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24
단테가 말했다.
“토르미아는 쉽게 뚫리지 않을 거야.”
세리엘이 물었다.
“전략이라도 있는 거야?”
“기밀이라 자세한 건 말해 줄 수 없어. 물론 몇몇은 이미 예상하고 있겠지만. 어쨌든 최후의 접전지가 토르미아가 될 거라는 건 거의 확실하지.”
이루키가 덧붙였다.
“발키리도 나름의 대비는 하고 있어. 물론 피해 규모는 산술적으로 추정이 불가능한 정도일 테지만, 전쟁에서 이길 확률도 조금은 있다.”
“……얼마나 죽을까?”
“마족이 점령한 왕국을 기준으로 해 보자면, 평균적으로 자국민의 87퍼센트가 사망했지. 즉, 토르미아까지 왔다고 봤을 때, 이 자리의 대부분이 죽을 거야.”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도로시가 말했다.
“그럼 지금 이 자리가 우리의 마지막 동창회가 될 수도 있겠네. 기념으로 건배라도 할까?”
“죽지 않아.”
사람들의 시선이 시로네에게 향했다.
“절대로 죽지 않게 할 거야.”
“시로네…….”
매섭게 전방을 노려보는 시로네의 표정에서, 그가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 느껴졌다.
“처음 전쟁을 시작했을 때도 불가능하다고 했어. 하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지. 상아탑이 움직이고, 성음이 심령권을 닫았어. 그리고 우리들 모두, 최선을 다해 싸운다면…….”
시로네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승리를 위해 건배하자.”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동창생들이 각자의 잔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이기자!”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람을 쐬기 위해 바깥으로 나온 시로네의 귀에 술집의 떠들썩한 소리가 맴돌았다.
‘온다.’
시폭감의 발현일까, 아니면 그저 감정이 만들어 낸 확신 같은 망상일까.
‘거대한 것이 오고 있어.’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가속도가, 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에?’
아직까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그 막연한 이미지에 전율할 뿐이었다.
“시로네.”
천천히 몸을 돌리자 볼에 홍조가 피어오른 에이미가 웃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는 거야?”
시로네는 떠나야 한다.
“미안해. 한시라도 빨리 상아탑에 전달해야 해서. 이렇게 만났는데…….”
에이미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만 행복하려고 하지 말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 나도 열심히 싸울 거야. 그리고 기다릴 테니까. 내 마음속에는 너밖에 없으니까…….”
이미 술기운을 빌린 상태지만 그럼에도 더욱 용기를 끌어 올려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에이미가 활짝 웃었다.
“사랑해.”
시로네는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그녀의 두 눈에 맑게 담겨 있는 것을 보았다.
“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울어?”
“어? 내가? 왜…….”
뒤늦게 깨달은 시로네가 황급히 눈물을 훔쳤으나, 어째서인지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여자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에이미의 얼굴, 목소리, 체취, 두 눈에 담겨 있는 밤하늘의 달까지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아!’
에이미의 어깨를 붙잡은 시로네는 그녀의 형태를 망막에 새겨 넣었다.
“에이미, 절대로 나를 잊어버리면 안 돼. 어떤 순간에도 나를 기억해 줘야 해.”
“그게 무슨 말이야?”
시로네는 두려웠다.
이 세계에 밀려들고 있는 거대한 미래가,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 같았다.
“약속해 줘.”
에이미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겁에 질린 시로네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억할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네가 없는 세계라고 해도 너를 기억할 거야.”
시로네는 에이미에게 키스했고, 뜨거운 호흡이 두 사람을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공간 이동의 굉음을 듣고 술집에서 나온 사람들의 눈에, 홀로 서 있는 에이미가 보였다.
***
파계의 경지에 도달한 가올드의 에어 프레스가 작렬하자 땅에서부터 버섯구름이 치솟았다.
줄루와 함께 먼 하늘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강난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이럴 수가…….”
미로에 대한 기억마저 망각하기 시작한 가올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어떻게 더 강해질 수가 있죠?”
“인간이니까.”
줄루가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한계가 없다요. 다만 가올드는…… 더 편한 방법을 택했을 뿐.”
폭연이 사라지고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긴 것을 확인한 줄루가 지상으로 내려갔다.
연기를 밀어내는 바람이 불어오고, 가올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끝났군.”
남방의 마족들이 완벽하게 정리되었다.
하지만 강난에게는 가올드의 웃고 있는 모습이, 슬픔을 넘어 괴기스러웠다.
“정말 괜찮아요?”
“뭐가?”
“알고 있잖아요. 당신은…….”
연기 속에서 들린 박수 소리에, 강난과 줄루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야, 멋진데? 역시 최강의 사나이.”
익숙한 목소리와 익숙한 말투, 그렇기에 강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미로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우리 멋쟁이가 힘쓰고 있다기에 위로라도 해 줄까 하고 왔지. 잘 지냈어?”
가올드를 만나는 일에 심장이 뛰지 않을 수 없지만, 닭살이 돋는 상황을 연출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키스까지는 봐주고.’
