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78
어떤 상상을 하는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그것도 막간의 여흥일 뿐이지. 진정한 욕망이란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정말로 범하고 싶은 게 뭔지 아는가, 내무 장관?”
“저, 저로서는…….”
“세계. 존재하는 모든 것.”
보검을 쥐고 두 팔을 벌리자 하비츠의 중심이 완전히 수직을 이루더니 배꼽 위로 기립했다.
‘인간이 아니야. 설령 인간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자를 인간의 범주에 넣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황제, 구스타프 하비츠 17세.
“온 세상을 범할 것이다.”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모를 파리 한 마리가 천장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
아카드 남부 사막.
사막의 신이라 불리는 적도풍, 노스카르타의 진원지인 이곳에 심령권에서 탈출한 3천 명의 마족이 모였다.
“사단장님, 더 이상 점령할 곳이 없습니다.”
탁하고 음침한 목소리가 향한 곳에는 1톤이 넘는 장갑을 장착한 마족 전사가 서 있었다.
4군단 소속, 제2사단장, 수르가 가시아스.
“…….”
마魔.
인간에게는 안 좋은 의미로 쓰이지만, 본래 강한 집단의식이 투영되어 나타나는 현상의 총칭이었다.
인간은 수많은 나라로 힘이 분산되어 있는 반면 마족은 사탄의 이름 아래 전군이 통합되어 있다.
이름하여 사탄 직속 72군단.
인간이 죽을 때 생기는 극도의 공포는 고스란히 마魔가 되어 이면 세계로 흘러든다.
마魔의 발생 빈도는 인간의 역사에 남은 사망자의 숫자와 거의 동일하며, 이는 대부분의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수치였다.
그리고 72군단장은 그들의 공포를 양분으로 삼아 20억이 넘는 지옥의 군대를 조련하는 것이다.
“점령이란 무엇인가? 완벽한 굴종의 상태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군단 예하 제2사단은 남부 사막을 점령했다고 할 수 없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하나를 치러 간다.”
결국 마족은 인간이 소멸하고 남긴 정보의 찌꺼기, 즉 영혼을 재료로 만들어진 종족이라 할 수 있다.
마魔를 녹이는 용광로를 ‘불판’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는 인간의 영혼을 용융시키는 ‘지옥불’이 항시 타오르고 있다.
그 지옥불에 떨어진 영혼들이 정화되면 하나로 합쳐져 마족이 되고, 결합의 개성에 따라 능력이 결정되는 것이다.
“가자, 나의 충실한 수하들이여.”
사탄의 군대에서 사단장의 직위는 인간의 계급으로 따졌을 때 일국의 사령관에 준한다.
시온 프로젝트를 통해 심령권은 축소되었지만 인류로서는 최악의 마魔를 사막에 방치한 셈이었다.
“인간을 죽여라! 그들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우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가장 끔찍한 죽음을 선사하라!”
따라서 인간은 마를 이렇게 정의한다.
악마惡魔.
“이 세계는 우리의 것이다!”
3천의 군대가 사막을 횡단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파라스 왕국의 대마법사 줄루의 던전, 가올드와 강난이 은신해 있는 피라미드였다.
격동의 시대 (5)
***
성전.
삼황계, 칠왕성, 이군왕이 모여 만든 초국가적인 조직으로 예하에 대對천국 부대인 발키리를 운용하고 있다.
테라제가 설립하고, 성전을 포함한 24개국의 협조를 받아 만들어진 인류 최강의 군대.
영생자 커뮤니티 외에 천국의 활동이 잠잠한 지금, 세계 각국은 악마 72군단에 맞서 발키리가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었다.
“카샨 입장!”
코트리아 공화국의 군악대가 연주하는 카샨의 국가에 맞춰 우오린이 보무도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근중원으로 구분되는 근위대가 넓은 반경으로 퍼져 그물처럼 시선을 교차하고 있었다.
우오린의 뒤편으로는 최강의 검술 집단인 풍장이 1센티미터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간도는 우오린의 보좌관 역할을 수행했다.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아.’
성전은 열리는 시기도, 장소도 매번 바뀌지만, 세계의 리더들이 국력을 과시하는 장이니만큼 규모 면에 있어서는 그 어떤 회담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국빈을 맞이하라!”
