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162
“그런 말이 아니라. 상대가 개 또라이잖아. 걔 사고치고 다니는 게 하루이틀이냐? 오죽하면 정환그룹 법무팀에 걔가 친 사고 뒤치다꺼리하는 전담팀이 있다는 소문이 돌겠어.”
“그래도···.”
“거기다 늦은 밤 고급 술집이야. 걔야 원래 그런 놈이니까 상관없다 치지만, 정직 중인 검사가 그 시간에 거기 있었다고 알려져 봐. 네 얼굴만 팔리는 게 아니야. 검찰 전체가 욕먹는 거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위스키병으로 사람을 치려고 하는 놈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그니까, 너는 왜 꼭 그런 자리에 있니?
“그냥 눈에 띄었어요.”
“그럼 경찰에 신고하고 너는 빠졌어야지. 이 기사들 봤어, 이거? 다행히 지금은 재벌 아들 난동에 방점이 찍혔지만, 기자들이 벌써부터 기웃거려, 동석했다는 검사가 누군가 해서.”
“그거 기사 잘못 난 건데. 동석한 거는 아닌 데요.”
“우리 검사는 재벌하고 같은 식당, 아니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어도 안 돼. 그것만으로도 비리야.”
“근데···.”
“근데 뭐?”
“과장님 사모님이 재벌이시지 않나요?”
이미 붉었던 얼굴이 더 빨개진다.
“이 새끼가 진짜 오냐오냐하니까, 상투를 잡으려고···. 야, 우리 장인어른 재벌 아니야.”
“아, 그럼, 그냥 일반 부자 정도이신 건가요?”
“야이씨-.”
“농담입니다. 알죠, 과장님이 이 대검에 있는 누구보다 청렴결백하신 거. 그저 닮고 싶을 뿐입니다, 과장님.”
“하— 이 새끼가 언제부터 이렇게 능글맞아졌지?”
“용인에서 생매장됐다가 깨어난 이후로···.”
“야! 나가. 나가.”
“그럼, 가보겠습니다. 과장님, 사랑합니다.”
자신의 방을 나서는 주연의 늠름한 뒷모습을 보며, 오도경은 한탄 섞인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하— 저 새끼가 망나니였어. 그날 밤 망나니가 둘이었네. 아주 그냥 망나니끼리 배틀을 뜨셨구먼.”
—*—
서초동, 도흥식 변호사 사무실.
“뭐래?”
“뭐라기는 뭐래? 혼났지.”
“또 징계위 열린다는 말은 안 하고?”
했다. 기사 난 것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 시끄럽다며 오도경은 경고했다.
송재현 부장이 조용히 넘어가는 게 좋겠다고 총장님을 잘 설득해서 아무 조치가 없는 거지, 사실상 이프로스(검찰 내부망)에서는 동석했던 검사를 징계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많았다며 조심하라고 했다.
“징계위까지는 안 갈 거 같은데, 잔소리 엄청 하더라. 검사는 재벌하고 같은 공간에서 숨도 쉬지 말래.”
“맞는 말이야.”
“내가 걔가 재벌인 줄 알았냐. 아- 아무튼 그놈의 재벌.”
“그래서? 정환그룹에서는 따로 연락 없고?”
“연락? 정환그룹에서 왜 나한테 연락을 해?”
“기사가 보니까 코뼈가 부러졌다고 하던데.”
“에이- 설마 그걸로 고소라도 하겠냐, 지가 먼저 덤볐는데. CCTV 기록도 다 있어.”
“그래서 왜 그런 건데?”
“아니, 그냥 은채 조용히 술 마시러 간 건데. 제집 안방인 것처럼 계속 시끄럽게 굴더라고. 그래도 뭐 그냥 무시하고 있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종업원을 불러서는 소주를 사 오라고 시키는 거야?”
“소주?”
“응. 그걸로 고성이 오고 가고, 매니저 나오고, 그 새끼는 또 막 지가 누군지 모르냐고 망나니짓을 하고. 아무튼 시끄러워서 나가려고 하는데, 결국에는 폭력을 행사하더구만. 그래서 내가 손을 딱 잡았지.”
“그랬더니?”
