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09
시로네는 단테의 맞은편에 착지했다. 천천히 손을 내린 단테가 시로네를 노려보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제기랄…….”
단테의 무릎이 부러지듯 꺾이며 바닥을 내리찍었다.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지만 포톤 캐논의 파괴력은 불가항력이었다. 뇌를 강타하는 안티매직의 충격은 여태까지 이천번에서 받아 보았던 어떤 마법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럴 수가……. 단테가 또 무릎을 꿇었어.”
첫 번째 다운은 시로네의 기습이 먹혔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에 다운을 뺏은 건 명백한 실력의 차이였다.
그런 만큼 학생들에게 지금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교사진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을 배운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시로네가 왕국 1등인 단테를 두 번이나 다운시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에텔라가 말했다.
“성격은 샤프한데 의외로 마법은 헤비해요. 잔기술이 없다는 건 단점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파괴력이 있어요.”
구사하는 마법을 보면 마법사의 성향을 알 수 있다. 특히나 대부분의 마법이 고유한 전지를 통해서 발현되는 언로커라면 더욱 그랬다.
에텔라의 칭찬에 사드는 입맛을 다셨다.
뭇 여학생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시로네였기에 인간적으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하는 바였다.
“뭐, 매사에 진지한 놈이니까요.”
단테의 다운으로 학생들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모두가 시로네의 이름을 연창하고, 그 소리가 메아리로 돌아와 다시금 분위기를 고양시켰다.
네이드가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다.
“시로네의 마법이…… 원래 저렇게 터프했나?”
이루키도 같은 생각이었다.
“자신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 효과까지 노린 것일지도 모르지. 저번 학기와 비교해서 바뀐 부분인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군.”
턱을 괴고 있던 에이미가 씩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뭐…… 험한 일을 좀 겪기는 했지.”
시로네는 갈리앙트 섬에서 앵무 용병단과 혈투를 벌였다. 천국에서는 인간을 초월한 수많은 강적들과 맞서 싸웠다.
저번 학기와 똑같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세상에……. 단테가…… 어떻게 이런 일이…….”
리포터 킬라인은 지금의 결과에 경악했다. 무패의 기록을 떠나서 단테를 일방적으로 무릎 꿇린 학생은 여태까지의 대결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시로네라고? 저런 아이가 어째서 아직까지 한 번도 잡지에 실리지 않았던 거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시로네는 마법학교를 다닌 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취재고 뭐고 두각을 드러낼 시간조차 없었을 터였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킬라인은 믿지 않았다. 아니, 설령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지방 학교의 변변찮은 수준에서 과대 포장된 학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단테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난 루키였다.
단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처음의 다운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두 번째 다운. 이것도 처음 있는 일이군.”
단테는 말을 내뱉고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횟수를 세는 건 무의미하다.
시로네라는 인간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본래 공격 일변도의 마법사는 그가 가장 쉽게 요리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유형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무지막지한 펀치력을 가진 상대라면 오히려 역효과였다.
단테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설마 졸업반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 마법진을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공식 대결에서는 한 번도 시전하지 않았을 뿐더러 비공식을 더한다고 해도 두 번이었다.
그 두 번의 상대가 현역 9급의 마법사와 B급 도적단 70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클로저와 사비나가 유일했다.
“미안하군. 내가 너무 너를 과소평가한 모양이다.”
그 순간 단테를 중심으로 붉은 빛을 발하는 거대한 마법진이 새겨졌다. 인스턴트 마법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선명도에, 크기도 10배 이상이었다.
시이나는 단테의 정신력 게이지가 갑자기 절반 이상이 깎여나간 것을 확인했다.
여태까지 전투를 치르면서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던 막대한 정신력. 그것의 절반을 사용하는 마법진이라는 게 무엇이지 선뜻 예상이 되지 않았다.
“중앙 연산 마법진 파스칼.”
단테가 중얼거리자 거대한 마법진이 붉게 타오르더니 100여 개에 달하는 마법진이 동시에 생성되었다.
시로네는 제각기 다른 마법을 전지하는 마법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마치 100명의 마법사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이모탈 펑션. 우습게 봤는데 확실히 대단하더군. 언로커의 통찰력이란 거겠지?”
시로네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어떤 마법인지는 몰라도 인스턴트 마법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시라도 빨리 분석을 하지 않으면 승기를 내어주게 될 터였다.
“이번에는 내가 가진 것을 보여주지”
단테가 손을 내미는 것과 동시에 100여 개의 마법진에서 온갖 마법들이 쏟아져 나왔다.
