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55
“사슬, 사슬.”
유일한 희망인 사슬을 더듬거렸으나 에텔라의 감정은 전달되지 않았다.
“왜, 왜에?”
카르마를 총괄하는 메인 시스템 안에서는 모든 프로그램이 먹통이었다.
망가진 몸을 일으킨 샤갈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복도를 내달렸다.
‘늦지 않았어! 안 늦었을 거라고!’
-남은 정화 시간…….
집회장에 비상 메시지가 들렸다.
-경고! 기관실의 핵심 데이터가 교란되고 있습니다! 속히 처리하십시오!
레테가 고개를 쳐들었다.
“뭐?”
중앙 연산장치에 문제가 생기면 이면 세계의 카르마가 전부 초기화된다.
“불가능해. 카르마를 가진 자는 육뇌에 접속할 수 없어. 형태를 파괴해도 율법은 그대로이니, 핵심 데이터가 교란되지는 않는단 말이야.”
-로미 에텔라. 림보입니다.
레테는 짜증이 났다.
“자꾸 헛소리야! 그 여자 카르마가……!”
문득 깨달았다.
“아.”
림보구나.
아무것도 모른 채 배 속에 잠들어 있는 생명에게 무슨 업이 있겠는가?
‘에텔라 선생님.’
메시지를 들은 시로네는 여태까지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의 정답을 찾았다.
‘샤갈의 아이를…….’
정황은 충분했다.
‘연산 시스템이 사라지면 카르마를 계산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진성음을 구할 수 있어.’
남은 것은 사옥의 거의 모든 병력이 집결한 상황을 어떻게 뚫느냐였다.
“미련을 버려라, 야훼여. 우리는 지금도 강해지고 있다. 너는 여길 나갈 수 없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육뇌를, 낙태당한 태아를 소멸시키는 방법.”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에텔라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면 내 말도 달랐겠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녀를 죽였을 것이다.
“죽어라.”
레테가 정화의 불꽃을 피우는 그때 13층에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응?”
풍경에 선이 그어지고, 그 선에 걸친 마족의 육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게, 게헨……! 으아아아!”
불로 변한 마족들이 대직도에 흡수되자 문밖에 서 있는 리안이 보였다.
“미안, 시로네.”
쿠릉, 쿠릉, 쿠릉…….
벤 상태 그대로 다시 맞물린 외벽에서 돌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부 도망쳐 버렸어, 시옥.”
“하하.”
하비츠와 위저드의 충돌로 인해 이면 세계에도 변수가 생긴 것이다.
‘진짜 미치겠네.’
레테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저게 남아 있었지.’
마족이 얼마나 강해졌든, 게헨나의 검은 마를 전부 빨아들일 터였다.
인류의 종착지 (3)
***
손유정과 모르타싱어는 시스템제어 지부의 창고 부지를 빠르게 달렸다.
“비켜!”
하늘에서 추격하는 수많은 흑승들이 시커먼 사슬을 지상으로 던졌다.
“유정아! 위!”
모르타싱어의 말을 듣기도 전에 손유정이 두 자루의 여의를 빠르게 휘둘렀다.
곤봉에 불똥이 튀고, 몇 개의 사슬이 그녀의 팔과 다리를 칭칭 감았다.
“크으으으!”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손유정의 입에서 괄한 연기가 뿜어졌다.
‘근두운!’
전신을 뒤튼 그녀가 두 팔을 끌어당기자 흑승들이 쭉 하고 딸려 내려왔다.
-크윽! 어, 어떻게……?
화안금정이 켜지고, 피처럼 붉은 곤봉이 흑승의 급소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돌원숭이가 만만해?”
흑승이 연기처럼 흩어지자 손유정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모르타싱어가 다가왔다.
“괜찮아?”
“어. ……아니. 이것들 진짜 세다. 솔직히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야. 때린 것 같지도 않고.”
손맛이 없었다.
“그나저나 너는 능력도 사라진 거야? 히든 피스인가 뭔가, 그거 있잖아.”
사탄교에 들어가기 전의 모르타싱어는 공간을 퍼즐처럼 쪼개는 규정외식자였다.
“아직 잘 모르겠어. 사탄의 세뇌에서는 벗어났지만 어떤 것이 진실인지.”
“그래. 뭐, 천천히 생각하면 되겠지. 일단 가자. 지옥에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그렇게 도착한 정문 앞에서, 손유정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왜 그래? 안 나갈 거야?”
“…….”
손유정은 긴고아를 만졌다.
‘긴고주를 외우지 않아. 정말로 안 부르는 거야? 내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건가? 아니면…….’
리체라의 얼굴이 소리쳤다.
“뭘 생각하고 그래요? 그냥 갑시다! 멀리 도망치면 절대로 찾지 못할 거라고요!”
“유정아.”
모르타싱어가 다가왔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이후 지옥에서 수많은 일을 겪었어. 결국 이런 꼴이 되었지만.”
세뇌에서 벗어나자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그래도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한때 이 모습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일 거야. 물론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마음의 힘을 깨달았어. 네 마음을 속이지 마. 나 때문에 도망칠 필요 없어.”
