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72
77장. 왕좌(2)
“나를 하늘의 옥좌에 앉게 해준다고요.”
나는 벽하원군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 목소리는 어느새 한층 날이 섰지만 그녀의 얼굴은 변함없이 부드러웠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재차 말하지만 난 필요 없으니까.】
그 대답에 나도 모르게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한껏 곤두세운 업경으로도 아직 그녀의 속내를 엿볼 수는 없었다.
하나 처음 계승전에 도전할 때부터 줄곧 시큰둥했던 태도를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은 반응이기도 했다.
【자, 네가 여기 와서 앉으면 돼.】
벽하원군이 천궁의 안쪽 길로 좀 더 발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파아앙!
그녀가 발걸음을 내딛자 어느 순간 눈부신 신성이 산개했다.
[ (!) ‘천궁-천지왕 신화’의 옥좌가 베레땍귀룔흐흐흐을 드러냈베겟땍귀룔흐흐흐니다. ]팝업창과 함께 황금빛의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폐허가 된 천궁에서도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천지왕의 옥좌였다.
눈에 띄게 크거나 화려하지 않았음에도 왕의 자리에서는 마땅한 위엄이 느껴졌다.
【저 숨겨진 옥좌를 찾아서 자리에 앉으면 끝이야.】
옥좌를 돌아본 벽하원군이 인과를 읽으며 가볍게 문자를 흘렸다.
【그래서 널 기다렸지. 이대로 내가 저기 앉아버리면 끝이니까.】
그녀는 정말로 내게 하늘의 옥좌를 넘길 셈이었다.
변덕처럼 느껴질 만큼 이유 없는 호의에 나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그럼 대체 왜 하늘의 신화 계승전에 도전한 건가요?”
이렇게 하늘을 넘길 셈이었다면 대체 왜 한반도의 하늘에 뛰어든 거냐고.
【인간에게 넘길 수는 없으니까.】
그녀가 곧바로 대답했다.
왜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한 얼굴에 나는 대꾸했다.
“그렇게 인간을 불신하는 것치고 인간을 가까이 두더군요. 신의 이름까지 줘가면서요.”
그녀의 비호 아래 대륙의 신을 흉내 내던 도사.
그를 짚어내며 물었더니 벽하원군은 그 물음에도 대수롭지 않은 얼굴을 했다.
【그 녀석은 괜찮아.】
“……어째서요?”
【이미 우주에 복종한 놈이니까.】
“…….”
짧게 이어진 문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나 그놈은 달라.】
벽하원군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놈한테는 인과율을 넘길 수 없어.】
따로 지칭하지 않았지만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도 철저하게 우주의 뜻에 따라서 행동하던데요.”
지금까지 봐왔던 그 남자의 모습을 되씹으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향해 조금 더 선명하게 웃었다.
어리고 미숙한 것을 마주했을 때와 같이 관대한 웃음이었다.
【아직 도사를 잘 모르는구나. 그 눈에서 불온을 읽지 못하다니.】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답이었으나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꽤 많은 도사들을 봐 왔음에도 그들은 변함없이 내게 불가해의 존재였다.
【모든 신화의 통합.】
내가 말이 없자 벽하원군이 불쑥 다른 말을 꺼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생각지 못한 물음이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염라의 자리를 계승하기로 했을 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어떤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가 가장 완벽에 가까운 우주인지를, 우주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서라던데요.”
지구청장이 했던 말을 그대로 말했더니 벽하원군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색이 옅은 눈동자가 그새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
짧은 침묵 끝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또한 그 말은 결국 여러 신들이 군림해 왔던 지금까지의 세상은 불완전하다는 뜻이지.】
“…….”
【틀린 말은 아니야. 우리도 분명 한계가 있었으니까.】
신의 자리에서 말하는 세상의 불합리함을, 나는 그녀의 입으로 재차 들었다.
【그 이유는 삼라만상을 풀어놓는 인과율을 수많은 신이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었고.】
한데 벽하원군이 말하는 불합리함은 강림 형이 말하던 것과 달랐다.
형은 세상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다고 말했다면, 벽하원군은 너무 많은 신들이 있어서 불완전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차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대로 모든 신화를 손에 넣은 누군가는 한계가 없는 권능을 갖게 된다는 겁니까?”
그녀가 경고하려는 위험을 알아채고 물었더니, 그녀가 다시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그 얼굴,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똑같이 닮은 얼굴 때문일까.
