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172
“오늘 밤, 친다.”
“그 유도하는 곰새끼는?”
“그 곰새끼를 친다고.”
—*—
오사카, 기타구.
조금 전 바둑살롱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자신의 테이블로 다가오자, 사이토 히데토시는 자신 앞에 있던 남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랜만이네, 사이토.”
남자는 페도라를 벗으며 앞자리에 앉았다.
“예전에 두목이 당신은 늙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네요. 당신은 정말 뱀파이어라도 되는 겁니까?”
콧수염 따위로는 숨길 수 없는 젊음이다.
“왜? 한번 물어줘?”
정말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았지만, 그가 흡혈귀라고 고백했어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게들 다 정리했다면서요?”
“응. 하나만 빼고.”
“?”
“뭐야? 어차피 다 정리했는데, 왜 자꾸 시비인 건데.”
“우리 애들이 아녜요.”
“야마가와카이에 들어갔다며? 거기 간사이연합 애들이 자꾸 찾아와서 말썽이야.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야? 아니면 사이토, 네 능력 밖에 일인 거야?”
끄응-.
능력 밖에 일이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다. 사십 대 초반이 그가 밀려난 건, 흡수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야마가와카이에서 신사업을 하는 데 그 건물이 필요하대요.”
“계속 말해봐.”
“다른 업소들 먼저 안 미는 건, 걔들도 거기가 히로 상 건물인 줄 알기 때문이고요. 소문나면 골치 아프니까 큰 거부터 제거하려는 거죠.”
“그래서, 그 양아치 애들을 자꾸 보내서 영업방해를 했던 거구만. 신사업 뭐?”
“뭘 짓는다고 하던데, 잘은 모르겠어요.”
“관동의 야쿠자가 여기서 뭘 지어?”
“모르겠어요.”
“하긴 걔들도 변해야 살지. 알았어.”
“네?”
“알았다고. 가서 두 달만 달라고 해. 내가 케이코 설득해서 내보낼 테니까.”
“무슨 꿍꿍이죠?”
“꿍꿍이 아니니까, 가서 전해, 가게 두 달만 내버려 두라고. 내가 가서 설득할 테니까.”
“······.”
“진짜야. 가서 네가 나랑 직접 협상했다고 해. 그리고 한자리도 달라고 하고. 근데 솔직히 너도 이참에 그만두는 게 나을 텐데. 앞으로 야쿠자 별 볼 일 없을 거야.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보는 세상이 왔어.”
“진짜 두 달 있다가 가게 뺄 겁니까?”
“그렇다니까. 니 오야한테 들어서 알지? 나 헛소리 안 하는 거.”
“···.”
“가서 그렇게 전해. 그리고 야마가와 놈들 잘 설득해서 그 지역 니가 관리해라. 그 근본 없는 불량배 놈들이 설치고 다녀봤자,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스즈시로 히로 (2)
오사카 복음교회는 독실한 재일교포들이 모여 설립한 작은 교회로 구로몬시장 끝자락에 자리했다. 이시하라 케이코(석경자)는 교회의 집사로서 주일 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가게에 나가기 전 교회에 들렀다.
바둑살롱에서 사이토 히데토시를 만난 히로는 케이코를 만나기 위해 생선비린내와 기름내가 진동하는 구로몬시장 뒤편으로 향했다.
“교회를 이 더러운 곳에 세우는 것부터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케이코, 이런 냄새를 옷에 묻히고 오면 손님들이 뭐라고 안 해?”
예상대로 이시하라 케이코는 교회에 있었다.
“원래 신은 이런 곳에 계시는 법이에요. 사람들이 더럽다고 둘러보지 않는 곳에.”
“그러면 그 신은 깨끗한 사람을 차별하는 건가?”
“무슨 일이에요? 여기까지 날 찾으러 온 거면 진짜 급한 일이거나 아니면 진짜 할 일이 없는 거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텐데.”
나이가 들어도 통통 튀는 매력은 그대로이다.
키타신치에 있는 고급요정에서 맨 처음 그녀를 봤을 때, 그녀는 고작 열아홉 살이었다. 아비의 빚 때문에 팔려 온 그녀는 다들 새끼고양이처럼 살랑거리기 바쁜 여자들 사이에서 살쾡이 같은 성격으로 유독 눈에 띄었다.
이제는 서른여덟 살의 중년 여성이 되었지만, 히로의 눈에는 여전히 어려 보인다.
“이제 클럽 문 닫고 다른 일은 해보는 건 어때?”
“흥. 반평생 배운 일이 이거밖에 없는데, 나더러 다른 일을 하라고요? 왜요?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라고 하시죠.”
