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06
델키도가 수레 옆에 놓인 거대한 가지치기용 가위를 꺼내 들었다.
“좀 바꿔야겠어.”
요라한이 입을 열기도 전에 델키도는 사람의 육체에 가위질을 가했다.
“어때? 멋있지 않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요라한은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만약 아레온을 죽이지 않았다면 화족에게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아. 나는 가족을 지킨 거야.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또다시…… 나인가?
‘나조차 나를 버릴 수 없는 숙명.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끝없는 고통의 돌려막기, 그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그 순간 요라한의 사고가 빛의속도로 확장되면서 나를 벗어나 인류 전체를 담았다.
“아아.”
요라한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구나.’
사랑이란…….
“흐윽! 흐으으윽!”
요라한이 우는 소리를 들은 델키도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하하! 어때? 이제야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왕은 굳었다.
온 인상을 찡그리며 울고 있는 요라한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친 건가?”
“아르망.”
요라한이 말했다.
“용서하자.”
아르망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델키도가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뭐?”
“모든 것을, 이 세상을 용서하자. 여기서 끝내는 거야. 우리가…… 끝내는 거야.”
잠시 요라한의 말을 음미하던 아르망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비로소 준비가 된 것이다.
“무슨 미친 소리야!”
불쾌한 감정에 델키도는 채찍을 후렸으나 그의 턱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지? 이 내가?’
요라한의 표정이, 악의 본능이, 앞으로 닥칠 무언가를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요라한은 웃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미쳤다고 하기에는 너무 후련하고 통쾌한 웃음이라 델키도는 물러섰다.
“뭐야, 너? 뭘 하려는 거야?”
“이런…….”
웃음을 멈춘 요라한이 담담하게 내뱉었다.
“이건 너무 가식적인가?”
“…….”
델키도가 소리쳤다.
“죽여! 이 녀석을 죽이라고!”
“그러니까…….”
요라한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진짜로.’
일말의 거짓도 빈틈도 없는 맹목적인 진심을 담아.
“정말 용서해 버리자.”
다시 눈을 떴을 때, 요라한의 표정은 인간이 지을 수 없는 희喜의 극치로 변해 있었다.
화화화화화화화화화!
가장 행복한 웃음을 터트리기 위해 얼굴근육이 완전히 뒤틀린 그 형태야말로.
“그, 그만.”
사랑이라는 개념의 실체화였다.
화화화화화화화화화!
“으아아아!”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델키도는 두 귀를 막은 채 바닥에 엎드려 소리쳤다.
“제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제, 제발…….”
그 순간 충격을 받은 듯 델키도의 허리가 펴지더니 눈, 코, 입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오오오오오!”
그를 시작으로 독방에 있던 경비들의 눈, 코, 입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아! 안, 안 돼!”
정화되고 있다.
극한의 감정은 마魔가 되지만, 극상의 고양감은 드리모로 넘어가 이상이 된다.
화화화화화화화화화!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요라한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온몸의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으며, 창자가 뚝뚝 끊어졌다.
‘이것이…….’
사랑이다.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로 감당하는, 고강도의 자기희생이자 초월적인 광기다.
“요라한.”
겁에 질려 발버둥치는 자들과 달리 아르망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다.
“안녕.”
그리고 이어서 드리모를 통해 그녀에게도 요라한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
그 마음이 모든 화족에게, 급기야 미카스 왕국의 사람들에게도 흘러들었다.
“오오오오!”
감옥을 중심으로 점차 커져 가는 빛의 동심원이 왕국 전체를 삼켰을 때.
“루버 님!”
드리모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큰일 났어요! 이 꿈은 처리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든 인류가…….”
사랑으로 통합되어 버릴 터였다.
“흐음.”
루버도 보고 있었다.
온갖 사념으로 이루어진 뒤죽박죽인 꿈의 세계가 거대한 섬광에 쓸려 나가는 것을.
“…….”
선택을 해야 했다.
“나를 따라오거라. 시간이 없어.”
루버와 몽아는 빛의 파도를 헤치고 요라한의 정신 속으로 들어갔다.
웃고 있는 그의 화신 옆에 아르망이 있었다.
‘소세계창유.’
2개의 꿈이 하나로 합쳐진 곳에 도착한 루버가 요라한에게 다가갔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했군.”
진짜로 용서하다니.
“하지만 이제 그만하게. 이대로 가다가는 모든 사람이 자네의 꿈을 꾸게 될 걸세.”
아르망이 말했다.
