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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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임인 듯, 게임 아닌, 게임 같은 그곳.
우선 주위를 돌아보았다.
뭔가 다르다. 형진이 알고 있던 궁전과 다르고, 지하 감옥 주위의 풍경과 다르다. 단순히 지하 감옥 내부의 시설 구조만 봤을 때는 이전에 봤던 궁전의 지하 감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다른 엉뚱한 장소였던 모양이다.
그것은 사실 퀘스트 내용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궁전의 안쪽이라면 내궁이라든지 하는 식의 다른 이름을 쓰지, 좀 커다란 집의 안쪽을 가리키는 안채 같은 용어를 쓰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기야 다 썩어 문드러지는 감옥 내부의 모습만으로 여기가 궁전 안이라고 판단한 것 자체도 문제였다. 애초에 궁전의 지하 감옥은 다 떨어진 누더기를 걸친 부랑자 따위가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다. 좀 산다하는 분들이 대역죄라든가 반역죄라든가 역모죄 같은 아주 커다란 죄를 저지르거나 모함 받거나 덤터기 씌워진 상태로 형장에서 뎅겅 목이 잘리기 전에 잠시 거쳐 가는 곳이 바로 궁전의 지하 감옥이다.
어쨌든 그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과연 그 안채가 어디냐는 점, 그리고 결국 이 퀘스트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궁전이 아닌 다른 곳이라면, 그로서는 이곳의 내부 구조 따위 알 도리가 없다.
형진은 일단 병사들이 가지고 있던 창 하나를 집어 들고 근처의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아니나 다를까, 호각 소리를 듣고 달려온 병사들이 곧바로 그곳에 도착했다.
“이런!”
“젠장, 너희 둘은 먼저 감옥 안을 살펴라! 너희 둘은 날 따라와!”
“넷!”
조장인 듯한 병사가 다른 병사 열 명 정도를 이끌고 달려오더니 몇 명을 남기고는 급히 어디론가 달려간다.
감옥을 지키던 병사 둘도 천운으로 간신히 이겼는데, 다시 열 명이나 되는 병사를 상대하는 건 절대로 무리다. 상대는 커녕 아차하는 순간 떠밀려 고슴도치처럼 창에 꿰뚫려 죽어버릴 것이다.
어쩐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다시 어디선가 함성 소리와 비명, 금속 등이 맹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감옥 안에 들어갔던 두 명의 병사가 급히 올라와 남아 있던 자들에게 무언가를 보고하자, 그들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감옥의 문을 잠그고는 급히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감옥 앞은 다시 텅 비어 버렸지만, 형진은 섣불리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감옥 문을 밀치고 나갔다가 병사 두 명과 딱 마주쳐 버린 기억이 아직 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무턱대고 나가서 헤매봐야 아무 의미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퀘스트에서 지시한 안채가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형진은 문득 하늘을 바라보다가 잠시 어이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 위에 마치 ‘이곳이 안채입니다’라는 느낌으로 아래쪽을 향한 화살표 하나가 덩그러니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떠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농구공이 튕기듯이 아래쪽을 콕콕 찌르는 모양새로 찬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게임일까 아닐까를 놓고 혼란스러워 하던 자신을 어서 오라 손짓하듯, 화살표는 그렇게 하늘 위에 또렷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후우우우…”
형진은 이 순간 리얼이니 언리얼이니 따지는 걸 그만 두기로 했다. 해봐야 머리만 아프고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임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한 것이다.
어쨌든 안채의 위치를 알았으니 지금은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형진은 그렇게 되뇌이며 다시 번뇌에 휩싸여 발광하려는 자신을 다잡았다.
