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02
그것이 바로 샤이닝 보이 단테의 전투 방식이었다.
4. 전투 시뮬레이션 (9)
“크윽!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보일은 단테의 정신력을 1퍼센트도 깎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대마법사와 싸운 게 아니다. 동갑내기 동급생일 뿐이고 자신도 소환 마법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천재였다.
결국 디테일의 차이였다.
단테는 전투 중에 발생했던 수천 개의 사소한 변수를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극단적인 차이를 벌린 것이었다.
“찌질하게 굴지 말고 빨리 하는 게 어때? 약속했잖아?”
단테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거만하게 기다렸다.
공식적인 고급반 1등인 보일이 대대적으로 무릎을 꿇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일은 1등의 무게감만큼이나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고 피해 나갈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졌다.”
보일이 무릎을 꿇고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학생들의 마음에 장마가 쏟아졌다.
보일을 응원했던 시로네 일행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다.
이루키가 말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는걸. 정보 마법이라, 저것도 정말 상대하기 까다롭겠어.”
사비나가 끼어들었다.
“아니, 단테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우리는 올리비아 선생님 밑에서 열 살 때부터 싸워 왔어. 너희와는 실전경험의 횟수가 다르다고. 단테의 공식 전적은 472전 472승. 게다가 비공식 대결에서도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무패의 전설이야. 고작 시골 학교 1등이 넘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거지.”
공식 대결만 472전. 비공식까지 더하면 대략 1천 번이 넘는 전투를 치렀다는 얘기였다.
어떤 마법사라도 그만큼 대인 전투를 치르면 응용력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단테가 대단한 이유는 그 과정 속에서 한 번의 패배도 없었다는 점이다.
단테의 이력이 밝혀지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재수 없는 동급생에서 왕국의 스타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성격이 아무리 개차반이라도 실력이 초월하면 명성은 따라온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열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전부 단테에게 몰려갔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한마디라도 말을 붙여 보려는 노력이 눈에 보였다.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카니스와 아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천번 대인 전투는 처음 구경하는 것이었지만 질리도록 싸워 왔던 그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재밌네. 마법학교는 저렇게 훈련을 하기도 하는구나. 카니스, 우리도 해 볼래?”
“별로. 내키지 않아.”
“단테에게 질까 봐 무서운 건 아니고? 후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린의 심정 또한 카니스와 다르지 않았다. 이천번은 내키지 않았다.
“저게 뭐 어쨌다는 거야? 시로네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열 받을 일도 없고.”
“시로네가 가만히 있는 건 원래 싸움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래. 카니스하고는 다르지.”
“아린, 요즘 너 은근히 시로네 편드는 것 같다?”
아린은 혀를 삐죽 내밀었다.
물론 카니스와 앙숙인 사람은 자신에게도 앙숙이다. 두 사람이 충돌한다면 전력을 다해 카니스를 돕겠지만,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어때? 정보 마법, 아마도 새로운 흐름인 것 같은데. 이길 수 있겠어?”
카니스는 콧김을 내뿜었다.
이천번은 마음에 안 들지만 단테의 실력은 확실히 진짜였다. 재밌는 점은 시로네와 대칭적인 천재라는 것이다.
이루키 또한 천재지만 그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감이 있었다.
“흐음, 전장에서 제대로 붙는다면…….”
“붙는다면?”
한참이나 말이 없던 카니스의 얼굴이 점차 심각해졌다.
흔들리는 감정을 초경으로 간파한 아린이 옆구리를 찌르며 재촉했다.
“응? 붙는다면? 어떻게 되는데?”
아린의 시선을 회피하듯 고개를 돌린 카니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멋, 멋진 승부가 되겠지.”
5. 매치포인트 (1)
“아싸! 이겼다. 야, 빨리 꿇어.”
“제길! 다시 붙어! 실수만 안 했어도!”
언제부턴가 고급반에는 유행어가 생겼다. 단테가 전파한 무릎을 꿇으라는 말이었다.
심지어는 클래스 세븐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속출했다. 장난에 불과했지만 승부에 집착하는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A와 B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 그중의 승자가 C를 이길 수 있는가?
모든 것들이 전교생에게 등수를 매기는 왕립 마법학교의 시스템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쳇! 마음에 안 들어. 하여튼 이상한 교장이 와 가지고 학교를 망쳐 놔.”
