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91
“열어 봐.”
마이런이 다리를 꼬며 술을 홀짝이자 트라비스가 서류 가방을 위로 젖혔다.
“이, 이건?”
대형 금화로 가득 차 있었다.
“100만 골드일세.”
“100만!”
트라비스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평생 만져 볼 수조차 없는 액수였다.
“일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지. 일단 쓰게.”
“…….”
온갖 생각이 스쳤다.
‘분명 위험한 일이다. 아니, 그런 건 상관없지. 이 돈을 받는데 뭔 일을 못 하겠어?’
“쳐다만 보지 말고 확인해 봐. 대형 금화라 셀 수는 있을 테니까.”
“어르신을 믿습니다. 다만…….”
돈 앞에 겁을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이렇게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이런은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야? 이건 계약금일세.”
“……네?”
“무슨 바닥을 말하는지 모르겠으나, 내 사업은 바닥이 달라. 앞으로 잘해 보자는 의미로 주는 거야. 일을 잘 처리하면 이것의 10배를 주지.”
‘1천만 골드?’
트라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건 절대로 아니야. 어지간한 귀족들도 이렇게 많은 돈은 없는데.’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내 능력, 아니 내 목숨을 판다고 해도 나에게 이 정도의 가치는 없다.’
마이런도 같은 생각이었다.
‘좀 크기는 하지.’
약한 불로 구워삶는 게 정석이지만 지금은 1시간이 아까운 상황이었다.
‘내일 일간신문까지는 어쩔 수 없더라도 석간은 무조건 막아야 돼. 빠르게 구워야 한다.’
딸깍, 서류 가방이 닫혔다.
“……하겠습니다.”
당연했다.
‘인생 한 방에 끝낼 수 있는데 먼 길 돌아갈 놈이 어디 있나? 사람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복잡한 건 돈이지.
“그럼 믿고 맡기겠네.”
“저기…… 계약서 같은 건 작성하지 않아도 될까요?”
액수가 워낙에 컸기에 양심에 찔렸으나, 마이런의 입장에서는 절대 불가였다.
‘왜 현물로 가져왔겠어?’
그가 서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계약서 아니겠나? 편하게 생각해. 이런 거야 앞으로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그 순간 깨달았다.
‘정치인이구나. 나도 드디어 빛을 보는 건가?’
아직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자신의 영혼이라도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제가 모실 분이…….”
“하아.”
안경을 벗은 마이런이 짜증스러운 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내며 내뱉었다.
“깡패 새끼가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트라비스는 찰나간에 100만 골드가 사라지는 끔찍한 환영을 보았다.
어쩌면 본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트라비스가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를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마이런이 물컵에 독한 술을 가득 채워 내밀었다.
“한 잔 해. 따로 기별하겠네.”
“네, 어르신.”
술을 그대로 목구멍에 부어 버린 트라비스가 서류 가방을 들고 고개를 숙였다.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그렇게 술집을 나와 다시 태양을 보자 술기운에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하지만 취기는 없었다.
‘아니, 취했나?’
금화를 가득 담은 가방을 들고 있는데도 팔과 손에 감각이 없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트라비스는 포커페이스의 상태로 거리로 들어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미치겠네.’
누가 가방을 훔쳐 가지 않을까, 미행이 있지는 않을까, 갑자기 벼락이 떨어지지 않을까?
‘제발, 제발 집까지만 가자.’
늘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고 거리를 활보하던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인간이었다.
“호외요! 호외!”
자이브에 세워진 거대 피라미드에 대한 기사가 잡지사를 통해 뿌려졌다.
“참회하라! 세상의 끝이 오고 있으니!”
세상 모든 종교가 거리로 뛰쳐나와 각자의 교리를 설파하고 있었고.
“자이브 국왕은 사건의 전말을 공표해라! 우리는 타락한 왕을 원하지 않는다!”
시민 단체는 이제 가두 행진을 하며 그들의 의견을 전염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트라비스는.
‘여보, 기다려! 아들아! 아빠가 해냈다!’
100만 골드를 가족들 앞에 턱 하니 내려놓는 그 순간만이 진짜일 뿐이었다.
연쇄 작용 (3)
***
성전에 모인 관리들은 유례없는 단합력으로 파라스 왕국을 공격했다.
“아이론 왕국에도 피라미드가 세워졌소. 이건 타국에 대한 명백한 주권 침해요!”
국왕 키트라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말해 줄 리가 없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언어는 침묵이라는 것을 시로네는 알고 있었다.
‘저들은 그저 판단할 근거를 가지고 싶은 거야. 대답하지 않으면 주도권은 넘어가지 않는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 중에는 발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비츠가 보이지 않아.’
배니싱을 발동한 상태라면 조금 전 교황의 기운에 타격을 입었을 터였다.