목표를 확인한 형진은 주위를 경계하며 가급적 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화살표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불행히도, 화살표 방향은 높다란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훌쩍 뛰어 넘는다든가 무언가 다른 방도를 찾아 담을 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바로 궁전은 아니더라도, 이곳은 성채와 같은 장소일 가능성이 높았고, 그것은 다시 말해 방어는 물론이고 침입자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일부러 내부 구조를 비틀어 놓았을 가능성 역시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립다. 자동 길 찾기. 그냥 클릭만 하면 알아서 길을 찾아가는 자동 길 찾기. 병신 같은 길 찾기 루틴 때문에 두세 배 이상 먼 거리를 빙빙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튼 자동으로 어딘가를 이동한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떠올린다.
곤란하다. 무척이나 곤란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쇠창살을 부쉈던 것처럼 이 벽도 한 번 부셔봐야 하나.
하지만 감옥 안에서 쇠창살을 부수는 것과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부수는 건 결과적으로 엄청난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 아무리 병사들이 멍청해도 안채를 지키기 위한 벽이 무너졌는데 그냥 아 그런가보다 하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달리 뭔가 방도를 찾아 봐야 하는데…
바로 그때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형진의 시야에, 웬 커다란 두루마리를 한 아름 안고 뛰어가는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혹시나 마법 스크롤 같은 것이 아닐까 해서 화들짝 놀랐으나, 아무리 강력한 마법을 담았어도 족자로나 쓸 법한 저런 커다란 두루마리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스크롤을 써봤어야 말이지.
하지만 저것이 스크롤이 아니라 중요한 정보를 담은 문서나 장부 같은 것이라면, 외곽에서 벌어진 소란으로부터 안전한 보관을 위해 안쪽으로 옮기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안쪽으로. 이것이 중요한 점이다.
형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남자의 뒤를 쫓았다. 처음엔 좀 돌아가는 느낌이었지만, 조금 더 따라가자 안채로 들어가는 용도로 보이는 출입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 이제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는 찾았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저곳을 통과할 수 있을까.
입구를 지키는 병사는 다섯 명. 두 명씩 한 조를 이루어 양쪽에 버티어 서있고, 그들을 이끄는 선임으로 보이는 병사가 마치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다. 그리고 그 병사의 뒤쪽에 어서 여기까지 넘어와 보라는 듯이 화살표가 땅바닥을 콕콕 찍어 보이고 있었다.
저 화살표. 아무래도 눈에 거슬린다. 바닥을 쿡쿡 찍어 대는 느낌이 마치 올 테면 와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짜증스럽다. 가고는 싶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섯 명 상대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잠시 고민하고 있던 형진은 갑자기 담벼락 근처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화들짝 놀라 그곳으로부터 떨어져 바라보니, 무언가가 불쑥 담벼락 밑으로 고개를 내민다.
개다. 웬 개 한 마리가 담벼락에 개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빠져 나오고 있었다.
“…”
개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얼른 뒷발로 자신이 빠져 나온 구멍에 대충 흙을 덮고는 어디론가 쏜살 같이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 놈의 이에는 만화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고기 덩이가 물려 있었다.
어색하다. 엄청 어색하다. 하필 이 상황에 웬 개구멍이라니. 그것도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른바 망가니쿠라고 불리는 그런 고기 덩이까지 문 개라니.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공교롭다.
생각해 보니 방금 전 두루마리를 들고 뛰어가던 남자도 뭔가 이상하다. 마치 자비로운 누군가가 일부러 힌트를 마구마구 뿌려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오죽하면 역시 튜토리얼이 맞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다시 떠오를 정도다.
형진은 급히 주위를 살폈다. 운영자라든가, 그 비슷한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아쉽게도 눈에 들어오는 다른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기야 있어도 형진의 눈에 보였을 리가 없다. 애초에 운영자든 뭐든 불가시 상태로 그를 지켜보고 있다면 형진이 찾을 방법이 없는게 당연하다.
뭔가 영 꺼림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섯 명이나 되는 병사를 때려눕히고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급히 창대로 담벼락 아래쪽을 파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미 방금 전의 개가 자주 이용하는 통로였는지 파기가 쉬워서 충분히 넓은 구멍이 금새 만들어졌다.