“그것도 나쁘지 않고. 그래, 그거 괜찮네. 학비 정도는 내가 대줄 수도 있어.”
둘이 만나자마자 친해진 것은 아니었다. 알고 지낸 지 몇 해쯤 되었을 때, 채권을 갖고 있던 야쿠자 조직이 그녀에게 성인 포르노 촬영을 강요했고, 사연을 알게 된 히로가 그녀를 구해주면서 가까워졌다.
당시에는 히로 역시 클럽 및 빠칭코 가게 몇 개에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 이후 그는 그녀를 자신의 클럽에서 일하게 해주었고.
사업에 소질이 있었던 그녀가 마마(매니저)에서 사장이 되는 데까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 제안이면 18년 전에 해주시지 그랬어요. 이제 와서 공부는 무슨···.”
“그러지 말고 클럽 문 닫아. 어차피 새로 찾아오는 손님들도 별로 없잖아.”
“그래서 더 못 닫아요. 내가 가게를 닫으면 5년, 10년씩 찾아오던 손님들은 이제 어디에 가라고요?”
“그것도 뭐 자애 의식 같은 그런 거야?”
“맘대로 생각하세요.”
“네가 믿는 신이 뭐라고 안 해? 술장사하는 거?”
비꼬는 듯한 질문에 이시하라 케이코는 그를 흘겨보며 대답했다.
“원래 신은 나같이 천대받는 사람한테 손을 먼저 내밀어요.”
“예수라는 양반이 거 되게 차별적인 신이구만.”
“예수는 신이 아니에요.”
“신이 아니었어?”
“하나님의 아드님이시지.”
“그러니까, 신의 아들인데 신이 아니야? 뭐 그런 게 있어.”
그의 말투가 장난기 섞인 말투로 변했다. 본디 차가운 인상이지만 이럴 때는 천상 개구쟁이 같다. 이시하라 케이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무시했다.
“가세요. 이제 예배드려야 할 시간에요.”
“케이코, 내 말 들어. 어차피 내가 한국에 가면 야마가와카이 놈들을 너 혼자 어떻게 당해낼 건데.”
케이코도 알고는 있었다, 자신의 가게가 시한부라는 것을. 그렇다고 자신의 젊음을 다 바친 곳에서 그런 식으로 밀려나고 싶지는 않았다.
“히로 상 없이도 문제없어요. 나 혼자 할 수 있어요.”
“으이그, 저 고집불통! 성깔머리하고는.”
“히로 상이 저한테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아무튼 알고 있어. 다음 달 말까지만 영업하고 문 닫기로 사이토랑 이야기 끝내고 오는 길이야. 그러니까, 너도···.”
바로 그때, 문에서 키가 작은 젊은 남자가 나왔다.
“석 집사님, 곧 예배 시작합니다.”
“네, 목사님. 알겠습니다. 금방 들어갈게요.”
케이코가 목사라고 부른 남자는 히로를 향해 목을 숙여 인사하고 교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얀 반소매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의 인상이···오묘하다. 오랜 세월 여러 부류의 인간을 만나봤지만, 그런 인상은 또 처음이다. 선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악해 보지도 않는다.
“저자가 목사야?”
“네. 왜요? 예배 같이 드릴래요?”
“됐어. 예배는 무슨. 어려 보이는데?”
“어려요. 서른도 안 되던가, 그럴 거예요.”
“그렇게 어린 사람도 목사가 될 수 있어? 넌 매일 같이 저 어린놈의 설교를 듣는 거야? 너보다 십수 년도 더 어린놈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이상하잖아. 아,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이상할 것 없어요. 이상한 거는 히로 상이 붙이고 다니는 그 콧수염이지. 저 이제 진짜 들어가 봐야 해요.”
“아무튼 내 말 잊지 마. 다음 달 말까지야. 그리고 가게 문 닫는 거야.”
이미 돌아선 그녀의 등 뒤로 말했다. 못 들은 척 교회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지만, 그녀는 분명 들었다. 그리고 그녀도 안다. 그가 거기까지 찾아와서 말했을 때는 이미 결정이 난 사안이라는 것을.
히로는 그녀가 들어간 교회의 외관을 유심히 살폈다.
—*—
오사카 닛코 호텔, 로비.
방금 사이토 히데토시로부터 ‘만지’ 히로가 신사이바시에 있는 클럽을 넘기겠고 약조했다는 말을 들은 사토 마사키는 말없이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자기가 한 말은 끝까지 지키는 남자다. 다음 달 말에 넘긴다고 했으니까, 분명 그렇게 할 거야. 그러니까, 간사이연합 애송이들한테 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해.”
