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82
이카엘의 웃음에서는 일말의 의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이들 중 누구 하나 어리석지 않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모든 변수를 통해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고 있을 터.
그럼에도 웃는다는 것은…….
‘나를 믿는 것이지.’
사티엘이 인간을 위해 싸워 준 세월을, 모두가 신이 되기를 원했던 열망을.
사티엘은 애써 담담한 척했다.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실은……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어요. 부담도 되고.”
이카엘이 다정한 눈빛을 드러냈다.
“후후, 괜찮아. 너는 고운 마음을 가진 천사니까, 분명 멋진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을 거야.”
사티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들어오렴. 너는 내 자매나 마찬가지이니 우리 아이에게는 이모가 되겠구나. 조카의 얼굴을 봐야지.”
‘이모…….’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비록 거핀과 사랑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이어질 수도 있었다.
‘아니, 내가 원했던 게 아니야. 거핀과 이런 관계가 되는 건 싫단 말이야.’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것일까?
“뭐 해, 어서 들어오지 않고?”
막상 차갑게 마음을 끊어 버리자, 그 작은 이어짐조차 너무나 소중했던 것이어서.
‘그냥 참을걸. 이렇게라도 옆에서 지켜보며, 평생을 살아갈걸.’
이미 늦은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카엘은 사티엘의 뺨을 타고 흐르는 빛의 눈물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멀리서 굉음이 터졌다.
아직 소리의 정체는 보이지도 않았으나 거핀은 풍압만으로도 위기를 느꼈다.
“피해!”
모성애가 수많은 생각을 지우면서, 이카엘은 소리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공기의 저항만으로도 엄청난 속도였으나, 아마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르가 노린 대상이 거핀이 아닌 이카엘이었다면.
“찾았다.”
이미르를 눈에 담은 거핀은 공간을 짓이기듯 들어오는 주먹을 바라보았다.
‘미라클 스트림!’
금빛 연기가 이미르의 팔을 감싸고, 세계를 초월하는 명령어가 입력되었다.
‘멈춰.’
둘의 신호가 충돌하면서 진동이 발생했으나, 누구도 떨림을 느끼지 못했다.
세계가 통째로 흔들렸다.
“크으으으!”
얼굴은 구겨졌으나, 생애 최초로 느끼는 저항에 이미르의 눈빛에는 환희가 차올랐다.
‘이런 기분인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으아아아아!”
악을 쓰며 팔을 뻗어 내자 스스로도 한계를 측정할 수 없는 힘이 밀려들었다.
세계의 진동이 사라지고, 이미르의 주먹이 거핀의 눈앞에서 우뚝 멈췄다.
20도 정도 구부러진 이미르의 팔꿈치가 온전히 펴졌다면 거핀의 얼굴은 날아갔을 터였다.
‘미라클 스트림을 깨고 들어왔어.’
바깥 세계의 신호, 이데아의 인위적 구현인 헥사를 파괴하고 들어왔다는 것은…….
“너, 가이아인이냐?”
어떻게 생각해도 하나의 결론뿐이었다.
“나는 이미르.”
다시 근육에 에너지를 충전한 이미르가 한쪽 발을 쭉 내밀며 쳐들어왔다.
“거인의 왕이다!”
거핀은 일단 거리를 벌렸다.
‘이상하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강적이지만, 이미르의 모습에서 묘한 향수가 느껴졌다.
‘……그런가?’
이미르의 눈빛에서 깨달았다.
분명 하나의 느낌이지만, 100억 개의 감정을 담을 수도 있을 만큼 깊었다.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인가?”
세상에 남은 마지막 가이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핀의 눈이 불타올랐다.
“미안하다.”
물러서기를 멈추고 두 팔을 끌어당기자, 미라클 스트림이 손바닥 사이로 모여들었다.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이미르를 향해 한 줄기의 섬광이 쇄도했다.
‘포톤 캐논.’
아광속의 질량이 이미르의 복부에 처박히는 순간.
“크으으으!”
이미르가 두 손으로 빛의 구체를 움켜쥐더니 악력으로 관성을 파괴했다.
‘잡았어?’
아니, 잡은 게 문제가 아니다.
생물의 몸으로 아광속을 낸다면 마찰열에 의해 육체가 증발해야 정상이었다.
새빨갛게 달구어진 이미르의 팔을 본 순간 거핀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포톤 캐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질량이…….’
아광속으로 움직이면서 이미르를 중심으로 반경 4킬로미터에 달하는 충격파가 퍼졌다.
이카엘이 도망친 뒤로 넋을 잃은 채 서 있던 사티엘의 육체가 순식간에 날아가고…….
“크으으으으!”
모든 게 평평하게 쓸려 나간 곳에서 거핀과 이미르만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상하군.”
이미르가 욱신거리는 복부를 털어 냈다.
고통 또한 그에게는 희열로 다가왔으나, 지금의 문제는 육체가 아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적이 될 수 있지만, 유일하게 거핀은 예외였다.
“마치…… 자해를 하는 기분이 드는군.”
거핀이 물었다.
“태어나기 전의 일을 기억하나?”
