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46)
“들으면 들을수록 넌 좆같은 년이구나. 분홍색 머리를 봤을 때부터 상종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시발 이제부터 분홍머리를 믿으면 성을 간다. 그보다 구르아는 어떻게 했냐?”
“처음에는 계획에 끌어들일 생각이었어. 근데 자기는 싫데.용사님을 따라가면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나? 그래서 코카트리스의 독을 듬뿍 바른 단검으로 찔렀어. 5분도 못가고 죽더라.”
“…구르아의 가족 얼굴을 볼 낯이 사라지는군.”
“멀쩡한 아내 두고도 바람피우는 새낀데 뭐 어때? 아… 그보다 슬슬 죽을 것 같다. 저기, 용사님.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는 것도 뭐한데 나 좀 살려주면 안 돼? 평생 용사님만 바라보고 살게.”
“고블린 육노예?”
“시발… 그냥 죽여.”
큭큭 웃는 그녀의 얼굴은 핏기가 많이 사라져 창백한 상태였다.
바닥을 뒤덮은 피를 보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아, 죽기 전에 우리 무능용사님께 할 말이 있다.”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용사님 대가리에는 꽃밭이 있는 것 같애. 동료가 되면 무슨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어주는 게 당연한 줄 알아.”
“…”
“정신 차려 이 인간아. 그렇게 당하고도 몰라? 동료는 그냥 이해관계야. 필요 없어지면 버리거나 하는 거라고. 특히나 나 같은 근본 없는 모험가 새끼들은 더 그렇지.”
“…”
“…그래도 뭐, 정 목숨 걸어주는 동료를 가지고 싶으면 방법이 있긴 해.”
“뭔데?”
“약점을 잡아. 물리적인 거든 감정적인 거든. 그리고 그걸 이용하는 거야. 생각해봐. 카일은 어째서 날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
“부부잖아. 사랑해서겠지.”
“그럼 난 카일을 사랑했을까? 말도 못하는 벙어리인데?”
“넌… 시발, 진짜 할 말이 없다.”
“킥… 우리 순진한 용사님이 몰라서 그렇지, 세상이 다 그런 거야.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 도구야 도구… 정 따윈… 주지 마… 그게… 끝까지 살아남는… 비결… ”
그라벨리의 목소리의 세기가 점점 옅어졌다.
이내 그녀의 눈동자가 탁해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눈꺼풀을 덮어주었다.
바닥을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돌로 된 천장밖에 없었지만 내 눈에는 다른 것들이 보였다.
“오늘따라 너희들이 왜 이렇게 그립냐…”
머릿속으로 그라벨리가 했던 말이 재생되었다.
약점을 잡아. 물리적인 거든 감정적인 거든. 그리고 그걸 이용하는 거야.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
도구야 도구… 정 따윈… 주지 마….
“난 그냥 그때 그 느낌을 조금이라도 다시 느끼고 싶었을 뿐인데… 여긴 그런 것도 안 되나 보다.”
이러면 새로 시작한 이유가 없는데.
쓴 웃음이 지어졌다.
밀려오는 허탈함에 눈을 감았을 때였다.
클라우드, 제국 사교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잊지 말고 참석해라.
프릴리테.
그녀의 음성이 귓가로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대륙의 중심.
제국의 황궁에서 펼쳐지는 제국 사교회.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다.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기회가 열린다.
이곳은 제국 사교회.
대륙을 이끌어가는 귀족들의 자리.
“오우거 사냥 때 동료들이 많이 죽었다지? 그것참 슬프게 됐어~”
그런 고귀한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경박한 남자가 있었다. 화려한 금발과 그에 대조되는 구릿빛 피부를 가진 미남.
알리티아 왕국의 용사, 기스.
그는 다리를 꼬며 불량한 자세로 앉아 포도알 하나를 똑 따서 입에 넣었다.
“고귀한 희생이었죠. 그들의 희생은 역사에 기록되어 후손들에게 전해질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스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제국 사교회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기다란 장발을 가지런히 정리하여, 고귀한 귀공자 분위기를 풍기는 미남.
카르타 왕국의 용사, 로리안.
그는 단정한 자세로 홍차를 한 입 머금었다.
“희생이라… 킥, 좋은 말로 포장하긴. 뭐, 그건 그렇다고 치자. 헌데 요즘 소문에 따르면 너희 파티가 오우거 토벌 때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던데… 소문이 사실인가 봐?”
