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107)
결국 카타리나는 참지 못하고 그를 뜯어말리기 위해 발길을 떼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앞을 셰디아가 막아섰다.
“셰디아?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클라우드가 말했어. 언니가 끼어들려고 하면 막으래.”
“뭐?”
카타리나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셰디아에게 따로 명령해둘 정도라면 이런 싸움이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그녀는 이를 갈면서 셰디아를 피해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셰디아에 비하면 한참이나 약한 카타리나가 그녀를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카타리나는 셰디아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비켜줘. 이러다가 클라우드가 죽을 수도 있단 말이야!”
“그건 좋을지도…”
“뭐?”
“아, 아니야. 어쨌든 클라우드가 말했어. 난 그걸 지켜야 해.”
“월장석 조각 때문에?”
셰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타리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셰디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셰디아. 언니가 부탁할게. 비켜주면 안 돼?”
“…”
“월장석 조각은 나중에도 받을 수 있잖아. 언니가 이렇게 부탁할게, 응? 설마 언니의 부탁보다 월장석 조각이 중요한 건 아니지?”
조금 싸늘해진 말투에 셰디아의 눈동자가 떨렸다. 잠시 흔들리던 그녀는 이내 카타리나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어차피 언니는 저기에 못 끼어들잖아.”
“…”
카타리나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오스너와 클라우드의 싸움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두 사람의 팔다리가 흐릿하게 보였다. 공방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셰디아의 말대로 끼어들어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짐이 될 수도 있겠지.
카타리나는 무력감을 느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는데…’
어떻게 해야 저 싸움을 멈출 수 있을까. 필사적으로 고민하던 그녀는 깨달았다. 그녀가 말릴 수 없다면 말릴 수 있을 법한 사람에게 부탁하면 되는 거 아닌가?
‘셰디아는 부탁해도 안 들어줄 거야.’
왜인지 모르겠지만 월장석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으니까.
카타리나는 레슬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싸움을 바라보는 백발의 여인. 순식간에 커다란 얼음벽을 만들어내던 그녀라면 충분히 둘을 말릴 수 있을 것이다.
“저기, 레슬리 씨!”
레슬리는 카타리나를 향해 돌아보지 않았다.
뭐지. 듣고는 있는 건가?
카타리나는 일단 말부터 하기로 했다.
“저기서 싸우시는 분 레슬리 씨의 아버님이시죠? 슬슬 말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더 했다간 정말 크게 다칠 수도 있을 거예요!”
레슬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답답해진 카타리나가 뭐라 더 말하려고 할 때 그녀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못 해.”
“네? 아니에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두 사람 사이에 두꺼운 얼음벽을 세워버리면 당장이라도…”
“그런 의미가 아니야.”
작게 고개를 저은 레슬리가 말을 이었다.
“아버님께서 웃고 계셔. 저렇게 즐거워하시는 모습…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레슬리가 기억하는 오스너의 웃음은 의무와 책임, 업무에 찌들어 시들어버린 웃음이었다. 레슬리는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씁쓸함을 느꼈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짓는 웃음을 보라. 상처투성이인 몸을 하고서도 짓고 있는 싱그러운 웃음을 보라.
저런 모습을 보고서도 그를 말리라고?
“난 못 해.”
레슬리는 사랑하는 부친의 행복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게 결국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일지라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레슬리의 사정일 뿐 카타리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레슬리의 말을 들은 카타리나는 잠시 얼탔다.
저게 무슨 소리…
아하?
“이거 순 미친년 아니야?! 야! 네 아빠가 즐거운 거랑 내 애인이 다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너, 너 나중에 봐. 클라우드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넌 진짜 나한테 죽어. 알아들었어?!”
“언니 참아. 싸우면 언니가 져.”
“넌 대체 누구 편─”
쾅!
벽에 사람이 처박히는 소리가 카타리나의 목소리를 덮었다. 흙먼지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는 투기장의 벽. 그곳에 처박힌 클라우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가고 무엇보다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모양.
‘프릴리테랑 비등하겠는데?’
오우거의 문양을 쓰고 [올 블레스]를 중첩하기까지 했는데 단순 몸싸움에서 밀린다. 저 정도면 아마 신체 능력 하나는 프릴리테와 맞먹지 않을까 싶다.
