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90
자신이 성지라 생각하는 곳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교황청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숲에는 소규모 마을이 점처럼 흩어져 있었다.
밤을 따라 몇 개의 마을을 돌아본 시로네 일행은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었다.
세이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부 거짓이라고?’
그녀가 확인한 마을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특수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식사를 끊어 피골이 상접한 아이, 목에서 피가 날 때까지 기도를 하는 아이.
그런 극기 훈련을 통해 성기사들은 악에 맞서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게 순교 코드의 정체라니.’
신을 믿고, 신이 주었다고 믿은 능력이 한낱 세뇌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다 끝났어.’
세이나는 신성력을 잃어버렸다.
“그만 돌아가자. 내가 책임지고 알릴게.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
“과연 그럴까?”
시로네는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마을의 입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팻말에 ‘천국의 마을’이라고 적혀 있었다.
입구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느껴지는 끔찍한 악의 기운에 악취가 날 정도였다.
“흐으으.”
성안은 켜지지 않았지만 세이나도 느꼈다.
“대체…… 여기 뭐가 있는 거지?”
함부로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느낌에 시로네는 친구들을 데리고 마을로 들어갔다.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수많은 집에서 절규에 가까운 기도 소리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아. 갇힌 건가?”
네이드가 주위를 둘러보는 그때, 마을 회관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숨어.”
벽에 등을 붙이고 살핀 세이나의 눈이 커졌다.
“대사제님?”
교황청 서열 3위 막시무스, 하지만 그녀가 알던 근엄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며칠 사이에 사람이 저렇게 변하다니.’
약에 취한 듯 눈이 풀려 있었고 씻지도 않은 듯 얼굴이 푸석했다.
“가 보자.”
마을 회관으로 들어간 막시무스의 뒤를 밟아 건물 앞에 도착한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윽.”
창문 안에서는 동물의 피를 뒤집어쓴 나신의 남녀들이 엉켜 있었다.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세이나는 몇몇 익숙한 인상을 발견했다.
“내가 아는 사제야.”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간 막시무스는 피가 담겨 있는 대야에서 얼굴을 씻었다.
그런 다음 옷을 벗더니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천천히 몸을 밀어 넣었다.
피에 젖은 덩어리들이 마찰하는 광경 앞에서 세이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우엑!”
이루키가 턱을 괴었다.
“대낮에 이런 짓이라니. 게다가 여긴 교황령이잖아. 저건 세뇌도 뭣도 아니야. 마치 악마 숭배자의 의식 같은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 악마 의식.”
시로네가 고개를 돌리자 한 칸 건너 창문 앞에 후드를 쓴 소녀가 서 있었다.
“여긴 사탄교의 본거지니까. 그나저나 교황청의 지하를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다니. 그래서 찾지 못했군.”
세이나가 물었다.
“사탄교? 아니, 그보다 당신 누구야?”
“나? 요라.”
소녀가 후드를 내렸다.
“오랜만이야. 시로네, 이루키, 네이드.”
캔들러 에덴이었다.
연쇄 작용 (2)
***
성전이 열리는 델타 본청 앞에서 200명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자이브의 국왕을 탄핵하라!”
메이클이라는 기자가 일간신문에 기재한 성전의 야합에 대한 후폭풍이었다.
“도덕성을 잃은 왕에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시민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다른 왕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으로, 국왕을 투표로 선출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그런 시스템이 자이브를 부국으로 만들었지만, 국왕의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기스의 보좌관 마이런은 델타 본청을 빠져나가며 시위대를 살폈다.
‘예상보다 심각하다.’
불과 몇 시간 만에 200명이 모였다는 것은 그만큼 시민들의 반발이 크다는 얘기.
‘물론 저 안에 반대파도 있겠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돈이 필요하고, 거물이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거리 또한 분주했다.
“세상이 멸망하고 있습니다! 모두 회개합시다! 크리아 신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겁니다!”
자이브 영토에 갑자기 세워진 거대한 피라미드는 이곳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당연히 시민들의 충격은 엄청났고, 종말론자들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테라포스의 영광이 도래했다! 이제 모든 인류는 신의 심판을 받을지니!”
피라미드가 생긴 덕분에 기스에 대한 주목이 분산된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기세 좋게 가게를 털던 청년들이 곧바로 출동한 치안대에 체포되는 게 보였다.
“한심하기는.”
시스템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내일 당장 세상이 끝난다는 확신이 없는 한…….’
인간은 오늘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후우, 옷부터 갈아입고.”
기스에게 얻어맞은 얼굴에는 멍이 들었고 옷에는 피가 얼룩져 있었다.
경호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저택으로 들어가자 아내와 딸이 홀에 있었다.
“나 왔소.”
“어머, 당신 얼굴이 왜 그래요?”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마이런이 둘러댔다.
“기사 봤을 거 아냐. 시위대 뚫고 오다가 좀 넘어졌어. 심한 건 아니야. 새 옷 좀 줘.”
딸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하아.”
인사조차 하지 않고 잡지를 읽는 열두 살 딸의 모습에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너는 며칠 만에 아빠가 왔는데 알은척도 안 하냐?”
“뭐래? 진짜 짱재수야.”
잡지를 탁 하고 덮은 그녀가 방으로 향하자 마이런의 언성이 높아졌다.
“야, 인마! 너 말버릇이……!”
