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07
어느새 속사검의 단도가 두 발등을 찍은 상태였다.
이대로 다시 순간 이동을 시전하면 발목이 날아가고 말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으아아악!”
발목을 뜯어내고 바닥을 구른 아크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비처럼 쏟아지는 단도들이었다.
“멍청아! 피해!”
요르딕이 아이스 글로브로 만든 얼음의 채찍을 휘둘렀으나 아크만의 심장에는 이미 7개의 껍질이 박힌 뒤였다.
‘제길! 어디냐!’
스피릿 존을 통해서 샤갈의 움직임을 포착한 요르딕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인지의 영역.
신경들이 논리적인 반응을 도출하기까지는 까마득한 시간이 걸렸고, 그 틈새를 샤갈이 파고들었다.
“으, 으아아아!”
생각을 포기한 요르딕이 막무가내로 채찍을 휘둘렀으나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픽.
살이 뚫리는 소리가 새소리처럼 깔끔했다.
“컥……!”
목덜미에 단도의 껍질이 박힌 요르딕이 게처럼 비틀거리는 순간 샤갈이 비행하듯 몸을 날렸다.
팔부터 내밀어 푝푝푝 하고 목덜미를 세 번 더 찌르자 박자를 맞추듯 요르딕의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으아아악!”
압력에 의해 핏물이 분사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겠어!’
에텔라가 사각에서 기습했으나 사건의 향수를 맡은 샤갈은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 이비앙을 노렸다.
“흐읍!”
이비앙의 치켜뜬 눈앞으로 샤갈의 단도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부르르 떨렸다.
‘뭐야?’
속사검의 손잡이는 금속이었다.
“지금이에요! 빨리……!”
이비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샤갈의 발 차기가 옆구리를 가격했다.
“흐으으으!”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졌으나 마그네틱 포스를 해제하면 단도가 찌르고 들어올 것이다.
“흐음.”
몸을 돌려 땅에 착지한 샤갈이 이비앙의 뒤통수를 잡고 단도 쪽으로 밀어 넣었다.
퍽 소리를 내며 이마에 칼날이 박혔다.
“마스터!”
엘위가 마법을 시전하자 강력한 독가스가 퍼졌다.
3대길드의 마스터가 전부 사망한 시점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다.
“후우우우!”
5분 가까이 호흡을 멈추고 있던 에텔라는 자욱한 연무가 걷히자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읍! 읍!”
엘위를 뒤에서 끌어안은 샤갈이 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아 그녀의 입을 막고 있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가스라도 시전자에게 불어오게 하지는 않을 터.
처음에는 칼날을 들이댔으나 그럼에도 마법을 해제하지 않자 코와 입을 틀어막아 버린 것이었다.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엘위를 살핀 에텔라가 말했다.
“기다려요. 당신에게 할 얘기가…….”
“으읍! 으읍!”
샤갈은 오직 에텔라만을 바라보며 엘위의 상체에 단도를 찔러 댔다.
툭툭툭툭. 툭툭툭툭.
마치 장난삼아 도장을 찍어 보듯 기계적인 반복이었고, 칼날이 박힐 때마다 엘위의 몸이 감전된 듯 뒤틀렸다.
마침내 생명이 꺼지자 에텔라가 눈을 감고 묵념했다.
‘이자가 가는 곳에는 시체밖에 남지 않는다.’
인간과 아인종을 포함해 100명이 넘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비가 내린 듯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스승님은…….’
이자에게 스스로 목숨을 내준 것일까?
“내가 밉나?”
샤갈이 물었다.
“내가 증오스럽다면 덤벼라.”
엘위에게서 떨림이 사라지자 유일하게 남은 한 자루의 단도를 쥐고 샤갈이 일어섰다.
“당신은 강해요. 나보다 더.”
에텔라는 솔직히 시인했다.
“하지만 당신이 그저 악에 지나지 않았다면, 제 스승인 라파엘 대주교님을 살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악이다.”
