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64
수십 명의 대원들 앞에 잔상처럼 나타난 그녀는 여린 손목에 달린 주먹으로 모두를 때려눕혔다.
하급 마법사부터 간부까지, 계급의 피라미드는 빠르게 붕괴되었고, 순식간에 쿠데타가 끝났다.
“컥!”
복부에 이카사의 주먹이 깊숙이 처박히자 간부의 입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깔깔깔! 역시 재밌어, 인간을 죽이는 건!”
이카사는 강했다.
산 하나를 20분에 무너뜨리는 그녀에게 인간 마법사 수십 명 정도는 발할라 액션이 없이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원천의 개념에 충실했고, 시로네는 그녀의 광륜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원인과 결과의 등가교환.’
울티마 시스템은 정확히 그 느낌을 감지해 냈다.
반군을 소탕한 이카사가 고개를 돌리자 시로네와 플루의 등골을 타고 전기가 흘렀다.
복수의 욕망으로 가득한 타락천사의 눈이었다.
“시로네, 내가 얼마나 이날을 기다려 왔는지 아니? 그때는 잘도 쥐새끼처럼 도망쳤지.”
“나도 잊지 않고 있어, 네가 했던 짓을.”
“호호! 아니, 잊은 것 같은데?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여자들을 빼앗겼지. 지금이라고 다를까?”
시로네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자세를 낮췄다.
“조심하세요, 선배님. 저 천사의 광륜은 원인과 결과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플루 또한 반군들이 당하는 것을 눈으로 봤기에 이해는 빠르게 되었다.
“수비로 가자. 일단은 시간을 끌어야 돼. 지하에는 반군들이 생존해 있을 테니까.”
이카사가 볼을 부풀리며 웃었다.
“푸! 내가 왜 인간을 싫어하는지 알아? 기본적으로 과대망상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지. 모두 똑같은 인간1, 인간2 주제에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
땅을 박차고 돌진한 이카사가 플루의 눈앞에서 주먹을 휘두르자 붕 하고 공기가 떨렸다.
질풍 같은 공격에 맞서 플루의 상체가 버들가지처럼 휘어졌다.
도킨스 알고리즘 효과지만, 척추가 끊어질 듯 아팠고 그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할 듯했다.
“크윽!”
이카사의 레프트 훅이 작렬하면서 플루의 몸이 빨랫줄처럼 멀어져 갔다.
타격 직전에 피닉스로 손등을 내리찍어 힘을 완충했지만 그럼에도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호호호! 발버둥도 벌레의 특징이지!”
이카사가 유쾌하게 웃으며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촉수의 주둥이가 나타나 얼굴을 붙잡았다.
이어서 사선을 그리며 하늘로 올라간 촉수가 아치형으로 구부러지더니 이카사의 몸을 땅바닥에 수직으로 꽂았다.
콰아아아아앙!
대자로 뻗은 이카사는 여전히 촉수에 얼굴이 파묻힌 채로 눈을 깜박거렸다.
‘뭐지, 이건?’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의 충격. 반응조차 하지 못한 속도.
기습에 당했을 뿐이라는 말로 변명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하고 묵직한 일격이었다.
“건방진 놈……!”
이카사는 손날로 촉수를 자르고 튕기듯 시로네에게 돌진했다.
“위험해!”
플루가 소리쳤으나 이어진 광경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카사의 무지막지한 권격을 시로네가 상체를 흔들며 모조리 회피하고 있었다.
‘보인다! 이카사의 공격이 보여!’
사용자의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게 아르망이라면, 지금은 아르망 자체가 시로네의 신체였다.
금강무장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처럼 손쉽게 가능했다.
“인간 따위가? 나는 천사의 육체다!”
이카사가 회심의 정권을 내질렀다.
주먹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 시로네의 몸이 빠르게 회전했다.
로브에서 묵직한 촉수가 튀어나와 이카사의 뺨을 통렬하게 후려치자 그녀의 몸이 수평으로 기울어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앙!
붕괴된 사령부의 잔해 더미에 이카사가 처박히자 플루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카사를 노려보는 시로네의 정면에 전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아타락시아가 집적되고 있었다.
대보름의 날 (3)
인공두뇌 외가 활성화되면서 아타락시아의 도달 시간이 기존보다 2배 이상 빨라졌다.
전방을 겨누는 오색찬란한 광륜을 노려보며 시로네는 마법을 시전했다.
‘포톤 캐논!’
광자가 압축되면서 폭발할 듯 흔들리는 순간 이카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큭!”