잔디밭에 드러누운 마크는 이천번 실습장에서 후배들이 대인 전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투덜거렸다.
현재 그의 매치포인트는 클래스 식스의 서열 1위였다. 도전하는 족족 묵사발을 내 버렸기 때문이다. 소싯적의 그라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겠으나 시로네를 존경하게 된 뒤로 저급반의 서열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마리아가 풀을 뜯으며 말했다.
“마크, 그래도 교장 선생님인데 이상한 교장이 뭐야. 그러다 걸리면 어쩌려고.”
“짜증 나는 걸 어떡하라고! 단테인지 뭔지도 마음에 안 들어. 특히나 클로저, 그 자식은 나랑 싸울 때 패시브 스킬을 쓴 거잖아. 주먹 대 주먹으로 붙었으면 상대도 안 되는 게.”
마리아도 마크가 얻어터진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특히나 클로저는 나이도 어린 게 자신을 희롱하기까지 했었다.
“시로네 선배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어쨌든 같은 클래스 포니까. 너무 심하게 괴롭히면 나도 사드 선생님에게 말해 보려고. 어떻게 생각해?”
마크는 의견을 내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했다. 마리아를 괴롭힌 녀석에게 앙갚음을 해 주고 싶지만 그들의 실력은 진짜였다. 물론 자칭 시로네 라인인 그에게도 괴물 같은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시로네, 에이미, 이루키…….
그들이 버텨 주기에 단테 일행을 보고서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분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정말로…….”
싸움을 좋아하는 건 나이에 상관없기에 클래스 포의 학생들도 전투 서열에 관심을 갖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클래스 포의 서열은 단테가 정리해 버렸기에 그들의 시선은 더욱 높은 곳에 있었다.
“에텔라 선생님이랑 시이나 선생님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에이, 당연히 에텔라 선생님이지. 왕국에서도 알아주는 분이신데.”
“명성으로 싸우는 건 아니잖아. 에텔라 선생님이 트리플을 이뤘다고 하지만 시이나 선생님은 빙결의 권위자야. 실전에서는 한 가지만 판 사람이 최고라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사드 선생님이지. 같은 6급이라면 빙결보다는 화염이 유리하잖아.”
귀를 막으려 해도 들리는 소리에 시로네가 나섰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모두 훌륭한 선생님들인데. 그런 분들이 서로 강하다고 싸울 리가 없잖아.”
학생들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보일이 무릎을 꿇은 이후 고급반의 무게 중심은 시로네에게서 단테로 넘어갔다.
처음에는 학생들도 시로네가 나서서 실추된 학교의 명예를 회복해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피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근래에는 단테와 싸우고 싶지 않아 술수를 부린다는 얘기마저 돌았다.
“안전한 장소에서 싸우는 건데 이야기 좀 한다고 뭐가 어때서? 솔직히 너도 그렇잖아. 단테랑 싸우는 게 무서워서 대인 전투는 참가도 하지 않잖아.”
“무섭지 않아. 나는 그냥 의미 없이 싸우고 싶지 않을 뿐이야. 전술훈련이라면 몰라도 대인 전투는 성적과도 관련 없잖아.”
“쳇, 성적, 성적. 결국 너도 학교 안에서만 잘나가는 거지. 진짜 마법사라면 실전에서 강해야 한다고.”
더 말을 해봤자 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시로네는 어깨를 으쓱했다.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동급생들은 도발조차 통하지 않자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쳇, 시로네도 별수 없네.”
“어쩌겠어. 왕국의 스타 앞에서는 시로네도 그냥 촌구석 스타지.”
시로네는 학생들 사이에서 서열을 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추구하는 강함은 싸워서 제압하는 것과는 다른 경지에 있었다.
반면에 그것만이 의미인 학생도 있기 마련이었다. 대표적으로는 고급반의 서열 2위 판도라였다.
단테가 보일을 제압한 이후 그녀는 적극적으로 단테 일행을 따라다녔고 지금은 거의 그들의 수족이 되어 있었다.
“야, 판도라! 빨리 와! 목말라 죽겠단 말이야!”
사비나의 앙칼진 목소리에 판도라가 허겁지겁 물컵을 들고 뛰어왔다.
“미안해. 줄이 너무 길어서.”
“그냥 내가 마실 거라고 하고 따라오면 되지. 하여튼 융통성 없기는.”
