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74
“안녕?”
시로네가 높게 들자 데이지가 방긋 웃었다.
“하하! 마음에 들었나 보네? 역시 내 딸이라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모두가 말을 거는 와중에도 에이미는 멀찌감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뭐야?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똑같잖아.
약간은 서운해진 에이미가 몸을 돌리자 테스가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뭐 해? 빨리 에이미에게 가 봐. 설마 무한무인지 뭔지에서 기억을 잃은 건 아니지?”
“…….”
시로네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학교 측에서 기자들을 내보내느라 결혼식은 예정보다 약간 늦어졌다.
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올리비아는 알페아스와 사별한 에리나를 말했다.
그녀에 대한 고마움, 미안한 감정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져갈 책임들.
알페아스가 짧게 덧붙였다.
“그게 노년의 사랑이지.”
하객들이 웃음을 터트렸고, 결혼식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피로연 자리에서, 시로네는 6년 만에 처음으로 에이미를 만났다.
“에이미.”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장내가 고요해지고 모두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오랜만이야.”
“흥, 이제 와서? 널 기다린 6년보다 여기 결혼식이 더 길었던 거 알아?”
“미안해.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어. 내 생각이, 이 마음이 정말 맞는 것인지.”
에이미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무한무의 세계에서…….”
시로네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으나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존재하지 않아. 내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고, 설명할 방법도 없어. 그렇게 존재하지 않은 채로 있었어. 시간도, 공간도, 그 어떤 것도.”
사람들은 전율했다.
“그건 아주 무서운 상태일 거야. 하지만 그 무섭다는 생각조차 없기에 완벽한 무無겠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거야.”
“그랬구나.”
존재하고 난 뒤에야 무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로네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도 나는 몰라.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에 있는지. 너를 만나기 위해서라 짐작하지만, 확신을 해야 했어. 그러지 않으면 거대한 무의 공포에 파묻혀 존재 의미를 잃어버릴 테니까. 그래서…….”
“세계를 여행한 거야?”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류를 위해 일하고, 가족을 돌보고, 나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모든 작업을 끝냈지. 하나씩, 하나씩, 소거해 나갔던 거야. 너를 만나기 위해.”
그렇게 보낸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확신할 수 있어. 내가 무한무의 세계에서 돌아온 이유는…….”
시로네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사랑합니다.”
시간도, 공간도, 나라는 존재마저 없이 영원의 세계에서 떠돌던 착각들이.
“당신이…….”
이 순간 완벽한 확신이 되어 미소를 짓게 했다.
“당신이 나의 무한입니다.”
세상이 멈춘 것 같은 풍경 속에서 에이미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윽. 흐윽.”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테스는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좋겠구나, 에이미.’
모든 사람들이 흐뭇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네이드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 자!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자. 어차피 다음에 모일 이루키 결혼식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푸하하하!”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결혼식을 찍었던 광학 사진기가 설치되었다.
비로소 웃음을 되찾은 에이미가 시로네를 돌아보더니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나도 찍을래.”
“좋아. 너는 가운데 서. 페르미 너는 저~쪽으로 가고. 시로네, 뭐 해? 빨리 와.”
“그래.”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까르르 웃는 아기를 바라보며 시로네는 생각했다.
‘우리는.’
언젠가 별을 여행할 것이다.
“하나, 둘, 셋 하면 데이지 하며 찍는 거야. 뭔지 알지?”
별들의 비밀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알았어. 어우, 좁아. 빨리 좀 해.”
차별과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적 정신 체계를 이룩하게 되는 그날.
“자, 모이세요. 찍습니다.”
우주의 끝에서 또 다른 우주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우리는 끝없이 영원한…….
“데이~지!”
무한으로.
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초의 준동자 (1)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는…… 연쇄살인마를 본 적이 있습니까?
***
서기 9년. 10월 31일.
낙엽이 흩날리는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교정을 한 소녀가 걷고 있었다.
웨나 위저드.
극악 사탄을 죽인 장본인이자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강의 마법사였다.
키는 170센티미터, 펌을 먹인 금발 머리가 어깨에서 갈라져 흘러내렸다.
단정한 외모와 눈빛만이 10년 전 어릴 때의 모습을 기억하게 할 뿐이었다.
“벌써 바람이 차네.”
최후의 전쟁이 끝난 이후, 시로네는 위저드에게 마법학교 입학을 권유했다.
7살의 천재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삶이라는 판단이었다.
위저드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구나.’
졸업반 서열 1위인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다음 달에 있을 졸업 시험뿐.
당연히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선상에서 경쟁을 치를 테지만, 그녀가 졸업 시험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위저드!”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갈색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소녀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단짝 친구인 사사였다.
“뭐가 그렇게 급해?”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위저드와 달리 사사는 서운한 표정이었다.
“말도 없이 훈련에 불참하면 어떡해? 그것도 오늘 대인 전투 평가인데.”
오늘 위저드의 상대는 22살의 니콜라이로 졸업반 서열 3위의 강자였다.
“알잖아, 남학생들하고는 잘 안 싸우는 거. 특히 니콜라이는 자존심이 세서.”