윈드 커터와 파이어볼, 라이트닝 볼트와 아이스 스피어, 심지어는 물리력이 없는 광자 출력까지.
시로네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무려 10종이 넘는 마법이 동시에 시전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번트 능력자인 이루키조차 더블 스피릿 존으로 두 가지 마법을 시전하는 게 고작이었으니 꿈을 꾸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네이드가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아마도…… 병렬회로일거야.”
마크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병렬회로요? 저 마법진들이요?”
“마법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지. 하나의 마법을 시전하려면 다른 생각을 조금도 할 수 없을 정도야. 하지만 단테의 마법진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회로를 갖고 있어.”
“그럴 수가 있나요? 뇌가 여러 개가 아닌 이상 하나의 전지에 하나의 마법진밖에 만들 수가 없다고요. 설령 패시브라도 시간의 순서에 따라서 만드는 게 정석이에요.”
네이드는 단테의 파스칼을 가리켰다.
“바로 그거야. 단테는 또 하나의 뇌를 만든 거야. 저 중앙의 마법진, 저 마법진이 단테의 전지를 수렴해서 병렬로 분산시키고 있는 게 분명해.”
네이드의 예상은 정확했다. 파스칼은 마법사의 머릿속에 흐르는 전지를 메모리에 저장한 다음 그것을 병렬연산으로 처리하는 마법진이었다.
파스칼을 발동한 단테는 결코 수비적이지 않다. 오히려 극강의 화력으로 상대를 압살시켜버린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기초 마법은 모조리 튀어나오고 있었다.
시로네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가상의 메모리를 만들어 직렬의 생각을 병렬로 펼치는 것은 분명 경이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졌을 때 직병렬에 우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병렬 회로라면 개별적인 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테의 마법진에서 시전되는 마법이 하나같이 기본 마법이라는 게 증거였다.
‘시간이 없어. 지금 끝내야 한다.’
무한의 영역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단테를 힘으로 압도할 수 있는 건 지금뿐이었다.
시로네는 혼신의 힘을 다해 포톤 캐논을 쏘았다. 하지만 어떤 구간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준아광속의 광자가 달팽이와 비교될 정도로 속도저하를 보이자 시로네는 전방을 살폈다. 그리고 깨달았다.
단테가 펼친 수백 개의 마법진들이 소규모의 집합들을 이루어 특정 공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집합을 형성하는 마법진들을 가상의 면으로 이어보면 마치 주사위처럼 입방면체를 이루면서 그 내부에 특정한 마법을 발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이드가 황당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3차원 맨션? 저걸 학생이 구사한다고?”
단테는 2차원의 평면적인 마법진을 조립하여 입체적인 3차원으로 구조했다.
시로네의 포톤 캐논 또한 각기 5미터 거리에 떨어진 6개의 슬로 마법진이 동시에 지정하는 맨션에 들어가면서 느려진 것이었다.
한정된 공간에 얼마나 많은 회로를 집적할 수 있느냐에 따라 기능이 달라진다고 했을 때, 3차원 맨션은 평면의 한계를 뛰어넘는 엄청난 효율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시스템 오퍼레이션 (3)
시로네는 마침내 공세를 멈췄다. 병렬회로만 가지고서는 위력이 떨어지지만 그것들을 모아서 맨션을 이루었다면 직렬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증폭력을 낼 수 있다.
게다가 3차원 회로의 특성상 관측 지점에 따라 분포 패턴이 다르게 보인다. 따라서 특정 맨션을 이루는 여섯 개의 마법진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백지에 점을 찍어 두고 사각형을 그리는 것은 금세 눈에 들어오지만 입체적으로 그려보면 아무것도 분간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어때, 시로네? 이것도 피할 수 있겠어?”
단테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에어 계열의 마법진 6개가 움직이며 시로네를 프레셔 맨션에 가두었다.
“크윽!”
시로네가 척추에 가해지는 하중을 느끼는 순간 단테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일렉트릭 맨션의 중심부에 푸르스름한 볼트가 충전되었다.
강력한 전기 광선이 쏘아지자 전하가 충돌하는 따가운 소음과 함께 전기가 지나간 자리의 공기가 모조리 타 버렸다.
시로네가 어디로 회피하던 공격이 따라붙었다. 포톤 맨션에서 쏘아지는 광자 출력이 시로네의 좌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시로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람과 싸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수많은 무기를 장착한 무장 범선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시로네는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아이스 스피어를 바닥을 굴러 회피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가운데 지면 근처에서 타는 소리가 들렸다. 광자화 마법을 걸고 허리를 튕기자 거의 동시에 아토믹 봄이 작렬했다.