문득 예전에 야자 빼먹으려고 개구멍 타던 일이 떠오른다. 정문을 교사가 지키고 있으니 개구멍을 타는 수밖에 없었던 것까지 판박이다. 걸리는 순간 죽는다는 것 까지도 똑같다. 물론 여기서 죽는다는 표현이 가리키는 상황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지만.
젠장.
야자가 나중에 닥칠 여러 가지 일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의 일환이라더니, 이제 와서 그 말이 사무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하기야 그 말의 진의는 야자와 야근을 등가로 놓고 비교하는 것이었겠지만, 어쨌든 어떤 형식으로든 그말이 현실화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증스러운 일이다.
바닥을 기어서 개구멍을 통과한 형진은 방금 전의 개가 그랬듯이 개구멍을 다시 막아놓고 주위에 떨어진 나뭇잎을 덮었다. 만약 이곳을 탈출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과연 자연은 인간의 훌륭한 스승이다. 더불어 개구멍 이용법 따위를 감사하게 익혀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새삼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개구멍의 수습을 마치고 안쪽으로 한 걸음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이 의뢰내용이 갱신되었다.
[임무가 갱신되었습니다] -가트는 약속한 대로 단검과 열쇠를 넣어주었다. 일단 족쇄를 풀고 감옥을 벗어나자. (완료!)-양동작전이 시작되었다. 서둘러 안채로 진입하자. (완료!)
-요새로부터의 지원군이 성채에 도착하려면 약 십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지원군이 도착하면 양동을 위해 움직였던 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것이다. 그 전에 목표를 처리해야만 한다. 행운이 함께 하기를!
갱신된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형진은 이 임무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은 암살이다. 그것도 성 안에 존재하는 아주 중요한 인물을 암살하는 그런 아주 위험한 임무다. 단순히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이고 난 뒤에는 광분한 병사들을 피해 도망까지 쳐야한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내용의 맥락을 보면 딱 그렇다.
미친.
절로 욕이 나온다. 욕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걸 튜토리얼이 아닐까 하고 다시 생각했던 자신이 원망스럽다. 이건 차라리 자살에 가까운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죽으라고 들여보낸 것이나 다름 없는 그런 임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암살이라는 건 그렇게 성공률이 높은 수단이 아니다. 더구나 이렇게 견고한 방어시설 안에 자리 잡은 상대를 암살하는 건 전문가가 나서더라도 그 성공률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면밀하게 정보를 수집해서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면 모를까. 이렇게 대놓고 소란을 피워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식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그야말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쓸만한 다른 수단이 전혀 없을 때, 아무리 찾아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이건 투입한 인원이 전부 죽을 각오를 하고 실행하는 그런 수준의 작전이다.
소설 같은 곳에서 괜히 암살자들이 걸핏하면 주인공에게 걸려 샌드백 신세가 되는게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이런 암살 임무는 약이든 종교든 퍼부어서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만들어서 밀어 넣게 마련이다. 원래부터 제 정신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형진은 이 임무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버린 돌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돌아가시겠네…”
상황을 파악하자 정말 그냥 돌아가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공이고 나발이고 알아서 불구덩이로 뛰어들어가는 불나방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바로 그에게 단검과 열쇠를 건네준 가트라는 자의 존재다.
안채까지는 아니어도 성 안쪽의 감옥 안으로 독단검과 열쇠를 넣어 줄 정도라면, 이미 완벽하게 신분을 세탁해 성 안에 잠입한 첩자라고 봐도 무관하다. 그리고 만약 이 작전을 구상한 것이 자신이라면, 만에 하나 형진이 변심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가트라는 자를 감시역으로 활용할 것이다.
진퇴양난이란 아마도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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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니라니까 왜 안 믿어.
주인공: …
작가: 그런 이유로, 해피 뉴이어!