 거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설마 다른 나가는 길이 있겠지?”
하지만…….
설마는 역시가 되었다.
● ● ●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빌어먹을! 활극책 같은 거 보면, 주인공들은 이런 절벽에서 떨어지면 잘도 기연을 얻더만.
나는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제에에에에에에에엔~장! 대평위, 이 씹어처먹을 새끼! 내가 무림대학관에서 만나면 아주 그냥! 가만두나 봐라!”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분노한 나는 멈추지 않고 땅을 깠다.
저 손톱만한 구멍 하나만 보고, 구멍까지 밟아 나갈 수 있는 홈을 차례차례 파나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도끼와 검.
그 두 개가 미친 듯이 옥산을 깎아나갔다.
더럽게 재수 없게도, 까야 되는 벽면의 재질은 강옥(鋼玉).
옥은 옥인데, 강철만큼 단단하다는 바로 그 옥.
날이 밝고 보니, 사방이 온통 휘황찬란한 총천연색으로 덮여 있었다.
무색, 청색, 황색, 녹색, 보라색,…….
예뻤다. 너무 드럽게 예뻐서 아주 팔이 다 아작날 지경이라 문제였지만.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끝없이 이어지는 삽질.
띠링-.
[도끼를 열심히 휘둘러, 일정 경지 이상에 이르셨습니다! 도끼 숙련도 Up! 도끼 숙련도가 Lv. 7이 되었습니다.]
[도끼를 쥐셨을 때, 힘이 60%(6할) 상승합니다.]
……
……
……
[체력을 한계치 이상 사용하셨습니다! 체력 Up! 체력이 1 증가합니다.]
[체력이 10%(1할) 회복됩니다.]
……
……
……
[검을 열심히 휘둘러, 일정 경지 이상에 이르셨습니다! 검 숙련도 Up! 검 숙련도가 Lv. 7이 되었습니다.]
[검을 쥐셨을 때, 공격속도가 60%(6할) 상승합니다.]
……
……
……
[체력을 한계치 이상 사용하셨습니다! 체력 Up! 체력이 1 증가합니다.]
[체력이 10%(1할) 회복됩니다.]
……
……
……
그래, 씨이이이이이이이발-!
나한텐 이딴 게 기연이다!
이것도 한 1,000,000번 찍다 보면 끝나겠지!
어디 옥산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함 붙어보자!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 ● ●
“재미있는 이야긴 이제 얼추 다 했고, 그럼 어디 재미없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겠느냐?”
제갈총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걷혔다. 천기자는 자신이 아는 한도에서 천하제일의 진법가이자 괴인이면서, 또한 현인(賢人)이었다.
그가 재미없다면…….
그건 정말로 재미없는 것이다. 이 무림 전체에.
천기자 털썩 주저앉으며 제갈총의 허리춤에 매달린 술병을 풀어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크-! 좋다! 용정주(龍精酒)냐?”
“네, 그렇사옵니다.”
“클클. 역시 무림맹주가 제일이야. 천하태평하게 하늘을 이불 삼아, 명주를 입에 물고 천하를 굽어보니 말이야.”
천기자의 괴소에도 제갈총은 미소 지을 수 없었다. 그가 진짜로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분위기를 푸는 것이라는 걸 느꼈으니까.
이윽고 시작된 천기자의 이야기.
“종남에서 무영자를 보았다.”
기묘하게 변하는 제갈총의 눈빛.
“……제가 아는 그…… 무영자입니까?”
“그가 아니었다면 붙잡아다가 재미있게 앉아 담소나 나누었겠지.”
잠시지간의 침묵 후.
“사도제일련의 무인들이 섬서용봉시 과장에 난입한 이유가 그 때문이겠군요.”
“그러할 터이지.”
“그가 이번엔 무얼 훔쳤을 것 같습니까?”
“뭔진 모르지만……전대(前代) 중원제일의 대도라는 본인의 명성에 누가 가지 않으면서도 사도제일련에 비상이 걸릴 만한 걸 테지. 어쩌면…….”
천기자는 용정주를 한 모금 더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무림맹에도 비상이 걸릴 만할 걸 수도 있고.”
제갈총의 눈빛이 빛났다.
“혹, 오마지체와 관련된 물건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옵니까?”
“클클. 무영자는 노부와 비슷한 배분인 데다가 무림에서 자취를 감춘 시기도 거의 같지.”
뜬금없이 무영자의 배분과 은퇴시기를 말하는 다른 의도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제갈총은 가만히 천기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녀석이 청구(靑邱, 한반도)에 있던 노부에게 보낸 지편(紙片)에 뭐라 적었더냐?”
“출현 오마지체였지요.”
“이 나이가 되면 생각이 다들 비슷해지지. 아마 오마지체 정도는 되어야 다 늙어 땅에 눌어붙은 엉덩이를 떼지 않았겠느냐?”
이곳에 온 이후, 가장 착 가라앉은 천기자의 음성.
“그럼 어디 그 오마지체라는 괴물 후보들이 어디어디 출현했는지 한 번 들어보자꾸나.”
제갈총이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와룡곡 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것은 무림맹의 특급대외비입니다.”
“야이 녀석아, 그럴 거면 노부를 왜 여기까지 불러들였느냐?”
“말씀드리기 전에……관주님께오서 승낙해주실 게 있습니다.”
“뭔고?”
“관주님.”
“왜?”
“관주님입니다.”
“뭐가? 뭔데 이리도 뜸을 들…….”
말을 하던 중 천기자가 눈썹을 심하게 꿈틀거렸다.
“네놈 설마 노부에게 다시 저 천방지축들의 소굴에 들어가 소꿉대장이라도 하라는 게냐?”
천방지축들의 소꿉대장.
많은 것이 함축된 직책이었다.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가 진정으로 믿고 의지할 분은 관주님뿐이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갈총이 무림대학관을 내려다보며 찬 숨결을 길게 내뿜었다.
“올해 그 오마지체가 저곳에 입관하니까요.”
“오마지체가 와룡곡에 들어온다고?”
“아, 제가 방금 그리 얘기했습니까? 그럼 정정하지요.”
“……?”
“올해 오마지체‘들’이 저곳, 와룡곡에 입곡하니까요.”
“…….”
휘이이이이잉-!
봄에 거의 다 와 가는 길목 어느 시기.
무림맹 대웅전 지붕 처마 끝에서 있었던 ‘큰’ 대화였다.
무한 레벨업 in 무림
지은이 : 곤붕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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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9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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