단테의 무지막지한 화력에 학생들은 넋이 나갔다.
“세상에……. 저게 도대체 무슨 마법이야?”
마크 또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파스칼이 병렬 처리를 하더라도 전체를 통제하는 건 인간의 뇌였다. 수백 개의 마법진을 관리하는 건 인간의 능력 밖이었다.
이루키는 네이드를 돌아보았다. 전에 없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아하니 이미 깨달은 듯했다.
“네이드, 뭐라고 말 좀 해봐. 나는 솔직히 모르겠거든.”
“저건…… 오토마톤이라는 거야.”
“오토마톤?”
“자동화 기계장치. 여러 개의 톱니바퀴를 맞물린 다음 첫 번째 톱니바퀴를 움직이는 거야. 그러면 마지막 톱니바퀴가 고정값을 내놓게 되지. 단순한 메커니즘이지만, 이런 과정이 천문학적인 단위로 늘어나면 아주 어려워 보이는 일도 가능해져. 광자 출력이 시로네의 좌표를 추적하거나, 맨션을 고속으로 교체하는 일 같은 것 말이야.”
오토마톤의 위력은 시로네가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해도 자동으로 계산해서 대응하는 오토마톤은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기본 마법이지만 맨션으로 강화된 위력은 결코 기본 마법이 아니었다. 포격을 피해 바닥을 구른 시로네는 황급히 단테를 찾았으나 수백 개의 마법진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사방에 떠 있는 마법진들이 마치 수백 개의 눈이 달린 괴물의 시선처럼 느껴졌다.
“으으으으!”
시로네는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미친 듯이 포톤 캐논을 갈겼다. 오토마톤이 즉각 반응했다. 볼트 맨션에서 충전이 완료된 라이트닝 캐논이 쏘아지자 눈을 멀게 만드는 전력이 일자의 섬광을 공간에 새기며 포톤 캐논을 풍선처럼 터뜨렸다.
라이트닝 캐논이 시로네의 옆구리를 스치자 그것만으로도 안티매직이 발동했다. 시로네가 비틀거리는 사이 오토마톤이 가용할 수 있는 마법을 모조리 퍼부었다. 손으로 꼽을 수 없는 수많은 마법들이 반경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가용 에너지를 전부 소모한 파스칼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동작을 멈추었다. 포연이 걷히면서 한쪽 어깨를 붙잡은 시로네의 모습이 드러났다. 잠시 후 그의 무릎이 휘청 하고 구부러지더니 마침내 바닥을 내리찍었다.
“이, 이번에는 시로네가 쓰러졌어.”
한 번의 다운이 문제가 아니었다. 안티매직이 정통으로 들어왔다는 건 시로네의 내구력에 금이 갔다는 얘기였고 그것은 곧 이모탈 펑션의 종말을 의미했다.
“정말 대단하군.”
알페아스조차 이번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병렬 마법진 파스칼과 위력을 강화하는 3차원 맨션. 거기에 오토마톤으로 자동화 기능까지 갖춘 단테 시스템은 기능의 극을 찍은 예술작품과 비견할 만했다.
정보마법에 오토마톤을 접목할 줄이야. 어떤 프로 마법사도 쉽게 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아니, 아무리 단테가 최고의 재능이라도 학생 수준에서는 불가능한 경지였다.
만약 가능하다면 한 가지 가정이 사실일 경우였다.
“2진수를 구사하는 건가?”
올리비아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알페아스는 그것으로 깨달았다. 분명 2진수를 다루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 1과 0으로 이루어진 마법 체계를 구사하는 유일한 종족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단테가 드래곤의 언어를 익혔지?”
올리비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미 확신하고 있다면 더 이상 감출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뭐가 어때서 그래? 용언 마법은 이진수 체계지만 꼭 드래곤만의 전유물은 아니잖아.”
“인간은 이진수를 이해할 수 있지. 하지만 이진수를 언어의 수준으로 구사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야.”
알페아스는 문득 깨달았다.
“설마…… 타고났다는 건가?”
“나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어. 하지만 사실이야. 시로네의 통찰력이나 이루키의 서번트 신드롬처럼, 단테도 정보처리 능력을 타고난 거야.”
올리비아는 단테를 처음 만났던 10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왕립 마법학교의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당시 바슈카의 사교 모임에서 티타임 초대장이 도착했다.
주최자는 에어하인 가문의 안주인 비앙카였다. 총 6명이 모인 자리였고, 올리비아를 제외하고 모두 유부녀였다.
