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4
“흐음.”
궁수는 제단을 돌아보았다.
어쨌든 최고점을 냈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으나 돈을 낭비하는 건 사냥이었다.
“됐어. 어떤 속성을 써도 크게 차이는 안 날 테니까. 마정탄만 소모하는 거지.”
에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마법사만 남았네. 시로네, 누가 먼저 하는 게 좋을까? 너, 아니면 나?”
용병 마법사가 에이미를 가리켰다.
“네가 하는 게 어때? 그다음이 내 차례이니 누가 더 센지 확실히 비교가 될 거 같은데.”
에이미도 풀어야 할 감정이 남아 있기에 흔쾌히 도전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그럼 시로네, 내가 먼저 한다?”
“응. 실력을 보여 줘.”
여태까지 모두 실패했지만 에이미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의 전공은 공격 마법에 특화된 화염 계열, 게다가 단발의 위력을 중점으로 하는 타깃형이었다.
제단에 들어간 에이미는 어떻게 마법을 전개할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했다.
‘의외로 까다롭네. 스나이퍼 모드로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운데. 그냥 타깃형으로 할까? 하지만 에어 터널이 아니면 위력이 너무 떨어져.’
마법사들이 화염 계열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론상 에너지 상승의 한계치가 없기 때문이지만 실상 섭씨 1천 도의 장벽을 깬 마법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화염이 강한 건 행성 대부분의 녹는점이 섭씨 1천도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생물과 암석은 물론 금속조차 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
그런 화염 계열의 단점이라면 마법사 10명 중 9명은 가벼움을 꼽을 터였다.
에너지 효율은 엄청나지만 빛 계열과 마찬가지로 물리력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화염 마법사는 에어 계열을 접목시키는데, 대표적인 예가 플레임 스트라이크였다.
그리고 플레임 스트라이크는 에어 터널이라는 과포화 산소층을 통해 가속을 유도하기에 거리가 길수록 위력이 상승했다.
‘스나이퍼 모드로는 안 되겠어. 한순간에 최고의 위력을 내려면 에너지에 치중하는 게 나아.’
복잡하게 계산할 것 없이 가장 높은 화력을 일으키면 된다는 결론이었다.
‘파이어볼.’
에이미의 좌우에서 2개의 불기둥이 솟구치더니 머리 위에 구체의 형태로 합쳐졌다.
“……크다.”
용병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에이미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더 강하게.’
대장장이가 환경 요소를 조작해 화력을 높이듯 에이미도 산소 포화도를 높여 위력을 키웠다.
어느 시점부터 화염구에서 불똥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간다.”
눈을 부릅뜬 에이미가 손을 휘두르자 용암처럼 시뻘건 화염이 꼬리를 늘어뜨리며 날아갔다.
불꽃이 구체에 닿는 순간 미로의 시공이 그것을 통째로 빨아들였다.
어마어마한 불의 소용돌이가 구슬 내부에서 터질듯이 순환하는 게 보였다.
‘이건…… 세다.’
모두가 느낀 순간 점수가 떴다.
3,270.
최고 기록이었고, 여태까지의 결과를 봤을 때 이 점수를 넘기기는 어려울 듯했다.
궁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녀석들, 평범한 애송이가 아니야.’
마정탄의 위력이 더해진 화살이 1,020이었다. 그런데 기본 마법에 가까운 파이어볼의 점수가 그 세 배를 넘겼다면 기술 이전에 수준부터 차이가 난다는 뜻이었다.
에이미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뭐야?”
이것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미로의 시공이 붉은 빛을 사납게 뿜어내고 있었다.
“불합격? 도대체 어쩌라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막상 실패하자 약이 올라 미칠 것 같았다.
용병 쪽 마법사가 다가왔다.
“호호! 애송이가 그렇지 뭐. 이제는 내 차례인가?”
“잠깐! 스나이퍼 모드로 해 볼게! 도대체 몇 점을 요구하는 건지 끝장을 보겠어!”
에이미의 성격을 아는 시로네가 달랬다.
“일단 진정해. 집중이 흐트러지면 점수가 더 안 나올 거야. 기회는 또 있으니까.”
“아우, 진짜! 시로네, 나 무조건 다시 한다!”
“알았어, 알았어.”
