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40
에어 건이 끝없이 쏘아지는 자리에 줄루의 소환수 쿠거가 뛰어들었다.
“크아아아앙!”
가올드의 곁을 지키는 강난이 포화를 피한 잔당을 주먹으로 파괴했다.
“장소가 좋지 않아요! 물러서면서 해요!”
파계의 에어 프레스로 끝장을 내 버리기에는 아군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미로는?”
가올드를 따라 물러서는 줄루가 물었다.
그제야 깨달은 강난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놀란 눈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저, 저기……!”
마족들의 머리 위로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덤벼!”
미로의 화신이 마족들을 공격했으나 극선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푸하하하! 간지러운데!”
“저게……!”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앞에 거대한 몽둥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놓쳤어!’
사각이 생긴 것이다.
“죽어라!”
미로의 머리통이 으스러지기 직전, 잔상이 날아와 미로의 몸을 빠르게 감쌌다.
콰아아앙!
에어 실드의 충격파가 터지고, 미로는 자신을 끌어안은 사람을 확인했다.
“가, 가올드?”
“…….”
미로를 살피는 가올드의 눈동자에 한순간 안도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파멸의 일격 (3)
***
이루키가 지도를 가리켰다.
“심연의 절벽.”
토르미아와 카즈라의 국경선을 따라 이어져 있는 160킬로미터 길이의 골짜기였다.
“암습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발칸은 이곳으로 올 겁니다.”
지리학적으로 골짜기일 뿐, 심연의 절벽은 무려 폭이 17킬로미터가 넘는 거대 지형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을 통과하면 토르미아에 최단거리로 도착할 수 있죠. 또한 우리는 카니안 고원에서 전력의 절반을 잃은 상태입니다.”
고작 하루의 전투로 입은 피해였다.
‘그리고 에이미…….’
이루키는 생각을 지우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피해가 큰 만큼 급소를 찌를 수 있어요. 부족한 발키리의 병력으로 이런 거대한 지형에 함정을 설치한다는 생각은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실제로 없기도 하죠.”
이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함정은 없어요. 다만 골짜기 전체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원소 폭탄이 있을 뿐.”
“후우.”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핵심 전략이기에, 지휘관들의 긴장도는 극에 달했다.
“여기서 막을 겁니다.”
지휘봉이 가리키는 곳은 토르미아로부터 70킬로미터 떨어진 골짜기의 중심부였다.
“원소 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해요. 지형이 충격을 상쇄하겠지만, 아군의 피해는 물론 인근 도시도 무사하지는 못할 겁니다.”
지휘관이 말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얻은 기회입니다. 하지 않겠다는 선택지는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예상 피해 규모가 최소화되는 지점에 터트리는 것입니다.”
이루키는 침묵을 지켰다.
“총군사님.”
“네. 저 혼자 양심을 챙길 마음은 없어요. 작전은 계획대로 진행됩니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어요. 조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단호하게 말을 끝맺자, 지휘관들이 안도한 기색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아로미가 이루키에게 다가왔다.
“결정을 내리기 힘드신가요?”
총군사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기에, 유독 흔들리는 모습이 불안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혹시…… 에이미 소령 때문이십니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어.’
차라리 확실하게 결론이 지어졌다면 이토록 속병을 앓지는 않았을 터였다.
‘생존했다면 부대로 복귀하지 않을 리가 없다. 결국 마족에게 붙잡힌 것인가?’
지옥의 군대 전군이 내려오는 상황에서, 그녀의 머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셈이었다.
“총군사님, 이런 말씀 드리기 외람되지만…….”
아로미가 주저하며 말했다.
“에이미 소령이 생존해 있고 마족에게 포로로 붙잡혔다면, 차라리 죽여 주는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
마족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기에, 이루키도 한편으로는 동의했다.
“발칸이 기타루맨의 변수를 깨닫지 못한 이유는…….”
이루키가 비로소 속엣말을 꺼냈다.
“사고의 범위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었어요. 군중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도 반상 바깥의 흐름까지 읽을 수는 없는 거죠.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고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지금 제가 그래요.”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만약 에이미가 붙잡혔다면 끔직한 일을 당할 것이고, 발칸은 그것을 이용할 겁니다. 그것만큼 제 이성을 무너뜨리기 좋은 수단이 없으니까요.”
“흐음.”
“하지만 아무런 대응도 없어요. 어쩌면 에이미는 마족에게 붙잡히지 않은 것일지도 몰라요.”
아로미는 희망을 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냉철한 판단만이 전부인 시기였다.
“총군사님, 단지 그런 의미로 추론하기에는…….”
“알아요.”
이루키도 알고 있었다.
“에이미가 붙잡혔다고 해도, 공표하지 않을 수백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시로네, 야훼를 위한 포석일지도 모르고. 따라서 망상의 레벨이겠지만…….”
소중한 친구의 안전을 바라는 심리가 사고 회로를 바꿨을지도 모르지만.
“계속 잡음이 생겨요. 경험과 논리, 어느 쪽 기준을 대도 선명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로미는 이루키가 냉정한 상태임을 깨달았다.
