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23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아슈르가 말을 끊으며 결론을 내렸다.
“이제 곧 라의 의지가 발동할 것이다.”
***
제2천 라키아.
타락의 전당 오브제 에 두 손목이 묶인 강난이 반쯤 풀린 다리로 서 있었다.
의 능력은 힘을 빨아들이는 것에 국한되어 있지만 천사의 능력인 헤나를 이용해 공간에 고정시켰다.
밤새도록 고문을 당한 강난의 몰골은 처참했고, 제 한 몸을 가누지도 못할 만큼 힘이 풀려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생기를 잃어버린 눈빛이었다.
가올드는 오지 않는다.
원망보다는 납득이었다.
가올드가 미로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할 수 있는 납득.
“정오가 넘었다. 너를 버린 모양이군.”
성벽 바깥에서 팔짱을 끼고 떠올라 있는 유리엘이 파괴된 다리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입으로 인정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유리엘은 천천히 몸을 돌려 강난의 옆에 서 있는 카리엘을 돌아보았다.
‘전보다 더 쇠약해졌군.’
천사의 위대함은 정신에서 나오고, 그렇기에 정신적 충격은 존재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레이엘이 스톱 마법을 해제하기는 했으나 인간에게 당한 굴욕감은 가뜩이나 약해진 카리엘을 더욱 상하게 했다.
눈 밑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멋진 얼굴도 말라붙어, 대천사의 권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휘오오오오오!
아라보트 쪽에서 강풍이 밀려들었다.
바람이 섞인 모래가 등판을 때리는 것만으로도 강난은 피부가 불에 타는 고통을 느꼈다.
‘삶이란…… 고통.’
그렇게 말했었다.
가올드는.
“카리엘 님, 처형을 시작하겠습니다.”
타락천사 마우리엘이 다가와 허락을 구했으나 카리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인간의 마법에 당한 이후 쇠약해진 정신 속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는 더욱 깊어졌다.
문제는 그 증오의 원천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인간을 증오하게 된 것일까?
카리엘이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의심은 유리엘이 언제나 생각했던 의문과 정확히 접점에서 만났다.
‘그렇다, 카리엘. 실로 이상하지 않는가? 천사는 대단하지만 인간은 혼란스럽다. 과연 우리는…….’
정말로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인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없이는 천국의 미래도 없다.
그렇기에 유리엘은 카리엘의 오랜 싸움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기로 했고, 마침내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오는군.”
라키아에 남아 있는 모든 타락천사들과 마라들이 성벽 앞의 평원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에게 인간의 지독한 욕망을 깨닫게 했던 미케아 가올드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 어째서……?”
강난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가올드를 바라보았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유리엘이 지상에 착지하자 가올드가 걸음을 멈췄다.
“미로는 어디에 있지?”
“…….”
가올드는 대답 없이 고개를 들어 강난을 살폈다.
수갑에 손이 들린 채로 모든 체중을 지탱하고 있는 그녀는 옷이 해져 있었고 수많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가올드가 갑자기 입가를 찢으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제대로 당했구나, 똥개.”
“이……!”
이를 악물고 힘을 쥐어짜 낸 강난이 소리쳤다.
“멍청아!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야!”
강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떻게 되찾은 미로인데, 오직 그녀를 위해서 달려온 시간인데,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여기에 오면 어쩌자는 말인가?
“입이 거친 걸 보니 아직 버틸 만한 모양이군.”
“돌아가! 미로에게 가 버리란 말이야! 무슨 대가를 치르며 여기까지 왔는지 잊었어?”
“그래, 잊어버렸어.”
“……뭐?”
너무나 쉽게 내뱉는 말에 강난은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나를 살리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살았어.”
눈시울이 뜨거워진 강난은 울컥 토해지려는 울음소리를 필사적으로 참았다.
알고 있었단 말인가?
단 한 번도 얘기를 꺼낸 적도, 그가 알아주기를 바란 적도 없다.
그렇기에 강난은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알겠어. 그러니까 돌아가. 나는 괜찮으니까…… 제발 부탁이니까…… 행복을 찾아서 떠나.”
가올드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유리엘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모든 타락천사들이 날아들어 가올드의 주위를 에워쌌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걸음을 멈춘 가올드가 강난을 올려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화내지 마라. 보채지 않아도 알아서 떠날 테니까. 하지만 그 전에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냐?”
강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안 돼. 말하지 마.’
“다시는 널 두고 가지 않겠다고 했잖아.”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가올드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선한 미소가 극도로 불안한 느낌을 전달했다.
가올드는 미로를 버리고 온 것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다.
20년 동안 고통받으며 세상을 향해 쌓아 두었던 모든 증오를 이제 그만 털어 버릴 생각이었다.
마우리엘이 비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분명 미로를 데려오라고 했을 텐데. 제안을 어기고도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하아, 이놈이고 저놈이고…….”
가올드는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어느새 선한 얼굴은 사라지고 다시 광기의 마법사로 돌아가 있었다.
“짜증 나 미쳐 버리겠네.”
잊고 있었던 10년 전의 악몽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면서 강난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하지 마…….”
하늘을 쳐다보는 가올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면서 천천히 동공이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구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쏟아 내면서, 강난이 참지 못하고 울상을 지으며 흐느꼈다.
“그러지 마…… 아저씨.”
동시에 가올드의 머리털이 모조리 곤두섰다.
‘잘 있어라, 빌어먹을 세상아.’
퍼석!
가올드를 포위하고 있던 타락천사 전원이 몇 방울의 액체만을 남긴 채 증발한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통각.