황금빛으로 물든 육교를 따라 코트리아 공화국의 의장 부대가 묵직한 미늘창을 돌리면서 여황을 맞이했다.
‘이쪽도 만반의 준비를 했군.’
칠왕성 코트리아 공화국은 구스타프 제국의 남부 쪽에 돌고래 형태로 길게 튀어나온 반도 국가이다.
북쪽의 구스타프 외에는 타국과의 접점이 없기에 본래라면 제국에 먹혔어야 마땅하나, 결국 코트리아는 칠왕성이라는 당당한 이름으로 영토를 지켜 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최선을 다했겠지.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대 병기 엑스마키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맵 병기의 일종으로 추정되며, 우오린은 위력 기반의 무기가 아니라 율법적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었다.
“간도야.”
우오린이 조용히 불렀다.
“시로네는 아직 연락이 없느냐?”
오대성이 된 이후로 세계를 떠도는 시로네에게 우오린은 기별을 보냈으나 아직 답장이 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간도가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다시 사람을 보낼까요?”
정중한 편지를 매몰차게 거절한다면 제국으로서도 강압적인 수단을 쓸 수밖에.
“아니, 괜찮다. 바쁜가 보지.”
우오린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물씬 배어 있었고, 그 사실이 간도를 놀라게 했다.
‘오늘따라 냉정함이 흔들리시는 것 같다.’
우오린이 다시 불렀다.
“간도야.”
“네, 여황님. 하명하십시오.”
“오늘은 내 옆에 자리를 두고 앉아라.”
“네?”
몇 번이나 성전에 동행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옆자리를 내준 적은 처음이었다.
“구스타프의 황제가 바뀌었다.”
구스타프 하비츠 17세.
우오린이 아닌, 전대 미스트라의 기억에 의하면 자신과 맞먹을 정도로 흥미로운 인간이었다.
‘이제 인간으로 치면 나이가 제법 되었겠구나. 과연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을지.’
“제게 그럴 자격이 있습니까? 걱정이 되시면 풍장에게 따로 지시를 내릴까요?”
여황의 모든 편의를 봐주고 있지만 전투력으로 보자면 간도는 근위기사의 중中에서도 중中 정도에 해당했다.
“괜찮아. 그냥 옆에만 있어 줘.”
“……알겠습니다.”
우오린이 꺼리는 것이 무력이 아니라면 간도는 적임자로 손색이 없었다.
삼황계의 입장이 끝나자 다음으로 코트리아를 제외한 6개의 국가가 군사력을 뽐내며 성문을 넘었다.
중동의 파라스, 동방의 문文, 중부 대륙의 자이브, 남부 대륙의 아이론, 남방의 부족연합, 남대륙해의 열도 10왕국을 대표하는 아라크네.
국가의 직위는 상대적이고 수치만으로 나라의 국력을 계산할 수는 없지만, 칠왕성의 어느 왕국도 시로네의 고향인 토르미아보다 약하지 않았다.
“이군왕 입장!”
인간의 부대가 모두 들어가고 난 뒤에야 용족의 대표와 요정족의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시의 정점을 찍은 인간의 지배자들과 달리 오직 둘뿐이었다.
용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요정족은 겉치레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뵙네요, 시간의 사도시여.”
요정족의 대표 에녹스가 집채만큼 커다란 몸을 이끌고 다가오는 드래곤에게 인사했다.
1등룡 블리츠.
검처럼 날카로운 주둥이에 매끈한 몸체, 푸른 비늘은 그저 가만히 있어도 전기가 흐르는 듯 영롱했다.
“뇌익룡, 당신이 올 줄은 몰랐는데요.”
전투력에서는 12사도의 으뜸이지만 이런 정치판에는 끼어들기 싫어하는 성미였다.
“내키지 않지만 할 수 없지. 성전 따위 관심도 없지만, 오늘은 중요한 안건이 있어서.”
“용족에게 중요한 안건이라…… 흐음.”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던 에녹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블리츠를 돌아보았다.
“태양이라도 폭발하나요?”
“하나도 안 웃겨.”
곧바로 싸늘해진 에녹스가 입술을 이기죽거렸다.