‘콘스탄틴 교황은 진짜다. 놈의 신성력은 상급 마족에게도 충격을 줄 수 있어.’
물론 사탄은 차원이 다르지만.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피라미드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 있거나…….’
하비츠가 약해졌거나.
결과적으로 두 가지 경우 모두 해당되지만, 발칸은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기세는 완전히 파라스로 넘어갔군. 대부분의 국가가 꺾였어. 그나마 버티는 건…….’
발칸의 시선이 카샨 제국으로 향했다.
‘우오린.’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깊숙이 파묻은 그녀가 어깨를 부들거리고 있었다.
“크으으으.”
그녀의 신음 소리에 간도가 속삭였다.
“여황님, 괜찮으십니까?”
시간파가 계속 밀려들면서 그녀의 머릿속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지경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째서…….’
이를 악물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미래시의 황금빛 선율이 기타 줄처럼 진동했다.
‘미래가 계속 바뀌는 거야?’
머리가 어지러웠고 급기야 구토 충동이 밀려들자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타국의 관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곧바로 문을 열고 회의장을 나섰다.
의장이 소리쳤다.
“지금 회의장을 나서면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다음 회의까지 참석하실 수 없습니다!”
우오린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그녀의 뒤를 따라 간도가 밖으로 나왔다.
“여황님!”
“왜 나왔어? 너라도 남아야지.”
우오린의 창백한 얼굴을 보노라면 생명이 위독한 지경이 아닌가 싶었다.
“의료진을 부르겠습니다.”
“됐어. 키도를 데려와.”
“몸 상태부터…….”
“빨리!”
소리치는 것조차 힘든 듯한 모습에 간도는 입술을 깨물고 바깥으로 달렸다.
홀로 걸음을 옮긴 우오린은 방문 앞에서 더 움직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야! 우오린!”
키도가 도착했을 때에는 반쯤 의식이 없는 상태로 몸을 떨고 있었다.
“키도, 시간선이 계속 바뀌고 있어.”
“말하지 마.”
키도가 그녀를 두 팔로 안아 들자 간도가 열쇠를 꺼내 방문을 열었다.
“간도, 넌 밖을 지켜.”
그렇게 지시를 내린 우오린이 바닥에 깔린 양탄자를 힘없이 가리켰다.
“저곳으로.”
키도가 내려 주자 가부좌를 튼 그녀가 말했다.
“지박령 깔아.”
하비츠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알았어.”
등 뒤의 창을 꺼내 회전시킨 키도가 수평으로 멈추더니 화신술을 발동했다.
‘지박령.’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강력한 중력이 그들을 중심으로 방을 짓눌렀다.
“절대로 풀지 마.”
우오린이 눈을 감자 히스토리 서치가 발동했다.
“큭!”
시간파는 끝없이 밀려들고 있지만 일단 가장 큰 변화는 이미 일어난 듯했다.
‘그렇다면 찾을 수 있다.’
세계가 어떻게 변한다고 해도, 인간의 행동은 큰 범주에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를 찾아야 해.’
원인의 총합이 결과지만, 각각의 원인이 가지고 있는 비중은 다른 법이다.
누군가 사과를 먹었다면.
‘모든 원인을 분석하는 수밖에.’
배가 고파서, 과일을 좋아해서, 먹을 게 사과뿐이라서, 식단을 조절하는 중이라서 등.
그중에서 결과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인은 사람마다 다를 터.
‘핵심 키워드를!’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모든 원인을 저울질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허억!”
눈을 번쩍 뜬 우오린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야, 괜찮아?”
키도가 고개를 반만 돌리고 물었으나 충격에 휩싸인 우오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냐니까!”
핵심 키워드를 찾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간파가 뒤덮어 버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는 인물은…….
‘왜?’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케이든?’
토르미아 출신, 적십자성의 운명.
분명 독특한 이력이지만 이번 성전에서 영향력은 상당히 낮았던 인물이다.
‘나도, 시로네도, 하비츠도 아닌…….’
케이든이라고?
“완전히 틀어진 거야.”
우오린이 미래시를 끄며 일어서자 키도가 황급히 부축하며 물었다.
“이제 좀 괜찮아?”
‘대체 이 세계에…….’
그녀는 찝찝한 표정으로 창밖의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는 거지?’
한편 회의장에서는 여전히 파라스에 대한 공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정체를 밝히시오!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무력행사를 할 수밖에 없소.”
키트라는 대답이 없었고, 목에 감긴 독사가 조롱하듯 혀를 날름거렸다.
“이……!”
관리가 소리치려는 그때 키트라가 일어나더니 일언반구도 없이 문으로 향했다.
“막아!”
“키트라 국왕의 구금을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성전 참가국의 누구든 구금이 가능하지만 절차는 끔찍하게 복잡했다.
‘소용없어. 성전은 외교의 중추. 일국의 대표를 쉽게 구금할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