물론 기술은 압도적으로 프릴리테가 뛰어나지만.
‘프릴리테랑은 싸우면 안 되겠다.’
이 몸으로 싸웠다간 존나 처맞을 것 같아.
‘애초에 싸울 일도 없겠지만.’
클라우드는 헛웃음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빠져나오자 방금 그를 날려버린 자리에 서 있는 오스너가 보였다.
“클라우드. 괘, 괜찮아?!”
카타리나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한쪽에서 들려왔지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적을 앞에 두고 주의를 돌리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숨소리가 거칠군. 보아하니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것 같은데… 계속할 수 있겠나?”
오스너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걱정이 담겨있었다.
클라우드는 픽 웃더니 숨을 크게 들이키고선 말했다.
“이 호흡이 멎기 전에 끝을 내겠소.”
그는 말이 끝나는 대로 곧장 땅을 박찼다. 뒤에서 ‘야아아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카타리나의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자신감이 넘치는구만!”
오스너는 어딘가 안도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마주 달려왔다. 오스너의 팔뚝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는 클라우드의 머리를 향해 거세게 주먹을 휘둘렀으나, 클라우드는 몸을 숙여 가볍게 피했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클라우드는 슬슬 이 장난을 끝낼 생각이었다.
쭉 핀 오른 손바닥을 반전시키며 뻗었다.
[수도]손끝이 오스너의 왼쪽 가슴을 파고들었다.
처음부터 뭔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병약해서 반평생을 침대에서 살았다는 양반이 프릴리테 뺨치는 육체를 가지게 됐지 않나?
난 뭐 악마와 계약이라도 한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더라고.
보통 악마와 계약을 하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마리오네트의 실처럼 계약자와 악마 사이를 연결하는 선 같은 게 말이다.
오스너에겐 그런 선 같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봐야 했다. 마법으로 강해졌나? 뭐 신의 약초라도 뜯어 먹었나? 나중에 사천왕이 된다면 결국 마족과 관련된 일일 텐데?
그리고 그런 내 의문은 오스너와 치고받다 보니 저절로 해결되었다.
흔히 마기라고 부르는 악한 기운이 미약하지만, 그의 심장 쪽에서 느껴졌으니까.
[수도]과거의 프로나 용사에게 배웠던 기술.
손바닥에 미약한 마나를 담는다.
손끝이 칼날이 되어 오스너의 왼쪽 가슴을 파고들었다. 갈비뼈 사이를 지나가자 요동치는 맥박이 느껴진다.
심장이 가까워졌다는 증거.
손바닥에 슬라임 같이 질척거리는 촉감이 느껴졌다.
‘역시나.’
웬 이상한 것이 기생하고 있었다.
아마 이것이 오스너의 육체를 강인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씩 통제권을 빼앗아간 거겠지.
나는 그 기생 생물을 붙잡았다.
심장은 예민한 부위였기에 아주 섬세한 손길로. 붙잡고 나니 이놈이 심장에만 들러붙어 있는 게 아니라 오스너의 전신에 뻗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상관없다.
전신에 뻗어있다고 한들 핵은 이거니까.
이게 죽거나 사라지면 나머지 또한 움직임이 멎을 것이다.
붙잡은 기생생물을 빼내려 하자 녀석이 반항하기 시작했다. 심장에 달라붙으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새끼가 어딜?
마나를 응용해 놈의 몸과 오스너의 심장을 분리했다. 덕분에 녀석은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부드럽게 심장에서 떨어져나왔다.
‘진짜 슬라임처럼 생겼네.’
내가 꺼낸 기생생물은 부정형의 검은 무언가였다.
점액질인 게 영락없이 슬라임이긴 한데…
설마 이게 사천왕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서큐버스나 문어까지는 어떻게 넘어가 줘도 슬라임은 좀 아니지.
느껴지는 마기도 형편없고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뒤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엎어져서 힘없이 기침하는 노인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편하게 눕혀주며 묻자 그가 끌끌 웃었다.
“심장을 후벼 파놓고 괜찮냐고 묻는 겐가?”
“다시 넣어드려요?”
