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40
로즈가 돌아보자 통신 마법사가 손바닥 위로 수정구를 띄우며 말했다.
“협회 호출인데요. 케이지 B팀 전원 집결하랍니다.”
마법협회.
협회장실이 있는 18층 복도는 마법사들로 바글거렸다.
저마다 산만하게 흩어져 팀장을 기다리고 있는 케이지 B팀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기본적으로 케이지 B팀은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만을 추려서 만든다.
왕국에서 가장 바쁜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임무가 끝난 뒤의 호출이 달갑지 않은 게 당연했다.
“뭐야, 불안하게? 나 빨리 집에 가서 애 봐야 하는데. 설마 여기서 뭔가 더 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그나저나 팀장은 왜 이렇게 안 나와? 영감님은 뭐 좀 알아요?”
타르반이 호르킨에게 물었다.
케이지 B팀의 최연장자이자 오더를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 테지만 그는 그저 의뭉스러운 미소만 짓고 있었다.
협회장실 문이 열리고 로즈가 나오자 마법사들이 우르르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역시나 반가운 일은 아닌지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팀장, 협회장님이 뭐래요?”
현재 협회장은 루피스트가 임시로 맡고 있지만 협회 근무자가 아닌 그들은 누가 협회장을 맡든 정산만 제대로 해 주면 상관이 없었다.
“긴급 임무다. 아무래도 너희가 한 번 더 뛰어 줘야겠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그들의 시선에서 쏘아지는 차가운 살기로 복도가 불안하게 일렁거렸다.
성녀 모리악이 물었다.
“어째서 우리죠? 케이지 A팀도 있잖아요.”
케이지 A와 케이지 B의 실력 차는 거의 없다.
아무리 각 분야의 최고라도 그런 인재 40명이 없을 정도로 토르미아의 국방력이 약하지는 않다.
다만 케이지 A팀이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다면 케이지 B팀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급조된 멤버였다.
그 사소한 차이에는 자격지심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만약 이번에 협회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자신들이 아닌 케이지 A팀이었다.
“나도 건의했어. 하지만 현재 케이지 A팀은 잠정적으로 운용 불가 상태야.”
호르킨이 말했다.
“가올드 때문이군요.”
“맞아. 현재 케이지 A팀에 가올드 친위대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어. 진상 규명이 끝날 때까지는 우리가 왕국 유일의 케이지급 파티다.”
타르반이 말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요. 애초부터 계약 따진 건 팀장님 아닙니까? 그리고 로체 이 친구는 아직 기지도 못하는 딸이 있다고요. 제수씨에게 맞아 죽어요.”
“맞아요, 팀장님. 저는 좀 빼 주세요. 차라리 위약금을 물고서라도…….”
로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착각하지 마라. 여긴 길드가 아니야. 정산은 협회 차원에서 주는 사례일 뿐. 현재 왕국 제1급 동원령이 선포되었다. 어길 시에는 레드 라인 자격 박탈은 물론 왕국 법에 따라 처벌받을 거다. 현재 왕국 분위기 어떤지 알고 있지? 알아서 기는 게 좋을 거야.”
마법사들은 침묵을 지켰다.
어쨌거나 레드 라인을 떠나서 그들의 위치는 생각할 수 없으니 결국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상황이었다.
로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팀장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임무가 끝나면 협회에서도 충분한 사례를 약속했다. 기존 계약금의 3배 그리고 특진에 준하는 명성 포인트를 얻을 수 있을 거다.”
돈도 돈이지만 명성 포인트라는 말에 마법사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공인 6급부터는 진급을 위해 쌓아야 하는 포인트가 엄청난 만큼 이번 일만 성공시키면 한몫 단단히 잡게 되는 셈이었다.
호르킨이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뭡니까?”
로즈는 이것이 문제라는 듯 말을 아꼈다.
아무리 케이지급이라도 난이도가 너무 높지 않은가?
“이번 타깃은…… 인간이다.”
“인간? 인간 누구요?”
로즈의 눈빛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전 토르미아 마법협회장, 미케아 가올드를 제거한다.”
***
천국 외곽 연옥. 속된 자의 숲.
급류처럼 빛이 흐르는 터널을 빠져나온 시로네의 눈에 광활한 창공이 펼쳐졌다.
수해 너머에 천국의 동심원이 보이고, 특정 구간에 드론들이 각다귀 떼처럼 몰려 있었다.
이미 경험한 시로네는 심호흡을 하며 착지할 준비를 했다.
예상대로 방향이 급격히 꺾이면서 수직으로 낙하했다.
바다가 사라지고 숲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땅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 다음 몸을 뒤틀었다.
“후우.”