샤갈이 라파엘을 잊을 리가 없었다.
“그의 제자였나? 네 스승은 내 손에 죽었다. 복수해라.”
“당신에 대해서 알아봤어요. 그리고 어째서 스승님이 당신에게 기꺼이 몸을 내주었는지 알게 되었죠.”
“위선.”
샤갈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렇게라도 포장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풀잎 서커스라는 단체는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뭐?”
라파엘이 죽음을 통해 전달한 유언을 받들기 위해, 에텔라는 당장이라도 샤갈을 쳐부수고 싶은 마음을 초인적인 선의 의지로 참아 냈다.
“당신이 살아온 인생 전부가 가짜예요. 통속의 뇌였을 뿐이라고요.”
***
라둠의 건물을 뛰어넘으며 근방을 수색하던 시로네가 말했다.
“리안, 흩어지자.”
시간이 촉박했기에 리안도 동의했다.
“그럼 내가 이쪽을 맡을게. 너는 반대편으로 가. 생화의 입구에서 보자.”
“응. 조심해.”
리안이 별걱정을 다 한다는 듯 피식 웃으며 몸을 날렸다.
‘죽고 싶어도 못 죽는 몸이라고.’
건물 아래로 뛰어내린 리안은 그때부터 전력으로 달리며 꼼꼼하게 주위를 수색했다.
마법사처럼 하늘을 날지는 못하지만 지상에는 지상만의 흔적이 남는 법이다.
‘저기로군.’
아인종들의 시체를 따라가 도착한 곳에서 리안은 걸음을 멈췄다.
질풍의 위그.
그가 허리가 잘린 채로 죽어 있었다.
사망 순간의 감정을 담고 있는 얼굴에서는 어떻게 베였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당혹감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전투 중에 생긴 부상이 아니야.’
억지로 잡아 뜯은 듯, 오른팔이 팔꿈치 아래부터 사라져 있었다.
툭, 툭, 섬뜩한 소리에 리안이 고개를 들자 붉은 망토를 휘감고 있는 안경잡이 고블린이 위그의 팔을 들고 살점을 뜯고 있었다.
턱을 우물거리고 살점이 넘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리안이 대직도를 겨누었다.
“내려와라. 토막을 내 주지.”
“변론을 하자면…….”
고블린이 혀로 이빨을 닦으며 말했다.
“먼저 나를 사냥한 건 이놈이야.”
위그의 팔이 흔들렸다.
“나를 죽여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음식을 사지. 이것과 다를 게 있을까?”
위그의 육체를 먹고 있는 고블린의 정체는 스피드킬러의 총대장, 섭식의 키도.
대정화기의 미味에 해당하는 자였다.
오감 발생 (3)
리안은 키도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질리도록 경험한 그였다.
리안 또한 남들보다 더 많이 참을 수 있었을 뿐, 본성이 달라서 그들처럼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내려와. 승부를 내자.”
그저 적이기에 벤다.
수많은 의미를 단순한 목표 설정을 통해 지워 버리는 것이야말로 리안의 강점이었다.
“인간은 참 오만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키도가 가볍게 착지해 창을 휘돌리자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들렸다.
‘날렵한 놈이군.’
질풍의 위그가 얼마나 빠른지는 직접 상대한 리안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더 빠르다고 봐야겠지.’
키도의 모습이 사라지고, 허리를 뒤튼 리안이 대직도를 거꾸로 세우자 챙 하고 칼날이 부딪쳤다.
“흐읍!”
하지만 남아 있는 건 소리뿐.
어느새 다시 모습을 감춘 키도의 민첩함에 모골이 송연해진 리안은 오판을 깨달았다.
‘더 빠른 게 아니야.’
훨씬 빠르다.
전투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위그는 반격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당했을 게 분명했다.
피리리리. 피리리리.
창에서 들리는 피리 소리는 위치를 노출시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이 정도로 속도가 빨라 버리면 오히려 정신이 산만할 지경이었다.