“헤헤, 힘들지? 내가 어깨 좀 주물러 줄까?”
“그럴래? 헤이스트로 너무 달렸더니 뻐근하네.”
판도라는 성심성의껏 사비나의 어깨를 주물렀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조만간 그들도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리라는 생각이었다.
단테 일행과 친해지면 단번에 왕국 최고의 유망주 그룹에 들어가게 된다. 지방 학교의 전교 2등에서 왕국 전체 4위로의 신분 상승. 해 볼 만한 도박이 아닌가?
클로저가 손부채로 땀을 식히며 말했다.
“어이, 판도라. 나도 목이 좀 마른데.”
“어? 알았어! 물 떠 가지고 올게.”
판도라는 곧장 간이 물통으로 달려갔다. 오늘따라 태양이 뜨거워서 많은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단테의 위세로 새치기를 하면 편하지만 그런 짓은 아무래도 품위가 떨어진다. 그녀의 전공은 짜증을 부려서 앞사람이 물먹다가 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야, 너희 무슨 코끼리니? 적당히 마시고 비켜! 뒷사람 생각도 해야지.”
“자, 내 물 마셔.”
보일이 자신의 물컵을 내밀었다. 사비나는 불쾌한 듯이 바라보았으나 기다리는 클로저를 생각하면 못 받을 것도 없었다.
“흥, 고마워.”
사비나가 클로저에게 돌아가자 보일이 불렀다.
“잠깐 기다려. 설마 저 자식에게 가져다주려는 거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설마 단테에게 대결에서 졌다고 쟤들에게 앙심 품는 거야?”
“패배는 인정하고 있어. 하지만 너 요즘 왜 그래? 단테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만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
“그러니까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왜, 벌써부터 불안하니? 나한테 추월당할까 봐?”
“그런 거 없어! 넌 어릴 때부터 내 라이벌이었잖아! 네가 이런 식으로 굽히고 들어가는 게 기분 나쁘단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난 단테 라인에 들어갈 거야. 조만간 학술지에도 실릴 거고, 졸업하면 나를 스카우트해 가려고 난리가 날걸.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이미 패했으면서 그런 말 하는 거 하나도 설득력 없잖아?”
보일은 입을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떤 말도 판도라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을 터였다. 어쩔 수 없는 패배자의 숙명이었다.
“제길! 마음대로 해!
멀리서 지켜보는 시로네 일행은 보일의 마음을 이해했다.
고급반의 모든 교우 관계가 단테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절대적 1인자에게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시로네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자신의 것을 거듭하다 보면 성공은 오게 마련이라는 생각이었다.
현재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아타락시아를 조금이라도 빨리 구사할 수 있는 가였다. 그런 그에게 대인 전투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매일매일 쉬지 않고 리프팅 훈련에 공을 들였고 마침내 타깃을 20초나 잡아 둘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이것도 묘기였다. 남들은 1초도 버티지 못하는 정신 상태를 무려 20초나 유지하는 것이다.
“와, 역시 시로네야. 스피릿 존도 점점 커지고 있고. 어쩌니 해도 대단한 재능이야.”
“그래 봤자 언로커라서 그런 것뿐이잖아. 단테하고는 눈도 못 마주치는데 뭐.”
“솔직히 단테는 너무 강하잖아. 시로네의 입장도 이해가 돼.”
“어째서 시로네가 도망쳤다고 단정 짓는 거야? 시로네도 막상 경쟁에 들어가면 무시무시하다고. 게다가 아직 카니스도 있고 이루키도 남았잖아.”
“흥! 그렇게 자신 있으면 왜 피하는 거야? 나에게 저런 실력이 있으면 분해서라도 당장 붙자고 할걸. 찌질하게 도망치니까 여자들도 단테에게 가잖아.”
5. 매치포인트 (2)
“시로네가 너 같은 줄 알아, 인기 얻으려고 싸우게?”
“뭐야? 너 말 다 했어?”
학생들은 모이기만 하면 시로네 일행과 단테 일행을 저울질했다. 대부분 단테를 1인자로 두고 그 아래에서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는 형태였다. 올리비아가 새로운 교장으로 부임하고 두 달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네이드는 사방에서 들리는 잡음이 신경 쓰였다. 이천번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편을 가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학업 성취도는 올라가고 있다니 교사진은 올리비아의 정책을 철회하지 않을 터였다.