전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착지였으나 그런 시로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거핀의 문을 통과한 9명은 저마다 흩어진 상태로 다른 방향을 살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세인이 말했다.
“속된 자의 숲이군. 독각귀의 서식지다.”
“독각귀라. 한적한 곳이군. 그럼 가 볼까?”
한적한 곳.
시로네는 일전에 독각귀의 포위망에 걸렸던 상황을 떠올렸다.
덕분에 카냐와 레나를 만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결코 안전한 장소는 아니었다.
‘하긴, 이 사람들이라면 한적한 곳일 수도…….’
세인은 걸어가면서 설명했다.
연옥은 크게 세 곳으로 분류되는데 이단들의 서식지, 본토, 커뮤니티 외곽이다.
특히나 커뮤니티 외곽은 신민들이 아닌 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총칭으로, 그들을 특별히 경계인이라고 부른다.
현재 세인의 목적지는 본토라 불리는 곳으로, 이단과 경계인이 모이는 유일한 중립지대이기 때문에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숲의 중반을 지날 무렵 갑자기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경계 태세를 갖춘 일행은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소리가 점점 잦아들자 눈빛을 교환하며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세상에…….”
산 밑의 평야 지대에서 수백 명의 거인이 열을 이루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일화의 술을 통해 만들어진 거인.
당시에는 거인이 존재하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아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세인의 설명에 의하면 저들은 현재 거인의 나라 요툰하임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다시 천국으로 돌아와 율법을 지키게 되는데, 타락하게 되면 천국으로 오지 못하고 무스펠이라는 불의 나라로 추방된다.
“거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지. 하지만 저들은 그저 괴물일 뿐이야. 무시하고 가는 게 좋아.”
수풀에 박혀 있던 10명의 얼굴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두 번째 연옥 (2)
시로네 일행은 본토를 향해 나아갔다.
줄루의 소환수를 타고 이동하면 빠르겠지만 연옥의 분쟁 상황을 알지 못하는 지금으로서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특히나 천국의 하늘은 천사와 마라, 드론이 활개를 치는 곳이다 보니 에텔라의 스피릿 존 반경보다 먼 거리에서 포착되는 상황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속된 자의 숲은 너무나 조용했다.
천사들이 하늘을 순찰하며 이단과 반란군을 해치우는 장면을 상상했던 그들에게는 의외의 일이었다.
강난이 물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죠? 예상치 못한 변화? 아니면 반란군이 궤멸당한 증거?”
“어느 쪽이든 가능성이 있지.”
세인의 말에 플루가 고개를 갸웃했다.
“반란군이 궤멸당하지 않았는데 숲이 조용할 가능성도 있어요?”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미로가 사라진 것 또한 마찬가지야.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어. 아직까지는 그렇게 봐야 한다.”
미로의 시공에서 느꼈던 위화감을 세인은 다시 느끼고 있었다.
아니, 연옥의 상황마저 예상과 다르다는 것에 오히려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20년 동안 숨을 죽이고 설계했던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틀어지는 거지?’
과연 지금의 감각을 믿어도 될까?
어쩌면 이 또한 우연의 일치일지 모른다. 결과를 확인하고 거기에 원인을 끼워 맞추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으니까.
세인은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두 가지 상황 전부 다 계산하면 된다. 나라면 할 수 있어.’
“누군가 있어요.”
에텔라가 걸음을 멈추고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물론 근처에서 느낀 것은 아니다. 2킬로미터 반경에 걸친 스피릿 존으로부터 다양한 정보가 흘러들고 있었다.
대략 20명 정도의 인원이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선 운동성을 드러내며 움직이는 중이다.
병장기끼리 충돌하는 소리, 폭발음 같은 것들이 공감각을 통해서 전해져 왔다.
“전투 중인 것 같아요. 대략 800미터 거리예요.”
플루가 가올드를 곁눈질로 살피며 물었다.
“확인합니까?”
기동력을 올리는 것에 대한 승인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현재 숲의 상황이 예상과 다르니 숨을 죽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만 가올드는 정공법을 택했다.
“확인한다.”
지시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팀원 전체가 섬광으로 변해 사라졌다.
쿠안과 강난의 이동은 줄루가 맡았고, 시로네를 제외하면 모두 프로였기에 복잡한 숲을 헤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시로네 또한 졸업반에서 무브먼트 제어의 마스터 난이도를 정복했으나 급수에 따라 수준의 차이는 확실했다.
특히나 선두를 달리는 가올드, 세인, 줄루, 아르민의 무브먼트는 마치 기체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듯 복잡한 지형을 유령처럼 탈출하고 있었다.
‘얼마나 수련하면 저런 움직임이 나오는 거지?’