“그랬더니 위스키병으로 나를 치려고 하길래, 내가 먼저 퍽. 피 후두둑. 또 공격하려 하길래, 다시 퍽. 철퍼덕. 게임 끝.”
“소문에 인성 개차반이라고 하더니, 진짜였네.”
“응.”
흥식은 어느 정도 주연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가 검사였어도 그 장면을 목격했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다. 뭐, 주먹까지 휘두르지는 않았겠지만.
“그래서? 이제 정환그룹 혼쭐내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 자식 손을 잡았다며, 그러면 또 다 봤을 거 아냐. 그 자식의 비리들을.”
“아-. 봤지. 봤는데, 별거 없었어.”
“별거 없었어? 의외네, 많을 줄 알았더니.”
“뭐 많기야, 많지. 아주 그냥 콤플렉스 덩어리에 자존심만 세 가지고. 갑질, 폭행···. 근데 생긴 거 답지 않게 성추행 같은 건 없더라고. 정환그룹 회사 일 관련해서도 별거 없고.”
“그래?”
“응.”
“집안에서도 내놨나 보네. 하긴 아직 어리기도 하고.”
“아, 그건 있더라, 마약. 미국에서 유학할 때 마약을 조금 한 거 같더라고.”
“재벌가 자식 중에 그런 애들 많을 거야.”
“근데, 귀국해서는 안 한 거 같아. 사실 정확하지는 않은 게, 마약을 하는 자리에는 있었던 거 같은데, 본인은 계속 거절하더라고.”
“의외로 또 선을 긋네.”
“응. 인성이 쓰레기이기는 한데, 겁이 좀 많은 놈이더라고. 그래서 더 그렇게 난동을 피우는 거 같아. 왜, 그 치와와들이 더 성질 드러운 것처럼.”
“그렇게 말하니까, 또 좀 안쓰럽네. 어찌 됐건 김용석이가 그 집에서 제일 치이잖아. 공부도 별로, 운동도 별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기는 하지. 억지로 미국에서 로스쿨까지 보내놨는데, 변호사 시험은 패스 못 하고. 형이랑 누나는 아이비리그 출신에 벌써 아버지 사업 물려받을 준비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또 너무 불쌍해하지는 마.”
“불쌍은 무슨···. 그럼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겠구먼.”
“너 무슨 말이 내가 일을 만드는 사람처럼 들린다.”
“너 일 만드는 놈 맞아.”
“야, 나도 피곤해. 그런데 어쩌겠냐? 신께서 나를 선택하셨는데.”
“어쭈구리.”
커피를 다 마신 주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밥 먹고 가는 거 아니었어?”
“어, 오늘은 너 혼자 먹어야겠다. 주 형사님하고 점심 같이하기로 했어.”
“주 형사님? 아, 느낌이 싸한데.”
“왜?”
“너 그 형사님이랑 만나면 꼭 일이 터지더라.”
“일은 무슨···. 그냥 밥이나 먹는 거야.”
뭐 작은(?) 일 하나 부탁할 게 있기는 하지만···.
—*—
“이모, 여기 내장탕 두 개요.”
서초, 방배순대국.
“소식은 들었어요. 괜찮으세요?”
“어떤 거요? 정직 먹은 거요? 아니면 정환그룹 막내아들하고 붙은 거요?”
“둘 다요.”
“좀 혼나기는 했는데, 괜찮습니다.”
인아는 주연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 차 형사님은요?”
“진술서 쓸 게 남아서 못 왔어요.”
“아-”
말꼬리가 긴 게 할 말이 남아있는 듯하다.
“왜요? 동석이한테 뭐 전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혹시 요새 바쁘신가요?”
역시.
“저희야 늘 바쁘죠. 검사님도 그런 것 같은데.”
“그렇죠. 바쁘죠. 하하.”
“왜요? 또 신기(神氣)가 내려왔나요?”
“네? 아···네. 하하하. 하하.”
사건이다.
“말씀해주세요. 이번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아 보고 싶네요.”
표창 따위에 관심 없는 인아였지만, 주연이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어울리지도 않는 너스레를 떤다.
“그 정도 되는 건인지는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늘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결국 대형 사건들이지 않았나요? 어차피 부탁하실 거 뜸 들이지 마시죠.”