다른 귀족들과 대화 중인 로리안의 파티원들을 보며 기스가 말했다.
그들은 오우거전 이후로 파티원을 늘리지 않았다.
5명 그대로.
에리는 사실상 짐 취급이니 4명이 전부인 셈이다.
기스의 비꼼에 로리안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날 깨달았거든요. 어중간한 사람들로 숫자만 늘리는 것보다 확실한 소수정예가 낫다는 것을 말이죠.”
“어째 날 비꼬는 말로 들리는데?”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만,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거겠죠.”
“염병, 로리안.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난 너희 귀족 새끼들의 계집애처럼 돌려서 까는 화법을 싫어해.”
“그럼 직설적으로 말하죠. 적당히 좀 하세요. 당신 파티원이 벌써 16명을 넘어간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만 보면 다 데려오는 겁니까?”
“정확히는 속궁합이 잘 맞아야지. 마음에 드는 여자는 대륙에 널렸다고. 그걸 다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나도 나름 타협한 건데?”
로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한 가지 묻죠. 당신의 파티원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네 생각보다 꽤 많다고. 다들 생각보다 재능이 있으니까. 내 뒤에 있는 이년들도 무려, 클라우드 용사님 파티의 일행이었잖아?”
기스가 엄지로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그의 뒤에는 두 명의 미인이 서 있었다.
푸른 단발을 가진 미녀이자 클라우드의 소꿉친구인 네리아.
황금빛 금발과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지닌 미녀이자 전 클라우드 파티의 성녀 후보, 오필리아.
다른 파티원들과는 다르게 그녀들은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녀들은 기스의 다른 파티원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기스에게 있어 그녀들은 그저 트로피에 불과했으니까.
두 여인을 본 로리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말은 목덜미의 멍 자국이나 지우고 하시죠.”
“뭐?”
기스는 자신의 트로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로리안의 말대로 네리아의 목덜미에 멍 자국이 보였다.
그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야, 오필리아.”
“…네, 용사님.
“내가 분명히 겉은 멀쩡하게 만들라고 했지?”
“죄송해요. 옷깃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어요.”
“못 봤으면? 네 실수가 없던 것이 되나? 그나마 로리안이 봐서 망정이지 다른 귀족들이 봤으면? 난 파티원을 학대하는 망나니로 소문나게 될 텐데… 설마 그걸 노린 건가? 소심하게라도 복수하고 싶었어?”
“…절대 아니에요. 실수가 맞…”
“닥쳐. 요즘 편했지? 오늘 돌아가서 보자.”
오필리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용사님…”
“그녀들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닙니까? 당신은 남성은 몰라도 여성에겐 자상했던 거로 압니다만.”
“따먹지도 못하는 년들에게 자상은 무슨.”
기스가 미간을 와락 구겼다.
그에 로리안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답지 않군요. 전 이미 가지고 놀대로 놀았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아직까지 데리고 다니는 것도 신기했죠. 어디 창관에 던져놓고 올 줄 알았는데.”
“성녀 후보를 가지고 놀다가 창관에? 하, 내가 미쳤냐?”
“아니었습니까?”
“지랄. 나도 대가리는 있어. 교회를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고.”
성녀는 처녀이어야만 한다.
만약 차기 성녀가 정해지기도 전에 성녀의 처녀를 앗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파문되고 죄에 걸맞은 신벌을 받게 된다.
“그러니 성녀가 정해질 때까지만 기다릴 거야. 성녀만 정해지면 그땐 교회의 눈치를 안 봐도 되지.”
성녀에 발탁되지 못한 성녀 후보들은 그저 일개 수녀와 다를 게 없어진다. 그리고 교회는 용사와 일개 수녀 사이에서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용사의 손을 들 것이다.
“그렇군요. 성녀 후보가 남아있는 건 그런 이유라 치고, 그럼 저 여자는… 아직도 못 이룬 겁니까?”
로리안의 말에 기스는 한숨을 푹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시발, 나도 그동안 바빴다고. 위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간섭이 얼마나 심한지. 쯧.”
도저히 클라우드를 찾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후원자 중 하나이자 양어머니인 헤일리에게 추적을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헤일리는 당분간 클라우드와 엮이지 말라는 당부도 했었는데, 기스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병신 새끼 놀리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아무리 양어머니인 헤일리의 당부여도 기스는 자신의 즐거움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을 잔뜩 기대하고 왔지. 지난 몇 개월간 행방이 묘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국 사교회에는 오지 않겠어?”