그렇게 선을 그은 뒤에야 남방으로 올 수 있었던 미로지만, 가올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너무 감격에 겨워서…….”
순간 느껴지는 살기에 미로의 눈이 커지고, 곧바로 에어 프레스가 아래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황급히 거리를 벌린 미로의 등 뒤로 어느새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떠올라 있었다.
본능이었다.
“도망쳐!”
강난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가올드가 미로에게 돌진하며 에어 건을 난사했다.
“크윽!”
천수관세음의 장법이 시간을 단축시키며 탄환을 때렸으나 차마 가올드를 공격할 수 없었다.
“죽인다!”
미로의 목을 움켜쥐고 밀고 들어간 가올드가 그녀를 땅바닥에 눕혔다.
목이 부러질 듯한 악력보다 충격적인 것은, 가올드의 눈빛이었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
명백한 증오였다.
“가올드…… 왜?”
“사랑의 감정은 무뎌지기 마련이지.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지킨 가올드가 대단했던 것. 하지만 이제는 한계다요.”
그 기억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가올드는 너를 잊는 대신 증오하기를 택했어. 그러면 조금 더 버틸 수 있다.”
“크으으으……!”
미로의 목을 조이는 가올드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줄루가 중동어로 말했다.
“지극히 인간적이다.”
기억 (2)
미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나를 죽인다고?’
하지만 자신을 내려다보는 가올드의 눈빛은, 여태까지 그녀가 경험한 어떤 악인보다도 강렬했다.
‘거짓말이지?’
세상 모두가 자신을 버려도 가올드만큼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비록 그의 사랑을 받아 주지는 못했지만, 그 사실 하나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거짓말이야!”
가올드가 미로라는 여자를 마음에서 도려냈을 때에야 선명하게 느껴졌다.
“죽어어어어!”
목을 움켜쥔 채로 에어 프레스를 가하는 순간, 미로도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크윽!”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가올드를 후려쳤다.
거의 진동에 가까운 속도로 흔들린 가올드의 육체가 좌측으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미로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막았어.’
사람을 때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단단한 방어벽이 정신을 통해 느껴졌다.
“미로야…….”
정신을 차린 것일까?
사지를 땅에 붙인 채로 고개를 쳐든 가올드의 눈에 한순간 선한 빛이 감돌았다.
“가올…….”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무지막지한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막아야 해요!”
강난이 줄루에게 소리쳤다.
“막아?”
인간의 몸으로 파계에 도달한 자와 시대의 극선이 다투는 현장이었다.
“무슨 수로?”
현실을 깨달은 강난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의 시야에 거대한 빛이 터졌다.
퍼어어어어엉!
크레이터 속에 또 다른 크레이터가 생기고, 2명의 그림자가 먹물처럼 움직였다.
쾅! 쾅! 쾅! 쾅!
수십 미터 면적의 손바닥이 찍히는 족족 가올드의 몸에 압박이 가해졌다.
하지만 그의 바쿰 프레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방어 마법 중의 하나였다.
“으아아아아!”
분노의 크기대로 지를 경우 반경 일대가 폭발할 테지만, 강난과 줄루도 사망한다.
반대로 말해 그녀들이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전투를 지켜보는 이유였다.
“이 멍청아!”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이 흔들리는 법이 없는 미로가 진심을 다해 소리쳤다.
“정신 좀 차려!”
가올드이기 때문이다.
땅이 쪼개지는 굉음이 들리고, 천수관세음의 수도가 내리친 자리에서 가올드가 허리를 굽혔다.
여전히 바쿰 프레스는 건재했지만, 타격이 들어갔다는 것은 반응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으으으…….”
머리가 탈색되고, 저주받은 신경이 상상을 초월한 고통을 그의 몸에 전달했다.
그 모습을 보자 미로의 마음이 다시 약해졌지만, 이제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적당히 해라. 좋다 좋다 하니까 진짜 좋아하는 줄 알아? 네가 나한테 이래도 된다고 생각해?”
“너 때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이런 고통을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누가 나 좋아하라고 등 떠밀었어? 결국 너잖아! 네가 멋대로 좋아한 거면서……!”
미로의 분노에 의해 움직이는 천수관세음의 장격이 소나기처럼 가올드를 두드렸다.
“그러니까!”
최강의 일타가 가해졌다.
“너는 그냥 좋아하면 된단 말이야!”
쿠우우우우우우!
도합 1억 번이 넘는 연타는 자연계의 재앙에 근접한 위력으로 지반을 붕괴시켰다.
“저 미친 여자가!”
강난이 달려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엄청난 강풍이 그녀를 밀어냈다.
“크아아아!”
피눈물을 흘리는 가올드가 고통에 절규하고, 미로가 바람을 비집고 달려들었다.
“너 같은 거, 처음부터 필요 없었어.”
검지와 중지를 모으자 하늘에 떠 있는 천수관세음이 똑같은 수인을 맺었다.
가올드의 목을 꿰뚫을 생각이었다.
“나를 위해 싸운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