시로네와 에이미가 제단을 내려가자 용병 쪽 마법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계열이네? 나도 화염이야. 네 수준에 맞춰 주는 의미에서 나도 파이어볼로 할게.”
에이미는 콧방귀를 뀌었다.
‘웃기네. 내가 짠 전략이 마음에 든 거면서.’
어쨌거나 탈락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 속은 부글거리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느새 표정이 진지해진 마법사가 손바닥 사이에 화염을 탄생시켰다.
그 상태로 두 팔을 쳐들자 불의 크기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에이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화력 강화 메커니즘을 순서대로 다 찍어? 아주 이기고 싶어서 안달이 났네.’
마법 시전에 동작이 들어가는 것을 매지컬 액션이라고 한다.
본래 마법은 정신의 산물이라 특별한 모션을 취할 필요가 없지만, 육체의 움직임이 정신을 강화시킬 수 있기에 만들어진 이론이었다.
현재 마법사의 모션은 교범에 나온 화력 강화 메커니즘이었다. 캐스팅이 느려 교전성은 떨어지지만 대규모 전쟁에서는 상황에 따라 사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마법사가 위력에 집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후우우우.”
마법사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자신의 공감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분명 최대치의 집중력일 테지만, 그것만으로는 위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타하!”
매지컬 액션의 정석을 보여 주듯 마법사는 있는 힘껏 두 팔을 휘둘렀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구슬에 흡수되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마법사는 구슬 내부의 불꽃 폭풍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잠시 후, 기대에 차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이, 이럴 수가…….”
점수는 1,330.
궁수의 라이트닝 애로보다 310점 높은 수치였다.
미로의 시공(5)
물론 육체 능력을 평가하는 검사에게 310점이라면 꽤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연계의 힘을 응용하는 마법의 영역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다.
“아냐! 이건…… 그래! 너무 긴장해서 그래. 적어도 2천은 넘길 수 있다고!”
동료들은 침묵했다.
수치상으로 비교했을 때 정신적 스케일의 차이는 여실했다.
궁수는 체념한 표정이었다.
‘끝났어.’
3천 점을 넘긴 붉은 머리의 소녀는 이곳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사람일 터였다.
자신의 동료인 마법사도 용병 사회에서는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루키였다. 그런 사람보다 2배 이상의 마법력을 보인다는 것은 동급 나이 중에서 최고의 재능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리안과 테스도 생각하는 바는 비슷했다.
실제로 에이미는 일행 중 유일한 졸업반이었으니 지금보다 높은 점수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 보았다.
반면 시로네의 실력을 알고 있는 에이미는 여기가 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시로네, 적당히 하지 말고 최대치로 해. 어쩌면 근소한 차이라 못 넘은 것일지도 몰라.”
“알았어. 최선을 다해 볼게.”
리더가 비꼬았다.
“하! 최선을 다하면 뭐 해? 결과를 내야지, 결과를. 이미 끝났어. 돌아가자고.”
시로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이 리더라니.
‘잠깐만, 혹시 이거…….’
희생과 성취의 방의 독특한 규칙. 어쩌면 처음부터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로네.”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로네는 생각을 접고 제단으로 향했다.
일단은 마지막 카드를 확인해 보는 것이 순서였다.
시로네의 손바닥 위로 빛이 탄생하더니 수많은 광자가 점멸하며 크기를 키웠다.
“광자 출력? 저걸로 무슨 충격을 내?”
마법사가 황당하게 물었으나 이내 시로네가 만든 빛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백색으로 변한 빛의 구체가 무서운 속도로 진동하고 있었다.
‘포톤 캐논.’
시로네는 팔을 크게 휘둘렀다.
약식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매지컬 액션이었고, 더욱 강력해진 위력의 섬광이 미로의 시공을 정확히 강타했다.
“…….”
구슬에 떠오른 숫자에 모두 말을 잃었다.
4,783.
예상을 초월하는 충격력도 문제지만 마법을 공부한 마법사는 경악할 지경이었다.
‘광자 출력이 아니야?’
지금도 수많은 마법사들이 비물리 계열에 물리력을 담는 퓨전 마법을 개발하고 있지만, 빛에 충격력이 있다는 것은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게다가 저 수치…….’
