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06
60장. 약속된 종언을(5)
레벨이 상승하면서 멍군은 영웅담이 되었다.
[ ‘불타는 지옥의 용맹한 개’ ]– 분류 : 영웅담(E)
– 권능 : 오행 ː 화(火), 징악(懲惡)
– 내용 : 그 개는 불타는 지옥의 화신으로 용맹하게 왕을 따를지니.
– 효과 : 해태 멍군(lv.3)을 소환합니다.
-멍멍멍!
순식간에 산군만큼이나 커진 멍군이 위엄 있게 짖었다.
하얀 털은 구름을 잘라 만든 것처럼 신성했으며 너른 등과 네 다리는 하늘이라도 떠받칠 듯 강인해 보였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멋진 건 악인을 벌한다는 커다란 뿔이었다.
“오! 이 끝내주는 친구는 뭐야?”
“이야, 이제 좀 해태 같은데?”
“흐음, 해태라면 역시 뿔이 있어야지.”
성장한 멍군을 향해 그림 리퍼와 호구별성과 사라가 차례로 한마디씩 했다.
“지금은 펜리르의 신화를 빌렸을 뿐이지만, 언젠가는 멍군 스스로 저렇게 성장하겠지요.”
단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당신의 펜리르에게 날개를 달아드리겠습니다.”
파아아앙!
그의 손끝에서 연녹색 신성이 번쩍였다.
직후 형형한 눈빛의 수리부엉이가 나타나 듬직하게 날개를 펼쳤다.
하얀 두루마기 코트가 멋지고 꽃핀이 앙증맞은 신수 공군이었다.
“공군?”
뜻밖의 소환에 조금 놀라는 사이 눈이 마주친 공군이 인사하듯 날개를 펄럭였다.
“공군과 멍군은 저와 당신의 영웅담이지 않습니까.”
태연하게 미소 지은 단군이 부드럽게 손짓했다.
[ (!) 영웅담(E) ‘창공을 가르는 수리’가 영웅담(E) ‘불타는 지옥의 용맹한 개’와 공명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두 영웅담이 공명하는 팝업창이 떴다.
[ ‘날개 달린 용맹한 개’ ]– 분류 : 영웅담(E)
– 권능 : 오행 ː 화(火), 징악(懲惡), 하늘(天), 바람(風)
– 내용 : 그 용맹한 등에 날개를.
– 효과 : (!) 해당 영웅담은 연계 영웅담입니다. 영웅담 ‘창공을 가르는 수리’의 날개가 영웅담 ‘불타는 지옥의 용맹한 개’의 등에 돋아납니다.
무려 공군과 멍군의 연계 영웅담이었다.
펄럭!
날개를 펄럭인 공군이 연녹색 신성을 발하며 사라지고, 대신 멍군의 등 위로 한 쌍의 커다란 날개가 돋아났다.
하얀 날개는 공군처럼 끄트머리가 살짝 검게 물들어 있었다.
어쩐지 천부인의 하얀 두루마기 코트가 떠오르는 외형이었다.
“뜻대로 잘 되었군요.”
만족스러운 듯 단군이 미소 지었다.
“이제 멍군의 등에 타고 오딘을 상대하시면 됩니다, 염라.”
멍군의 등에 탈 수 있게 되다니!
자연스레 산군의 등에 탔던 것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부풀었다.
크고 멋진 날개를 단 해태를 보자 나까지 사기가 고양되는 기분이었다.
단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본래 산군과 공군의 연계 영웅담입니다만, 멍군과도 가능해서 다행입니다.”
산군과 공군의 연계라.
그럼 연계 영웅담이 발현된 산군은 날개 달린 호랑이가 되는 걸까?
확실히 그 거대한 대호가 날개까지 단다면 말 그대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겠지.
문득 단군에게 멍군을 받은 때가 떠올랐다.
그날 그는 내게 멍군을 건네주고, 함께 북유럽으로 갈 것을 제안했다.
……설마 그때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당시에는 단군의 눈을 피해 접촉해 온 적탑주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만약 적탑주를 향한 경고뿐만 아니라 북유럽까지 염두에 뒀던 것이라면, 그는 그때 이미 이곳에서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되어버리는데.
“으음…….”
“어…….”
상념에 빠져드는 와중 사라와 호구별성의 희미한 탄식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들이 무언가 애매한 눈으로 날개를 단 공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연계되는 조건이 꼭 충심만은 아닐 테지.”
“그치, 뭔가 또 우리가 모르는 조건이 있나 보네.”
“아…….”
이어지는 두 차사의 중얼거림에 그제야 나도 작게 탄식했다.
본인들의 연계 무용담이 발현됐을 때는 신나게 형을 놀리던 두 차사가 슬금슬금 강림 형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나와 단군의 연계 영웅담을 맞닥뜨린 형을 염려하는 기색이었다.