“전혀. 그래도 짐작은 가. 너를 보니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
“나를 보내 다오. 아내와 자식을 지켜야 해.”
이미르는 하늘을 향했다.
“가족이라.”
탄생의 초기라 할 수 있는 이 지점에서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었다.
“나는 가족이 없지. 앞으로도 없을 테고.”
“만약 나를 도와주면 너도…….”
이미르가 손을 내밀었다.
“아니, 뭐가 됐든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나는 그냥 싸우고 싶을 뿐이야.”
그렇게 결정했고, 이제 마지막 하나만 남았다.
“너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면.”
이미르가 땅을 박찼다.
“이것으로 끝내자.”
한 번의 발길질에 대지가 끝없는 심연으로 무너지면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우주에서 지켜봤다면 행성의 북반구에서 성냥불처럼 빛이 켜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터였다.
쿠르르르르릉!
충격파는 천국까지 전해졌고, 그 파계의 위력 앞에서는 천사들도 창백하게 질렸다.
‘이 거인은 위험하다.’
유리엘이 폭발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상성이 없어. 천적도 없다. 기준조차 없어. 그냥 강한 것. 존재 자체가 파계다.’
설령 거핀이라고 해도…….
굽어보기로 전장을 살핀 유리엘의 정신 속에, 모든 물질이 녹아내린 용암의 바다가 보였다.
그 뜨거운 수면으로부터 1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이미르가 허공에 떠 있었다.
단순 근진동으로 일으킨 외중력은 10분이 지나도록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거핀, 나는 분명 기회를 줬다.’
서로가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고 충돌하기 직전에, 이미르는 공격을 포기했다.
만약 거핀이 최강의 일격으로 자신을 죽인다면, 그런 결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것으로 유일하게 투지를 방해했던 찝찝함은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이미르다.”
이제야 자기 자신이 된 기분이었다.
이미르를 행성의 맨틀까지 처박은 거핀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말했다.
“고맙다.”
용암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던 이미르가 얼굴을 드러내며 코웃음을 쳤다.
“피차 찝찝한 건 마찬가지였나? 어쨌든 너에게는 최악의 결말이겠군. 내가 존재하는 한, 너는 무엇도 이룰 수 없어.”
“그럴 수도 있겠지.”
거핀은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끝없이 이어진다. 언젠가는 나를 대신할 누군가가 나타날 거야. 그리고…….”
거핀의 육체가 빛으로 변하더니 공기 중에 풀어지듯 투명하게 변했다.
“내 동족을 너라는 감옥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이미르는 회상에서 벗어났다.
“이어진다고.”
돌아올 기미가 없는 외중력을 기다리며 허공에 가부좌를 튼 그가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
산봉우리 끝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나네의 머리 위로 구름이 뻥 뚫린 채 회전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슈라가 중얼거렸다.
“부처가 번뇌라니.”
아니, 오히려 부처의 번뇌이기에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문제일 터였다.
‘그게 에이미라고?’
그녀의 무엇이 그토록 인상적이었을까?
에이미가 떠난 후부터, 나네는 쉬지 않고 오직 생각에 열중하고 있었다.
‘상관없어.’
슈라는 돌아섰다.
‘나는 세계의 비밀을 알고 싶을 뿐이야. 이것으로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아쉬울 게 없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으나.
“…….”
인정받지 못한 기분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슈라.”
나네의 목소리가 천공에서 내리꽂혔다.
“나에게 오라.”
높은 봉우리를 수직으로 비행한 그녀가 나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너의 심마가 느껴지는구나.”
슈라는 용기를 냈다.
“외람되지만 묻고 싶습니다. 어째서 에이미입니까?”
시대의 부처가, 중생의 공을 설파하는 자가 한 인간을 사랑하게 되다니.
나네는 한 송이의 꽃을 뿌리부터 퍼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던질 수 있을까, 궁리했다.”
그런 다음 반대편 손바닥으로 꽃을 부드럽게 덮으며 말을 이었다.
“이 꽃의 색을 칭찬하고, 향기를 찬양하고, 형태를 찬미해도, 진정 사랑할 수는 없었다.”
손바닥 사이에서 꽃이 짓이겨졌다.
“허무했을 뿐이지.”
슈라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공 앞에서는 모든 것이 거짓. 꽃을 사랑할 수는 없었어. 나를 대적하는 시로네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여자’가 나에게 왔지.”
카르미스 에이미.
“단지 시로네를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것으로 온전한 공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지.”
나네가 슈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기에 마음을 던지는 게 아니었어. 마음을 던져 버렸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야.”
나네가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구겨졌던 꽃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슈라의 표정이 멍해졌다.
‘이건…….’
마치 시로네 같았다.
“이 꽃에 내 마음을 던진다. 색도, 향기도, 형태도 중요하지 않아. 내가 던졌기에, 이 꽃이 무엇이라도 나에게는 가장 아름답다.”
나네는 흙을 파낸 자리에 다시 꽃을 심었다.
“이것이 시로네. 허무한 세계에서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는 거겠지.”
슈라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오면 이제 뜻을 정하셨는지요.”
“에이미 양에게는 관철시키겠다고 했지. 내 뜻은 오직 중생의 고통에 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나네가 뒷짐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