위저드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에이, 니콜라이가 너는 인정하잖아. 솔직히 너랑 하는 대인 전투는 싸우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게 목적인데, 뭐. 그 녀석, 되게 실망했어.”
과연 그럴까?
“사람 마음은 모르는 거야. 사사.”
다시 풍경을 향해 돌아서는 위저드의 옆모습을 사사는 지그시 살폈다.
“위저드, 솔직히 심란하지?”
“응? 뭐가?”
“그렇잖아. 결혼식 갔다 온 뒤부터 완전 센치해져 가지고. 역시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위저드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라니까.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어. 스승님하고 나랑 몇 살 차이가 나는데.”
“흐음.”
사사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으나 친구의 마음에 불청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아아, 그날 진짜 재밌었는데.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은 다 온 거 같더라. 음식도 엄청 맛있고. 특히나 우리 공연, 반응 죽였잖아.”
“하하! 그거?”
시로네의 결혼식을 떠올린 위저드도 웃음이 터졌다. 확실히 멋진 공연이었다.
3일 전.
토르미아의 수도 바슈카.
마야의 축가가 끝나자 천 명에 가까운 인파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브라보!”
세계 최고의 디바의 공연을 본 것만으로도 참석한 의미가 있을 정도였다.
마야는 신랑 신부에게 다가갔다.
“결혼 축하해! 시로네, 에이미.”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에이미가 꽃을 든 채로 마야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공연 때문에 바쁠 텐데 이렇게 와 줘서. 혹시 무리한 거 아니야?”
“호호! 어떻게 빠지겠어? 에이미의 부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케이든이 걸어왔다.
이제는 공식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도 조만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축하한다, 시로네.”
“고마워.”
이제는 서로가 사랑을 찾았기에 결혼식에 부담 없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케이든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가던 마야가 돌아보며 소리쳤다.
“에이미, 끝까지 잘해! 파이팅!”
“아자.”
에이미가 해맑게 웃으며 주먹을 치켜들자 하객 쪽에서 폭소가 터졌다.
네이드가 사회를 이어 갔다.
“세계 최고의 디바! 마야 씨의 공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기에는 뭔가 좀 아쉽죠?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알페아스 마법학교 후배들의 특별 공연이 이어지겠습니다!”
“특별 공연?”
시로네와 에이미는 서로를 돌아보았으나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순서였다.
“어, 어?”
하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연주되면서 무대 위로 3명의 소녀가 뛰어올라 왔다.
하얀 다리가 허벅지까지 드러난 의상도 압도적이지만, 가운데에서 춤을 추는 사람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최강의 마법사였다.
“위저드?”
시로네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 반면 하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최고다! 이게 결혼식이지!”
10대의 활기 넘치는 안무를 선보이던 소녀들이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몸을 바짝 밀착시키더니 저마다 웨이브를 타기 시작했다.
푸 하고 웃음이 터진 에이미가 입을 가리며 허리를 숙이고, 시로네는 혹시라도 몸이 닿을까 싶어 아예 굳은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으으.”
시선을 돌려 구원 요청을 해 보지만 네이드는 숨이 넘어갈 듯 웃고 있을 뿐.
‘저 자식…….’
넌 나중에 결혼식 한 번 더 해.
“시로네 오빠아.”
손 키스를 보낸 위저드가 입술로 쪽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다시 무대로 돌아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깔깔대고 웃는 것이었다.
“하, 하하.”
시로네의 표정도 좋은 볼거리였다.
한편 루피스트, 플루와 함께 하객석에 앉아 있던 알비노는 사방에서 방방 뛰는 젊은 하객들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거참, 요즘은 ‘식’의 의미가 변한 건가? 이루키가 4살 때 딱 저러고 다녔는데.”
뒷자리의 플루가 상체를 굽히더니 알비노의 의자 등받이에 팔을 올렸다.
“종전 세대잖아요. 요즘 애들은 저희 때하고도 달라요. 긍정적이고 좋은데요, 뭐.”
알비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잉! 이 나라 토르미아가 장차 어찌 될는지.”
“어우~.”
플루가 야유했다.
“자꾸 그러니까 젊은 층에서 미움을 받는 거죠. 실제로 그런 분도 아니시면서.”
“껄껄! 안 그러면? 끼워 주기는 하고? 마음껏 웃는 것은 젊은이들로 족해. 적어도 늙은 어미 개는 현실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꽉 잡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자네도 열심히 해. 비서실장 정도로 안주하다가는 나중에 어디 가서 에헴 소리도 못 낼 테니까.”
옆자리의 루피스트가 동의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치.”
플루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자리로 돌아가자 알비노는 다시 위저드를 살폈다.
“그래, 올해 졸업이라고?”
“네. 시로네와 한 약속이기도 하고, 당사자도 그걸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태는?”
“10년 동안 특별한 이상 증세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교우 관계도 원만하고요. 내년에는 협회에 소속되어 제1급 대마법사 칭호를 받을 예정입니다. 즉, 18살에 제1급. 이례가 없는 일이지만, 어차피 반대할 사람도 없죠.”
알비노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