꼭 거울 속의 내가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맞아. 이대로 모든 신화가 나누어 가졌던 인과율을 아우르는 하나의 신화가 탄생한다면, 그 신화의 주인은 분명 이때까지의 신들과 달리 한계가 없는 권능을 갖게 될 거야.】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한데 그렇다 한들 너는 별로 그게 탐나지 않는 것 같네.】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나 또한 그녀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손에 넣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녀는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녀의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내 마음 또한 그녀와 똑같을 것이라 여기면서.
【나도 그래.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힘 따윈 별로 갖고 싶지 않아.】
그녀가 자조인지 냉소인지 모를 웃음을 비쳤다.
【다만 나는 그것을, 인간이 갖는 게 두려울 뿐이야.】
“당신은 인간을 믿지 않는군요.”
나는 그녀의 말끝에 한숨처럼 내뱉었다.
“만약 선한 인간이 그 힘을 손에 넣는다면요?”
【…….】
“자기 한 사람만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 그 힘을 바란다면?”
내 물음에 그녀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깊어졌다.
어린아이를 대하던 미소가 어느새 아둔하리만치 천진한 자를 향한 냉소가 되어 있었다.
【세상에 그런 인간이 존재할 것 같아?】
그녀가 미소를 지우지 않고 되물었다.
【설령 존재한대도 그는 대체 무슨 이유로 세상을 맡아줘야 하지?】
이어지는 추궁에 나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맡기면 안 돼.】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욕심을 가진 자에게 인간을 맡기면 그는 결국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것이며.】
냉소가 선연했던 얼굴에 불현듯 한 줄기 연민이 비쳤다.
【욕심이 없는 자에게 인간을 맡기면 모든 인간이 그 한 사람에게만 가혹해질 거야.】
속삭이듯 이어지는 말에 순간 숨을 삼켰다.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못할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모든 인간이 똑같이 누리는 걸 못 견디거든. 모두가 똑같이 가졌다는 건 결국 내가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는 것과 같으니까. 그리하여 인간은 폭군보다 성군의 아래서 더욱 탐욕스러워지지.】
그녀는 기이하게도 자신이 불신하던 그 남자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네가 인간을 인간에게 맡기기를 바란다면, 좋아.】
그녀가 다시 웃음 지었다.
어린아이를 보는 웃음이었다.
【오늘은 하나만 약속해줘.】
“……약속이요?”
【그래, 약속해. 설령 네가 그것을 인간에게 쥐여주고 싶어도, 자격이 없는 자가 그것을 손에 넣는 것만은 막기로.】
“…….”
나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의 어딘가는 여전히 그녀의 미소를 거부하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그녀의 미소를, 그녀의 냉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신과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에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약속하지 않더라도 당신이 말한 대로 될 겁니다.”
【충분해.】
치기를 숨기지 못한 대답이었으나 그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나는 과거를 보러 갈 거야.】
대답을 받아낸 그녀가 다른 말을 꺼냈다.
“……과거를 보러 간다고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꼬리를 당겼다.
“당신은 이미 오랜 세월 살아온 존재인데도요?”
한데 그렇게 묻는 순간 문득 북유럽에서 들었던 야마의 목소리가 되씹혔다.
-어쩐지! 대체 뭔 수작인가 했더니 이거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잖아?!
-너도 정신 줄 돌아오면 너무 재밌어서 아주 뒤져버리고 싶을걸?
야마가 다시 마주친 벽하원군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저 흘려들었던 목소리가 되씹히면서 나는 업경의 촉임을 직감했다.
그녀는 정말로 그녀도 모르는 과거를 보게 될 것이라고.
또한 야마는 이미 그녀가 봐야 할 과거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그러한 실감 속에서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 우주가 언제부터 비틀렸는지 알아야 하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옥좌를 등졌다.
【그럼 할 말은 끝났으니 오늘은 이만하도록 할까.】
그러곤 내게 턱짓했다.
【어서 앉아. 나도 그만 태산에 돌아가야겠어.】
“잠깐…….”
나는 이대로 내게 옥좌를 넘겨버리려는 그녀를 막아서고 물었다.
“정말로 이대로 옥좌를 두고 가겠다는 겁니까?”
【이런, 대체 몇 번이나 말하게 하는 거야.】
그녀가 새삼스럽다는 듯이 눈썹을 굽혔다.