“키키, 역시 다르군, 마하의 기사.”
‘나를 알고 있어?’
창에 매달린 키도가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며 땅 위를 질주하자 칼날이 박히는 자리마다 불꽃이 튀었다.
불꽃의 간격이 4미터, 5미터, 6미터로 점차 길어지더니 마치 리안을 관통한 것처럼 사방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여기서 벤다!’
부지불식간에 바닥을 굴러 다가온 키도가 창을 휘두르자 리안이 감각적으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흥, 두 다리를 땅에 박고 살아가는 주제에…….”
착지 지점에 먼저 도착한 키도가 등을 땅에 대고 난회전을 일으키며 창을 휘둘렀다.
“언제나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지.”
고블린 창술-칼날 지옥.
“크으으으!”
외중력은 불가능했으나 리안은 신적초월의 능력으로 추락의 관성을 이겨 내고 멀리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키키, 하나는 할 줄 아는군.”
회전하는 상태 그대로 바닥을 구른 키도가 순식간에 리안의 발밑으로 다가와 창을 휘둘렀다.
“크윽!”
아킬레스건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리안이 반격하기도 전에 거리를 벌린 키도가 입가를 찢으며 오른손을 들었다.
“어때, 이제 발밑에 뭐가 있는지 보이나?”
리안의 발목에서 뜯어낸 살점이 쥐여 있었다.
“너…… 뭔가 깨달았군.”
굳이 고블린이 아니더라도 이런 기술적 경지에 그냥 도달했을 리가 없다.
키도가 살점을 입에 넣고 씹었다.
“…….”
리안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으나 뱀을 닮은 동공에 한순간 깃든 깊은 느낌은 놓치지 않았다.
고블린 화신술-대지의 율법.
“모든 생물은 땅에 빌붙어 살지.”
인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를 상상하고 있을 때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땅에 엎드린 고블린이 있었다.
“대지는 모든 것을 품는다. 먹을 것을 주고, 누울 자리를 제공하고, 배설물을 받아 주지. 마치 어미처럼 말이야.”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더 이상 걷기를 포기하고 땅을 기어 다녔다.
흙을 맛보고 대지의 진동을 듣고, 그 안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관찰했다.
이미 깨달은 생물들이 온전히 어미의 품에 삶을 맡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벅찬 감동에 눈물이 흘렀다.
고블린 평생 처음 흘려 보는 눈물이었다.
1년의 시간 끝에 올챙이에게서 손발이 나오듯 천천히 그의 사지가 펼쳐졌다.
처음에는 배로 기었으나, 조금씩 손가락과 발가락에 힘이 붙으면서 벌레처럼 배를 띄우고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완벽하게 땅에 동화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다.
중력을.
대지의 품에 안겨 움직이는 이치를.
인간보다 성찰이 약한 고블린이 화신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깊은 사유인지 알 수 있었다.
“너 또한 생물이지. 땅(중력)의 율법에 속박되어 있는 한 나를 잡을 수는 없다. 그래도 계속할 거냐?”
“아무래도 그래야겠군.”
대직도를 어깨에 걸친 리안이 재생이 끝난 발목을 탁탁 털며 걸음을 옮겼다.
“네 얘기를 듣고 나니, 이길 방법이 떠올랐거든.”
“그래?”
키도가 창을 회전시키며 가속하자 피리 소리가 끝을 모르고 커져 가기 시작했다.
“기대하지.”
두 다리를 허공에 띄우는 순간 그의 몸이 핑 도는가 싶더니 시선 밖으로 이탈했다.
‘확실히 인간의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지만…….’
대직도를 어깨에 걸친 리안이 무게중심을 낮춘 채로 급격히 몸을 뒤틀었다.
‘나는 야차다!’
액싱-디나이.
“뭐야?”
리안의 주위를 이루는 풍경이 기괴하게 일렁거리자 키도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대직도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고, 리안의 근육이 퍽 하고 뒤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