“요라한에게 남아 있는 건 오직 하나뿐이에요. 제 말도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네는 할 수 있지 않나. 자네가 요라한이고, 요라한이 자네니까.”
“……왜 그래야 하죠? 신과 같은 존재라면 우리의 물음에 답하세요. 요라한은 세상을 용서했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이 요라한의 꿈에서 살아가게 될 거예요. 고통도, 절망도 없는.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하지만 모두의 삶이 아니야. 요라한의 삶이지. 정말로 요라한이 그것을 바랄까?”
아르망은 애써 울음을 참았다.
“왜 항상 요라한이 희생을 해야 합니까? 이제 그만 이 사람을 놔두세요. 여태까지…….”
“알겠습니다.”
요라한의 목소리에 아르망이 고개를 돌렸다.
“너…….”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온 요라한의 얼굴에서 성스러운 빛이 나고 있었다.
“당신의 말이 맞아요. 내 꿈으로 모두의 꿈을 막을 수는 없겠죠. 이제 그만 물러나겠습니다.”
아르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비로소 네 꿈을 이루게 되었잖아. 그것마저 포기하면 나는…… 나는…….”
이미 현실에서 남편은 죽었을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요라한이 말했다.
“만약 누군가…….”
잠시 생각하던 그가 미소를 지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제 일생을 그에게 전해 주세요.”
전승몽의 시작이었다.
사랑의 정의 (3)
“꿈을 전승한다.”
루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시스템상으로는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관리자의 임무 수칙에는 어긋나는 일.’
드리모는 특정 종족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장 기초적인 생물부터 고등 생물까지, 꿈을 꾸는 모두의 이상을 처리하는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테라포스.’
현재 그들도 인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채널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실정이었다.
‘전승몽을 허락하면 테라포스의 채널도 허용해야 한다. 물론 둘 다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지만…….’
전례가 생긴다는 것은 드리모를 운영하기가 조금 더 빡빡해진다는 뜻이었다.
몽아가 입술을 깨물며 불렀다.
“루버 님.”
이제 곧 요라한의 꿈이 드리모를 가득 채우는 시점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알겠네.”
루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꿈은 드리모에서 처리되지 않고, 앞으로 다른 사람의 꿈에 발현되어 전승될 걸세.”
“감사합니다.”
요라한의 미소는 너무나 인자하여 루버도 결국 한숨을 쉬는 것으로 끝냈다.
“그럼 자네의 꿈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도록 하지. 그 전에 꿈의 이름을 정해 주게.”
“이름……요?”
“자네의 시대에는 이해하지 못할 게야. 이름을 정하는 것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네.”
한때는 시로네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여정을 통해서 이제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름을 정하는 게 중요한 이유.’
우리가 몸담은 이 우주가, 신이 연산하고 처리하는 데이터베이스이기 때문.
그리고 그렇게 정의된 이름이 미싱 링크를 통해 이데아와 연결되는 것이라면.
‘이름을 가진 자만이 분류를 초월한다.’
수많은 생물 중에서 우주 만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되는 것.
“이름이라.”
요라한은 잠시 생각했다.
“요라한과 아르망.”
그리고 고개를 들어 루버에게 말했다.
“요르라고 하겠습니다.”
“알겠네.”
이름을 지은 계기가 무엇이든,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헤쳐 나가야 하는 삶.
“앞으로 수많은 자들이 자네의 꿈을 꾸게 될 걸세. 세대를 거쳐 끝없이 이어 가겠지. 어쩌면 종교가 될 수도 있겠군. 자네는 요르라는 종교의 신이 될 것이야.”
“……그렇군요.”
살아생전 간절히 원하던 일을 해냈으나, 그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때 아르망이 말했다.
“나도 조건이 있습니다.”
루버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미 두 사람이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말해 보게.”
“남편의 꿈을 지키고 싶습니다. 현실로 보내 주세요.”
“하지만 자넨 이미…….”
“생명은 없어도 됩니다. 나는 화족이에요. 설령 사물이 될지라도, 요라한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만족할 수 있습니다.”
“흐음.”
루버는 방법을 알았다.
‘오브제로 반출시키면 된다. 하지만 관청에서는 허락하지 않을 거야. 결국 내 지시로…….’
드리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알겠네. 자네는 특별한 개념을 가진 사물이 되어 현실로 나가게 될 것이야. 무엇이 되고 싶은가?”
“검.”
아르망은 주저하지 않았다.
“검이 좋겠습니다.”
“……승인하지.”
요라한과 아르망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제 영원히 작별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누군가의 마음과 연결되어 뻗어 나갈 것이기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