그렇기에 약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수사를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늘 사적으로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기에.
“그럼, 염치를 무릅쓰고 물어보겠습니다. 보통 마약 수사는 어떻게 진행이 되나요?”
“마약 수사요?”
“네.”
“마약 수사는 보통 청에서 관리해요. 일 년에 한두 번씩 마약사범 자수 기간을 정하고 전 경찰서에 대대적으로 조사를 하기는 하는데, 그거는 그냥 잔챙이들이나 호기심에 마약에 손을 댄 사람들한테 경각심을 심어주려고 하는 일종의 캠페인 성격이 강하고. 중간에서 유통하는 놈들이나 마약 조직 검거는 보통 대검 마약부와 공조해서 청에서 해왔어요.”
그러던 것이 마약조직범죄수사청이 신설되면서 이제 전담하는 기관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러면 일반 서에서는 마약 수사를 아예 안 하나요?”
“아니요. 하죠. 특히 이쪽 강남에 있는 유흥가에는 마약이 워낙 많이 퍼져있어서, 꾸준히 단속도 나가고 유통책 조사도 합니다. 다만, 사건이 커지면 경찰청 마약조직수사본부에 이관되는 것뿐이죠.”
그렇다면 부탁해볼 만하다.
“이번에는 마약 관련 사건인가요?”
“네. 근데, 이름도 모르고 장소도 몰라요.”
“얼굴은요? 이번에는 몽타주도 없나요?”
있다. 다만, 그 정도로 크게 벌일 사건인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한다.
“네. 하지만, 한 명은 정확하게 압니다.”
“누구요?”
“영화배우 서예나 씨.”
김용석의 기억 속에서 그녀를 봤다. 약에 취해 있는 듯한 모습의 그녀를.
“서예나요?”
“네, 혹시 눈에 띄지 않게 조사해 봐주실 수 있나요?”
—*—
정환그룹 회장, 김인후 사저.
“이놈의 새끼는 정신상태가 글러 먹었어. 지난번에 사고 친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말썽을 일으켜. 도대체가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인지, 쯧. 미국으로 내보내!”
식사를 하던 김인후는 수저를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아마도 김앤강 변호사들 만나던 자리에서 시비가 붙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제깟게 왜 변호사를 만나고 다녀. 지가 사업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도 법무팀이라 보니까···.”
“법무팀? 돈을 처발라서 로스쿨에 보내놨더니 사법시험도 아니고 그깟 미국 변호사 시험 하나를 패스 못 한 주제에 법무팀은 무슨. 한 변호사더러 옆에 두고 잘 감시하라고 거기 넣어놓은 거야. 내가 아주 쪽팔려 죽겠어. 도대체가 몇 번 째야.”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아버지. 저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며 정신 차릴 겁니다. 아버지 피가 어디가 갈까요.”
큰아들 김용권이 옆자리에서 동생을 두둔하자, 성질을 내던 김인후는 진정했다.
“용권이 니가 좀 잘 봐. 그래도 동생이니까 나중에 한자리할 수 있게 하려면, 옆에 두고 잘 좀 가르쳐.”
“네, 알겠습니다.”
사실 그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망나니 아들도 자식이다. 아니, 말은 그렇게 해도, 김인후에게는 소중한 막내아들이다.
“근데, 내 아들 그렇게 만든 놈이 검사 놈이라고? 검사면 사람을 그렇게 패도 돼? 어디 감히 누구 아들을···. 한 변호사 들어오라고 해.”
검찰청 망나니 (3)
“이력이 조금 특이합니다. 검찰에 들어온 경위도 그렇고.”
김인후 회장의 지시로 나주연을 조사한 한웅천 변호사가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정환그룹 법무팀 소속으로 되어있지만, 김 회장 일가(一家)의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집사’였다.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일찍 사법고시에 합격했는데, 연수원 입학 전 뇌암 진단을 받고 일본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일본?”
“네, 일본 오사카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고아라며? 일본에 누가 있어?”
“그것까지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계속해봐.”
“네. 그래서 합격은 43기랑 했는데, 졸업은 44기랑 했습니다. 연수원 동기들 말로는 말수도 적고 성적도 특출나지는 않아 크게 눈에 띄는 원생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특채로 검찰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들 의아해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