합당한 이유 없이 사교회에 참석하지 않는 건 제국과 그를 통치하는 황제에 대한 모욕이다.
안 그래도 정치적 기반이 전무한 클라우드다.
더는 정적을 만들고 싶지 않겠지. 아마 무조건 올 것이다.
기스는 씨익 웃으며 네리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어 네리아. 네 소꿉친구가 지켜보는 앞에서 처녀를 졸업하는 날이 말이야.”
기스의 말에 네리아는 더 이상 담담한 척을 하지 못했다. 눈동자가 미칠 듯이 흔들린다. 이가 딱딱거리면서 부딪치고, 몸은 공포에 질린 듯 덜덜 떨렸다.
닥쳐올 끔찍한 미래에 몸을 떠는 네리아를 보며 기스는 정말 해맑게 웃었다.
마치 부모에게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와 같이.
로리안은 원래도 질렸었지만, 이번에는 더 크게 기스에게 질리고 말았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순결을 빼앗긴 클라우드의 표정.
고작 그거 하나 보겠다고 몇 개월씩이나 저들을 데리고 다니다니. 항상 느끼는 거지만 뒤틀린 욕망을 향한 기스의 집착은 비정상적이었다.
“어라? 네리아 봐. 네 쳐녀가 따이는 것을 구경해 줄 관객님이 오셨어!”
네리아는 기스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교회장의 입구. 그곳에 검은 연미복을 입은 미남이 안으로 들어왔다.
미남미녀가 수두룩한 사교회장 안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압도적인 외모.
클라우드였다.
‘클라우드…’
정말 오랜 시간 만에 본 소꿉친구의 얼굴에 네리아는 울컥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럴 자격도, 힘도 없었다.
허락된 것이라곤 그저 멀리서 그를 바라보는 것뿐.
웅성웅성.
그가 걸어들어오자 귀족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 누구야? 진짜 잘생겼다…
어디 가문의 사람일까? 조금 있다가 말이라도 걸어볼까?
사교회에 처음 참석한 몇몇 영애들은 그의 외모에 대한 감탄 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귀족은 그를 깎아내렸다.
무능 용사잖아? 몇 개월 동안 숨어다니더니 여긴 무슨 낯으로 온 거지?
무능 용사? 왜 별명이 무능 용사야?
몰라? 저놈 겉만 번지르르하지 약해빠졌어. 용사인데도 말이야. 아마 우리 집에 있는 신참 기사보다 약할걸?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용사인데.
진짜라니까? 천한 핏줄이 어디 가는 건 아니잖아.
천한 핏줄이라… 그건 그렇지.
누군가는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클라우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찾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 오지 않은 모양.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시종에게서 마실 것을 받은 뒤, 요리를 가져와 식사를 시작했다.
기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우리 용사님께서 혼자 식사를 하시네. 아무래도 외로우신 모양이야. 내가 상대를 좀 해줘야겠어.”
기스는 실실 웃는 낯짝 그대로 클라우드를 향해 걸어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에게 어깨동무를 걸며 뭐라 뭐라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로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기스가 하는 행동은 유치한 애 장난이지만 당하는 사람이 클라우드라면 다르다.
로리안은 클라우드와 프릴리테가 어깨동무를 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그녀는 그 천한 손으로 만질만한 사람이 아니야.’
이참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도 괜찮겠지.
로리안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콰앙! 쨍그랑. 쨍쨍그랑!
기스의 얼굴이 테이블에 처박혔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던 접시들이 깨지며 요란한 소음을 내었다.
클라우드가 기스의 머리채를 잡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상황을 이해 못 한 기스가 지은 멍청한 표정이 귀족들의 눈에 각인됐다.
콰앙!
그의 얼굴이 또다시 테이블에 처박혔다.
사교회장에 적막이 흘렀다.
기스가 한 행동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세상 가벼운 태도로 클라우드에게 다가가 그를 조롱했다. 어깨동무를 걸고 식사를 방해하며 그의 존엄성을 훼손했다.
평소의 클라우드라면.
하핫, 애미 없는 짓을 골라서 하는구나? 고아 새끼인 걸 그렇게 티 내고 싶니?
와 같은 말로 받아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더 재밌을 테니까.
다만 그러기에는 지금 클라우드의 기분이 조금 많이 안 좋았다.
클라우드는 왼손으로 기스의 뒤통수를 붙잡고 테이블에 내리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