【너 가져.】
“…….”
【난 저게 인간의 손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돼.】
“…….”
노골적으로 성가셔하는 얼굴 위로 불쑥 다른 목소리가 겹쳤다.
-이기셔야 합니다. 한반도의 하늘을 다른 신화에 빼앗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게 멋대로 한반도의 하늘을 맡겼던 남자의 목소리였다.
“……싫어요.”
그 남자가 스치자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쾌감에 짜내듯이 말했다.
【싫다고?】
내 말에 벽하원군이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되물었다.
“네, 싫어요. 싫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재차 말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싫으니까 나한테 저걸 멋대로 넘기지 말아요.”
주먹을 쥐면서 나는 이 근원 모를 분노가 결국 피로였음을 깨달았다.
하늘에 오른 이후 목적지를 모르는 채로 몰아세워진 길이었다.
나는 피로해졌고, 그 길의 끝에서 이제는 나를 재촉하는 모든 것들에게 이유 없이 분노하고 있었다.
속내를 숨기고 나를 하늘에 끌어들인 단군과 삼신에게 그러했고,
그들처럼 내게 옥좌를 넘기려는 벽하원군에게 그러했다.
【저게 갖기 싫어?】
내 말에 벽하원군이 다정한 어투로 물었다.
하나 그녀가 정말로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일순 굴욕마저 느꼈다.
“아뇨, 갖고 싶어요.”
그 굴욕을 참지 못하고 검을 빼 들었다.
“당신을 이기고 갖고 싶어요.”
그 순간 그녀가 나와 똑같은 눈동자를 휘며 웃었다.
야마의 것과 똑같이 나를 불쾌하게 두근거리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한 번쯤은 널 재봐야겠다는 생각은 했었지.】
파지직.
파지지직.
그 말을 신호처럼 그녀의 손에서 신성이 번쩍였다.
스파크처럼 일던 그것은 한순간에 기다란 장검이 되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그럼 한번 부딪쳐 봐.】
채애애앵!
검을 쥔 그녀가 틈을 주지 않고 내게 달려들었다.
채앵!
채애애앵!
채애앵!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번의 공방이 오갔다.
거침없이 덮쳐 오는 공격에 방어한다는 겨를도 없이 본능에 의존해서 맞부딪쳤다.
누군가와 검을 섞는다는 의식할 새도 없이 몇 번이고 뒤엉킨 끝에 나는 짜내듯이 내뱉었다.
“우습게 보지 말아요……!”
그녀의 검은 내가 의식해서 쫓아갈 수도 없을 만큼 빠르고 강했다.
함에도 내가 그녀의 검을 받아칠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나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나를 더욱 못 견디게 만들었다.
“제대로 싸우란 말입니다……!”
채애애애애앵!
외침과 동시에 그녀와 나의 검이 토해내듯 길게 불꽃을 튕겼다.
“큿……!”
자비 없이 덮쳐오는 검을 간신히 막아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검이 이때껏 느껴본 적 없는 무거운 신성으로 나를 짓눌러 왔다.
“윽……!”
곤두세운 업경이 일순 거대한 손가락을 그리며 나를 압박했다.
거인의 악의 없는 손가락에 짓눌리는 작은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대상의 본질을 읽는 업경의 권능이 한순간 그렇게 전할 만큼의 격차였다.
채애애앵!
더 버티지 못하고 손에 쥐었던 검이 볼품없이 튕겨 나갔을 때였다.
【좋은 검이구나.】
끝내 내 검을 날려버린 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검이 널 지켜주지 않았다면 네 목도 같이 날아갔을 거야.】
“…….”
그녀의 말에 나는 무기를 잃고 비어버린 손을 움켜쥐었다.
그 말이 조롱조차 아니라는 게 나를 비참케 했다.
알고 있었다.
이리될 것을 알고 달려든 것이었다.
싸움에서 지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 사실이 나를 몹시 분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가 졌으니까 가서 저 옥좌에 앉아요.”
끔찍하게 비참한 기분 속에서 겨우 말을 꺼냈을 때였다.
【원래 왕좌는 힘 있는 자의 것이지.】
그녀가 검을 내려놓은 손을 가벼이 쥐락펴락하며 대꾸했다.
【하지만 제연아, 때로는 힘이 없어서 왕좌에 앉혀지는 왕도 있어.】
그녀의 두 눈이 나를 향하는 순간.
나는 꼭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