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00
일종의 타임슬립.
“시간을 역행하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위고의 눈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시로네가 보였다.
“이것이 내가 나네의 공에 맞서…….”
비록 아직은 미흡하지만.
“전체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
위고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하면서 맑은 눈물이 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박애의 야훼.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불행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짐을 짊어진 사람이었다.
‘아버지.’
경지의 깊이가 전부는 아니다.
‘제가 어리석었어요.’
시로네의 마음이 얼마나 넓은지 깨닫자 좁아터진 자신의 마음이 부끄럽기 시작했다.
“시온에 가세요.”
시로네가 손을 내밀었다.
“훌륭한 화신술이었습니다. 함께 싸웁시다. 이 세계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아…….”
비로소 말문이 트였다.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위고의 모습을 보고 사촌들도 깨달은 바가 있는지 입을 다물었다.
미네르바가 말했다.
“고작 1초라고 생각하지?”
가르시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을 듣고 보니 부정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순간을 반복한다고 전체를 구할 수는 없지. 그렇다고 모든 마를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다만…….”
미네르바는 베론을 떠올렸다.
“한 남자가 이 세상에 화두를 던지고 떠났어. 과연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
“베론 문제군요. 이미 율법으로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나네의 공 또한 옳은 것이겠죠.”
“그래서 고작 1초가 아닌 거야.”
베론 문제에 대한 시로네의 대답은 ‘있다’였다.
“정해진 미래를 파괴했다. 나네의 깨달음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거야.”
미래가 파괴될 수 있는 성질이라면.
“세상이 정말로 고통인지는, 이제 끝까지 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단계에 돌입한 것이지.”
시로네가 위고를 부축하며 다가왔다.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사촌들이 위고를 데리고 가자 시로네가 미네르바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만 가죠.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요.”
가르시아가 다가왔다.
“위고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주십시오.”
미네르바가 도끼눈을 치켜떴다.
“야! 나한테는 그런 말 한 번도 없더니? 일개 마법협회장 주제에 감히 오대성을 가려?”
‘사람 같아야 대접을 하지.’
시로네를 보고 미네르바가 더욱 싫어졌다.
“위고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1명이라도 더 시온에 도움이 되면 좋은 거죠.”
가르시아는 처음으로 속엣말을 꺼냈다.
“네. 현재 구스타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고 성전에서도 전 세계의 인재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저도 조만간 발키리에 지원할 생각입니다.”
“네? 협회장님이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테스트를 볼 생각입니다. 힘을 합쳐야 할 때니까요. 물론 개인적인 커리어나 왕국의 명예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아, 그거야 당연하죠.”
모두가 야훼일 필요는 없었다.
‘세계 최고의 화염 마법사라면 테스트 정도는 쉽게 통과하겠지. 아니, 어쩌면 프리 패스이려나.’
시로네는 내색하지 않았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오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르시아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시로네를 태운 제트가 무섭게 불을 뿜더니 마하의 속도로 창공을 가로질렀다.
사원이 빠르게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시로네가 미네르바에게 고개를 돌렸다.
“상아탑으로 가는 거죠?”
“그래야지. 타임 바이브레이션은 그 자체로 파계야. 아마 무슨 말이 나오겠지. 그러면 카샨으로 떠나는 건 며칠 뒤가 될 것 같은데?”
“무슨 말이 나오기에 그렇게 오래 걸려요?”
“들어 보면 알아.”
테라포스와 얽히는 건 싫었다.
“대신에 자질구레한 안건은 내가 처리해 줄게. 남에이몬드 건도 있고, 을 등재하는 것도.”
“을 등재해요?”
위성을 찾는 것이 불가능한 오대성은 자신 이외에 한 가지를 더 상아탑에 등록할 수 있다.
“아무리 극악을 처단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초특급 살인 무기잖아. 상아탑에 등재해야 자유롭게 쓸 수 있지. 안 그러면 세계적으로 반발이 엄청날걸.”
“아하.”
“너한테 을 맡길게. 어쩌면 이제야 제대로 된 주인을 찾은 것 같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게 감상적인 말이었다.
‘하긴 미네르바 씨에게 은…….’
끔찍한 고통과 추악한 과거가 전부 담긴 물건을 남에게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소원은 뭐예요?”
“응?”
“내기에서 졌잖아요. 무슨 소원인데요?”
미네르바가 씩 웃었다.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네?”
시로네는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천만에. 매도 빨리 맞는 게 낫죠. 아무래도 정상적인 소원은 아닐 것 같아서요.”
오대성에게 소원이랄 게 있겠는가?
“흐음, 좋아.”
제트에서 돌아선 미네르바가 꿀이 떨어지는 듯한 눈빛으로 시로네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이걸 어쩐다?”
시로네가 으스스 몸을 떠는 그때, 미네르바가 손가락 2개를 펼쳤다.
“선택권을 줄게.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과, 나중에 할 수밖에 없는 것. 골라 봐.”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머릿속으로 목록을 써 내려가던 시로네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나중에 할 수밖에 없는 거요. 그러니까 지금 할 수 있는데 나중으로 미루는 건 포함 안 되는 거죠?”