귀부인들은 바다 건너 들어온 차를 음미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올리비아도 관심이 있는 주제에 한해 대화를 주고받았으나 유부녀들의 수다는 결국 자식 이야기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비앙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큰일이에요. 우리 막내아들이 이번에 휴학계를 내고 집으로 내려왔다니까요.”
“어머, 단테라면 알아주는 모범생이잖아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비앙카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요새 통 말을 안 해요.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싸웠다며 얼굴에 멍이 들어서 왔더라고요. 얘기를 들어 보니까 여럿이 때린 것 같던데.”
귀부인들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기 자식이 그런 꼴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손이 부들거렸다.
“아니, 그걸 그냥 내버려 두셨어요? 당장 학교에 찾아가서 고발을 해야죠.”
“저도 그러려고 학교에 갔지요. 그런데 거기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단테가 친구들과 한마디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무리 말을 걸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하더군요. 담임도 처음에는 실어증에 걸린 줄 알았대요.”
“저런……. 무슨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요?”
“아무리 물어봐도 얘기를 안 해요. 아무튼 따지러 찾아갔다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냥 단테만 데리고 나왔죠, 뭐.”
올리비아는 찻잔을 기울이다 말고 멈칫했다. 자식이 없는 입장이라 끼워 주지도 않을 터이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비앙카가 턱을 괴고 말을 이었다.
“하아, 그래서 결국 학교도 그만두게 하고 집에 데리고 있어요. 그런데 걱정인 건 하루 종일 정원에 앉아서 땅만 바라보고 있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도무지 대답을 안 해 줘요. 할 수 없이 지켜만 보고 있는 중이죠.”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성이 비앙카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단테도 열 살이잖아요. 생각이 많아질 시기예요. 귀족 아이들은 평민보다 사춘기가 훨씬 빨리 찾아온다잖아요.”
“그런 것이라면 좋겠지만…….”
비앙카는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단테는 어릴 때부터 총명한 아이여서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 귀한 자식이 이런 식으로 속을 썩일 줄이야.
귀부인들이 비앙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모든 말들이 진심은 아니겠지만 자식을 둔 어머니다 보니 그녀의 속상함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올리비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오버플로…….”
비앙카가 올리비아를 돌아보았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올리비아는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교사이기에, 부모 앞에서 자식을 평가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좌중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말을 무르기란 어려웠다. 궁금한 건 듣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귀부인들의 앞이라면 더더욱.
올리비아는 별일 아니라는 뉘앙스로 말했다.
“아, 오버플로일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서요.”
“오버플로요? 그게 뭐죠?”
“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각성을 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에요. 아니, 현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에 가깝죠. 기존의 상식이 붕괴되면서 원래의 세상과 다른 세상을 보는 거예요. 보통은 극심한 두려움에 시달리죠.”
“그럼 우리 아들이 병에 걸렸다는 말인가요?”
올리비아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여기서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사교계에서 낙인이 찍히는 것은 물론 오랫동안 구설수에 시달리게 될 터였다.
“아뇨. 병은 아니에요. 이를테면 천재들에게서 흔히 나타나죠. 마법학교에도 그런 아이들이 꽤나 있거든요.”
올리비아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부모도 혹할 수밖에 없는 마법의 단어를 사용하고 말았다.
예상대로 비앙카는 방금 들었냐는 듯 귀부인들과 눈을 마주쳤다.
부모에게 자식이 천재인 것보다 더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있을까?
덕분에 올리비아는 수모를 면했지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했다.
다른 귀부인들을 제쳐 둔 비앙카는 독대하듯 올리비아를 돌아보고 온갖 것들을 물어 왔다.
정말로 단테가 천재인지, 천재라면 어떤 분야에서 천재인 건지, 그럴 때 어떤 식으로 교육을 시키는지 등등.
올리비아는 이런저런 대답을 늘어놓았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거라면 오버플로에 시달렸던 천재들이 불우한 말년을 보내지도 않았을 터였다.
“정말로, 정말로 우리 단테가 천재란 말이죠? 음……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비범한 구석이 있었거든요. 하긴, 천재적인 아이는 무리에서 소외당하기 쉽잖아요. 그래서 단테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거예요.”
올리비아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비앙카의 면전에 대고 단지 가능성일 뿐이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빠져나갈 구실을 찾기도 전에 비앙카가 선수를 쳤다.
“혹시…… 단테를 면담해 주실 수 있으세요?”
“네? 지금요?”
이번만큼은 올리비아도 대놓고 난색을 표했다. 사교 모임에서까지 교사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면담을 했다가 사실은 별 볼 일이 없는 아이라면 그 뒷감당을 어찌할 것인가?
사교계의 여우라는 별칭을 가진 비앙카가 올리비아의 심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