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3
나름 머리를 쓴 리안은 손등으로 구슬의 표면을 때렸다. 별다른 반응이 없자 조금씩 힘의 강도를 높이며 두들겼다.
“응?”
어느 순간 구슬의 안개가 사라지면서 투명한 구슬에 1이라는 숫자가 떴다.
“1? 이게 뭘 뜻하는 거지?”
리안의 말에 시로네는 퍼뜩 떠올렸다.
“신의 언어가 답한다고 했지. 그게 숫자였던 거야. 리안, 혹시 모르니까 일단 물러서.”
리안이 무덤덤하게 두어 걸음을 후퇴하자 구체가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불합격이군.”
결과는 그게 전부였다.
3초 정도를 더 지켜보았으나 위협적인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흐음, 알겠어. 충격을 가하면 구슬에 숫자가 뜬다. 백색 빛이 합격이라는 거지?”
규칙을 이해한 리안은 다시 제단의 중앙으로 돌아가 거대한 직도를 뽑아 들었다.
용병들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진짜로 휘두르려는 거야?”
물론 그러려고 가지고 다니는 것이겠지만 막상 눈으로 봤을 때의 박력은 엄청났다.
거구의 전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합금이겠지. 저게 전부 철이라면 스키마를 연다고 해도 제대로 다루기 어려워.”
그러거나 말거나 시로네 일행은 신이 났다.
“리안! 있는 힘껏 때려 버려!”
특별히 위험한 트랩이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 남은 건 어떤 점수가 나올 것인가였다.
“걱정 마. 아예 부숴 버릴 테니까.”
리안은 양손으로 검을 쥐고 자세를 낮추었다.
부끄럽게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검.’
물론 훔쳤지만.
‘개시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내 전심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
리안의 눈이 부릅떠졌다.
“좋았어! 그럼 간다!”
온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돌진한 그가 두 팔을 치켜들고 대검을 내리찍었다.
절로 눈이 감기는 박력이었으나 놀랍게도 굉음 대신 둥 하고 낮은 음파가 들렸다.
구슬은 미동조차 없었고, 심지어 그에 대한 반작용도 느껴지지 않았다. 리안이 내지른 힘을 완전히 흡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으으으!”
리안은 내려찍기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전신의 힘이 완전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머릿속에서는 구슬에 떠오를 숫자가 궁금했다.
합격인가 불합격인가?
구슬의 안개가 걷히더니 241이라는 숫자를 드러냈다.
산술적으로 주먹으로 제법 세게 쳤을 때의 241배라는 뜻이니 괜찮게 해낸 것 같았다.
하지만 구슬은 이번에도 붉은빛이었다.
리안은 약이 올랐다.
“아, 진짜 아깝네! 시로네, 한 번만 더 하면 안 될까?”
정보 수집으로 접근하기는 했으나 막상 불합격 판정을 받자 승부욕이 발동했다.
“괜찮겠어? 다리가 풀려 보이는데?”
실제로 구슬에서 멀어진 리안의 육체는 완전히 이완된 듯 힘이 빠져 있었다.
“아, 이거? 충격을 전부 흡수하더라고. 그래도 위험하지는 않아. 조금 지나면 회복될 거야.”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런 구조구나. 핸디캡이 될 수는 있겠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네.”
리안은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이거 진짜 열 받아. 쳇! 스키마만 할 수 있었어도 합격할 것 같은데…….”
용병 전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뭐야, 결국 합금이었군. 스키마도 못하면서 여태까지 설친 거냐? 비켜. 내가 해 주지.”
용병 쪽에서 흔쾌히 하겠다고 나서자 리안도 할 수 없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입으로는 ‘한 번 더’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전사가 말했다.
“저 애송이가 241이 나왔다 이거지? 그럼 나는 최소 2천은 넘겠는데?”
소매를 걷은 전사는 도리깨를 훙훙 휘돌렸다.
허리춤에 손도끼도 차고 있었지만 리안의 시도를 본 바로는 도리깨가 충격을 주기에 용이할 듯했다.
“후우, 후우.”
연거푸 숨을 크게 들이마신 전사의 근육이 부풀기 시작했다.
근섬유가 크게 굵어진 건 아님에도 몸 전체에서 변화가 일어나자 1.5배는 커진 듯했다.
에이미가 살짝 고개를 틀며 말했다.
“테스, 저 사람…….”
“응. 스키마 유저야. 근력 강화 계열의 빌드를 탄 것 같아. 하긴, 전사라면 당연하지만.”
“이야아아! 간다아아!”
덩치만큼 우렁찬 함성을 내지른 전사가 돌진했다. 여전히 손은 도리깨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박살을 내 주지!’
양손무기가 아니라도 회전력이 더해지면 그에 버금가는 파괴력이 나올 터.