“영악하기는. 물론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여기서 할 수 있지. 하지만 결혼 같은 거라면 어떡할래? 그건 여기서 할 수 없잖아?”
“……혹시 제정신이세요?”
미네르바가 시원하게 웃었다.
“농담이야. 아무튼 좋아. 나중에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낙찰! 나랑 약속한 거야?”
“그래도 뭔지는 알아야죠.”
제트가 구름을 관통하는 동안 미네르바는 아련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겼다.
“타임 바이브레이션.”
“네?”
“혹시 나중에…… 정말로 네가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전에 없이 진지한 목소리에 시로네가 귀를 기울이는데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아껴 두는 게 좋겠어. 그래야 더 애가 탈 거 아냐? 때가 되면 말할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뭔데요?”
미네르바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그녀가 아닌 시로네를 위해서였다.
‘너는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
삶은 고통.
시로네를 따라 여행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본질은 나네의 철학에 가까웠다.
‘나를 구원하지 마, 시로네.’
그것이 진정으로 부탁하고 싶었던 것.
“아이, 진짜! 자꾸 이러면 소원이고 뭐고 없던 것으로 할 거예요!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시로네의 볼멘소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으나 그녀의 눈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닦아 내야지.’
결코 깨끗해질 수 없는 마녀의 마음을.
‘달빛으로 닦아 내야지.’
지중해를 지나가는 그들의 시야에 북부 대륙의 아카드 사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의 의문 (1)
코로나 왕국에 도착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임무를 끝내고 돌아와서일까, 아직은 낯선 차가운 풍경도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했다.
“밥이나 먹고 가자. 별이 되면 뭐 해? 한 끼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데 말이야.”
시로네가 머물렀던 화이트 여관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머?”
시로네와 미네르바가 나란히 들어오는 광경에 중년의 여성이 눈을 빛냈다.
“많이 친해지셨네요. 혹시……?”
“비즈니스야. 쟤도 오대성이거든.”
“흐음, 그래요?”
중년의 여성은 실망한 눈치였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걸로.”
미네르바가 바쁜 티를 내자 중년의 여성도 군소리 없이 식당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시로네는 구석의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
당시에 카드 게임을 하고 있던 4명이 여전히 똑같은 배치로 패를 돌리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마도 집에 갔다 왔을 것이고 우연찮게 4명 모두 그때와 같은 옷을 입었을 것이다.
시로네의 표정을 확인한 미네르바가 네 사람에게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누가 이기고 있어?”
대머리의 노인이 답했다.
“모두 지고 있어. 게임이 끝나지 않으면 승자도 패자도 없지. 이기는 건 게임뿐이야.”
시로네는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기는 건 게임이다.’
마치 야훼와 부처가 대치하고 있는 현재 세계의 정세를 나타내는 듯했다.
“언제까지 할 거야?”
“……게임이 끝날 때까지.”
품속을 뒤진 미네르바가 남에이몬드에서 받은 채권을 꺼내 흔들었다.
“나도 한판 끼어도 될까?”
네 사람이 동시에 손을 멈췄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도박을 하겠다는 말에 시로네가 말렸으나 미네르바는 이미 의자를 들고 움직이고 있었다.
“정식으로 소개할게. 이들은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야. 상아탑의 명물이지. 관광객들의 포토 존으로도 유명한 장소라고.”
주방에서 주인이 소리쳤다.
“화이트 여관의 명물이에요!”
미네르바는 카드 게임의 판세를 확인했다.
“14년 전에 도박에 미친 자들, 즉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도박사 4명이 상아탑에 들어왔어. 그리고 내기를 했지. 과연 게임에서 이기는 건 누구인가?”
“어떤 게임인데요?”
“시험, 인생, 무엇이든 상관없어. 단, 참가자의 성향은 달라. 반드시 빼앗으려는 자와 반드시 주려는 자, 게임을 끝내려는 자와 게임을 유지하려는 자.”
시로네는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다시 살폈다.
“누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
“당연히 반드시 빼앗으려는 자가…….”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이기는 사람이 없군요.”
“아이러니하지? 하지만 이게 인생이야. 게임이 끝나려면 한쪽의 균형이 무너져야 하지.”
미네르바가 채권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이번 판의 승자를 내가 맞혀 보겠어. 만약 지면 이 돈을 전부 가져도 좋아.”
대머리 노인이 물었다.
“……당신이 이기면?”
“그때는 게임을 멈춰. 이 세상에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없는 거야.”
건너편에 앉은 붉은 수염의 사내가 말했다.
“좋아. 이번 판에 누가 이기지?”
“흐음, 어디 보자…….”
미네르바가 신중히 패를 살피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로네도 침을 꿀꺽 삼켰다.
‘균형을 깬다.’
선과 악, 공과 애로 완벽하게 맞물린 게임에 누군가가 끼어들어 균열을 일으킨다면.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네 사람이 들고 있는 패를 한참이나 살피던 미네르바가 머리를 긁적였다.
“전혀 모르겠는걸. 도박에는 소질이 없어서. 이럴 때는 감이 최고지. 게임을 유지하려는 자가 누구야?”
박애, 혹은 시로네.
“나다.”
해골처럼 앙상한 남자가 말했다.
“좋아. 당신이 이기는 쪽에 걸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