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5
같은 생각을 했다는 뜻이었고, 심지어 리안과 테스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좀 짜증 나는군.’
전우애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관학교 출신이기에 본능적으로 역함을 느낀 것이다.
한편 제단에 홀로 선 리더는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동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과 다른 게 느껴졌다. 그게 사실이든 망상이든.
“후, 후! 으아아아!”
그는 호흡을 정돈하지 못하고 내달렸다. 시로네의 눈에는 그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듯 보였다.
스키마는 제대로 열렸는지, 검의 위치는 어디쯤에 있는지, 목표물까지 거리가 얼마인지, 모든 것이 불확실했고 결국 구슬 앞에서 다리가 꼬이고 말았다.
“흡!”
고꾸라지듯 휘두른 검이 구슬의 옆을 때리고 미끄러졌다.
“큭! 젠장!”
중심을 잃은 그는 제단 밖으로 떨어지기 직전 가까스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구슬에 32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누구도 웃지 않았다.
다만 동료들은 굉장한 굴욕을 당한 것처럼 표정이 굳어 있었다.
“뭐, 뭐 어때! 어차피 통과도 안 되잖아! 했으니까 된 거야! 그만 나가자고!”
쓸데없는 강짜를 부린 리더가 문으로 향했으나 동료들은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저 팀은 끝났어. 아마 여기를 나가면 해체되겠지.’
시로네는 이쯤에서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이 방의 진의를 깨달은 이상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은 위험했다.
시로네는 궁수에게 부탁했다.
“통역 좀 해 주세요.”
나가기 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궁수도 생각한 바가 있는지 순순히 허락했다.
“그래. 뭐라고 물어봐 줄까?”
“지금까지 이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 있나요?”
백색 문신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를 위한 관문이다. 함정이 아니야.”
“그렇다면…… 미로의 시공에서 몇 점이 나와야 통과할 수 있죠?”
“천사의 여덟 눈동자가 너희를 판단할 것이다.”
남자는 처음에 한 말을 되풀이했다.
결국 모든 건 미로의 시공이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대체 왜 8이지?’
잠시 생각하던 시로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여기까지 온 사람들 중에서 통과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되죠?”
“정확히는 모른다. 여러 명이 오기도 하고 1명이 오기도 하지. 내가 지켜본 바로는 열 번 중에 한 번은 통과하는 것 같다. 대부분 혼자 왔을 때 통과하는 비율이 높더군.”
“네?”
예상보다 높은 비율이었다.
‘10명 중에 1명?’
처음에는 통과자가 없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미로가 이곳을 설계한 목적이 단순히 개인의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정 때문이었다.
물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백색 문신의 남자는 통과자가 있다고 했다.
그것도 10퍼센트라는, 자신이 느낀 난이도에 비해 엄청난 비율로.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시로네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오싹한 느낌이었다.
“에이미.”
“응?”
“교장 선생님은 정말 짓궂은 분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시로네는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다. 알페아스의 말이 환청처럼 머리에 울렸다.
-미로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대충은 알 수 있을 테니까.
여전히 모른다.
얼마나 강한 위력을 가해야 합격이 뜨는 것인지.
이런 잔혹한 규율까지 세우면서 케르고 자치 지구로 들어갈 사람을 선별하는 것인지.
유일하게 깨달은 사실은, 학생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여기가 끝이라는 것이었다.
‘죄송해요, 교장 선생님.’
시로네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떻게든 여행 기간 내에 케르고 자치 지구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시로네의 눈빛을 본 에이미가 미소 지었다.
‘포기하지 않았구나, 시로네.’
그렇다면 그녀도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시로네와 함께 여행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미로라는 여자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케르고 자치 지구. 반드시 가고 말 거야.’
미로의 시공(6)
시로네 일행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리더는 철문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이제 그만 나가자고! 불만 없지? 어이, 이 철문 열어!”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데다가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도 견딜 수 없었다.
백색 문신의 남자가 물었다.
“모두 동의하는가?”
딱히 통역은 필요 없었고, 용병들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으로 향했다.