1억 배.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절망. 절망 (1)
삶은 고통.
가올드는 그렇게 말했다.
“아저씨.”
토르미아로 돌아온 가올드가 한창 협회의 서열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협회의 정원을 거닐던 16세 소녀 강난은 난간 옆에 자라난 붉은 꽃 한 송이를 꺾어 가올드에게 보여 주었다.
“이거 예쁘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은 물론이고 그녀의 고향이었던 남방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꽃이었다.
가올드는 무심한 눈동자로 꽃을 들여다보았다.
마법 실력은 동급 나이대 최강의 반열에 올랐으나 정치란 또 하나의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협회 내부의 알력 싸움에 조금씩 지쳐 가고 있던 그는 매사 모든 일에 무관심했다.
강난 또한 가올드를 이해했기에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꽃잎을 눈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토르미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예쁜 꽃들이 많다는 거야. 이 꽃은 이름이 뭐야?”
“고통.”
강난은 가올드를 향해 눈동자를 들었다.
“고통? 이 꽃의 이름이?”
“이름 따위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름이 무엇이건 그건 고통이지.”
가올드는 성큼성큼 다가와 강난을 내려다보았다.
근래에 신경질적이 되기는 했지만 오늘만큼은 더욱 차갑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 꽃은 아름답잖아.”
가올드는 강난이 들고 있는 꽃을 낚아챘다.
“강난,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오직 고통을 통해서만 세상을 느낄 수 있다. 쾌감 또한 사실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해.”
“아저씨, 요즘 너무 힘든 것 같아. 조금 쉬는 게 좋겠어.”
강난은 에둘러 서운함을 표현했다.
물론 가올드가 얼마나 고통을 받으며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는 이제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불행을 내색한 적이 없는 가올드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그는 보고 싶지 않았다.
가올드는 마법을 시전하여 꽃이 꺾인 자리의 끝부분을 날카롭게 베어 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후세를 전하기 위해서지만, 태어나서 시들 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짝이 누군지 모른다. 또한 자식의 생김새도 볼 수가 없지. 강난아, 삶은 고통이다. 우리를 이루는 오감도, 피부 아래에 흐르는 신경도 결국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기능에 불과한 거야.”
“삶은…… 고통.”
마음에 드는 사고방식은 아니지만 강난은 어쩌면 가올드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의 존재가 받아들이는 이 세상은 온통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통각 1억 배-에어 프레스.
퍼석!
가올드를 포위하고 있던 타락천사 전원이 몇 방울의 액체만을 남긴 채 증발한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하늘이 땅과 맞붙어 버린 듯한 느낌.
가올드의 반경 안에 있던 자들 중에 형체를 유지하며 서 있는 건 대천사 유리엘이 유일했다.
유리엘의 광륜이 무려 100미터 직경의 고리로 퍼지며 무시무시하게 회전했다.
충격에 흔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정신이 얼마나 빠르게 가속되고 있는가만 봐도 가올드의 위력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정말 인간의 힘인가?’
인간을 초월한 인간을 대라고 한다면 유리엘은 오직 미로만을 꼽을 뿐이지만, 가올드의 극기 또한 인간의 범주는 이미 넘어섰다고 봐야 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그것은 가올드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다.
20년의 증오가 한 번에 폭발한 후폭풍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느껴지는 건 오직 고통뿐.
흰자를 치켜뜨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가올드는 이성을 잃은 채 비명을 질렀고, 급기야 아래턱이 빠지면서 오직 목구멍으로만 소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
가올드는 미친 듯이 질주했다.
거의 본능, 무의식의 영역에서 제시한 방향으로 달리며 강난을 향해 치달았다.
퍽!
두 번째 에어 프레스가 펼쳐지자 처음과 같이 타락천사들과 마라들이 동시에 소멸했다.
“크에에에에! 크에에에에!”
삶은 고통.
가올드가 느끼는 1억 배의 통각은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정보를 통증으로 전달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쇼크에,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가올드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치 육신에 갇혀 있는 영혼이 비참한 생물의 감옥을 탈출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듯.
그렇게 가올드는 생물에게 부여된 고통의 굴레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 * *
토르미아 왕국.
공인 3급의 대마법사이자 전 마법협회 마법서고 관리인이었던 이자벨은 수도 바슈카의 마법협회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협회 전용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세상이 인정하는 유능한 학자이자 마법사였지만 가올드를 비호했다는 이유로 협회 내부의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48시간 동안 고문을 당한 그녀였다.
고문관 사키리는 약속대로 규정외식 ‘진실의 천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 속은 감정이 없는 것을 넘어 악의까지 느껴질 만큼 잔혹했고, 이자벨은 1초의 안락함도 느끼지 못한 채 주어진 모든 시간을 고통의 색으로 칠했다.
결과적으로 이자벨은 48시간을 버텨 냈고 가올드 팀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
한 달이 넘도록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여 수명을 이어 오던 그녀가 눈을 뜬 것은 어제 새벽.
치료 마법사와 서저리들이 상태를 확인하며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으나 그녀의 입은 오늘까지도 열리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눈을 깜박이며 하얀 벽지로 장식된 천장만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똑똑.
누군가가 병실을 노크했을 때에도 그녀의 시선은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동공이 흔들리며 천천히 고개가 움직였다.
“괜찮습니까? 어제 새벽에 깨어나셨다고 하던데.”
이자벨을 48시간 동안 고문했던 마법협회 공인 5급의 마법사 사키리가 담담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자벨의 심장박동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동공의 흔들림은 잦아들었고, 표정 또한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살면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