그런 생각으로 원수를 죽이듯 도리깨를 구슬에 내리찍었다.
둥 하는 저음을 내며 동작이 정지했다. 리안처럼 힘의 박탈감이 크게 밀려들었다.
“으으으으!”
모든 힘이 흡수되자 비로소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전사가 소리쳤다.
“끝났어! 제대로 들어갔다고!”
보기에도 괜찮은 기술이었기에 지켜보는 사람들도 기대를 가지고 구슬을 살폈다.
248이라는 숫자가 떴다.
“뭐, 뭐야? 말도 안 돼! 248? 저 애송이보다 고작 7점 높다고? 이거 고장 난 거잖아!”
테스가 걸어가며 말했다.
“그게 무슨 구멍가게 장난감인 줄 알아요? 빨리 내려와요! 이미 빨간불 들어왔으니까.”
“인정 못 해! 한 번만, 한 번만 다시 할게!”
“알았으니까 나오라고요. 체력이나 회복하고 도전하든 말든 해요.”
전사는 억울한 듯 얼굴을 구기며 제단을 내려왔다.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말이 돼?’
어릴 때부터 힘에서는 져 본 적이 없다. 거기에 근력 강화 빌드를 했는데도 248이라니.
“응? 잠깐.”
무언가를 깨달은 전사는 황당한 눈빛으로 리안을 돌아보았다.
분명 저 애송이는 스키마를 열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241?’
말인즉슨 육체의 힘만으로 조금 전 자신과 같은 위력을 냈다는 소리였다.
“뭐, 뭐야? 너 스키마 못하는 거 맞아? 거짓말이지? 분명 거짓말일 거야.”
리안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거짓말을 해? 실패했으면 조용히 다음 차례나 지켜보자고.”
불합격을 받은 시점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건 친구인 테스가 어떤 기록을 낼 것인지였다.
테스가 제단 중앙에서 레이피어를 뽑자 빙판이 갈리듯 서늘한 소리가 났다.
교본과도 같은 우아한 동작에 사람들이 넋을 잃고 지켜보았다.
‘은근히 긴장되네.’
테스는 검을 세우고 날을 확인했다.
세검으로 분류되지만 강도는 휘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고 갑옷의 약한 부분을 뚫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리안이 물었다.
“불안하면 내 검으로 할래? 무겁기는 해도 스키마를 이용하면 다룰 수 있잖아.”
테스가 손톱으로 검 끝을 튕기자 벌의 날갯짓 같은 소리를 내며 검이 울었다.
“괜찮아. 충격을 흡수한다면 내구력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솔직히 꽤나 궁금하거든.”
북쪽 구슬을 타깃으로 삼은 테스는 거기로부터 가장 먼 지점까지 물러섰다.
구슬에 급소는 없겠지만 스키마를 통한 가속은 온전히 충격으로 전환될 터였다.
기합은 없었지만 그보다 섬뜩한 무음으로 테스는 돌진했다. 무브먼트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그녀답게 지면과 거의 수평을 이루는 각도였다.
구슬 앞에 도착하는 순간 땅 밑을 미끄러지는 세검이 비행하듯 떠올랐다.
완벽한 팡트 동작으로 팔을 뻗자 지켜보는 자들은 섬광이 터진 착각을 했다.
“우와.”
베기 검술이 중간 지점에서 최대 속도라면 테스의 찌르기는 종말 속도에서 극한을 찍는다.
이런 특성이 스키마를 통해 증폭되면서 짜릿한 눈의 착시가 발생한 것이었다.
미로의 시공(4)
운동에너지가 흡수되는 와중에도 테스의 신체 밸런스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거리, 자세, 가속 등 모든 게 완벽한 일격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숫자로 집중되었다.
“오, 오오.”
442라는 숫자가 떴다.
처음으로 400대를 넘긴 상황에 테스는 침착하게 합격과 불합격을 기다렸다.
구슬이 적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안 되네. 아쉽다.”
테스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앞의 두 사람처럼 미련이 남았으나 그들과 똑같이 하기에는 아무래도 품위가 떨어지는 행동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전사가 소리쳤다.
“이런 젠장! 저거 진짜 고장 난 거 아냐? 레이피어로 찔렀는데 어떻게 둔기보다 더 나와?”
괴력 하나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그였으니 여자에게 패한 게 속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테스의 입장에서는 그저 한심할 따름이었다.
“탈락했는데 그런 걸 따져서 뭐 해요? 그리고 힘을 키우는 거랑 힘을 다루는 건 완전히 다르거든요? 쇠질만 하지 말고 기술도 좀 연습하시죠?”
“뭐야? 지금 내 힘을 무시하는 거야? 이 근육 안 보여? 너 이런 거 있어?”
전사가 이두박근을 드러내자 테스는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마초랑 기술을 논하느니 차라리 소하고 대화를 하는 게 편할 터였다.