현장에 도착하자 조금 전의 적막감은 사라지고 시끄러운 소리가 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쫓아라! 놈들의 심장을 꺼내라!”
“끼야야야야야야!”
흑색 갑옷을 걸친 케르고족이 특유의 괴음을 내지르며 메카족을 뒤쫓고 있었다.
말과 하나가 되어 달리는 그들의 움직임은 질풍과 같았으나 메카족 또한 쉽게 잡힐 속도가 아니었다.
‘저건 뭐지?’
메카족의 기동성은 몸 밖에 장착한 앙상한 골조로 연결되어 있는 기계장치에서 나오고 있었다.
골조가 등 뒤의 어깨선을 가로질러 두 팔과 이어져 있었고, 목에서 다시 척추를 타고 내려와 두 다리로 뻗어 나갔다.
착용자의 동작에 맞추어 칭! 칭! 창쾌한 소리를 내며 관절 접합 부위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땅을 박찰 때마다 도약거리가 5미터, 6미터씩 쭉쭉 늘어났다.
“근력 보조 장치 파이퍼. 메카족 전투병들이군요.”
메카족은 마치 발바닥에 스프링이 달린 듯 숲을 이리저리 헤집고 날아다녔다.
하지만 케르고족 또한 탁월한 사냥꾼들.
알게 모르게 메카족을 포위망으로 몰아세운 그들 중의 1명이 기습처럼 숲에서 튀어나와 검을 휘둘렀다.
“흐읍!”
메카족 대원이 엑스드를 내밀었다.
홀로그램 방패가 퍼지면서 충격파를 일으켰으나 스키마의 완력이 조금 더 우위였고,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메카족 병사들은 쓰러진 동료에게 모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퇴로를 차단한 케르고족이 사방을 에워싸며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메카족 분대장인 짧은 머리의 여성이 손목에 장착한 드론을 입에 대고 속삭였다.
“여기는 정찰대 2팀. 현재 케르고족에게 포위당한 상태다. 지원 바람.”
응답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전파 통신의 특성상 지원 요청이 가지 않았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발, 제발…….’
그로부터 2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시로네 일행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케르고족은 뛰어난 추격술이 자랑거리지만 세인의 이퀄리브리엄 앞에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숨소리마저 철륜안에 갈려 무음 레벨로 떨어진 상태에서는 오감이 무소용이었다.
강난이 가올드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갈 거예요? 케르고? 메카?”
그들이 천국에 와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분기점이었다.
신민은 케르고, 메카, 노르의 세 종족으로 분류되고 각기 전투 방법이나 문화, 사고방식이 다르다.
시작하는 종족이 어디냐에 따라 미로에게 도달하는 과정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부스럭.
수풀이 흔들리더니 진형의 외곽을 순찰 중인 케르고 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사는 심장이 멎을 듯한 얼굴로 눈을 크게 떴다.
감각계 스키마로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던 곳에 갑자기 10명의 인원이 서 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고개가 부러지듯 돌아가고, 그가 허파를 키우며 소리쳤다.
“여…….”
가올드의 손이 빠르게 휘둘렸다.
“깃……!”
퍽 소리를 내며 케르고 전사의 얼굴이 날아갔다.
시로네와 플루는 얼굴이 없는 채로 부들거리는 근육질의 신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실행에 옮기는 게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이라면 조금 전 가올드의 반응은 지극히 기계적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각자의 판단에 따라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되면 죽여라. 뒷감당은 내가 한다. 설령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해도 팀원이 죽는 것 이상의 최악의 상황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이를테면 가올드표 살인 면허 발급이었다.
팀원의 생존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옳은 방식이지만, 판단의 옳고 그름조차 묻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든 무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가올드이기에 할 수 있는 말.
또한 이것이야말로 그가 팀의 지휘관으로 발탁된 거의 유일한 이유였다.
강난이 가올드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종족 선택은 메카로?”
인간에게 타인의 죽음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얼마든지 있지만 케르고족은 신의 율법으로 묶인 조직체.
이미 1명을 죽였으니 타협의 장벽은 메카보다 높아진 셈이었다.
“앙케 라를 위하여!”
가올드의 눈매가 불쾌한 듯 꿈틀거렸다.
“메카로 간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쿠안이 튀어 나갔다. 이런 종류의 일은 히트맨이 제격이었다.
“분대장님! 이대로 가면 전멸입니다!”
메카족은 두들겨 맞는 형세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파이퍼가 근력을 보정해 주지만 대근육에 국한되는 기능일 뿐이라 전신이 무기인 케르고 전사들을 백병전으로 이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퇴각하라! 이곳은 내가 맡겠다!”
분대장이 사지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