사이토는 히로를 믿었다. 하지만, 마사키는 그렇지 않다.
“좋아. 그런데, 그자가 다음 달 말에도 가게를 넘기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지?”
“그때는 내가 이 손가락을 자르지.”
“호호- 그렇게까지 신용을 하신다? 궁금하네, 히로라는 그 남자. 아무도 나이도 모르고 성도 모른다며? 이제는 만나본 사람도 별로 없고. 누구는 이미 죽었다고도 하던데. 진짜 그 남자 본인하고 얘기한 거야?”
“히로 상과 직접 이야기한 거다.”
다음 말을 하기 전, 사토 마사키는 사이토 히데토시의 두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좋아. 대가는?”
“대가는···간사이연합 애들 미나미에서 빼.”
“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어차피 우리 야마켄구미가 관리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한 식구끼리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한 식구이니까 어차피 상관없는 거 아냐? 본부 입장에서는?”
사이토 히데토시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되물었다. 잠시동안 그 시선을 마주한 마사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대신 다음 달 말까지 클럽 문을 닫지 않을 경우, 사이토 상 손가락 정도로는 안 끝날 거야.”
엄포가 아니다. 진짜 협박이다.
다른 말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사이토 히데토시는 침을 한번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이십니까, 본부장님? 정말 두 달 뒤에 간사이연합 애들을 미나미에서 빼실 겁니까?”
“약속을 지키면 고려해야겠지.”
“간사이연합 애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어차피 컨트롤 안 되는 간사이연합보다는 야마켄구미가 관리하는 게 나아. 말만 잘 듣는다면.”
야마켄구미를 견제하기 위해 양아치 집단인 간사이연합을 이용했다. 이제 야마켄구미를 흡수했겠다, 골치 아픈 클럽 건만 해결되면, 간사이연합 따위 어찌 돼도 상관없었다.
“솔직히 불가침 조약 따위에 메어있지 않으면 야마켄구미가 훨 낫지.”
“근데 그 히로라는 남자는 도대체 뭐인가요? 이제 조직도 없고, 가게도 이랑 빠칭코 하나가 고작인 거 같고. 야마구치 켄하고 붙었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지금 60살도 넘었을 텐데···. 야마켄구미 놈들은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사이토 저 사람까지 저렇게 벌벌 기나요?”
“그 남자 별명은 들어봤어?”
“별명이요?”
“그 노인네 별명이 ‘만지’야? ‘불사신 만지.’”
“불사신 만지? 혹시 그 만화주인공 말씀이신가요?”
“응. 그렇다네.”
“왜요?”
“나도 1년 전인가 술자리에서 사이토한테 들었어. 93년도쯤인가, 아무튼 그때쯤에 그자가 아끼는 호스티스가 당시 오사카 쪽에서 활동하던 조직에 납치돼서 AV를 찍게 되었는데, 그 남자 혼자 본진에 들어가서 박살을 냈다고 하더라고. 스무 명인가, 서른 명인가 되었다지. 피식-.”
“정말요?”
“그렇다네. 재일교포 애들로 조직이 상당히 악질이었는데, 그날 완전히 조직 박살 나고. 그날 그 남자가 입은 상처도 만만치 않았는데, 사지 멀쩡히 살아났대.”
“그래서 별명이 ‘만지’인 건가요?”
“뭐 소문은, 그전에도 그런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는 거야. 원래 별명이 ‘불사신’이었는데, 그날 칼에 잘려 덜렁거리는 팔을 붙잡고 싸우는 걸 누가 목격한 이후로 ‘만지’로 바뀌었다네.”
“에이- 설마요?”
“뭐, 믿거나 말거나.”
“설마 본부장님도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을 믿으시는 거는 아니시죠?”
“왜? 믿으면 안 돼?”
“네에?”
“크크큭. 재미있잖아. 이런 영웅 이야기들.”
“재미있기는 하지만···. 진짜일 리 없잖아요.”
“요새는 말이야, 이런 이야기들이 없어. 그래서 애들이 고쿠도를 멸시하는 거야. 옛날에는 이런 멋진 이야기들이 많았거든, 사람들이 우리를 협객이라고 부르고 말이야. 과장이 섞여도 이런 전설들이 있어야 사람들이 좋아해.”
“아아-.”
“아무튼 나도 만나보고 싶네, 불사신 만지. 사이토 말이 그자는 늙지도 않는다던데?”
“에이-.”
“그냥 그렇다고.”
히로를 만나고 싶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사토 마사키는 전설을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