“총군사님의 생각 밖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군요.”
“네.”
이루키는 심연의 골짜기를 돌아보았다.
“기타루맨의 경우처럼, 그것이 이번 전략의 성패를 가를지도 모릅니다.”
에이미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
“후우. 후우.”
중부 대륙의 산맥에 세워진 오두막에 에이미의 숨소리가 거칠게 퍼졌다.
머리카락은 짧았고, 전신 화상을 입은 몸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피부 깊은 곳까지 열기가 침투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고, 조만간 딱지가 벗겨질 것이다.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슈라가 침대에 누워 있는 에이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육체는 회복되었지만, 역시 심각한 쪽은 정신이에요. 삼매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라고요.”
삼매는 대우주의 섭리인 공겁에 기초하지만, 에이미의 다중일도는 다분히 인위적이었다.
“스스로 땅을 파고 들어가 출구를 닫은 셈이지. 자력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나네가 검지를 깨물며 말했다.
“붕대를 풀어라.”
“어떡하시려고요?”
“그녀는 현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든 감각을 스스로 차단한 상태다. 인간의 전달력으로는 심연에 갇힌 그녀를 끌어낼 수 없을 터.”
슈라가 복부 쪽의 붕대를 풀자, 새살이 돋아나 울긋불긋한 피부가 드러났다.
배꼽을 중심으로 피의 글귀를 둥그렇게 적은 나네가 가부좌를 틀었다.
“가급적 멀리 떨어져라. 버틸 만한 게 아닐 것이다.”
에이미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바위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과 같은 강도의 설법이 필요했다.
“무리하지 마세요.”
슈라가 오두막을 나가자, 나네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지그시 눈꺼풀을 내렸다.
살며시 입술이 열리고.
“마하반야…….”
독특한 운율을 가진 설법이 끝없이 이어지자 산천초목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크윽!”
숲으로 돌진하던 슈라가 귀를 막았다.
‘소리가 아니야.’
심상을 찌르는 나네의 목소리가 고막을 거치지 않고 머릿속을 울렸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설법이 울리는 오두막 안에서, 에이미의 육체가 불에 타는 듯 뜨거워졌다.
“하아. 하아.”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도 숨이 거칠어지는 그녀의 목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로네.”
***
상아탑의 대지성전.
태성의 부름을 받은 오대성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시로네는 이야기를 끝냈다.
“아르고네스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뭐야, 나네가 이기든 하비츠가 이기든, 세상은 끝장이 난다는 건가?”
프리드가 불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상아탑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침묵이 이어졌다.
“어이, 다들 왜 그래? 설마 겁먹은 건 아니겠지?”
미네르바가 말했다.
“싸우고 자시고 문제가 아니야. 근본적인 시스템이 발동하는 상황이야. 가장 좋은 건 그 상황까지 가지 않고 끝내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나네가 깨닫기 전에 시로네가 먼저 통합적 정신 체계를 이룩하는 수밖에.”
이견은 없었다.
같은 의미로, 그렇기에 상아탑의 별들 중 어느 누구도 시로네에게 전하지 않았다.
‘에이미가 사라졌다.’
태성조차 찾을 수 없다면 그에 준하는 특정 인물, 혹은 세력이 그녀를 데려간 것이었다.
‘나네일 수도. 하지만 하비츠일 수도 있다.’
두 인물 모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밝힐 수는 없어.’
씽이 입을 열었다.
“시로네, 최후를 준비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네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
미네르바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쳇! 저 고집쟁이.’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허상이라고 믿는 씽은, 위증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모르는 사실?”
씽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중부 대륙에서…….”
그때 상아탑의 대지성전이 흔들렸다.
“뭐야?”
지상의 첨탑이라면 몰라도, 우주에 떠 있는 대지성전이 흔들릴 이유는 없었다.
태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드디어 오는군요.”
행성을 비추고 있는 유리창에, 공기의 마찰력으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무언가가 보였다.
“용?”
푸른 비늘에서 전기를 뿜어내며 수직으로 상승하는 모습이 가히 경이로웠다.
시로네는 용의 정체를 기억해냈다.
“뇌익룡 블리츠.”
시간을 수호하는 용족 12사도 중의 하나로, 안드레의 제1번 세계에서 만났던 생물체였다.
또한 행성을 이탈하여 우주 공간에 진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1등룡이었다.
쿠우우우우웅!
블리츠가 거대한 몸체를 대지성전의 천장에 붙이고는 긴 목을 구부려 안을 살폈다.
“태성이여.”
공기를 통하지 않고 모두의 뇌리에 직접 꽂히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태성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간의 사도시여, 무슨 일로 이곳을 방문하셨나요.”
커다란 눈동자가 대지성전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시로네에게 고정되었다.
“우리의 코어께서 너를 찾으신다.”
“코어라면…….”
무등룡 카라토르사.
“영면에서 깨어났다는 말인가요?”
아무도 감당할 수 없을 때, 내가 감당하리라 하는 말을 남겨 두고 떠난 일화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