“네네, 고귀하신 분께서 저 같은 천한 요정의 농담에 웃으시겠어요? 좋겠네요, 고귀해서.”
“…….”
한참이나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블리츠가 성문 앞에서 거칠게 목을 돌렸다.
“어떻게 4천 년이 지나도 그 빌어먹을 조울증은 고쳐지지가 않아?”
“신경 끄세요. 저 같은 애랑 말을 섞어서야 되겠어요?”
요정은 순수한 만큼 감정 기복이 심하고, 인간이 분노하는 생물이라면 그들에게는 우울함이 있다.
‘어떤 의미로는 인간보다 더 싫어.’
요정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 인간도 있지만, 이 성격으로 인해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다.
“친히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어오시지요.”
성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신이 고개를 숙이자 에녹스의 얼굴에 다시 함박 미소가 걸렸다.
“안녕하세요. 전하께서는 잘 지내시죠?”
먼발치에서 우오린을 봤을 때도 그랬지만, 에녹스의 외모는 인간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아, 네. 아주 건강하십니다.”
블리츠가 고개를 한껏 들어 올리자 성벽의 병사가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히익!”
“성문이 낮군.”
드래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서야 되겠는가?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인간의 높이에 맞춘 것이다 보니…….”
블리츠는 성전에 참여하는 게 처음이지만 차마 대신의 입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흐음…….”
불만스럽게 대신을 내려다보던 블리츠의 몸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에녹스가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그의 육체가 점차 압축되면서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1등룡만이 가능하다는 형태의 재구성이었다.
“이러면 되겠지.”
칼날처럼 날카로운 푸른 비늘이 머리카락을 대신하고, 튀어나온 눈 뼈 아래로 뇌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아,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나팔수가 소리쳤다.
“이군왕! 입장!”
성전이 열렸다.
***
죽음의 땅에 외롭게 세워진 줄루의 피라미드 주위를 3천의 악마 군대가 에워쌌다.
“들어가! 보이는 족족 다 죽여라!”
사단장 가시아스가 톱날처럼 생긴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뼈째 끊어지고 있었다.
“가여운 것들.”
마음이 없기에, 그저 빈말을 내뱉은 줄루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손을 들었다.
“에르가.”
끝도 없는 심연의 어둠.
검은 새 한 마리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더니 오도독 소리를 내며 짓이겨졌다.
아주 오래전, 줄루가 그랬듯이.
키에에에에에!
종잇장처럼 구겨진 검은 덩어리가 거대한 몸체로 퍼지면서 신장 10미터의 사신이 뇌전을 퍼트렸다.
“돌진해라! 후퇴는 없다!”
전격의 장막이 파도처럼 일렁거렸으나 마족들은 살점이 터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피라미드를 공격했다.
“해 볼까, 에르가.”
전격이 사라지면서 리치가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자, 악령처럼 보이는 연기가 소용돌이쳤다.
“망자의 울분.”
생명을 가진 자는 구사할 수 없는 죽음 계열의 마법, 오직 줄루만이 구현할 수 있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허억! 허억!”
강난은 두 자루의 마체테를 손에 쥐고 피라미드의 미궁을 헤집고 다녔다.
‘대체 몇 마리야?’
가끔 사막에서 마족을 만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규모가 큰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죽어라! 인간에게 고통을!”
시체처럼 푸른 핏줄이 두드러진 병사들이 창을 꼬나들고 돌진해 오자 강난이 칼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야아압!”
우악스럽게 어깨를 휘두르며 마체테를 휘두르자 적들의 목이 퍽퍽 떨어져 나갔다.
“라베! 나베라 움!”
그렇게 열고 나간 마족들의 틈새에서 사단장 가시아스가 톱날 대검을 휘둘렀다.
“크윽!”
마체테를 엑스 자로 교차해 막았으나 톱날이 끌어당기면서 손잡이를 놓치고 말았다.
“여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
가시아스가 어깨부터 밀고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오직 죽일 뿐이다!”
“뭐라고……!”
무기를 놓친 강난이 람무아이 특유의 자세를 취하며 상체를 뒤틀었다.
“지껄이는 거야!”
강력한 하이킥이 철갑을 강타하자 무거운 육체가 밑에 바퀴가 달린 듯 밀려나면서 벽에 처박혔다.
“사단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