“네 목이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대왕님을 지켜야 한다, 해태.”
그러나 형은 두 차사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그리 말할 뿐이었다.
-멍멍멍!
형의 진중한 당부에 멍군이 알아들었다는 듯 힘차게 짖었다.
‘전우.’
‘신뢰.’
업경도 때맞춰 형을 향한 멍군의 감정을 읽어주었다.
형의 얼굴을 살폈지만 사라와 호구별성이 짓궂게 놀리던 아까와 달리 그저 서늘한 눈빛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형이 크게 반응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일행들을 한 번씩 돌아본 다음 멍군 앞에 섰다.
멍군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편히 오를 수 있도록 무릎을 굽혀주었다.
“고마워, 멍군.”
멍군의 등에 올라타서 녀석의 하얀 목덜미를 어루만지자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늘 먼저 안아달라고 조르던 멍군이 이제 나를 태워준다는 게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이게 아이가 성장해 가는 걸 보는 부모의 마음일까?
“그러면 다녀올게요.”
파아앙!
단군이 손짓하자 연녹색 신성으로부터 잎이 달린 넝쿨이 부드럽게 뻗어 나왔다.
넝쿨은 산군의 등에 탔을 때처럼 멍군의 목과 내 허리를 묶었다.
“멍군은 불을 삼키는 신수지요. 궁니르라고 한들 별수 없을 겁니다.”
그가 불의 벽을 걷어 내며 마지막으로 조언했다.
펄럭!
멍군이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화아아악.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우와…….”
산군이 달릴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에 무심코 탄성이 나왔다.
날개가 생긴 건 처음일 텐테 멍군은 몹시 휼륭하게 비행하고 있었다.
공군과의 연계 영웅담의 효과일 수도 있겠으나, 어찌 되었든 대단한 일이었다.
화르르륵!
화르르르륵!
멍군이 점점 더 높이 날아오르자 우리를 저지하듯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다만 조준이 제대로 안 되는 건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불덩이들 사이에서 몸을 조금 낮추고 앞을 직시했다.
어느새 제법 가까워진 오딘의 옥좌가 보였다.
그 자리에 앉은 사내의 실루엣 또한.
“오딘을 노려야 해, 멍군!”
-멍멍멍!
멍군이 힘차게 짖으며 더욱더 속력을 높였다.
화르르륵!
화르르르륵!
화르륵!
뻘겋게 타오르는 오딘의 궁니르 역시 한층 매서운 기세로 빗발쳤다.
빗나간 줄 알았던 것들까지 더하여 수많은 불덩이가 커다란 그물을 이루어 우리를 덮쳐 왔다.
[ (!) 해태 멍군이 화기를 삼킵니다. ]그 순간 팝업창이 떠올랐다.
드넓게 펼쳐졌던 뜨거운 화기는 소용돌이처럼 한 점으로 합쳐지더니 멍군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멍멍멍!
쏟아지는 궁니르를 한입에 삼켜버린 멍군이 용맹하게 짖었다.
‘간식.’
‘불량한 맛.’
업경으로 전해지는 멍군의 감상에 조금 웃음이 샜다.
“궁니르는 그다지 맛이 없구나…….”
위로하는 마음으로 멍군의 털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얼른 저승으로 돌아가서 고구마를 먹자.”
-멍멍멍!
내 말에 전의가 샘솟았는지 멍군이 더욱 속력을 높여 달려들었다.
-멍멍! 멍멍멍!
순식간에 오딘의 코앞까지 진격한 멍군이 그를 향해 위협적으로 짖었다.
“……오딘.”
나는 마침내 마주한 오딘을 살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챙이 넓은 모자를 비스듬하게 쓴 외눈의 사내였다.
흘리드스캴프는 순백의 백금으로 치장되어 몹시 화려하고 아름다운 반면, 그곳에 앉은 그는 말쑥한 정장 차림이되 어째선지 낡아 보인다는 인상을 풍겼다.
한 신화의 주신이라기에는 소박하게까지 느껴지는 외관.
단군이 말한 바와 같이 오딘의 신성은 이미 형편없이 약해진 상태였으나 그 이전에 기이한 게 있었다.
그가 풍기는 기운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었다.
“……왜지?”
그 묘한 기운은 내가 영혼을 인도하는 저승차사였던 시절에 몇 번이고 느껴 왔던 것이었다.
또한 이전에 용궁 왕자의 친구 연이를 만났을 때 다시 느꼈던 것이기도 했다.
“왜 신에게서 죽음에 다다른 인간 같은 모습이…….”
수명을 다한 인간이 사력을 다하여 육신을 붙잡고 버티는 듯한.