“몰타…….”
모르타싱어의 애칭이었다.
“돌아가자는 게 아니야. 떠나자는 것도 아니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내가 하고 싶은 것.”
손유정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리안은 아래로 뛰어내렸다.
“읏차.”
대직도를 어깨에 기댄 채 성큼성큼 걸어오자 마족들이 황급히 물러섰다.
‘게헨나의 사슬.’
스치는 순간 불에 타 버릴 것이다.
“괜찮냐, 시로네? 오는 도중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거야?”
시로네가 말했다.
“우리에게 기회가 생겼어.”
“그렇군.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지?”
“진성음.”
설명은 짧았지만, 리안에게 중요한 것은 시로네의 영점이 어디를 겨누나였다.
“좋아. 가자, 시로네.”
레테가 정화의 불꽃을 쏘았다.
“놓치지 마!”
수십 개의 불덩어리 사이사이로 마족들이 끼어들어 시로네를 노렸다.
몸을 뒤튼 리안이 대직도를 휘두르자 정화의 불꽃이 픽 하고 사라졌다.
“억……!”
둘로 쪼개진 마족들의 육체가 순수한 마로 불타올라 대직도에 스며들었다.
“크으으으!”
순식간에 마를 정화시킨 리안이 눈을 희번덕 치켜뜨며 전방을 노려보았다.
레테가 소리쳤다.
“안 돼!”
대직도를 땅에 꽂자 집회장의 바닥에서 기포들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리안의 얼굴이 구겨지고, 11층부터 13층을 가득 채우는 폭발이 일어났다.
창고 부지를 지키던 흑승들이 굉음을 듣고 사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죄인을 포박하라.
사옥에서 뛰어내린 시로네와 리안은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것을 보았다.
전부 흑승이었다.
“시로네, 저건 좀 심각한데.”
사옥 쪽에서 에이전트와 마족이 추격하고 있기에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뛰어!”
달리면서 리안이 물었다.
“진성음을 구한다고 했지. 게헨나의 불로 정화시키면, 정말로 그녀가 현실로 돌아가는 거야?”
“가능성은 충분해.”
흑승의 검은 구름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확인한 시로네가 방향을 틀었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중앙 연산장치가 파괴되면 정화 시간을 계산하는 게 불가능해지니까.”
“카르마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시스템이 마비되면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어. 통장에 찍힌 액수가 실제로 돈은 아닌 것처럼. 은행 시스템이 파괴되면 돈은 증발하는 거야.”
“……그렇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흑승들은 불과 몇백 미터 앞까지 접근해 있었다.
구름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쳇!”
흑승이 거리를 둔 채 멈추고, 뒤편에서는 에이전트들이 빼곡히 늘어섰다.
‘싸울 수밖에 없나?’
시로네와 리안이 걸음을 멈춘 것을 보고 레테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흑승은 프로그램. 게헨나로 정화되지 않지.”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잡아.”
흑승의 위력은 통곡의 벽에서 이미 경험했기에 리안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어리석은 죄인이여.
구름처럼 뭉친 흑승들이 리안에게 날아가는 순간 뻥 하고 구멍이 뚫렸다.
-크아아아아!
구멍의 외곽에 시뻘건 열기를 남긴 자는 근두의 연기에 휩싸인 손유정이었다.
“약한 것들은 꼭 뭉쳐 있다니까. 패고 싶게.”
뚫린 구멍을 통해 모르타싱어가 도착하고, 손유정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야훼, 너.”
여의가 시로네를 가리켰다.
“왜 긴고주를 외우지 않았지? 나를 무시하는 거냐? 내 도움은 필요 없다는 거야?”
“그래.”
손유정의 눈썹이 꿈틀했다.
“나보다 더…… 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잖아. 그 사람을 위해 싸워라.”
원숭이의 긴 송곳니가 드러났다.
“닥쳐. 너나 부처나 입에 발린 소리만 지껄이지. 그러다가 내가 필요하면 부를 거 아냐.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긴고주를 외워서…….”
“왜 온 거냐?”
진심을 감추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은 시로네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면, 왜 나에게 와서 그런 것을 묻는 거야?”
“이……!”
그 순간 흑승들이 사슬을 날렸다.
‘히든 피스!’
모르타싱어가 규정외식을 발동하자, 풍경이 98개의 구역으로 쪼개졌다.
“됐다!”
마법을 되찾았다는 것은 사탄의 세뇌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마치 큐브처럼 흑승의 위치를 바꾸자 사슬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쏘아졌다.
모르타싱어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 어서!”
‘어떤 깨달음.’
양쪽의 극단을 모두 경험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확고한 신념일 터였다.
리안이 에이전트를 상대하는 가운데 시로네는 손유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하다. 모르타싱어를 구했구나.”
“……내가 한 게 아니야.”
“그래. 지성은 결국 옳음을 되찾는 법이지. 하지만 너의 역할이 가장 컸다.”
“날더러 뭘 어쩌라고?”
여의를 내린 손유정이 버럭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