떠나는 그들의 심정은 처참했다.
루프로 한몫 챙기려다가 의리만 상하고 돈은 돈대로 낭비한 것이다.
궁수가 시로네 일행을 보고 말했다.
“어이, 빨리 나가자고.”
태도는 전과 확연히 달랐다.
허탈감도 컸지만 시로네 일행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시로네 일행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래? 안 나가?”
마법사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기에, 에이미가 말했다.
“우리는 나갈 생각이 없는데요?”
용병들이 일제히 돌아섰다.
분노, 당혹감, 두려움 등 온갖 감정이 교차했다.
그나마 사리 판단이 빠른 마법사가 화를 삼키며 달래는 어투로 물었다.
“왜 나가기 싫은데? 이미 끝났잖아? 우리도 너무 피곤해서 이제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건 그쪽 사정이죠. 이곳에 들어온 이상 모두가 하나. 몰라요? 이쪽의 의견도 안 묻고 제멋대로 나가려고 들면 우리가 곤란하죠.”
마법사는 속이 상했으나 지금은 에이미의 비위를 맞춰 주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내가 미처 거기까지 신경을 못 썼어. 그러니까 이제 나가자.”
“그럴 순 없겠는데요. 우리는 어떻게든 여기를 통과해서 케르고로 갈 거거든요.”
“하지만 방법이…… 아.”
마법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곳은 성취와 희생의 방, 반드시 성취만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백색 문신의 남자가 말했다.
“나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 실력을 입증하고 싶다면 미로의 시공을 통과해라. 희생을 증명하겠다면 4명의 희생으로 4명을 보내면 된다.”
“뭐라고 하는 거지?”
리안이 묻기 무섭게 궁수가 통역했다. 물론 완벽하게 왜곡된 언어였다.
“아, 볼일 다 봤으면 빨리 가라는 말이야.”
에이미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라, 이상하다? 나는 분명 이렇게 들었는데. 4명의 희생으로 4명을 보내면 된다.”
궁수의 눈동자에 충격이 깃들었다.
“너…… 설마 원주민어를 알고 있었어?”
“무슨 소리예요? 저 남자가 쓰는 단어들은 처음 왔을 때 다 나온 건데. 우리가 무슨 바본 줄 알아요? 한번 들은 단어도 기억 못 하게?”
궁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 그런 것인가? 아닌데? 처음 듣는 말을 기억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냐?
에이미가 용병들을 가리켰다.
“어쨌거나 4명의 희생이라. 하나, 둘, 셋, 넷. 딱 4명이 채워졌네요.”
용병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에이미의 눈빛은 진짜였고, 심지어 친구인 리안과 테스조차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테스가 속삭였다.
“시로네, 정말 할 거야? 히잉, 에이미 너무 무서워.”
“괜찮아. 일부러 저러는 거야.”
“일부러 저런다고? 왜?”
“아직 저들에게 받을 게 하나 더 남았거든.”
용병들은 발을 끌며 물러섰다.
싸운다면 필패라는 것은 조금 전의 시연으로 증명된 상태였다.
에이미가 손을 까닥거렸다.
“덤비세요. 순순히 희생은 할 수 없다는 표정인데. 어쨌든 그쪽도 발버둥은 쳐야죠.”
궁수가 물었다.
“……왜 이러는 거야? 혹시 술집에서 우리가 한 행동 때문에 그러는 거냐?”
에이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으흠?”
그녀의 의뭉스러운 반응에 궁수도 어설픈 대응으로는 무마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시로네 일행이 모두 보이는 곳으로 향한 그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하다. 우리가 너희를 우습게 보고 실수를 저질렀다. 한 번만 용서해 줘. 어이, 너희도 사과해.”
목숨이 걸린 일이었기에, 남은 세 사람도 마지못해 궁수 옆으로 걸어왔다.
“미안해. 내가 너무 건방졌어. 용서해 줘.”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 이번 일로 많이 배웠다. 그러니 우리가 저지른 실수는 잊어 주면 안 될까?”
에이미가 미간을 찡그렸다.