구슬에 대고 시연해서 그렇지, 실제 전투 상황이라면 어디를 맞아도 치명적이었다.
‘똥 밟았어. 저 녀석들, 우리보다 강하잖아?’
첫 만남부터 무시했기에 여태까지 깨닫지 못했던 사실들이 비로소 피부로 느껴졌다.
동료들도 불안한 표정이었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 싸움이 일어난다면 피를 보는 건 시로네 일행이 아닌 자신들이었다.
용병들이 뒷감당을 생각하는 가운데 시로네는 멍한 표정으로 구슬을 보았다.
최강의 일격을 날렸는데도 구슬이 보란 듯이 적색 빛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허어.”
힘이 쭉 빠졌다.
막연하게 5천 점이 합격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히 포톤 캐논으로 이보다 더 위력을 높일 수는 없을 듯했다.
“한 번만 더…….”
에이미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제야 내 기분을 알겠어? 하지만 정말 허무하네. 몇 점이 나와야 통과인 거야?”
“모르겠어. 단일 충격으로는 안 될 것 같고, 레이저를 시전하면 어떨까 싶기도 한데.”
“아, 그러네! 에너지를 누적시킬 수 있잖아.”
고려해야 할 변수가 남아 있지만 시로네도 시도 정도는 해 보고 싶었다.
“일단 다음 차례가 남았으니까. 한 바퀴 돌고 나서 해 보자. 뭐 해요? 안 할 거예요?”
시로네가 리더에게 말했으나, 그는 똥 씹은 표정으로 서 있기만 했다.
순서가 진행될수록 올라가는 점수를 보자 차마 나설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검사인 그가 낼 수 있는 점수라고는 기껏해야 몇백 점일 테니까.
“쳇! 됐어! 이미 끝났다고!”
리더는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동작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문고리를 돌려도 철문은 밖에서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모두가 뒤를 돌아보자 백색 문신의 남자가 말했다.
“너희는 하나다. 1명이 평가를 받는 순간부터 모두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
궁수의 통역을 들은 시로네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희생과 성취의 방은 의견 통합을 넘어 행동마저 일치해야 하는 규율이었다.
마법사가 말했다.
“할 수 없지. 일단 하고 와.”
“아, 짜증 나게! 해 보나 마나 한 걸 왜 자꾸 시키는 거야? 멍청한 녀석들!”
미리 밑밥을 깔아 두는 리더의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야 한다는 긴장감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시로네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렇구나. 이건 정말 잔인한 규칙이다.’
백색 문신의 남자에게서 들은 모든 내용은 하나의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완벽한 신뢰.
생각해 보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평가 방식이었다.
화력만 놓고 보면 검사보다 마법사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
그렇다고 실전에서 검사가 마법사보다 약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설령 마법사가 바위를 부수고 땅을 가른다고 해도, 검사는 그 마법사를 단칼에 벨 수 있는 생물학적인 능력에 특화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마법의 위력을 측정하는 것도 문제야.’
원거리 마법을 전공한 에이미가 스나이퍼 모드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훨씬 높은 점수가 나왔을 터였다.
예를 들어 플레임 스트라이크가 수백 미터에 달하는 에어 터널을 통과한다면 어떨까?
‘원래 그게 스나이퍼지.’
그런데 이 평가 방식은 각자의 개성과 장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핵심은 신의 언어였다.
‘충격량을 수치로 보여 준다. 왜지? 단순 위력만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제한된 환경이라면 전공에 따라 점수의 편차는 크게 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참가자 전원이 점수를 확인해야 하는 구조.
거기서 발생하는 감정은 하나였다.
‘점수에 대한 집착. 동료가 자신보다 높은 점수를 받으면 불안해진다. 자신보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무시하게 된다.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불화는 생길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 규칙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1명의 희생을 통해 1명을 통과시킨다.
“후우.”
이 방의 진의를 깨달은 시로네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미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단을 만든 것일까?
어떤 식으로든 내분을 일으키는 규율, 게다가 통과 기준은 사망이었다.
‘만약 완벽한 팀을 원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게 케르고 자치 지구로 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 이렇게까지 해서 루프를 사야 한다고? 분명 자치 지구에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야.’
혼란스러운 가운데 에이미가 속삭였다.
“시로네, 저 사람 끝나면 그냥 나가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