검은 슬라임을 들어 올리자 오스너는 질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됐네. 농담도 못 하나?”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오스너가 혀를 차다가 이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고맙네. 덕분에 큰 죄악을 저지르기 전에 멈출 수 있었어.”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었는데, 그 눈동자에는 백발을 흩날리며 달려오는 레슬리가 담겨있었다.
“아버님! 괜찮으세요? 피, 피가..! 당장 성직자를…”
“불러봐야 소용없을 거야.”
레슬리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 표정에 나는 손에 쥐어진 검은 슬라임을 들어 올렸다.
“네 아버지의 몸 안에서 기생하던 녀석이야. 아니, 기생이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지. 죽어가는 몸을 이놈이 살려놓고 있었으니까.”
레슬리의 시선이 다시 오스너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저 말이 진짜냐는 듯이 그를 바라봤고, 오스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슬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스너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본래라면 진작 죽어나자빠졌어야 할 몸이었다. 내 아집과 집착 때문에 조금 더 연명한 것뿐이지. 그것도 네게 민폐를 끼쳐가면서까지 말이다.”
“아니에요. 민폐라뇨. 그런 거 아니니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눈가를 촉촉이 젖히며 레슬리가 고개를 저었다.
오스너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정말 그렇게 느낀다면 울상을 짓지 말고 웃어주면 안 되겠냐? 넌 웃는 모습이 예쁘니 말이다.”
“…네.”
레슬리가 입꼬리를 올렸다. 억지로 짓는 듯한 어색한 웃음이었으나, 그것으로도 충분했는지 오스너는 표정에 대해 뭐라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조금 전에 있었던 싸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아비가 그 이상한 놈의 팔을 뜯어버린 것을 봤느냐?”
“네. 닭고기 뜯듯이 손쉽게 뜯어버리시던걸요.”
“그땐 솔직히 나도 놀랐다. 내 힘이 그렇게 세졌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거든.”
“그 후로 제게 덤볐던 인간 둘까지 순식간에 처리하셨죠.”
“그랬지. 너무 손쉬워서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였어. 그 둘은 분명 강한 전사였으니까 말이다.”
“아버님이 너무 강하셨던 거예요.”
“엄밀히 따지자면 내 힘은 아니었다만, 뭐 그렇지. 하지만 그래도 저놈은 못 이겼어.”
오스너는 작은 아쉬움이 담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피식 웃었다.
“진심으로 용사를 이기실 생각이셨습니까?”
“용사? 네가 용사였냐?”
오스너와 레슬리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노인네는 그렇다 쳐도 레슬리 너까지 놀란다고?
네 형제자매들은 다 알고 있던데?
나한테 얼마나 관심이 없던 거니?
“프로나 왕국의 용사, 클라우드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공님.”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스너는 내 자기소개를 듣고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 용사라면 못 이길 만하지. 오히려 이기는 게 이상해!”
“용사와의 싸움은 어떠셨습니까? 충분히 즐기셨습니까?”
“충분하지. 충분하고도 넘쳐. 죽기 전에 좋은 경험 하고 가는군.”
“그렇게 여겨주시니 다행입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스너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어쩐지 인물도 훤칠하다 했어. 용사라… 자네 혹시 내 사위가 될 생각 없나?”
“그런 건 따님분께 먼저 여쭤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 좋아요.”
“그렇다고 하는군?”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죠. 따님 잘 받겠습니다, 장인어른.”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고 암울했던 분위기는 점차 밝아졌다. 레슬리의 어색했던 웃음 또한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대화는 계속되었다.
주로 오스너가 말하면 그의 딸이 맞장구쳐주는 형식이었다.
“그때… 네 어머니가 했던 말이…”
한 마디가 입 밖으로 내뱉어질 때마다 노인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해갔다.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고 문장 사이에 생기는 텀이 길어졌다.
그럼에도 레슬리는 내색하지 않았다.
얼굴에 힘을 줘 미소를 유지하면서도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애쓰는 딸의 모습이 너무 가련하게 느껴졌던 걸까, 오스너는 하던 이야기를 끊었다.
대신 맞잡은 딸의 손에 힘을 주고선 말했다.
“사랑한다.”
그게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