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09
물론 위저드 또한 강함의 정의에 따라 꽤 많은 분야에서 최강이지만.
문제 해결 능력.
어째서 수많은 강자들이 그녀가 아닌 시로네를 높게 쳐주는지 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지금도 시로네는 그녀를 대신해 인류의 책임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이제는 내 차례야.’
언제까지 등에 업혀 갈 수는 없기에 위저드도 주먹을 쥐며 눈을 빛냈다.
“크으으으!”
제르비스가 일어섰다.
즉 쓰러졌었다는 뜻이기에, 본체에 누적된 정신 대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완전히 망가졌군.”
가올드의 말에 씽이 이것 보라는 듯 손목을 꺾으며 제르비스를 가리켰다.
에덴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제르비스가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크크. 크크크.”
실성한 것일까?
미로의 의심과 달리 고개를 든 제르비스의 눈에는 승리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긴 줄 알았나? 아니, 이 싸움은 절대로 끝나지 않아. 너희들의 패배다.”
전장의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소용돌이처럼 구겨지고 있었다.
시로네가 불렀다.
‘미카.’
-현재 우주 공간에 구현된 사탄의 울티마 수치는 98.9퍼센트입니다. 대략 10분 전부터 더 이상 수치는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가올드의 파계로 준동경계중천사의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 모양이었다.
따라서 회피의 여지는 있을 테지만, 98.9퍼센트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죽어라.”
제르비스가 내뱉는 순간 사탄이 행성의 대륙을 향해 창을 집어 던졌다.
신의 징벌(악).
찰나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보랏빛 섬광이 대기권을 뚫었다.
‘온다. 누구지? 시로네인가?’
전장의 소수는, 신경 능력을 초월한 직감으로 창의 추락 지점을 예측했다.
‘……위저드?’
왜? 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전에 신의 징벌이 그들의 시야에 반짝였다.
동시에 위저드의 화신이 피어올랐다.
‘무상신.’
마지막으로 무한무에 머문 시간이 1시간 30분 이상이기에, 이번이 삶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
‘해낼 거야! 나는…….’
영원히.
‘아.’
사라지는 것이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린 세상 속에서 위저드는 보았다. 하비츠가 그녀를 향해 검지를 대는 것을.
쉬-.
다음 순간이었다.
소리도 충격도 없이, 보랏빛 섬광이 위저드의 명치를 깨끗하게 꿰뚫었다.
모두의 목소리가 도달한 건 그때였다.
“위저드!”
반응은 없었다.
위저드는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주먹보다 큰 구멍이 휑하니 뚫려 있었고, 그곳에 심장은 보이지 않았다.
“아, 어.”
쿵 하고 무릎이 꺾였다. 그 충격에 흔들린 상체가 땅을 향해 기울어졌다.
모두는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다.
“위, 위저드가…….”
죽었다.
***
-급속 윤회 9,998회 차가 종료되었습니다.
캡슐이 증기를 뿜어내며 열렸다.
잠시 후, 카이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카이! 거의 다 왔어! 이제 곧……!”
에스카니아는 말을 멈췄다.
“카, 카이.”
비명도, 눈물도 없다. 반쯤 감긴 카이의 눈빛에는 공허함만 담겨 있을 뿐이었다.
살며시 벌어진 그의 입술 사이로 주륵, 맑은 침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카이, 정신 차려.”
에스카니아가 몸을 흔들어 보지만 그는 허공을 응시할 뿐, 반응이 없었다.
카이의 친모 스스야가 말했다.
“소용없어.”
에스카니아가 소리쳤다.
“이제 만족하세요?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으니 속이 시원하냐구요!”
스스야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무엇을 보았을까?”
“뭐라고요?”
“어떤 것을 경험하고, 또 느꼈을까? 카이,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거니?”
에스카니아는 카이를 돌아보았다.
침을 폭포수처럼 흘리며 허무하게 전방을 응시하던 그가 나직이 내뱉었다.
“아.”
카이 루트.
9,998회의 윤회 끝에 삶의 무상함과, 삼라만상의 진실, 무한무의 실체와, 그 실체 속을 흐르는 인간의 번뇌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다.
***
시로네는 위저드의 시체를 살폈다.
몸통이 정확히 꿰뚫린 그녀의 몸에서는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죽었다.’
아마도 찰나의 망설임.
직감적으로 최후라는 걸 인지했기에 그녀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겠지만.
‘과연 그럴까?’
또 하나의 가정이 있다.
그리고 그 정답은 페르미가 가지고 있을 터였다.
“크하하하!”
제르비스가 웃으며 말했다.