“흐음, 도무지 모르겠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실수를 했다는 거예요? 가만, 술집? 설마, 그 술집에 있었던 거예요? 이상하다. 왜 나는 못 봤지?”
분명 술집에서 에이미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독종이네.’
용병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 짓밟히는 기분이었다.
시로네는 씁쓸하게 웃었다.
‘에이미를 화나게 하면 저렇게 된다.’
물론 감정이 상해서는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대의 이득을 취해야 하는 것이 마법사의 정석.
그래서 일각에서는 마법사를 냉정하다, 피도 눈물도 없다, 괴팍하다고 보는 시선도 있지만, 하긴,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효율을 향한 그런 집착이 있었기에 마법이 여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더러 뭘 어쩌란 거야? 제기랄.’
용병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을 내리깔고 있자 에이미가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한 가지 제안을 하죠. 그것만 받아들인다면 같이 나가 줄 수도 있어요.”
“어떤……?”
“여기까지 들어오려면 암호를 알아야 한다고 했죠? 그 암호가 뭐예요?”
궁수는 시로네 일행이 다시 도전할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수많은 조사와 분석을 거쳐 가능성을 검증한 뒤가 될 터였다.
‘젠장! 이게 얼마짜린데.’
오직 이 암호를 위해 돈을 쓴 그들이니 억장이 무너졌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케르티아, 로 호이마. 아크라시아, 위드미아 벤젠. 이게 암호야.”
“무슨 뜻이죠?”
“나의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백색 문신의 남자를 돌아본 에이미는 궁수가 알려 준 고대어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발음했다.
“케르티아, 로 호이마. 아크라시아, 위드미아 벤젠?”
출구를 지키고 있는 원주민들이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궁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젠장! 사람을 좀 믿으라고. 설마 내가 이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겠어?”
“누가 뭐래요? 확실하게 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아무튼 알았어요. 고마워요.”
에이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풀고 친구들에게 몸을 돌렸다.
테스가 혀를 내둘렀다.
“암호를 알아내려고 한 거였어? 진짜로 싸우는 줄 알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아?”
“후후, 어차피 다시 올 거라면 알아 둬야 하잖아. 아무튼 우리도 나가자.”
시로네 일행과 용병들이 문으로 향하자 백색 문신의 남자가 장치를 작동시켰다.
문이 격한 진동을 일으키며 복도가 나왔다.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용병들이 먼저 계단을 올라갔으나 전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모두 패잔병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누구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시로네는 생각에 잠겼다.
‘미로의 시공. 미로라는 분은 왜 그런 장치를 만들었을까? 케르고 사제는 분명 합격자가 있다고 했어. 즉, 단순히 팀워크만을 평가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즉 아주 강한 사람, 혹은 완벽한 신뢰로 묶인 전투 팀. 하지만……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사람을 선별하는 거지?’
시로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에이미도 앞으로의 일을 궁리하고 있었다.
‘유적을 조사하는 데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야. 가능한 모든 전략을 세우자. 시로네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것 같지만, 스피릿 존으로 지하를 탐색하는 방법도 배제할 수는 없어. 무엇보다 자치 지구로 간다고 해도 통역의 문제가 있어. 밖에 나가면 통역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현지인 을 물색해야지.’
테스도 인상 깊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무력을 수치화시켜서 확인한 것은 상당한 성과였다.
‘내 세검이 둔기보다 셀 수가 있구나. 하지만 결국 마법의 위력에는 미치지 못했어. 그럼 검사는 혼자서 통과할 수 없다는 건가?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일까? 시로네의 마법이 5천에 근접했다는 건 어림잡아 내 일격의 열 배란 얘긴데. 합격 기준을 대략 2배로 했을 때 아빠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려나? 커트라인만 알면 목표를 세울 수 있을 텐데. 시로네가 다시 온다고 했으니 그때 더 조사해 봐야지.’
리안 또한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심하는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가서 뭐 먹지?’
그렇게 30분 정도 계단을 오른 끝에 시로네 일행은 지상의 제단에 도착했다.
안에서 문을 두드리자 석문이 열리며 햇빛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