이승에 미련이 남아 이미 끝나버린 생을 어떻게든 이어가는 듯한.
이 땅의 주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러한 기운이었다.
화르르르륵!
화르르르르륵!
화르르륵!
오딘은 의문에 답하는 일 없이 그저 팔을 휘둘러 궁니르를 퍼부었다.
[ (!) 해태 멍군이 화기를 삼킵니다. ]그러나 그뿐.
멍군은 불덩이를 삼키며 오딘을 향해 달려들었다.
“……삼킨다.”
나는 멍군이 신화 속의 펜리르처럼 그대로 오딘을 삼켜버릴 것을 직감하며 넝쿨로 만든 고삐를 힘주어 잡았다.
-멍멍멍!
멍군이 오딘을 향해 우렁차게 짖은 그 순간.
파아앙!
멍군에게 깃든 펜리르의 신성이 황금색 빛을 발했다.
파아아아앙!
황금빛은 오딘을 집어삼킨 것을 넘어 온 세상을 뒤덮을 기세로 눈부시게 번져 나갔다.
쿠우우웅!
쿠우우우웅!
멍군을 중심으로 막대한 신성이 휘몰아치면서 하늘과 땅이 뒤흔들렸다.
[ ‘약속된 종언’ 필드가 신화전에서 승리했습니다! ] [ 신화전이 남긴 카르마가 재구성됩니다! ] [ 카르마 포인트를 ‘1,000,000’ 획득합니다! ]신화전의 승리를 알리는 팝업창이 떴다.
허무하리만치 간단한 결말이었다.
“……백만.”
나는 오딘이 남긴 카르마 포인트에 인상을 찌푸렸다.
백만 포인트는 적은 양이 아니다.
다만 헬과 북유럽을 양분했던 오딘이 가진 전부라기에는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거기다 마지막까지 오딘에게서 느꼈던 그 기이한 기운은 뭐였을까.
신이 아니라 꼭 인간 같았던 그 모습은…….
화아아악.
생각이 더 깊어지기 직전 전투를 끝낸 멍군이 빠른 속도로 활강했다.
“대왕님!”
멍군이 밑으로 향하자 제일 먼저 강림 형이 우리를 알아보고 불렀다.
“전하!”
뒤를 이어 호구별성도 두 팔을 휘저으며 팔짝 뛰었다.
“된 거야?! 이긴 거지?!”
날 바라보는 일행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침내 멍군이 완전히 땅 위에 안착하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이겼어요. 이겼는데…….”
승리를 알리면서도 오딘에게 가졌던 의문에 말꼬리를 흐렸다.
대답에 앞서 우선 멍군의 등에서 내려왔는데, 내 발이 땅에 닿자마자 멍군이 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쿠엥!
“응? 뱉는 거야?”
그림 리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음, 오딘이 어지간히 맛이 없었나 보네!”
-멍멍멍!
삼켰던 오딘을 뱉어 낸 멍군이 크게 짖었다.
파아앙!
멍군을 중심으로 황금빛 신성이 퍼졌다.
신성이 점차 옅어질수록 멍군의 뿔은 작아지고 몸집 역시 본래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펜리르의 신화가 효력을 다했군요.”
지켜보던 단군이 말했다.
“그래도 영웅담이 된 만큼 이전보다 강해졌을 겁니다.”
-멍멍멍!
작아진 멍군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내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고구마.’
‘거짓말.’
‘죽음.’
업경을 통해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남기며, 멍군이 내 안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수고했어, 멍군.”
멍군이 들어간 가슴을 문지르며 그에게 인사를 남길 때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 있구나.”
그는 얼굴을 굳히며 땅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오딘을 내려다보았다.
“뭔 소리야? 아직도 안 뒤졌다고?!”
사라의 말에 호구별성도 독기를 뿜으며 오딘을 살폈다.
그 말대로였다.
오딘은 아직도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부릅뜬 외눈이 마치 꺼지기 직전의 전구처럼 위태롭게 빛났다.
어떻게든 숨을 쉬고 있는 육신을 보자 거듭하여 확신이 들었다.
그는 억지로 육신을 붙들고 있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상태였고, 죽음을 앞둔 인간이 이 정도의 집념을 보이는 건 대개 하나의 이유였다.
【이런, 아직도 버티고 있었어?】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서.
【오딘…….】
속삭이듯 나직한 신언이 들려왔다.
길고 검은 베일로 반신을 가린 헬이 어느새 오딘의 앞에 서 있었다.
【나를 기다렸구나, Darling.】
빛바랜 왕관 대신 쓴 검은 모자와 아무런 장식 없는 검은 원피스.
고목처럼 죽어버린 반신은 베일로 완전히 가려서일까.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찾아온 그녀는, 오랜 세월 군림한 죽음의 왕보다도 그저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한 명의 인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