“아우, 진짜! 확 그냥 우리도 전학을 가 버릴까 보다.”
네이드가 속에 없는 말을 내뱉었다. 여자들이 이쪽을 보고 수군거리다가 비웃음을 지으며 단테에게 달려갔다.
“됐어. 신경 쓰지 마.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하면 되는 거야.”
시로네는 담담하게 내뱉고는 다시 리프팅 훈련에 몰두했다.
네이드는 입맛을 다셨다. 학생 주제에 제왕처럼 군림하는 단테도 정상은 아니지만 겁쟁이란 소문이 퍼져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시로네의 신경도 어지간히 굵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중간 평가가 있었다.
단테 일행이 1등부터 3등을 차지하는 바람에 클래스 포 전원의 등수가 밀렸다. 물론 서열은 그대로였다.
중간 평가를 기점으로 학생들은 시로네의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피드백이 없으니 가십을 퍼트리는 게 무의미했다.
판도라는 단테 일행에게 섞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으나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판도라는 사비나의 어깨를 주무르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저기, 사비나. 나도 실전에서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실전? 하긴, 너는 마법을 정석대로 구사하지. 그러지 말고 패시브를 익혀. 훨씬 쉬워져. 먼저 배운다고 잘못되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이 학교는 이상하다니까.”
조언을 해 주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수고는 하고 싶지 않은 티가 났다.
몸이 달아오른 판도라는 아예 직접적으로 말을 꺼냈다.
“그러지 말고, 이천번에서 가르쳐 주면 안 될까?”
“호오? 지금 나에게 도전하는 거야?”
“아니, 아니! 절대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나도 패시브 스킬이나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술 같은 것 좀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아서.”
클로저의 시선이 판도라의 가슴으로 향했다. 평소부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와 준다면 오히려 일이 쉬워지는 셈이었다.
“그래, 어쨌거나 판도라도 우리 일행인데 강해져서 나쁠 거 없잖아. 그러면 특별히 우리가 과외라도 시켜 줄까?”
판도라는 날듯이 기뻤다. 무엇보다 그들이 자신을 일행으로 봐준다는 게 좋았다.
“어머, 정말? 그래 주면 나야 너무 고맙지!”
클로저의 속마음을 친구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단테는 권력, 클로저는 여자, 사비나는 인기.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부상조하는 소꿉친구였으니 단테도 이번만큼은 클로저의 말에 따랐다.
“좋아. 간만에 몸이나 풀어 볼까? 이천번으로 들어가자.”
실습장의 구석에 자리를 잡은 단테 일행은 판도라를 세워두고 한 가지씩 조언을 건넸다.
남이 해주는 조언이 언제나 그렇듯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그럴듯한 언어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클로저가 은근슬쩍 판도라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자, 그럼 우리 3명이 포위 공격을 할 테니까 향기 마법으로 대처해 봐. 천천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 어. 알았어.”
단테 일행은 기본적인 마법으로 판도라를 압박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유익한 수업이었으나 동급생들이 보기에는 똥개를 훈련시키는 듯한 모양새였다.
흥이 오른 사비나가 소리쳤다.
“호호! 제법이네? 도망치지만 말고 반격이라도 좀 해 봐. 우리가 심심하잖아.”
판도라는 그녀의 말에 따라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올리프의 꽃향기를 시전했다. 즉효는 아니지만 그만큼 상대가 방심하기 쉽기에 실전에서 자주 쓰였다.
그리고 사비나는 그 작전에 정확히 걸려들었다.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판도라가 회심의 향기인 파이어 플라워(제조사 알로네스)를 퍼트렸다.
올리프의 향기로 감각이 둔해진 사비나는 알면서도 소량을 흡입할 수밖에 없었다.
불을 빨아들인 것처럼 폐부에 열기가 확 퍼졌다. 싱크로율이 50퍼센트가 아니었다면 위험할 정도였다.
“컥! 컥!”
“사비나! 괜찮아?”
걱정스럽게 달려가던 판도라가 오싹함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비나가 냉기 어린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미, 미안.”
“괜찮아. 아주 잘했어. 이러면서 실력이 느는 거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사비나의 얼굴이 가식적인 웃음으로 변했다. 다른 학생들, 특히나 후배들 앞에서 얻어맞은 티를 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겁에 질린 판도라가 쩔쩔매며 말했다.
“저기……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 많은 도움이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