주먹이 명치를 파고들자 아르망이 그것을 물었으나 충격파를 완전히 상쇄시킬 수는 없었다.
원인과 결과의 등가교환.
발할라 액션이란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순서를 역전시킨 것에 불과하지만 시간 속에 살아가는 존재에게는 적응이 불가능한 까다로움이었다.
“감히 네까짓 게!”
이카사는 발할라 액션으로 초고속 연타를 가했고, 시로네는 아르망의 촉수를 휘둘러 주먹을 튕겨 냈다.
지근거리에서 포톤 캐논이 쏘아지자 이번에는 이카사가 현란한 위빙을 통해 공격을 회피했다.
박투와 마법이 동시에 펼쳐지는 전투에 생존한 반군들은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저것이 네피림…….”
인간이 천사와 대등하게 겨루고 있다.
타락천사라고 해도 신민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
신민들에게는 태곳적부터 지켜 왔던 신념이 깨지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럴 수는 없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이카사도 마찬가지였다.
1년 전에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던 인간이 대보름의 힘을 받은 자신과 비등하게 겨루고 있지 않은가.
“한낱 벌레 따위가!”
이카사는 욕망했다, 시로네가 있는 좌표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연격을.
주먹의 잔상이 거대한 장벽을 이루면서 해일처럼 밀려들자 시로네는 극단적인 수비 자세를 취했다.
울티마 시스템이 즉각 작용하면서 아르망의 로브가 육체를 따라 뒤틀리며 두께를 키웠다.
시로네의 전신에 주먹 형상의 패턴이 찍혔다.
“크으으윽!”
방어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공격.
하지만 이 태풍이 지나면 기회는 시로네에게 온다.
‘역시 의지를 가진 대상에게는 한계가 있어. 이것만 버티면 이길 수 있다.’
이카사의 마지막 일격에 밀려난 시로네는 뼈가 부서질 듯한 고통을 참으며 아타락시아를 집적시켰다.
예상은 정확해서, 발할라 액션으로 결과를 앞당긴 이카사는 미동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묘하다.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천사의 내구력을 감안했을 때 일격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빠르게 집적되는 아타락시아를 바라보는 이카사는 사형대에 올라간 사형수의 심정이었다.
‘저건 위험하다.’
대천사 이카엘의 전매특허.
발할라 액션이 되돌아오기 전에 완성된다면 위력을 떠나서 존재 자체만으로도 패틱에 빠질 확률이 높았다.
‘6초. 5초. 4초.’
아타락시아 대 발할라 액션.
누가 먼저 천사의 능력을 완성시키느냐의 싸움이었다.
“지금이다. 출동시켜.”
사령부 지하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레이시스가 지시를 내리자 지상의 모든 생물체가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뭐지?’
이상 변화를 감지한 플루는 힘겹게 시선을 들었다.
거대한 눈동자가 지상의 모두를 관찰하듯 빠르게 동공을 움직이고 있었다.
생물학적 병기-진眞아카마이.
안티테제의 힘이 율법을 역전시켰다.
마치 밧줄로 동여맨 듯, 이카사가 어깨를 좁히며 비명을 질렀다.
“크윽! 이, 이게……!”
아무리 타락천사라고 해도 말도 안 되는 구속력.
평천사급이라면 몰라도 대보름의 힘을 받은 것만으로는 버티기 힘들 정도의 율법이었다.
이카사가 포박을 당할 정도이니 다른 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은 심적초월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시로네뿐이었다.
‘엄청난 힘이다. 대체 이게 뭐지?’
심지어는 아르망의 로브마저 버티지 못하고 장착의 역순으로 해체되어 마검으로 변했다.
지하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연구원이 말했다.
“전원 포박 완료되었습니다. 어떡할까요?”
레이시스는 사령관의 가면을 벗어 던졌다.
재료가 모였으니 지상에 있는 반군들은 이용할 가치도 없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대원들은 가두고 시로네와 플루, 천사를 데려와. 지금 즉시 일화의 술을 준비하도록.”
레이시스의 측근들이 즉시 움직였다.
일화의 술이 준비되는 동안 시로네와 플루, 이카사는 철창에 갇혔다.
물론 그들을 가두고 있는 진짜 감옥은 철창 밖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진眞아카마이였다.
플루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설마하니 천사가 침입한 상황에서 레이시스가 행동을 개시할 줄은 몰랐다.