“어떠냐, 야훼? 내가 왜 위저드를 죽였는지 알고 있겠지? 이제 다 끝났어. 죽고 또 죽여라. 이 세계의 멸망을 신이 되어 지켜봐 주마.”
토르미아 군대는 싸울 의지를 잃었다. 위저드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선을 넘었구나, 제르비스.”
시로네가 돌아섰다.
“싸우지 않고 도망치겠다니. 고작 이 정도가 네가 원하는 결말이었던 거야?”
제르비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궤변 늘어놓을 생각 하지 마! 넌 졌어! 무슨 짓을 해도 날 이길 수 없다고.”
“그렇겠지.”
순순히 포기할 성격이 아니기에 자리의 모두는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시로네는 차분했다.
“하지만 너도 이런 승리를 원한 건 아니잖아. 이기든 지든, 달라질 건 없으니까.”
제르비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딘가 공포를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닥쳐.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한 가지는 알지.”
시로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들, 여태까지 사건에 휘말려 죽은 수많은 사람들도.”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제르비스, 이곳은…… 너의 생각이지?”
제르비스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러자 세계 전체가 진동하듯 흔들렸다.
심리 상태가 위태롭다는 뜻이었다.
에덴이 물었다.
“무, 무슨 소리야? 이게 다 누군가의 생각이라고?”
“그래. 우리가 겪은 일은 제르비스의 망상에 지나지 않아. 지금 네가 나에게 묻는 그 말도, 단지 제르비스가 그렇게 생각한 것일 뿐.”
제르비스가 고개를 들었다. 겁에 질린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보이지 않았다.
“너, 도대체 누구야?”
“…….”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어, 어째서? 그 말은 내가 생각한 게 아니야.”
이 모든 것은 제르비스의 생각이다.
그런데 자신이 머릿속으로 움직이던 인물이 갑자기 통제를 벗어난 것이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제르비스는 부정했다.
“이건 내 생각이야! 내 상상이라고! 그래, 정신분열! 쇼크 때문에 다른 인격이……!”
“그렇지 않아.”
시로네가 말했다.
“나도 처음엔 의심했어. 내가 깨달았다면, 그 순간 너도 눈치채야 했으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왜냐하면 네가 지금 상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현실에서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야.”
“……뭐?”
세상이 두 번째로 흔들렸다.
“제르비스, 너의 생각이 곧 현실이고, 현실이 곧 너의 생각이야. 한 치의 다름이 없지. 그렇게 연산이 되는 이유는, 네가 바로 앙케 라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너의 일생을 괴롭혔던 살의의 충동의 정체야.”
신(神)은 인간의 가장 큰 비극에 깃든다.
“…….”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일행도 깨달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했다.
‘생각 속이라니. 아니, 이것과 똑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시로네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밝힐 수 없었던 거야. 네가 알게 되면 너는 다른 사고를 하게 될 테니까.”
제르비스는 말이 없었다.
여전히 모르겠다.
태어날 때부터 느낀 살의의 충동. 구속당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건 망상뿐.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 자신의 생각과 현실을 구별할 수 없는 지경까지 추락한 것은.
“내가…… 앙케 라였다고?”
제르비스는 허탈하게 웃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시로네는 실수한 것이다.
“어리석은 놈. 그걸 안다고 뭐가 달라지지? 천 번을 죽였으니 알 텐데? 위저드 없이는 치명타를 입힐 수 없어.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래서 밝힌 거야.”
시로네가 말했다.
“위저드가 죽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네가 이길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무슨 헛소리를…….”
그때 쿵 하고 세계가 울렸다. 이번에는 제르비스가 일으킨 진동이 아니었다.
“컥!”
눈이 휘둥그레 커진 제르비스가 무릎을 꿇었다.
엄청난 쇼크가 밀려들었다.
“설, 설마?”
“그래.”
조금 전의 진동으로 시로네는 직감했다. 특정 사건이 분기되었음을.
“현실에서, 위저드는 죽지 않았어.”
제르비스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행이다. 안 늦었네?”
모두가 고개를 돌린 곳에 페르미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뒤늦게 거대한 새가 날아와 카니스 팀과 세리엘을 지상에 내려놓았다.
페르미가 말했다.
“빨리 확인하고 싶어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여기가 생각 속이라는 거지?”
시로네가 못 미더운 눈초리로 물었다.
“제대로 한 거 맞지?”
“좀 보고.”
페르미는 위저드의 시체로 다가갔다. 사인(死因)을 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런 식으로 되는구나. 오차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인간의 뇌는 참 대단해.”
제르비스가 물었다.
“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