궁수가 나섰다.
“검사 라인은 끝났나? 그럼 이제 내 차례로군.”
이전의 결과로 봤을 때 물리적 충격력만으로는 높은 점수를 얻기 힘들 듯했다.
활 또한 물리 공격이지만 궁수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비록 돈이 드는 방법이라 속은 쓰리지만 애송이들에게 실전을 보여 주기에는 제격이었다.
“그걸 사용할 생각인가 보네.”
마법사의 말대로 궁수는 화살을 꺼내 화살촉을 제거했다. 그런 다음 바지에 달린 가죽 주머니에서 독특한 형태의 화살촉을 꺼냈다.
촉이 날카롭지 않고 아몬드처럼 둥그스름했는데 흔한 철색이 아닌 보랏빛이었다.
“흐음, 이 정도면 되겠지?”
나사 방식의 화살촉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에이미가 눈을 빛냈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었다.
“시로네, 마정탄이야.”
“아하.”
수업 시간에 배운 적이 있었다.
자연계에서 극소량만 추출되는 광물인 마정석에 연금술을 이용해서 마법을 주입시킨 물건이었다.
마정석이 결정되는 원리는 미스터리지만 자연계의 독특한 화학반응이라는 게 정설이다.
빙결의 마정석은 1년 내내 영하권인 북극의 오지나 남극에서 채취가 가능하며, 번개의 마정석은 천둥 번개가 끝없이 치는 건조한 고원이나 열대우림에서 발견된다.
그렇게 채취한 광물은 특정 현상에 대해 친화력을 보이는데, 마도공학자들은 그러한 성질을 이용해 마정석에 마법을 저장하는 데 성공했다.
“저게 그 비싸다는 마정탄이구나. 우리들이 사용하는 마법하고 비교하면 어때?”
“딱히 위력이 세거나 그렇지는 않아. 다만 마법사가 아니라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메리트가 엄청나지. 아마 저거 하나에 1골드는 할 거야. 실제로 화살촉에 들어가는 마정탄의 무게는 10그램밖에 안 되는데도 말이야.”
시로네는 혀를 내둘렀다.
달랑 활시위 한 번 튕기는 데 1골드라니.
그렇다면 역사책에서 본 궁수 3천 명의 마정탄 포화는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는 것일까?
“어떤 의미로 대단한 물건이네.”
“그렇지. 마정석이 활용되는 과정은 하나의 산업이야. 그중에서도 군수 물품인 마정탄은 국가 독점 사업이고. 공인 면허가 없으면 불법 무기 제조로 잡혀갈걸. 네이드에게 물어보니까 마정탄만큼은 손을 대기가 좀 그렇대. 하긴, 걸리면 퇴학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닐 테니…….”
“네이드에게 물어봤어?”
“응. 학기 끝나기 전에. 사실 큰오빠가 본가에 온 이유가 궁수 부대 마정탄 납품 건 때문이거든. 1년 전부터 방산업체가 비리를 저지르는 것 같은데 어느 단계에서 돈이 새어 나가는지 몰라서. 네이드 녀석, 공정 과정부터 제조 기술까지 전문가 수준으로 알고 있더라.”
시로네가 아는 네이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궁수는 마정탄을 화살에 장착하고 제어장치를 풀었다.
충격 반응식 마정탄은 위급 상황이 아닐 시 안전장치를 걸어 두어야 한다. 우발적인 상황으로 주머니에서 폭발하면 다리 한쪽이 날아가 버릴 테니까.
“어이, 라이트닝 애로를 쓸 거다. 가까이 있으면 위험하니 다들 물러서.”
시로네 일행은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미로의 시공이 마법력을 흡수시킬 가능성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궁수가 시위를 당기자 장내의 긴장감이 더욱 올라갔다.
시위를 놓는 것과 동시에 짧은 거리를 날아간 화살이 미로의 시공을 강타했다.
예상대로 마법력까지 흡수하는 모양인지 구슬 내부에 푸른빛의 전기가 번쩍거렸다.
일행은 구슬에 숫자가 뜨기를 기다렸다.
1,020.
“우와.”
처음으로 천 단위의 숫자가 뜨자 궁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굳었으니, 구슬이 붉은색으로 빛을 냈기 때문이다.
“이래도 불합격이라고?”
이어서 드는 건 본전 생각이었다.
짜증이 난 그가 몸을 틀며 제단에서 내려왔다.
“쳇! 이게 뭐야? 돈만 버렸네.”
시로네가 말했다.
“그래도 정보는 얻었어요. 원거리 공격은 육체의 힘이 흡수되지 않아요. 곧바로 재시도를 할 수 있죠.”
궁수가 눈을 깜박거렸다.
“응? 아하, 그렇군.”
“어떻게 할 거예요? 다시 해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