‘아니, 그만큼 엄청난 무기야. 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조금 전까지 치열하게 싸웠던 3명이 졸지에 감방 동료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플루는 모든 걸 망쳐 버린 이카사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런 처지에 감정이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우선은 필요한 정보를 시로네에게 전했다.
레이시스는 생물학 실험을 통해 자신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것을 위한 재료로 시로네가 낙점되었고, 클론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가라스와 플루를 이용하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천사인 이카사가 듣기에도 황당한 소리였다.
“저급한 종족이 신이 되려고 해? 어리석은 것들.”
욕망의 천사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이율배반적인 말이었으나 시로네의 생각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나를 복제하고 있었다고? 대체…….’
그때 문이 열리고 레이시스가 들어왔다.
“후후, 천사에 네피림이라. 참으로 먹음직스러운 식량 창고로군. 아니, 호화롭다고 해야 하나?”
이카사가 이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천사에게 대항한 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거냐?”
“깔깔깔! 그 하찮은 인간이 만든 생물에게 꼼짝없이 잡혀 있는 건 누구지?”
레이시스는 두려운 기색 없이 철창을 열고 들어가 이카사의 앞에 앉아 그녀의 턱을 어루만졌다.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타락천사. 하지만 육체의 형태만큼은 확실히 천사였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내 육체가 되기에 제격이다.”
시로네가 물었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지? 이런 비인간적인 실험으로 강해져 봤자 당신은 그저 괴물일 뿐이야.”
“괴물이라…….”
레이시스는 오래전 사탄의 말을 떠올렸다.
“형태라는 것은 기능일 뿐이다. 거기에 미적 의미를 부여하는 건 하등한 인간들뿐이지. 따라서 강함이야말로 곧 아름다움인 것이다.”
레이시스의 얼굴뼈가 일그러지면서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눈은 찢어지고 코는 야수처럼 튀어나왔으며 입술은 귀밑까지 갈라졌다.
뱀을 닮은 두 눈에 불길이 타오르면서 주위의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기억 속의 영상을 보여 주는 메모리 비전이 켜지자 시로네는 마치 실험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중앙의 퓨직스 머신에 안티테제의 아카마이, 섭식귀 쿠젠, 무한세포증식체 켄서, 진마이식종 갈토믹, 갑식광물종 링거의 사체가 따로따로 안치되어 있었다.
“어때? 저것이 나를 신의 육체로 인도할 생물들이다.”
시로네는 입술을 이기죽거렸다.
“고작 저딴 걸로 신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생물에게 필멸은 필연이 아니다. 죽음 또한 생물이 선택한 기능에 불과하지. 완벽한 하나의 개체만을 위한 것이라면 죽음 또한 제거할 수 있는 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 남은 2개의 슬롯에는 너와 천사가 녹아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합쳐, 나는 세계의 신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미쳤어.”
플루의 눈빛에 증오가 깃들었다.
레이시스가 어떤 식으로 클론을 대량생산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그녀였다.
“후후, 어차피 너는 내 육체에도 스며들 수 없는 배설물 같은 존재. 마음대로 생각하며 죽을 때나 기다려라.”
레이시스는 그 말을 남겨 두고 방을 나섰다.
조만간 연구원들이 시로네와 이카사를 끌어내어 퓨직스 머신에 처넣게 될 것이다.
앙케 라가 만든 일화의 술에 빈틈은 없다.
설령 천사인 이카사의 몸이라도 플라즘에 섞이면 꼼짝없이 검은 액체로 풀어져 버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플루는 사력을 다해 몸에 힘을 주었으나 진眞아카마이의 구속력은 어마어마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큰일이야. 이대로 있다가는 다 죽을 거야.”
이카사가 비웃음을 지었다.
“하루살이 따위가 죽음을 논하다니. 기가 찰 일이군.”
“하하, 그래? 그러고 보니 천사는 수명이 길지? 원통하겠어, 이대로 소멸한다면.”
이카사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이 그랬다. 아카식 레코드가 있는 한 영원한 죽음은 없겠지만, 천사에게도 소멸은 가장 불쾌한 사건 중의 하나였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방법?”
시로네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진眞아카마이의 구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카사는 시로네의 화신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 고귀한 천사가 고작 인간이 만든 생물에게 당할 것 같으냐?”
플루가 말했다.
“지금 당하고 있잖아? 방법이 뭔데?”
이카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떠나지 않았다.
“발할라 액션으로 이 생물체를 파괴하는 거다. 즉 파괴의 결과를 먼저 당겨서 쓰자는 거지.”
“이상하잖아? 그게 가능하면 어째서 잡혀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