“여보, 내버려 둬요.”
아내가 새 옷을 가져오며 말했다.
“사춘기잖아요. 지금 바깥도 흉흉하고. 이제 곧 고급 학교도 들어가잖아요.”
“거참, 사춘기 한번 요란하네.”
“그래도 오늘 다국적 언어 능력 평가에서 1등 했어요. 교사 말이 재능이 있대요.”
옷을 갈아입던 마이런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래?
이 맛에 삽니다.
“짜식.”
언제 그랬냐는 듯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긴, 핏줄이 어디 가겠어? 내 딸이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교사가 또 뭐래?”
“판단력도 좋고, 교우 관계도 뛰어나대요. 학교에 들어가도 수위권은 충분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과외만으로 충분한 정치인의 자녀에게 학교란 특수 목적 학교였다.
“뒤에서 잘 받쳐 줘. 괜히 자극시키지 말고. 저 나이 때가 제일 흔들리기 쉬우니까.”
“당신이나 좀 자주 들어와요. 애랑 대화를…….”
“또 바가지.”
늘 그렇지만 기스에게 개처럼 맞고 들어온 뒤라 울컥한 정도가 심했다.
“내가 밖에서 놀아? 바쁜 거 다 알면서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적당히 하라고.”
아내도 다친 사람 잡기는 싫었다.
“알았어요. 성전으로 가요?”
“현장 업무야. 당분간 못 들어올 거야. 바깥출입 자제하고, 애한테 무조건 경호원 붙여.”
기스의 말도 간과할 수 없었다.
“네. 그래도 식사는 해야죠.”
“그럴 시간 없어. 바쁘다고. 토비나 데려와. 얼굴이나 보고 나갈 거니까.”
이제 네 살인 늦둥이 아들이었다.
“자요. 낮잠 시간이잖아요.”
“……좀 기다리라고 하지. 하루 안 재운다고 뭐 큰일이라도 나나?”
아내의 목소리에 발톱이 담겼다.
“당신이 언제 들어올 줄 알고 기다려요? 그리고 성장기에 낮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 그래. 알았어.”
말이 아무리 길어도 결과는 똑같기에 마이런은 도망치듯 현관으로 향했다.
“갔다 올게. 집 잘 챙기고 있어.”
아들의 얼굴도 못 보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아내의 목소리가 나긋해졌다.
“정말 괜찮은 거죠?”
“괜찮지, 그럼. 나 마이런이야. 절대로 안 무너지니까 애들이나 잘 챙겨.”
사실은 잘 모르겠다.
‘이대로 사건이 커지면 각하의 위상도 달라질 거야. 게다가 피라미드…….’
천사들의 힘이 약해졌다고 들었다.
‘하나씩 해결하자.’
메이클 기자가 더 이상 기사를 작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하아.”
저택을 나선 그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너머에 있는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알 게 뭐냐.”
내 앞가림도 못하게 생겼는데.
시내의 VIP 전용 술집에 한 남자가 섰다.
“이런 데도 와 보는군.”
유력자들만이 다닌다는 술집은 당연히 불이 꺼져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크를 하자 문이 열렸다.
“누구십니까?”
“나 백구라는 사람이오.”
머리를 백구로 밀었기에 백구지만, 실제로 이름은 트라비스라는 조직폭력배였다.
“들어오시죠.”
아직 영업 준비조차 시작하지 않은 차가운 공기 속에 수십 개의 방이 있었다.
‘대단한 놈인가 보네.’
어지간한 권력이 없으면 출입조차 못한다는 술집을 대낮에 통째로 빌린 인물.
지배인이 데리고 간 방은 그중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넓은 방이었다.
수십 명은 앉을 법한 테이블에 고급 술 한 병, 상석에 한 남자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르신, 데려왔습니다.”
“나가 있게.”
미리 와서 기다리던 마이런이 안경을 올리며 트라비스의 인상을 훑었다.
건장한 체구에 우직한 사내였다.
“앉게. 잘생겼구먼.”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트라비스가 긴 테이블의 끝으로 걸어가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트라비스입니다. 나이는 43. 큰형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
3년 만에 찾아온 큰형님이라는 작자는 이곳에 가면 돈 좀 만질 거라고 했을 뿐이다.
마이런이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내가 요새 좀 큰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말이야. 자네가 힘 좀 쓴다더군.”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지금은 무슨 일을 하나?”
“에디아 2번지에서 사창가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직원은 5명입니다.”
“음, 다섯이라.”
트라비스가 황급히 덧붙였다.
“전부 쓸 만한 놈들입니다.”
작은 조직의 두목이라는 자격지심의 발로였지만 마이런의 생각은 달랐다.
‘어중이떠중이 다섯. 괜찮군.’
일국의 왕이 쓸 만한 사람이 없어서 깡패를 사겠는가.
‘성전 대회 기간이다. 정치 공작이 들어갔다는 게 밝혀지면 타국에서 물고 뜯을 거야. 하지만 사창가 깡패 정도라면 들통이 나도 덮는 건 일도 아니지.’
국왕 보좌관인 마이런이 직접 온 이유도 ‘계보가 길면 밟힌다.’라는 철칙 때문이었다.
“일단 이것부터 받게.”
마이런은 테이블에 있는 무거운 서류 가방을 앞으로 내밀었다.
“제가 해야 할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